[제정임의 문답쇼, 힘] ⑥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회장

세계 최대의 비대학 경영교육기관인 세계경영연구원(IGM)을 통해 CEO(최고경영자) 1만5000명을 가르친 전성철(67) 회장은 지속적으로 번영하는 기업의 요건으로 ‘영리함’과 ‘건강함’을 꼽았다. 전 회장은 28일 SBSCNBC에서 방송된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해 “시대변화를 읽는 영리함과 함께 사명의식, 핵심가치, 비전(꿈)을 공유하는 건강함을 갖춘 기업이 영속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CEO는 기계의 본질을 잘 모르는 엔지니어와 같다”며 “동기부여만 제대로 하면 사원들의 가동률을 수천 퍼센트 이상 올릴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날 방송의 주요 내용.

▲ 28일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한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회장이 우리나라 기업경영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SBSCNBC

CEO 1만5천명 교육, 현재 수강 중인 인원 3천명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우리나라에서 최고경영자를 가장 많이 가르친 분이죠. CEO 만 오천 명의 스승,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회장 모셨습니다. 회장님은 국제변호사세요. 미국과 한국의 대형법률회사에서 잘 나가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 정책기획비서관을 하시고, 대학교 부총장도 하셨어요. 경제 방송 진행자도 하셨고 정치에도 잠깐 발을 담그셨는데요, 그러다가 지금은 세계경영연구원이라는 CEO전문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수많은 도전과 변신을 해 오셨던 건지, 이유가 궁금합니다.

전성철(세계경영연구원 회장): 한마디로 팔자가 기구해서죠(웃음).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조금 예외인 것 같아요. 성격이 새로운 분야를 좋아하는 면도 있고, 또 복이 없어서인 것 같습니다. 특히 정치 복이 없어서, 선거 실패 이후 옛날에 하던 일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한 것이죠. 

제: 변호사는 오래 공부해서 자격증을 따야 하잖아요. 그런데 국제변호사 자격증을 장롱면허로 묻어두시고, CEO교육을 하고 계십니다. 대학이 아닌 CEO교육기관으로는 세계 최대란 얘길 들었어요. 처음 이 회사를 만들 때는 벤처 창업하는 것과 비슷했을 텐데, 어떤 생각으로 시작하셨나요.

전: 제가 2002년 대선 때 정몽준(국민통합21) 후보 캠프에 갔다가 그 후보가 잘 안 되는 바람에 제 자리로 돌아왔죠. 억울하기도 하고 해서 2004년 총선에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가 2003년 초였죠. 그래서 1년 정도를 자유롭게 있을 자리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제가 세종대학 경영대학원장하면서 가르쳤던, CEO들에게 의논을 했죠. 내가 낙동강 오리알이 됐는데 어떻게 할까하고 물어봤어요. 옛날에 우리 하던 것(최고경영자과정)을 개인 회사로 해보면 어떨까 하고 물어보니 CEO들이 돕겠다고 했죠. 이렇게 해서 5평 오피스텔에 여직원 한 명과 호텔방을 교실로 빌려서 시작한 것이 세계경영연구원입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CEO가 대학이 아닌 곳에 가서 공부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어요.

제: 세를 얻어서 시작한 세계경영연구원이 지금은 직원 몇 명의 회사로 성장했나요?

전: 지금은 직원 150명, 그리고 재학하고 있는 CEO가 3000명 정도 됩니다. 

제: 지금까지 수강한 CEO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경영자들 몇 분만 소개해주세요.

전: 경영자라고 하면 창업경영자와 전문경영인이 있죠. 전문경영 중에는 CJ 이채욱 부회장, LG 유플러스 이상철 부회장, LG전자 남용 부회장, 두산 이재경 부회장 등이 있는데 다들 개성이 있으시죠. 이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어요. 인간적으로 괜찮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제: CEO로서도 유능하지만 그보다 인간적으로 훌륭한 분이다?

전: 그것이 굉장히 시사하는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소위 시쳇말로 ‘싸가지가 있다’고 하잖아요. 영어로 디슨트(decent:품격있음)하다는 것이죠. 저는 경영자로서 성공하려면 인간적인 디슨시(decency), 싸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학시절 체중 50킬로, 택시기사·웨이터·경비 등 전전

제: 내 인생의 키워드 첫 번째로 숫자 50을 꼽아주셨네요.

전: 살면서 굴곡이 많았는데, 제일 안 좋았을 때가 미국서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들어가려고 택시운전사도 하고, 공장에도 다니고, 웨이터도 해보고, 경비원도 해봤을 때예요. 1970년대 말이었는데, 당시에는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이 미국 로스쿨 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빈손으로 유학 가서) 잘 못 먹었습니다. 온갖 고생을 하다보니까 체중이 50킬로그램(kg)밖에 안 됐어요.

