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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신문이 아니다”
[고경태의 유혹하는 에디터2] ① 토요판 길목에서 만난 우려들 
2016년 02월 29일 (월) 00:34:01 고경태 humank21@gmail.com
   
▲ 고경태

우려가 폭발했다.

어느 정도 예상한 반응이었다. 격려와 응원만을 듬뿍 받으리라는 기대는 진작에 없었다. 우려의 시선은 이전부터 찔끔찔끔 받아오지 않았던가. 다만 이렇게 수위가 높을 줄은 몰랐다.

“신문이 아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손을 든 선배들은 표현만 달랐을 뿐, 그렇게 이야기했다.

2011년 12월 초순의 어느 날 오후였다. 볕이 좋았다. 식사 직후였으니 졸릴 만도 했다. 잠이 오기는커녕 정신이 번쩍 났다. 초장부터 이건 뭐지? 그날 나는 신문사 8층의 대회의실에서 프레젠테이션을 막 끝낸 직후였다. 긴 타원형의 테이블에는 회사에서 연배가 높은 축에 속하는 선배 그룹이 앉아있었다. 부장 또는 부국장급 이상의 50대였다. 그만큼 부담스러웠다. 발표를 마쳤으므로, 참석자들의 생각을 듣거나 질문을 받을 차례였다.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가슴을 졸였다. 한 명이 손을 들고 일어났다. 10여 년 전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던 선배였다. “뭔가 다르긴 한데 콘셉트가 없어요. 기존 토요일자에 광고가 거의 없고 가독성도 떨어지고 관성화돼 있다는 말을 했는데, 그것이 지금 하려는 것과 무슨 관계죠? 합리적인 설명이 없어요.”

뉴스가 빠졌다는 우려

나는 그날 토요판 준비팀장 자격으로 그곳에 있었다. ‘토요판’신문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책임지고 선보여야 했다. 그 임무를 띤 팀장을 맡았고, 준비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빔프로젝터에 피피티(PPT) 파일을 띄웠다. 확정된 사항은 회사가 ‘토요판’을 발행하기로 했다는 것뿐. 나는 토요판의 기본 개념을 어떻게 잡을지를 비롯해 무엇을 어떻게 지면에 채울지 팀원들과 함께 고민하며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 중간 결과물인 1차 시안을 놓고 사내 구성원들의 평가를 들으며 의견을 수렴해야 했다. 이를 위해 편집국 부장단과 광고국, 독자서비스국, 임원실 등 여러 국·실과 부서를 돌아가며 설명회를 진행했는데, 그날은 세 번째쯤 자리였던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콘셉트가 없고, 아날로그 시대 접근이에요.” 그 선배는 콘셉트가 없다는 말을 반복했는데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아날로그적 접근이라는 말도 모호했다. 그걸 따질 계제는 아니었다. “신문이라는 플랫폼의 특징이 정보 전달의 통로라는 것인데, 그 플랫폼을 통해서 토요일치 정보 수집을 요구하는 거잖아요. 스토리텔링도 좋고 파격도 좋은데 신문 플랫폼은 가장 기본적으로 그날의 정보를 간추려서 편리하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한데 이 계획은 그날 신문의 의무를 위축시키는 거예요. 우리의 경쟁력과 제품 만족도가 확 떨어집니다.” 갑자기 문장 하나가 음절 단위로 쪼개져 귓전에서 뱅뱅 돌았다. 경·쟁·력·과·독·자·만·족·도·가·확·떨·어·집·니·다. “금요일에 사건이 많이 벌어지는데 토요판 팀원들이 모든 기사를 쓸 건가요?” 그는 계속 열변을 토하다가 못을 박듯 마지막 말을 마무리 지었다. “이건 인력에 대한 낭비예요." 인·력·낭·비. 네 음절이 가슴에 스테이플러 알처럼 박혔다.

