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혁신의 현장을 가다] ⑤ 제2기 넥스트저널리즘스쿨 참가기

1877년 창간된 <워싱턴포스트>가 IT기업 아마존닷컴에 인수됐다. 뉴스 큐레이팅으로 시작한 <허핑턴포스트>는 탐사전문기자를 영입, 퓰리처상까지 받아내고 어엿한 언론으로 인정받았다. 신생미디어인 <복스미디어(Vox)>와 <버즈피드>는 이미 백악관 기자실 한 자리를 꿰찼고 오바마 대통령과 단독 인터뷰까지 따냈다. 미국의 젊은이들이 TV나 신문보다 페이스북이나 핸드폰 채팅 어플리케이션 ‘스냅챗(Snapchat)’을 활용해 뉴스를 소비한다는 건 이미 상식이다.

▲ 미국의 채팅 어플리케이션 '스냅챗(Snapchat)'은 디스커버리 카테고리를 통해 각 매체별 '세로뉴스'를 제공한다. ⓒ 스냅챗 실행화면 갈무리

매년 언론계에서는 한 해를 돌아보면서 “저널리즘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언론사의 변신을 다루는 ‘미디어 컨퍼런스’는 연례행사가 돼버렸다. 기자는 저널리즘의 변화와 실체를 알고 싶어 <블로터>와 <한겨레21>이 주최하고 1월 19일부터 30일까지 구글 캠퍼스에서 열리는 '제2기 넥스트저널리즘 스쿨'에 참여했다. 
 
현장은 뜨거웠다. 스쿨에는 언론사 관계자와 지망생은 물론, 콘텐츠 디자이너와 IT개발자를 합해 66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로 다른 배경에 추구하는 목표와 저널리즘에 대한 생각은 달랐지만 논의는 풍성하게 이뤄졌다. 매일 신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뉴스 형식이 생산되는 디지털 시대, 저널리즘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자리였다.

▲ 2기 넥스트저널리즘스쿨,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의 '탐사보도' 수업이 진행중이다. ⓒ <블로터> 제공

넥스트저널리즘스쿨 1주차에서는 앞으로 저널리즘이 나아가야할 길을 모색하며 저널리즘의 본질과 저널리즘에 활용할 여러 가지 도구를 배웠다. 2주차부터는 데이터저널리즘의 활용과 뉴미디어저널리즘 창업 강의가 이어진다. 

말랑말랑한 리스티클에서 출발, 담론을 만들어낸 <버즈피드>

2014년 기준, <버즈피드>의 접속 경로는 페이스북과 주소를 직접 입력해 사이트를 방문하는 직접입력, 메신저 ‘스냅챗’이 삼분했다. ‘뉴스 소비자’라는 제한된 파이를 두고 기존의 언론사와 새로 생긴 뉴미디어가 경쟁하는 구도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면이나 방송에서 모바일로 뉴스 소비 통로가 옮겨갔다.

강정수 오픈넷 이사는 “모바일 시장이 커지면서 미디어 시장은 선형(Linearity)이 아닌 비선형 시장으로 갈 것”으로 전망했다. 지금까지 신문의 1면 기사와 잡지의 커버스토리, 방송의 헤드라인은 언론사가 생각한 가장 가치 있는 기사였다. 소비자는 방송 편성과 지면 편집에 따라 뉴스를 접하며 언론사가 정한 뉴스의 중요도를 그대로 수용했다. 모바일에서는 편집의 의미가 없어졌다. 모바일 이용자들은 커버스토리, 헤드라인부터 그날의 뉴스를 읽지 않고 ‘한 꼭지’씩 읽는 것을 선호한다. 모바일 상에서 보이는 텍스트 수가 한정적이란 태생적 한계도 있다.

모바일로 뉴스 소비가 이뤄지면서부터 편성과 지면 배치를 통한 뉴스 가치 배정은 사실상 무의미해졌고, 언론사가 설정한 의제 영향력도 약해졌다. 강 이사는 <버즈피드>의 사례를 들면서 짧은 콘텐츠로도 의제를 설정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강 이사는 <버즈피드>의 ‘국가별 이상적인 여성 몸매’라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나 인사이트 등 뉴스큐레이팅 사이트에서도 많이 본 영상이었다. <버즈피드>는 “최근 100년간 이상적인 여성 몸매”나 “시대별 이상적인 여성 몸매”, “지역별 이상적인 여성 몸매” 등의 관련 영상을 제작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도 가볍게 지나가며 볼 수 있는 짧은 콘텐츠다. ‘이상적인 몸매’ 영상에 이어 “One size fits all”을 내놓았다. 모델이 아닌 일반여성이 출연해 모두에게 ‘맞지 않는’ 원사이즈 제품을 직접 입어보고 평가하는 내용이다. 마지막 시리즈에서는 이상적인 여성 몸매는 존재하지도 않고 비현실적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연관된 직장 내 성희롱, 성폭행 콘텐츠를 ‘추천’한다. 