제: 실례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신지요.

전: 지금은 68kg정도 됩니다.

제: 지금 딱 보기 좋으신데, 그때는 정말 병약한 모습이었을 것 같아요.

전: 미국인들이 나보고 월남(베트남)에서 왔냐고 물었어요. 월남사람들이 우리보다 작잖아요. 아니라고 화를 내면,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더라고요. 그 때 50kg의 체중으로 노동하면서 참 어려웠죠.

제: 웨이터도 하셨고, 택시기사, 야간 경비도 하던 시절에 특별히 기억나는 어려운 순간은 없으세요?

전: 몸이 너무 약하니까 육체노동을 하면 며칠 만에 쓰러지는 거예요. 중국식당 가서 웨이터를 해보니까, 도저히 하루 이틀 하고나면 일어나지 못할 정도였어요. 그 중 잘 할 수 있었던 일이 택시기사였어요. 큰 육체노동이 아니니까. 그런데 그 택시회사의 철칙이 뭐냐면, 사고가 나면 무조건 해고라는 거예요. 그때 머릿속이 복잡하잖아요. 돈은 없고, 학교는 어떻게 가야하나 같은 딴 생각을 하다가 멈춤 표시를 지나면서 사고가 나버린 거예요. 그냥 가면 그날로 해고예요. 그래서 그 차를 몰고 한국 사람이 하는 정비소로 갔어요. 제가 있었던 미네소타라는 곳이 한국으로 따지면 중강진에 해당하는 추운 곳인데, 거기 가서 사고 난 걸 (정비소 주인과) 둘이서 망치로 때리면서 고치는데, 영하 30도인데 얼마나 춥겠어요. 그렇게 두 시간을 하는데 계속 호출 삐삐가 울리는 것이죠. 날이 어두워져서 할 수 없이 그냥 몰고 갔어요. 그 자리에서 해고당했죠. 그날 밤이 참 기가 막혔죠.

2번의 해고가 가져온 전화위복

제: 다음 키워드로는 해고를 꼽아주셨는데, 아까 택시기사에서 해고된 얘기도 있고, 뭔가 쓰라린 사연이 있을 것 같습니다.

▲ 전성철 회장의 두 번의 해고는 삶의 전화위복이었다.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전: 제가 미국에서 로스쿨을 나온 뒤 로펌(법률회사)에 들어갔죠. 사실 학교 다닐 때 절대 우수한 학생은 아니었어요. 로스쿨에서 360명 중 250등 했을 거예요. 미네소타대학에서 (뉴욕) 맨해튼의 로펌에 들어가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예요. 맨해튼은 전국에서 최고를 뽑으니까 저 같이 영어도 잘 못하는 한국 사람을 뽑을 리가 없죠. 그런데 제가 여러 시도를 해서 맨해튼에서 직업을 얻었어요. ‘나를 뽑아주면 한국 기업을 끌어 오겠다’고 한 거죠. 일 년차 변호사는 인턴 격인데, 그것도 하면서 고객 유치도 하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제: 그 때가 몇 년도였죠?

전: 그 때가 83년이었습니다.

제: 우리나라 기업들이 한창 열심히 국제화를 할 때군요.

전: 네. 그때가 한국이 세컨 저팬(두 번째 일본)이 될 것이란 얘기가 나올 때죠. 거기에 그 로펌이 혹해서 저를 뽑은 것이죠. 변호사 50~60명 정도 되는 중견 로펌이었어요. 그 약속은 지켜야 되겠는데 일 년차 변호사가 제일 힘들거든요. 모든 훈련 다하면서 영어도 서툰 사람이 밖에 나가서 고객 유치를 한다는 게, 너무 힘든 거죠. 백인들만 있었고, 저만 유색인종이었어요. 파트너들이 정말 엄한데, 훈련이니까 조금만 잘 못해도 깨지는 거죠. 그런데 또 점심 때 나가선 고객 유치 하니까 그 두 개를 잘 할 수 없었어요. 결국 사고가 났어요.

제: 서류 작성하고 법정 관련된 일처리를 하는 데서 말이죠?

전: 법률메모(legal memo)를 작성하는 일인데, ‘이런 상황에서 우리 고객의 법적인 권리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판례를 찾아서 고객이 이길 가능성을 예측하는 거죠. 고객유치 하나도 안 해도 일 년차 때 모두 그 일 하느라 죽으려 그래요. 근데 낮에 가서 고객유치도 해야 하니까 도저히 안 되고 사고가 터진 거죠. ‘당신은 열심히는 하는데 도저히 여기는 안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대신 직장을 찾는데 시간을 주겠다고 했어요.

제: 새 직장을 찾아 나갈 동안은 월급을 주겠다, 이런 건가요?