표정관리가 안됐다.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밑으로 내리깔았다가, 고개를 들어 천장쪽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나의 저질 프리젠테이션 능력 때문인가, 라는 자괴감이 얼핏 들었다. 발음이 분명치 않거니와 끝말을 얼버무리는 습관을 고치라는 충고를 주변으로부터 듣지 않았던가. 가끔 편집이나 글쓰기 강의를 할때도 스스로의 말하기능력에 불만이 많았다. 그날도 좀 버벅거렸다. 형식보다는 내용이 중요하지 않은가. 설명자료를 잘못 만들었나. 피피티 파일의 첫페이지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변화, 그 새로운 숨통- 1. 현재 토요일치는 열독률이 평일에 비해 크게 떨어지고 이에 따라 광고도 거의 붙지 않는 실정. 뉴스 소비가 온라인, 디지털 매체로 급속히 옮아가는 상황에서 기존 평일치와 같은 체제로 토요일치를 계속 제작하는 게 바람직한가- 이에 대한 고민에서 토요일치 리뉴얼 방안 검토 시작. 2. 내용적으로는 스트레이트 뉴스보다는 분석, 정리 및 지적 만족을 주는 쪽으로, 형식적으로는 기존 일간신문의 레이아웃에 변화를 주는 쪽으로, 또 인력과 물량 투입을 최소화하면서 주말 내내 독자들이 손에 쥐고 읽을 수 있는 신문으로. 3. 추가 섹션이 아닌 최초의 본지 리뉴얼로 일간신문 시장에서 기존의 문법과 관행을 깨는 실험. 이를 통해 전체 지면의 혁신 가능성 탐색.”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맞게 신문을 개조하려는 계획이었다. 첫 실험의 무대는 토요일치였다. 변화를 모색하기 가장 좋은 요일이었다. 스트레이트 뉴스(사실 전달 기사) 중심의 관성에서 벗어나 피처 뉴스(이야기 기사) 위주로 전체 지면을 뜯어고치겠다는 구상이었다. 이름은 ‘토요판’으로 정했다. 설명회를 갖기 전 사내 구성원들에게 설문조사도 했다. 95명이 응답한 이 조사에서 90.5%는 “토요판 실험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이중 38.9%는 “매우 필요하다"라고 했다. 68.4%는 제호와 1면을 비롯해 전체 지면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지면 개편의 당위에 대해서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준 셈이었다. 막상 세부적인 방향과 콘텐츠를 펼쳐 보이기 시작하니 분위기가 싸~했다. 편집국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처음 설명회 때부터 참석자들은 변화의 대의에는 찬성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반응이 떨떠름했다. 그러다가 최악의 반응과 마주친 셈이었다.

느림보가 된다는 우려

다른 두 명의 선배도 손을 들어 발언을 청했다.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첫 번째 의견을 낸 선배의 요지와 대동소이했다. 토요판의 지면 개편안은 일간신문의 중요한 기능인 뉴스를 포기한다는 거였다. 아무리 봐도 이건 신문이 아니라는 거였다.

“신문의 생명은 시의성일 수밖에 없잖아요. 내년 총선과 대선이 있는 일정을 감안하면 금요일에 정치권 뉴스가 쏟아질 텐데, 그러려면 1면이 힘 있게 가야 하지 않을까요? 근데 토요판에서 하려는 걸 보면 좀 기대만큼 못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스트레이트 지면을 이렇게 확 줄여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설명을 들으니, 한마디로 종합일간지가 아니라 잡지를 만드는 거네요. 사실상 하나를 포기하고, 하나 다른 걸 독자들에게 주는 거잖아요. 토요판이든 뭐든 기본 전제는 종합일간지 기능을 하면서 하나 더 뭘 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데, 이건 종합일간지 기능을 포기하는 겁니다. 뭐든 실험을 해볼 수는 있겠죠. 한데 뉴스와 해설, 오피니언 등의 일상적 면을 충분히 확보하고 가야 합니다. 기본 기능을 잃어서는 안돼요.”

내 피피티 자료에 따르면, 토요판 1면은 절반 넘게 사진과 기획물이 잡아먹었다. 전날 발생한 뉴스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을 공산이 컸다. 스트레이트 지면은 달랑 4쪽이었다. 평소엔 15쪽에 가까웠다. 책 기사가 실리는 토요일에도 10쪽은 되었다. 나는 토요판에 정치·경제·사회·국제·문화 등 전날 발생한 뉴스를 ‘오늘’이라는 이름으로 압축해 최소화하고 싶었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뉴스를 보는 시대에 토요일만이라도 ‘속보’에 덜 집착해도 되지 않겠는가 싶었다. 나의 오버였을까? 신문의 전통적인 문법에 익숙한 이들일수록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다음 해인 2012년엔 큰 선거가 두 개나 된다고 했다. 4월 11일은 국회의원, 12월 19일은 대통령 선거였다. 이런 때일수록 기동력 있게 지면을 꾸려야 한다고 했다. 토요판이 내세운 지면 콘셉트는 느림보처럼 비치는 모양이었다. 시의성, 즉 최신 뉴스와의 접점을 잃을 수 있다는 거였다.

