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혁신의 현장을 가다] ⑥ ‘내 손안의 남자친구’를 만든 ㈜네오터치포인트

지인이 평했다.
“5명 다 내 취향은 아닌데, 무심코 답을 할 때가 있더라고.”
다른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그냥 그런데 뭔가 점점 빠져들더라.”
두 번째 지인은 남자였다.

(주)네오터치포인트의 인하우스 프로덕션인 '뭐랩'의 콘텐츠, <내 손안의 남자친구>(이하 <내손남>) 이야기다. 아이돌 그룹 마이네임 멤버들이 각자 여자 친구와 영상 통화하듯 직접 말을 거는 내용의 1인칭 연애 시뮬레이션 콘텐츠 <내손남>은 남자도 가슴 설레게 만들었던 것이다.

<내손남>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자신이 영상 통화하는 것처럼 가슴이 설레게 했다. <내손남>이 지난해 8월부터 피키캐스트와 유튜브에 올린 120여 클립은 2015년 12월 말 누적조회수 1,300만 뷰를 돌파했다. 이런 인기 덕분에 중국의 모바일 동영상 플랫폼 ‘미아오파이(Miao Pai)’와 대표적 SNS인 ‘시나웨이보(Sina Weibo)’에서도 연재를 시작했다. <단비뉴스>는 ㈜네오터치포인트 사무실에서 김경달 대표(48)를 만났다.

화장실에서도 텔레비전을 보는 시대

▲ (주)네오터치포인트 사무실. ⓒ 김근홍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자 예상했던 회사의 모습하고는 달랐다. 그보다는 카페와 비슷했다. 노란색 조명과 원목이 주를 이루는 인테리어 덕에 사무실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따뜻했다. 직원들은 카페처럼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주방에서 자유롭게 마실 것을 준비했다. 바로 직전까지 직원들과 회의를 하다 온 김 대표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신문기자를 하면서 ‘왜 정보전달을 텍스트 위주로만 해야 할까?’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케이블TV방송사, 신문사, 인터넷 포털 회사 다음과 네이버, ㈜네오터치포인트를 세우기 전까지 김경달 대표는 다양한 미디어 회사를 거쳤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콘텐츠를 담는 그릇인 플랫폼을 비교하며 어떤 경우에는 글보다 사진이나 영상이 콘텐츠를 전달하기에 훨씬 효율적임을 체험했다. 김연아의 경연에 대한 개인적 감상을 전달할 때는 글이 적합했지만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연기를 펼쳤는지를 전달할 때엔 영상이 탁월했다. 그 때 콘텐츠를 사람들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해야 할 플랫폼이 때로는 콘텐츠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사람들은 포맷을 우선해서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아요. 그 콘텐츠를 더 잘 전달해줄 수 있는 적절한 포맷을 선택하는 거예요. 젊은 세대로 갈수록 그 적절한 포맷이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에 편중되는 면이 강한 거죠.”

사람들이 점점 신문을 외면하지만 뉴스까지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김 대표는 신문이 점점 외면당하는 이유를 신문이라는 포맷에서 찾았다. 신문기자로 일할 당시 김 대표는 신문사가 윤전기나 마감시간, 지면 등에 제한을 받는 신문이라는 포맷에 집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미디어는 결국 사람들과 정보를 연결하는 채널이어야 하는데 ‘연결’이 아니라 스스로의 ‘포맷’이 목적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모바일 기반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에서 정보 생산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훨씬 더 유연하게 사람들과의 접점(Touchpoint)을 찾아야 한다고 김 대표는 강조한다.

“울타리에 갇혀 있기보다는 콘텐츠에 적절한 형태의 포맷을 새로운 미디어 현장에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김 대표는 새로운 미디어에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인터넷 포털 회사에 근무하면서 소비자들의 인터넷 기반으로 한 콘텐츠 접근성이 훨씬 더 좋아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김 대표는 2006년 다음 팟 티비 도메인을 구해 인터넷방송에 도전했다. 2011년 개국한 스마트기기 전용 방송채널 <손바닥 TV> 기획 단계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김 대표에게 직접 모바일 기반 콘텐츠를 제작해보겠다는 자신감이 되었다. 네트워크 환경이 발달해 콘텐츠 제작, 배포가 용이해지자 각종 포털에서 동영상 서비스를 활발하게 제공하는 시대가 되었다.