전: 네. 하지만 소문이 나면 창피해서 있을 수가 없거든요. 빨리 찾아야 해요. 그런데 그게 저한테는 인생에 가장 큰 하나의 행운이 되었어요. 그 때 우리가 34층짜리 (맨해튼) 57번가의 좋은 건물에 있었어요. 높으니까 엘리베이터 타는 곳이 두 개가 있었는데, 저 쪽 칸에 ‘리드 앤 프리스트’ 법률회사가 있는 거예요. 그 회사에 편지를 썼죠. 채용담당자가 저보고 오라고 해서 솔직하게 얘기했어요. ‘고객유치는 잘 할 수 있는데 인턴 일과 두 개를 같이 하지는 못하겠다.’ 그때 제 나이가 서른다섯이거든요. 제 동료들은 다 스물일곱 정도 젊은 애들이에요. 저는 한국에서 대학 나왔죠, 군대 갔다 왔죠, 1년간 직장 생활도 했어요. 그렇게 한국을 잘 아니까 고객 유치하는데 안성맞춤이었어요. 6개월만 달라고 했어요. 회사가 부자다보니까 이해를 해주고 흔쾌히 허락했어요. 그래서 6개월 동안 한국의 종합상사를 위주로 고객 유치하는 일만 할 수 있었어요. 그때 국제상사를 제일 먼저 끌어들였는데, 그런 것들이 대박을 터트렸습니다. 내가 끌어온 고객의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면서 변호사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택시 운전기사에서 해고된 것도 결과적으로 좋았어요. 그렇게 되고 나서 밤 11시부터 새벽 7시까지 근무하는 발전소 야간 경비를 맡았거든요. 그 때 밤에 제가 제대로 (로스쿨 입시) 준비를 할 수 있었거든요. 두 번의 해고가 제 삶에서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한국의 경제성장 덕에 유수의 로펌 ‘파트너’로 승진

제: ‘리드 앤 프리스트’ 라는 회사는 아까도 말씀 하셨던 것처럼 뉴욕에서도 잘 나가는 대형 로펌인데, 거기서 파트너가 되셨다고 들었어요. 그러니까 의사결정권을 공유하는 자리까지 올라갔다는 것인데, 굉장히 짧은 기간에 한국인으로서는 드물게 파트너가 되었다. 그것도 기록인 것 같아요. 어떤 비결이 있었습니까?

전: 회사에 기여를 많이 했죠. 당시는 미국 법조계가 지각변동을 일으킬 때였습니다. 변호사수는 자꾸 늘어나는데 법률 수요는 한정되었으니까, ‘누가 비즈니스를 가져오느냐’가 점점 더 중요해질 때죠. 한국에는 지금 같은 법률회사가 없었고, 전부 1인 변호사였어요. 근데 미국에서는 혼자서 할 수가 없어요. 판례를 다 찾아서 결론을 내야하니까 종합병원 같은 법률회사에 맡겨야 하죠. 제가 종합상사 지사장들을 만나서 얘기했어요. 군대도 갔다 오고, 대학도 나오고 막걸리도 마시고, 문화적으로 같으니까 편하게 설명했죠. 종합병원으로 가야한다고 설득해서 그들이 저한테 많이 왔죠. 나를 찾아서 온 사람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열심히 했어요. 제대로 된 서비스를 고객들이 받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미국 변호사들을 혹독하게 부렸죠. 일 잘 못하는 친구들은 박살을 냈죠.

제: 우리나라 기업으로부터 의뢰받은 일을 부실하게 처리하면 박살을 내셨군요.

전: (미국 변호사들이) ‘끔찍한(terrible) 철(chull)’ 이라고 부르면서 치를 떨었죠. 그러면서 한국 기업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전성철한테 가면 소송을 이긴다’는 소문도 좀 나고, 한국 기업들이 자꾸 왔죠. 로펌들이 경쟁이 심해지니까 제가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빨리 파트너를 시켜 줬죠.  

제: 다른 회사에 스카우트 되어 뺏길지도 모르니까 빨리 파트너를 시켜서 주저앉히자? 결국은 우리나라가 성장을 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열심히 국제화를 하면서 조국의 경제성장 덕을 보신 거네요?

전: 그럼요, 한국 경제의 성장이 없었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죠.

문화적인 ‘이방인’ 행복하게 살기 위해 귀국 결심

제: 대형 로펌의 파트너가 되면 연봉도 굉장히 많을 테고, 한국 경제도 계속 성장하니까 앞으로도 더 승승장구 할 가능성도 높을 텐데 그 때 왜 귀국을 결심했나요.