자리에 참석한 나머지 선배들도 발언권을 얻어 일어섰다. 취지에는 공감하는데, 몇몇 지면은 현실성이 없고 막연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설을 뒤쪽이 아니라 앞 부분에 배치했는데 적절치 않다고도 했다. 거의 모든 말들에 우려가 묻었다. 내가 부연 설명을 하기도 했다. 긍정적인 의견도 하나 있기는 했다. “웬만한 스트레이트는 다이제스트(요약) 하면 되지 않나요. 시도해 볼 필요 있어요. 어떻게 해야 종이신문이 살아남는가를 생각해야죠.” 초반의 발언에 워낙 충격이 컸던지 큰 위로가 되지 않았다.

신중할 필요는 있었다. 눈과 귀를 열어놓아야 했다. ‘내가 틀릴 수 있다. 비판은 담금질을 시켜준다. 지금 나오는 우려는, 나중의 우려를 불식시켜줄 약이다. 복잡한 사전 검토 절차는 사후 실수를 줄여줄 수 있다. 신문사 밥을 20년 이상 먹은 경륜 있는 선배들의 조언에 귀 기울여야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 조언의 알맹이는 토요판 설계도가 엉터리니 다시 그리라는 거였다. 논쟁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신문의 사명은 뉴스인가. 어제는 그랬지만 오늘도 그런가. 내가 하자는 대로 하면, 신문이 아니게 되는 건가? 100% 동의하기 어려웠다. 상대를 설득할 자신도 없었다.

우려를 우려먹기 위하여

설명회를 마치고 7층으로 내려왔다. 7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곧장 편집국으로 들어오자마자 바로 오른 편이 토요판 팀이었다. 이곳에 둥지를 튼 지는 보름도 되지 않았다. 나는 본래 그해 3월부터 문화스포츠 에디터였다. 4월부턴 편집국 지면 개편 TFT(특별팀)의 비상근 위원으로 발을 담갔다가 토요판 발행 제안을 적극적으로 내놓았는데, 정말 토요판 발행 준비를 담당하게 되고 말았다. 10월 10일, 팀원 5명과 함께 비상근 토요판 준비팀장으로 발령 난 것이다. 11월 28일에는 문화스포츠 에디터를 그만두고 정식으로 토요판 준비팀장에 임명되었다. 토요판 에디터를 맡기 전 단계였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했다. 토요판이라는 자식을 낳아야 했다. 생일은 2012년 1월 중 하루로 정했다. 한 달 남짓 남았다. 가능할까? 자신이 서지 않았다. ‘이것도 신문이냐’는 욕을 먹고 비웃음을 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등골이 오싹했다. 격려보다 우려가 펑펑 터지지 않는가. 힘이 나기보다 빠졌다. 어쩌면 회사는 토요판에 대한 악화된 여론을 고려하여 계획을 백지화할 지도 몰랐다.

   
▲ 쓸데없는 장난이 때로 마음을 위로한다. 2011년 12월 초순 한겨레 편집국 7층 토요판 팀 파티션에 붙여놓은 ‘憂慮’. ⓒ 고경태

내 자리에 앉았다. 무엇을 해야 할까. 머릿속은 안개로 가득 찼다. 컴퓨터를 켰다. 한글 파일에 ‘憂’(우)라는 글자 하나를 써넣었다. 500포인트로 가장 크게 키웠다. 다음 장에‘慮’(려)라고 적고 똑같이 했다. 프린터로 각각 한 장씩을 A4 용지로 출력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도록 토요판 팀 의자 뒤 파티션에 스카치테이프로 붙였다. 憂慮. 우려에 둘러싸인 내 상황을 객관화해서 보는 느낌이 들었다. 한자로 써놓으니 은근해서 좋았다.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려, 우려, 우려. 이 우려를 우려먹어야 한다. 파티션에 붙은 ‘憂慮’가 온풍기 바람에 펄럭거렸다. 괜스레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음 회에 계속>


고경태. 한겨레 편집국 신문부문장. <유혹하는 에디터>에서 <1968년 2월 12일>까지 4권의 책을 썼다. 2009년에 낸 <유혹하는 에디터>가 편집자를 다뤘다면, 2016년의 이 연재물은 편집장 이야기다. <한겨레21> 편집장, <씨네21> 편집장, esc 팀장,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문화스포츠 에디터, 토요판 에디터 시절의 에피소드로 버무릴 예정이다. 격주 연재.  

편집: 이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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