강 이사는 <버즈피드>의 전략을 ‘깔때기 전략(Funnel Strategy)’이라고 설명한다. 우선 ‘짧고 쉽게 즐길 수 있는’ 시리즈 영상을 여럿 생산해 사용자를 최대한 많이 끌어들인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한층 더 깊은 의제를 다루고, 마지막 시리즈에서 버즈피드가 말하고 싶은 궁극적 의제를 제시한다. ‘이상적인 여성 몸매’ 시리즈는 ‘여성의 신체’, 나아가 ‘성평등’까지 아우른 콘텐츠였다. <버즈피드>의 의제설정 방법은 한 키워드를 가지고 짧고 흥미로운 여러 시리즈를 만든 뒤, 비슷한 의제를 다루는 연관 콘텐츠를 내세워 소비자가 최종 의제로 자연스럽게 다가오도록 만든다. 

뉴미디어 시대에도 언론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는 뉴미디어 시대에도 언론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5월,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가 한반도에 상륙했다. 정부는 “혼란이 생길 수 있다”며 관련정보의 비공개 입장을 고수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면 처벌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정부 방침과 달리 인터넷 커뮤니티와 메신저에서는 환자가 어떤 병원을 다녀갔는지, 옆에만 있어도 메르스에 감염된다는 등 괴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6월이 되자, 확진환자가 30명을 넘어서고 사망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감염 경로가 명확히 알려지지 않아 불안과 혼란이 커지면서 3차감염자가 발생했다. <뉴스타파>는 6월 5일, ‘메르스 감염 지도’를 통해 환자가 머물다간 병원의 실명을 공개하고 환자의 이동경로마저 추적해낸다. 정부는 보도가 나간 지 이틀이 돼서야 “병원 내 감염을 막겠다”라며 병원실명을 발표한다. <뉴스타파>의 메르스 보도는 정부의 정보 통제가 이뤄진 상황에서 언론이 제대로 역할을 해냈다는 찬사를 받았다.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는 “기술의 발전이나 언론 환경 변화가 있더라도, 진실을 찾는 언론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최근 2년간 뉴스를 사진과 자막으로 표현해낸 카드뉴스가 인기를 끌었다. 기존 뉴스보다 상대적으로 생산이 쉽고, 자막과 시각 요소가 영상 뉴스와 비슷한데다 내용도 가볍고 한 화면에 볼 수 있어 모바일 플랫폼에 잘 맞았기 때문이다. 카드뉴스에도 문제는 있다. 의제를 만들고 권력을 감시하며, 진실을 짚어내는 언론의 본질을 다하기엔 무게감이 떨어진다. <뉴스타파> 사례는 카드뉴스가 넘어서야 할 벽을 일깨운다. 병원과 환자 이동경로가 그려져 있는 지도 두 장, 텍스트 기사 70편이 묶여있는 <뉴스타파> 메르스 기사의 페이스북 공유수는 2만 건이 넘었다. 카드뉴스 같은 조각낸 뉴스, 영상클립이 유행이지만 뉴스 분량이 많아도 사실의 이면을 보도하고 진실을 제대로 추구한다면 여전히 사랑받는다는 반증이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까지 등장한 인터랙티브뉴스

“스쿨 지원할 때, 디지털 저널리즘에 대한 에세이를 써달라고 했는데, 지원자 절반이 <뉴욕타임스> ‘스노우 폴’을 쓰셨더군요.”

강의 첫날,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이성규 <블로터닷넷> 미디어랩장이 교육과정을 설명하며 말한 내용이다. 사실 디지털 저널리즘, 새로운 저널리즘을 다루는 대다수의 강의에서는 ‘스노우 폴’이나 가디언에서 만든 ‘파이어 스톰’이 등장한다. 두 기사가 언론에 끼친 영향은 그만큼 컸다.  

스쿨 참가자들의 관심사는 독자와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인 인터랙티브 뉴스제작이었다. 많은 참가자들이 쉬는 시간 틈틈이 이한기 <오마이뉴스> 콘텐츠실험실 담당 기자와 권영인 <SBS> 디지털팀장이 소개한 여러 가지 인터랙티브 기사를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소비자에게 여러 선택지를 제공하고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물을 제공해 독자의 몰입도를 높인다. 독자의 참여가 가능해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인 기존 뉴스보다 신선하고 인기도 많다. 