전: 한마디로 양식이 맛있지만, 우리가 매일 양식만 먹으면서 살 수는 없잖아요. 아예 한국 음식 맛을 몰랐으면 모르겠는데, 저는 29살에 미국을 갔거든요. 저는 진짜 한국인이죠. 로스쿨 마치고 로펌 가서 파트너가 되기까지는 목표가 있으니까 한눈 안 팔고 열심히 했는데, 파트너가 되고 나니까 더 이상 이룰게 없는 거예요. 거기는 파트너가 되면 죽을 때까지 파트너예요. 그러다 보니까 ‘과연 내가 여기서 행복한가’를 생각하게 됐죠. 문화적으로 행복하지 않았어요. 미국 사람들 파티에 가서 앉아 있으면 자기들끼리의 문화가 있잖아요. 풋볼 애기하고. 거기 끼어도 재미가 없고, 어색하고. 사회생활이 굉장히 제한됐어요. 한국 사람들끼리 200명 정도 되는 교회에서 만나서 교류하니까 재미가 없었어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내 나라로 가야겠다, 그것이 100% 이유죠.

▲ 변호사로서의 목표를 이룬 뒤, 행복하게 살기 위해 귀국을 결심했다는 전성철 회장.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풍요함 넘어 ‘건강한 사회’를 향한 목표 설정 필요
 
전: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는 잘 살고 있잖아요. GDP(국내총생산)가 세계 11위니까. 그런데 우리나라의 행복 지수는 47위예요. 11번째 부자가 47번째로 행복하다는 것은 조리가 안 맞는 거죠. 정말 더 걱정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나라 자살률이 12년째 OECD 회원국 중 1위라는 것이에요. 이 딜레마를 풀어야 할 것 같아요. 국가는 두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해요. 하나는 풍요한 사회입니다. 하지만 풍요한 사회만으로는 절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죠.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들은 풍요하지만 행복하지 않잖아요. 그 다음에 필요한 요건이 뭐냐면, 건강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 제대로 된 나라가 되는 요건입니다. 우리나라는 5천 년 동안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풍요해지기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죠. 정말 독재를 무릅쓰더라도 풍요하게 살려고 지난 50, 60년을 열심히 했죠. 하지만 풍요가 가져온 것이 세계 47번째로 행복하고 자살률 1위인 나라죠.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두 번째 목표 정하는 것을 안했기 때문이에요. 건강한 사회란 무엇입니까? 상식과 합리성이 통하는 사회죠. 우리 민족은 지금 방황하는 민족이에요. 행복해질 줄 알고 풍요를 열심히 추구했는데, 행복하지 않거든요.

제: 그 얘긴 경제성장률이 국정의 지표가 되는 게 아니고 사회 건강지수, 사회 행복지수 같은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이죠?

전: 그렇죠. 한 나라의 건강성은 공공부문이 책임져야 합니다. 풍요로움은 민간부문이 책임져야 해요. 공공부문이 풍요 쪽에 계속 매달려가지고 집값 올려서 경기 부양하려니까 계속 엉뚱한 곳에다가 발을 내딛는 거예요.

제: 풍요는 얼마만큼 됐는데 (사회는) 건강하지 않고 사람들은 불행한 사회가 된 거죠. 

전: 그렇죠. 그래서 미국이 건강한 사회에요. 물론 미국이 문제가 많죠. 마약, 인종차별, 포르노 등 온갖 문제가 있지만 공공부문이 건강하기 때문에 건강한 사회입니다. 정치가 건강하고 공무원들이 건강합니다. 근데 우리나라 공공부문 보세요. 세월호 사태, 메르스 사태가 뭡니까. 공공부문의 실패죠. 국방을 책임지는 군인들의 방위산업 비리까지. 건강성을 책임져야 할 공공부문이 제일 부패해 있으니까 지금 우리가 이렇게 된 거예요. 옛날에 우리가 ‘잘살아 보세’ 목표가 있었을 때는 그 목표를 중심으로 뭉쳤어요. 근데 그 목표가 어느 정도 되고 나니까, 경제 성장률 2-3% 올리자하는데, 이것은 국민의 마음을 뛰게 못하잖아요. 국가 개조 사업이란 제도를 바꾸는 사업이 아니에요. 생각을 바꾸는 사업이에요.

▲ 전 회장이 경제적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제: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정부가 풍요로운 사회, 즉 경제성장에 매달려 있을 때가 아니고, 공공부문 개혁을 통해 건강한 사회로 국민을 끌어가야한다는 것이군요.