“미디어 지형도상의 변화가 일어난 거예요. 저는 작은 미디어들이 새로운 역할을 찾고 그를 해낼 수 있는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어요.”

▲ 사람들과의 접점을 찾는 회사, 네오터치포인트. ⓒ 김근홍

2015년 김 대표는 ㈜네오터치포인트를 창업했다. 포털 회사에 근무할 당시 인터넷 방송을 함께 꾸렸던 PD와, 김 대표가 대학생 때 MBC <우정의 무대> 막내 작가로 일하면서 인연을 맺은 작가가 합류했다. 미디어 변혁의 시대에 ㈜네오터치포인트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지금은 화장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시대예요. 스마트폰 덕분에 사람들의 미디어 소비 시간이 늘어났어요. 덩어리로 무한히 늘어나는 게 아니라 하루 정해진 일과 속에 촘촘히 스며드는 식으로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이런 소비에 어울리는 콘텐츠가 없었어요. 다양한 형식을 통해 변화된 소비자패턴에 적절한 콘텐츠를 찾는 것, 그게 네오터치포인트가 해야 할 역할이에요.”

김 대표에 따르면 <내손남>은 네오터치포인트의 첫 번째 실험이다. 그것도 아주 성공적인.

여자친구의 이름을 절대 부르지 않는 남자

실험의 목적은 ㈜네오터치포인트가 만들어 낸 콘텐츠를 사람들이 정말 좋아할지 확인하는 데에 있었다. 일부러 국내에서 인지도가 낮은 아이돌 그룹 마이네임을 캐스팅한 것도, 여성이용자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판단한 <내손남>을 제작한 것도 그 목적을 위해서였다.

“여성이용자들이 콘텐츠 관여도나 충성도가 높고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할 가능성도 높아요. 그래서 여성이용자, 특히 인터넷을 많이 이용하는 20대 초중반 여성을 타겟으로 해 그들이 관심 있어 하는 연애 시뮬레이션 콘텐츠에 남자 아이돌 그룹을 출연시킨 거죠.”

연애 시뮬레이션이라는 전체적인 뼈대가 정해진 후 ㈜네오터치포인트는 20대 여성 100명에서 200명 정도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여러 번 진행했다. 내 남자친구가 보여줬으면 하는 모습, 나를 ‘심쿵’하게 했던 남자친구의 행동 등 세세한 인터뷰를 통해 여성들이 꿈꾸는 판타지를 에피소드에 녹여냈다. 올 때 사 왔다며 꽃 한 송이를 건네거나 음식을 먹여주는 등. 여성이용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내손남>은 또 어떤 시도를 했을까?

“정말 1대1로 영상 통화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세로보기 포맷을 사용한 것도 그 이유에서죠.”

▲ 스마트폰만 있다면 언제든지 주머니에서 꺼내 볼 수 있는 남자친구. ⓒ (주)네오터치포인트 제공

영상을 클릭하면 정말 남자친구에게서 온 듯한 문자메시지가 도착한 화면이 뜬다. 곧이어 출연자가 등장해 여자친구에게 하듯 말을 걸고 캠핑, 맛집 탐방 등 그날의 데이트를 진행해나간다. 조금 어색하기도 하지만 김 대표의 말처럼 세로보기 화면은 이 모든 게 영상통화인 듯 느껴지게 만들어 시청자가 곧 몰입하게 해준다. 게다가 세로보기 포맷은 모바일에도 적합하다. 김 대표는 국내에서 유튜브가 처음으로 세로보기를 지원하기까지 <내손남> 런칭도 늦췄다고 한다.

몰입을 깨지 않기 위해서 <내손남> 출연자들은 가상 여자친구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누나’나 ‘야’라고만 지칭할 뿐이다. 여자의 손이나 발 등 신체 부위도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남자친구와의 1대1 대화를 담은 콘텐츠에서 다른 여자의 이름이나 손이 나오면 <내손남>에 빠져든 시청자의 판타지가 깨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시청자와의 활발한 상호소통도 <내손남>의 인기에 한몫했다고 생각해요.”