▲ '최저임금으로 한 달 살기' 인터랙티브는 게임 형식을 빌려 최저임금이 너무 낮은 현실을 꼬집었다. ⓒ <시사IN> 인터랙티브 페이지 갈무리

초기 인터랙티브 기사는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거나 클릭 몇 번을 하면 또 다른 텍스트나 인터뷰 영상이 나오는 정도였다. 최근 인터랙티브는 그 양상이 다르다. <한국일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월급통장’과 ‘우리가족 소통지수는 몇점?’ 기사에서는 독자가 직접 숫자를 입력할 수 있다. 독자는 자신의 소득분위를 확인할 수 있고, 가족 사이 소통이 얼마나 이뤄지는지를 다른 독자들과 비교할 수 있다. <시사IN>에서 내놓은 ‘최저임금으로 한 달 살기’는 게임형 인터랙티브 기사다. 딸을 여왕이나 평범한 주부는 물론, 뒷골목을 주름잡는 여두목까지 키울 수 있는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 형식을 빌렸다. ‘최저임금으로 한 달 살기’ 인터랙티브 기사는 독자 선택에 따라 게임 캐릭터의 가계가 흑자가 될지, 적자가 될지, 삶의 질이 좋아질지, 바닥을 찍을지 바뀐다. 

인터랙티브 기사에 최근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한국의 언론사들이 저마다 인터랙티브 기사 제작을 고민하던 지난해 11월 5일, ‘NYT VR’ 어플리케이션이 앱스토어와 안드로이드 마켓에 올라왔다, ‘최초’ 인터랙티브 기사를 낸 <뉴욕타임스>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에도 뛰어든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대표적인 VR기사는 'The Diplaced'다. 이 기사는 전쟁 때문에 집을 떠나 남수단에 살고 있는 세 아이의 모습을 360도 카메라에 담았다. 독자는 전방위로 시점을 바꿔가며 고개를 들면 하늘에서 비행기로부터 떨어지는 음식 포대를 보고, 정면으로는 그걸 향해 달려가는 남수단 주민을, 고개를 숙이면 땅에 떨어진 보급품을 볼 수 있다. VR 저널리즘 강의를 맡은 서동일 볼레 크리에이티브 대표는 “VR시대는 이미 시작됐다”며 “콘텐츠 시장은 VR시대에 맞게 평면적 경험이 아닌 입체적 경험으로의 스토리텔링을 고민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어디에서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으며, 제작비도 저렴한 VR. 최첨단기술 VR에도 장단점이 있다. 극도의 몰입감과 현장감은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전달해줄 수 있지만 심각한 사실왜곡을 일으킬 수 있다. 수강생 사이에서 VR의 부작용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다. 서 대표는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으로 가상현실의 장단점을 설명했다.

“매트릭스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잖아요. VR의 문제도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가상현실이 극도로 사실적이라면, 사람들이 그것을 현실로 믿어버려요. 가상현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갖고 만드는지가 중요합니다.”

2008년에 개봉한 영화 <인셉션>에서는 ‘꿈’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등장한다. 지속적으로 수면제를 투여 받으며 꿈에서 깨려고 하지 않는다. 꿈속에서 헤엄치는 것이 현실에서 버둥대는 것보다 달콤해서다. 한 참가자는 “VR에서 살인이나 강도같은 범죄가 사실적이라면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를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른 참가자는 “오히려 VR을 통해 현실을 보고 맥락을 파악해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가상현실은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현장감’과 ‘균형’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맞추는 것은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야 하는 디지털 저널리스트에게 주어진 또 다른 숙제다.

혁신은 어디로부터 시작되는가

기술 발달에 따라 언론환경은 급변하고, 뉴스의 형식은 다양해지며, 미디어와 기자는 혁신을 요구받는다. 이희욱 <블로터> 편집장은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언론계 혁신 요구는 있었다”라며 “끊임없는 고민과 다양한 시도가 혁신의 밑거름이다”라고 조언했다. 

언론 혁신은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 아니다. 혁신의 마침표는 없다. 디지털 시대 기자는 뉴스의 미래가 무엇인지, 그에 따라 어떻게 자신을 ‘브랜딩’할 것인지 고민해야한다. 사실 이면의 진실을 알리는 언론의 본분도 잃지 않아야 한다. 혁신은 어디로부터 시작되는가. 기자와 IT전문가, 디자이너가 함께 디지털저널리즘을 고민하는 2기 넥스트저널리즘스쿨은 오는 토요일(30일)까지 계속된다.


바야흐로 미디어혁신의 시대다. 모든 미디어가 디지털조직을 정비하고 콘텐츠제작과 유통방식을 혁신하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올드미디어, 뉴미디어의 구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변화는 신기술의 적응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각의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미디어변신의 현장을 미디어팀의 시선으로 발굴, 미디어의 미래를 점검한다. <편집자 주>

편집 : 박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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