전: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건강한 사회입니다. 이제는 밥 굶는 사람 거의 없잖아요. 그럼 마음이 행복해져야합니다. 떡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먹는 떡이고, 하나는 마음의 떡이에요. 먹는 떡이 없을 때는 우선 먹어야 사니까 중요해요. 하지만 이제는 마음의 떡을 키워주는 국가가 되어야 하는 거죠. 제가 미국에 살다가 한국에 와서 느끼는 것이, 미국에는 행복하냐 하는 질문에 행복하다는 사람이 굉장히 많지만 우리나라에는 별로 없다는 거예요. 전부 죽을 지경이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고 사는 거예요. 편안함과 여유가 있는 사회가 뭔지 모르는 거예요. 건강한 사회, 상식과 합리가 통하는 사회를 위해 국가 목표를 새로 설정하는 거대한 작업이 지금 필요합니다. 이번 선거도 경제가 중요하다고 야단법석이었잖아요. 물론 경제가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건강한 사회를 향해 새로운 국가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산비리 등 부패한 공공부문 개혁 절실

제: 건강한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이야기를 해보면 불평등이 해소된 사회, 양극화가 덜한 사회, 복지가 잘 갖춰진 사회, 교육과 관련해서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는 사회,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서 안전한 사회, 굉장히 다른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전: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부문이 건강한 사회입니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건강한 사회에 대한) 견해가 다를 수 있지만 공공부문이 건강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공공부문이 건강해지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공공부문을 믿을 수가 없어요. 저는 방산비리를 보면서 “저 무기가 몇 퍼센트나 작동할까”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무기의 무게가 안 나오니까 다른 쇠를 얹어서 시험을 통과하고,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속출했으니까요. 그런데 사람들은 여전히 경제성장률 3%가 안 된다고 야단법석이에요. 엉뚱한 데 관심을 쏟고 있는 것입니다.

▲ 방산비리 사건은 부패한 공공부문의 현실을 보여 준다.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제: 기업을 경영하는 CEO들을 주로 교육하셨지만, 국가를 하나의 조직이라고 본다면, 물론 기업 경영과 국가 경영은 본질적으로 다른 부분이 많겠습니다만, 국가 최고경영자로서 박근혜 대통령은 어느 정도까지 점수를 주실 수 있나요?

전: 어디 잡혀 가는 것 아닙니까? (웃음) 저는 박대통령을 한 인간으로서 굉장히 높이 평가합니다. 주관이 뚜렷하고 애국심이 굉장히 강한 분이니까요. (그러나) 지도자의 제일 중요한 역할은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정부는 그 부분(국가 목표 설정)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가 중요하긴 하지만, 국정 운영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경제가 아니란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경제성장이라는 것은 올해 5% 상승했다 하더라도 조금만 잘못하면 그 다음해에 5% 하락하는 것이 순식간이잖아요. 경제를 살리겠다고 당장 경기부양을 해서 국민을 기분 좋게 하는 것이 지도자의 일이 아닙니다. 진정한 민족의 지도자는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제: 어떻게 건강한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요?

전: 그렇죠. 건강한 사회여야 풍요함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이 잘 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영리함’이고, 두 번째는 ‘건강함’입니다. 영리함과 건강함이 같이 있을 때, 그 기업이 잘 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영리하기만 하고 건강하지 못한 기업은 상당히 성과의 등락이 심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건강한 기업은 계속해서 영리해지며 발전합니다. 즉, 건강한 기업의 성과는 계속해서 향상되지만, 건강하지 않고 영리하기만 한 기업의 성과는 불안정합니다. 때문에 기업에서도 건강함이 제일 중요하게 봅니다.

‘가치관’에 기반한 경영이 건강한 기업의 핵심조건

제: 여기서 기업경영 이야기로 넘어갔으면 하는데요. 모토로라, 노키아, 에릭슨 등 한때 너무 잘 나가서 경영학 교과서에 사례로 실렸던 굴지의 글로벌 기업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잖아요. 계속 잘나가는 기업과 고꾸라지는 기업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인가요?

전: 영속하는 기업은 건강하면서 영리한 기업입니다. 영리하다는 것은 창조적이라는 것입니다. 건강하다는 것은 가치관이 확실한 것이죠. 세계적 기업이었던 소니가 위기를 맞은 이유는 건강함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어떤 기업이든 수십 년간 번성하면 교만해집니다. 소니가 그랬고 IBM이 그랬습니다. IBM이 90년대 초 파산 직전까지 갔던 이유는 오만해졌기 때문입니다. 건강하지만 영리함이 떨어져서 몰락한 기업은 노키아 같은 곳입니다. 전략이 잘못 되었었죠. 세상이 변하는 것을 몰랐어요. 모토로라도 그렇고요. 건강함과 영리함, 두 가지가 같이 나빠진 경우도 있어요. 어쨌든 기업의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건강함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우리가 인간을 볼 때도 가치관이 확고한 사람은 인생이 평탄하잖아요. 계속 발전하고요. 기업도 마찬가지죠.

▲ 기업이 영속하기 위해선 시대변화를 읽는 ‘영리함’과 가치관경영을 통한 ‘건강함’이 필요하다.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제: 최근에 칼럼에서도 가치관 경영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건강한 기업에 필요한 가치관 경영이 무엇인지 예를 들어서 쉽게 설명해주세요.