<내손남> 출연자는 머리색을 바꿨으면 좋겠다는 시청자의 댓글을 반영해 다음 편에 염색을 하고 나왔다. <내손남>은 시청자의 피드백을 콘텐츠에 빨리 반영하는 편이다. 제작과 유통 사이의 기간이 길지 않아서다. 김 대표는 게다가 콘텐츠 자체가 기복이 심한 기승전결 구조가 아니라 일상적인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가기 때문에 시청자의 의견을 반영하기가 쉽다고 설명한다.

김 대표는 기존의 콘텐츠 제작 및 소비 방식을 한상차림에 비유했다. 제작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짜임새를 고려해 완결성 있는 콘텐츠를 내놓으면 이용자가 수용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도 물론 이용자는 피드백을 할 수 있었지만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고 공유를 하는 게 끝이었다. 김 대표는 IP기반 위에서 제작자와 이용자 간 쌍방향 소통이 더 활발히 일어날 수 있는 데도 그를 활용하지 않아 아쉬웠다고 했다. 김 대표는 그 이유를 기존의 콘텐츠 작법이 쌍방향 소통보다는 자체적인 완결성에 더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요즘같이 다원화된 시대에서는 한상차림보다 뷔페가 더 적합할지도 몰라요. 사람들이 각자 원하는 걸 더 집어먹을 수 있는 뷔페처럼 이용자들의 수요에 맞게 콘텐츠가 선택지를 제공하는 식으로 반응하는 그런 방식이요. 여전히 콘텐츠 제작방식에 대한 여러 모색이 일어나고 있긴 하지만요.”

다양한 경로에 맞는 유통 전략

<내손남>은 제작뿐만 아니라 유통 단계에서도 시청자의 수요를 고려했다. <내손남>이 유통되었던 플랫폼은 피키캐스트와 유튜브, 판도라TV, 뭐랩 페이스북 페이지 등이다. 그러나 모든 플랫폼에 동시다발적으로 클립을 서비스하지는 않았다. 유튜브에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피키캐스트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영상을 올렸다. 각 플랫폼의 특성과 주요 이용자, 콘텐츠 제작 여건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내린 결정이었다.

“이전에는 영상을 소비하는 경로가 TV 하나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경로가 다양해졌으니까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유통하기 위해 전략 수립방식도 복합적으로 변하고 난이도도 높아졌죠.”

▲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직원들. ⓒ 김근홍

그렇다면 콘텐츠의 특성에 맞는 플랫폼을 찾을 필요 없이 아예 자체 플랫폼을 만들어 콘텐츠의 타겟 시청자에게 직접 다가가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단비뉴스>의 마지막 질문에 김 대표는 아직 시간을 두고 봐야 할 부분이라고 답했다.

“콘텐츠 제작하는 것만 해도 큰일인데 플랫폼까지 만드는 건 모든 일을 잘하겠다는 거니까 상당히 어렵죠. 게다가 앞으로의 모바일 환경에서 이용자의 소비는 더욱 분산화, 다원화될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 하나가 모든 일을 다 하는 게 아니라 특정 분야에 경쟁력을 가진 생산자들이 협력해서 의미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공급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이용자도 훨씬 만족하는 미디어가 나오지 않을까요?”

앞으로 미디어 지형이 변화하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콘텐츠 생산자들은 그를 따라가기도 바쁠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콘텐츠 생산자들이 급변하는 미디어 지형에서 새로운 콘텐츠에 더 최적화된 포맷은 무엇일까 항상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절한 포맷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그를 바탕으로 수익을 창출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그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야 해요. 그게 모바일 시대의 미디어 현장에서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바야흐로 미디어혁신의 시대다. 모든 미디어가 디지털조직을 정비하고 콘텐츠제작과 유통방식을 혁신하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올드미디어, 뉴미디어의 구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변화는 신기술의 적응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각의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미디어변신의 현장을 미디어팀의 시선으로 발굴, 미디어의 미래를 점검한다. <편집자 주>

편집 : 유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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