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청년’

▲ 김명진

우보 민태원의 <청춘예찬>은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글이었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 소리를 들어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지금 읽어보면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글이다.

그러나 그는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이었고, 현실이 참혹할지라도 더 나은 조국의 미래를 청춘에서 기대하며 그 글을 썼으리라. 조국은 해방됐고 나라도 세웠다. 우보가 예찬했던 청춘은 한국사회 발전동력이었다. 4•19혁명을 이끌었고 개발독재 시절에는 경제발전의 엔진이었다. 군사정권 종식에 앞장선 것도 청년들이었다. 청년이 역사의 진보를 이끌었으니 대한민국에는 청년들의 땀과 피가 배어 있다.

지금 청춘들은 조국을 ‘대한민국’이라 부르지 않는다. 국호 대신 봉건왕조인 ‘조선’을 조국에 빗댄다. 그것도 지옥을 뜻하는 접두어 ‘헬’이라는 단어가 붙은 채로. ‘헬조선’에는 청춘의 피가 끓지 않는다. 청춘이라는 이름에 가슴 설레는 이도 없다. 2016년 한국에서 청춘은 불안의 다른 이름이다. 우보가 예찬했던 청년들의 열정은 이젠 조소의 대상이다.

영화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에서 열연한 박보영은 청년의 열정을 요구하는 기성사회를 ‘꼰대사회’라 부른다. 10%가 넘는 청년실업률, 청년들이 취업한 신규 일자리의 65%가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을 들이대지 않아도 청년들은 한국의 미래가 어둡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체득한다. 이유는 하나. 청년들의 목소리를 낼 출구가 부족해서다.

소외된 청춘의 민원창구가 돼야 할 정치권에는 청년이 없다. 한국 정치는 제론토크라시다. 노인의, 노인을 위한, 노인에 의한 정치다. 17대 때 51세이던 국회의원 평균 연령은 18대에 53.4세, 19대에는 58세로 높아졌다. 정당이 청년을 바라보는 시선도 우스운 수준이다. 제1야당의 청년비례대표 나이 상한은 45세다. 청춘을 바라보는 눈높이가 철저히 기성세대 본위다.

▲ 한국 정치는 제론토크라시다. 노인의, 노인을 위한, 노인에 의한 정치다. © <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19대 국회의 30대 이하 의원 비율은 2%를 넘지 않는다. 정당이 청년 걱정에 앞장서는 건 선거기간에만 유효하다. 청년들은 늙은 정당의 주름살을 가리기 위한 ‘비비크림’으로 쓰인다. 정치권에 청년이 태부족하기에, 청년들의 요구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휘발성이 강하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판이하게 다르다. 2008년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47세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유럽 주요 국가 정상 10명이 40대다. 데이비드 캐머런(49) 영국 총리, 마테오 렌치(40) 이탈리아 총리, 알렉시스 치프라스(41) 그리스 총리, 안체이 두다(43) 폴란드 대통령, 샤를 미셸(40) 벨기에 대통령이 모두 40대다. 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의 베네룩스 3국도 40대가 이끌고 있다.

한국도 청년들의 이해와 고충을 온전히 대변할 수 있는 청년 정치인들이 늘어날 수 있게 하는 정당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청년 국회의원과 장년 국회의원이 같은 장에서 자기 세대를 대변하게 된다면, 세대간 이해관계 상충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젊은 정치인 육성은 정당 구성원의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정당이 진지하게 고려해 봄직하다. 선거철마다 정치 초년생들을 ‘수혈’하는 것만으로 참신한 공천이라 주장해서는 안 된다.

‘9988234’라는 유행어가 있다.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다가 2~3일 앓다가 죽자(4).’는 뜻이다. 100세 시대를 앞둔 기성세대의 소망이 묻어있는 구호다. 하지만 이 유행어는 사회적으로 청년세대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그들의 이해가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한다면 이뤄질 수 없는 바람이다.

청년이 자립하지 못하는 사회는 지속가능할 수 없다. 자칫하면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려는 기성세대를 위해 2•30대는 죽어난다(4).’는 뜻으로 변질될 지도 모른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청년들이 이내 좌절하고 꿈을 접는 나라는 미래가 어둡다. 도산 안창호는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고 했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제7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에서 우수작으로 뽑힌 이 글을 쓴 이는 전북대를 졸업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 입학할 예정인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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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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