전: 상해에 발 마사지 가게가 있습니다. 두 가게가 붙어있는데, 한 가게는 잘 되고 한 가게는 잘 안돼요. 잘 되는 가게 주인에게 왜 당신 가게만 장사가 잘 되는지 물어봤더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직원들에게 “당신이 하는 일은 발 마사지가 아니라 지구촌에 에너지를 창출하는 일이다. 지친 사람들에게 발 마사지를 통해 에너지를 주고 행복을 주는 일이다”라고 얘기한다고요. 자신의 팔자가 더러워서 매일 냄새나는 남의 발이나 마사지하면서 먹고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옆집 직원들은 걸핏하면 울고, 싸우고, 결근합니다. 하지만 잘 되는 가게 직원들은 늘 환하게 웃으면서 일합니다. 생산성이 비교가 안 되고, 우선 고객의 기분이 다르죠. 가치관 경영의 첫 번째 필수요소는 사명의식입니다. 발 마사지 가게에서도 사명의식을 줄 수 있는데 기업이 사명의식을 주지 못하는 것은 말이 안 되죠.

두 번째는 발 마사지를 할 때도 어떤 부분을 눌러야 혈액순환이 잘 되는지를 알아야 하잖아요. 우리 가게에서는 정성과 전문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식으로 기업이 중시하는 핵심 가치를 가지면 일관성이 생깁니다.

세 번째는 꿈을 공유해야 합니다. 우리 가게는 10년 내로 상해 전체에서 월급을 제일 많이 주는 가게가 되겠다. 내년은 10%, 그 다음은 또 10% 더 주겠다. 이런 식으로 꿈을 공유하면 어마어마한 효과가 납니다. 전국방방곡곡에서 온갖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독립군이 되었던 것도 꿈을 공유했기 때문입니다. 회사도 그렇게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결국 가치관 경영의 필수요소는 3가지입니다. 사명의식, 핵심가치, 비전(꿈). 이 3가지를 공유하는 회사와 안 하는 회사의 성과 차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제: 기본적으로는 우리 회사가 기업 활동을 통해서 사회에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가 하는 생각이 공유되어야 하겠군요.

전: 그렇죠. 그게 제일 중요한 거예요. 우리나라의 많은 CEO들이 착각하고 있는 점이 있습니다. 자기 임무가 월급봉투 채워주는 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는 거죠. CEO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직원들에게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명의식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미국 갤럽연구소가 150여 개국을 방문해서 당신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해봤습니다. 가정, 건강, 돈, 직장 4가지 선택지 중에서 직장이 제일 많이 나왔습니다. 물론 건강도 중요하긴 하지만, 보통은 건강하니까요. 직장생활은 매일매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잖아요. 일에서 행복을 느끼던 발 마사지 직원의 마음 상태를 만들어 주는 것이 CEO의 임무예요. 사명의식이 있으면 월급봉투는 좀 적어도 견딜 수 있는데, CEO가 이런 점에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죠.

제: ‘나는 입에 풀칠하려고 직장 생활을 해’ 하는 사람과 ‘나는 세상에 이런 가치를 창출하는 하기 때문에 직장 생활을 하는 거야’ 하는 사람하고는 굉장히 다를 수 있겠네요. 또 하나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직원들이 회사가 성장하면 나에게도 큰 혜택이 돌아오겠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비전을 공유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전: ‘경영의 신’이라고 불렸던 일본 마쓰시타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에게 CEO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인지 물으니까, 모든 질문에 0.3초 만에 대답하던 사람이 5초를 생각하더니만 ‘인간에 대한 이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말이 경영의 핵심을 찌르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가치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잖아요. 경영이라는 것은 인간의 가동률을 높이는 작업입니다. 기계의 가동률 높이려면 엔지니어가 기계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가동률을 높이려면 인간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기계의 가동률은 20~30%정도의 차이밖에 안 납니다. 하지만 인간의 가동률은 매우 큰 차이가 납니다. 세월호 이준석 선장의 가동률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인간이 가치를 위해서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영자는 기계의 본질을 모르면서 기계를 다루는 엔지니어와 같습니다.

제: 경영자가 자기 회사의 소속직원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동기부여만 제대로 하면 엄청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거군요.

전: 모든 위대한 기업의 공통점은 소속직원들이 가치에 취해서 일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고, 인간은 어떻게 움직이는 존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경영학의 핵심은 인문학과 인간학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케팅, 회계와 같은 기능적인 것만 가르치고 있으니 CEO가 리더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거죠.

정부가 이끌겠다는 옛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라

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같은 창의적 경영자가 많이 나와야 하는데 지금 우리의 기업환경이 그렇지 못하다, 한계가 있다는 비판적인 의견도 많은데요. 우리나라의 창업환경, 기업환경이 어떻게 달라져야 창의적 경영자를 많이 배출하고 쑥쑥 성장하게 할 수 있을까요?

전: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전부 다 미국 기업입니다. 저는 미국을 예찬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경제에 국한해서 본다면 미국에서 배울 점이 많습니다. 기업이 잘 되기 위해서는 자유를 줘야 합니다. 기업이 자기들의 욕심과 창의를 마음껏 펼칠 수 있게끔 정부가 지원해주니까 미국의 기업들이 세계를 선도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도자가 40년 전 박정희 대통령시대의 패러다임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 주도로 무언가를 만들어보려고 하는 거죠.

제: 정부가 주도해서 민간 경제를 끌어가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건가요?

전: 기업인들에게 자유를 주면 가장 합리적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제일 낭비가 없게 판단하는 것이 기업인들입니다. 벤처기업이 싹수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해 투자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기업입니다. 영국에서 가장 먼저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유는 영국 시민들이 제일 먼저 자유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기업이 잘 되는 이유도 자유가 많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자꾸 끼어들지 않는 거예요.

▲ 정부의 경제정책 패러다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전성철 회장.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제: 지금의 예를 들면 창조경제센터를 만든다, 벤처 기업의 연구개발을 정부가 심사해서 연구비를 준다, 그런 식으로 끌고 가지 말라는 말씀이군요?

전: 연구비를 (정부가 아닌) 투자자가 판단하고 지원하게 해야 합니다.

제: 시장이 기술의 시장성을 판단해서 끌고 가도록 말이죠.

전: 그래서 법원의 기능을 높여주고 잘못하는 기업은 엄벌에 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경제가 잘 되려면 행정부가 아닌 사법부가 활발한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제: 잘못한 경우 엄벌할 수 있게요.

전: 제가 지금 벤처기업인을 대상으로 학교를 하고 있잖아요. 장학금 몇천만원 주면서 교육하고 있는데, 정부의 ‘눈먼 돈’을 밝히는 벤처기업들도 꽤 있습니다.

제: 정부의 (벤처기업 지원) 정책자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군요.

전: 공무원들의 정책자금 집행에 문제가 많습니다. 자꾸 행정부가 나서보려고 하는 거죠. 지금의 정부가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하는데 비해서 성과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정부가 기업에 간섭하는) 옛 패러다임을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손잡아 주고, 밀어주고, 이끌어 줘야 할 때는 그것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정부가 뒤로 물러서서 심판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제: 시장의 질서를 해치는 자는 사법부가 나서서 정리 하도록 하고요?

전: 그렇죠. 위법에 대해서는 과감하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공공부문이 건강한 것입니다.

창조의 자양분은 ‘지식의 입력’

제: 수많은 CEO들을 교육하고 만나시잖아요. 요즘 국내외 경제환경이 어렵다는 얘기가 많은데, 늘 만나시는 CEO들은 현재 어떤 문제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은가요?

전: ‘창조성’이죠. 경쟁이 너무 심하니까요. 창조가 무엇인가 하면요, 유모차의 혁신 같은 겁니다. 엄마와 아기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유모차를 수십 년간 만들어 오다가 엄마와 아기가 마주 보는 유모차를 만들어내니까 얼마나 좋아요. 아이가 자는지 어떤지 바로 볼 수 있잖아요. 패러다임이 바뀐 거예요.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기업이 이기는 겁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죠.

제: 그런 것은 금방 답이 안 나오겠네요.

전: 답이 있죠. ‘창조의 프로세스화’라는 답이 있어요. 창조가 일어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창조가 일어나는 과정을 뇌 과학자들이 살펴보니까 그렇다는 거예요. 스티브 존슨이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지식이 머릿속에 투입될 때 뇌 세포의 연결이 바뀌면서 아이디어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제: (창조가 일어나려면) 지식의 입력이 필요하군요.

전: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의 창업자인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를 개발하면서 자동차 회사를 압도했는데요. 이 사람이 우연히 컨베이어 벨트를 생각해 낸 것이 아닙니다. 도살장에 가니까 사람은 가만히 서 있고 소가 사람 주위를 빙빙 돌고 있더라는 겁니다. 그것이 지식입니다. 지식을 얻은 순간 생각해 낸 거예요. 우리도 사람이 가만히 있고 기계가 사람 주위를 돌게 만들자고요. 이처럼 지식을 주입하면 그것이 창조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창조적인 조직을 만드는 비결은 회사 내에 지식을 많이 공급하는 것입니다.

▲ 창조가 일어나기 위해선 지식의 공급이 필요하다.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제: 지식을 창조의 자양분으로 넣어줘야 창조가 일어난다는 말씀이군요.

전: 그렇죠. 우리나라 10대 그룹의 교육비 비율을 조사해봤더니 매출 순위와 교육비 투자 비율 순위가 똑같다는 거예요. 책 읽기, 강의 듣기만 교육이 아닙니다. 대화도 너무 좋은 교육입니다. 소통을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소통은 가장 좋은 지식 흡입의 수단입니다. 교육과 소통을 같이 많이 하는 회사는 반드시 잘 되게 되어있습니다.

재벌 문제 핵심은 소유지분과 영향력 간의 비대칭

제: 아까 우리가 예로 들었던 모토로라, 노키아처럼 영속하지 못하고 몰락하는 기업이 계속 나타나고 있는데요. 한국의 대표적 기업도 예외가 아니라는 말이 많습니다. 한국 기업의 위기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보시나요? 또 위기가 어디에서 온다고 보시나요?

전: 우리나라 대기업의 가장 큰 위험요소는 경영권 승계입니다. 플라톤이 “최고의 정치체제는 철인에 의한 독재다”라는 말을 했잖아요. 훌륭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독재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철인의 후계자가 우수하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 기업경영 1세대들은 다 나이가 많으시고, 2세대에서 어떻게 될지 봐야 하는데요. (1997년) 외환위기 때 대기업 중에서는 30개가 망했는데, 그중 29개가 2세가 맡은 거였습니다. 대우가 1세대였고 나머지는 다 2세대였어요.

제: 지금 재벌의 문제점 중 하나가 민주적이지 않은 경영권 승계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재벌의 문제점, 개혁과제를 1~2개만 꼽아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 ‘1% 지분을 가진 사람은 1%만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하는 전성철 회장.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전: 우리나라 재벌 문제의 핵심은 소유지분과 영향력 간의 비대칭입니다. 1% 지분을 소유한 사람이 전체 그룹을 지배하고 있죠. 원인은 순환출자입니다. 순환출자를 규제할 조치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고리를 깨는 유일한 길이고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그것이 되면 비례가 되겠죠. 1% 지분을 가진 사람은 1%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요. 옛날에 귀족들은 특권을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일이잖아요. 인간은 모두 똑같으니까요. 때문에 지분율과 영향력을 비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성공의 남이 시켜 주는 것, ‘주는 자’가 되어야

제: 회장님은 굉장히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오셨고 파란만장한 경험을 해온 CEO들하고 늘 만나시잖아요. 그런 경험을 종합해 봤을 때 인생의 성공 공식을 1가지로 정리한다면 무엇일까요.

전: 저는 확신합니다. 성공은 남이 시켜주는 거예요. 나 스스로 잘나서 성공한다고 생각하는 의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내가 임원이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내가 창업자라도 직원이 일을 잘 안 해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성공은 남이 시켜준다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법칙이에요. 그래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원칙은 ‘주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남이 나를 도와주려면 내가 먼저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실화인데요. 똑같은 일을 2명의 직원에게 주었을 때, 1명은 4시간 덜 자고 일했고요, 다른 1명은 놀다가 대충 냈어요. 똑같은 월급을 받는데 4시간 더 일한 직원은 손해 본 것이잖아요. 하지만 일하는 모습을 보면 아니까요. 다음에 승진기회가 있을 때 누구를 승진시키느냐하면 손해 본 직원입니다. 다음 해외 연수 기회가 있다면 또 그 직원을 보내겠죠. 결국 밤을 새워 일한 직원은 4시간 손해로 어마어마한 이윤을 보는 셈입니다. 하지만 주는 자가 되라고 가르치지 않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점수 많이 따는 것을 최고로 생각하니까 주려는 마음이 안 생기잖아요. 성공은 남이 시켜주는 것이라는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성공하기 위해선 남에게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전성철 회장. ⓒ <제정임의 문답쇼, 힘> 화면 갈무리

제: 성공은 자기가 잘나서, 열심히 해서 되는 게 아니고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시켜주는 거고, 그래서 그들에게 나는 뭔가 가치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네요.

전: 저는 우수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공부도 잘 못했고, 대학과 로스쿨도 각각 두 번 만에 겨우 들어갔어요. 성적도 꼴찌 비슷하게 했고. 그런데 저는 우수한 사람을 참 많이 봤잖아요. (법률회사)김앤장에서도 봤고, 미국, 그리고 청와대에서도 봤고요. 결국 그중에서 누가 성공하느냐 하면요, 똑똑하고 잘났다고 성공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제정임의 마침표: 거친 풍랑 헤치고 항구에 닿았지만, 다시 낯선 바다로 떠나는 모험가 전성철.


경제방송 SBSCNBC가 지난 3월 24일부터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진행하는 명사 토크 프로그램 ‘제정임의 문답쇼, 힘’을 신설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9시부터 50분간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사회 각계의 비중 있는 인사를 초청해 정치 경제 등의 현안과 삶의 지혜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비뉴스>는 매주 금요일자에 방송 내용을 전재한다. (편집자)

* 전체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sbscnbc.sbs.co.kr/read.jsp?pmArticleId=10000798679

편집 : 박성희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