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혁신의 현장을 가다] ③ ㈜72초TV의 ‘72초 드라마’

옷을 한 벌 샀다. 어제 살 때는 분명 마음에 들었는데 오늘 보니 뭔가 나와 잘 안 어울리는 것 같다. 환불요청 했다. 옷 가게 직원의 살가웠던 얼굴은 일그러졌다. 살다 보면 이처럼 난감한 순간들이 있다. 소개팅할 때, 연인과 싸운 친구의 하소연을 들어줄 때···. 일상을 소재로 한 짧은 드라마가 눈길을 끌고 있다. 72초TV의 <두 여자>다. 8개 에피소드로 구성된 <두 여자>는 페이스북 78만, 네이버TV캐스트 98만 누적 조회 수를 기록했다. 유명 연예인이 출연하는 것도, 영화처럼 화려한 영상미를 보여주는 것도 아닌데 놀라운 반응이다.

지난 2월 설립된 72초TV는 ‘72초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72초 시즌 1,2>와 <오구실>, <두 여자>를 만들었다. ‘72초 드라마’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상을 다루는데 그 방식이 독특하다. 랩 같은 내레이션, 빠른 화면 편집, 중독성 있는 배경음악으로 제작한 영상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단비뉴스>는 지난 11일 72초TV의 새로운 시도를 취재하기 위해 ㈜칠십이초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을 방문한 시각이 점심시간 무렵이었는데 사무실에는 4명의 직원이 전부였다. 안내를 도와준 직원 문혜성 씨는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워서 직원들이 한곳에 모이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아기자기한 소품이 돋보이는 ‘72초 드라마’와 달리 사무실 분위기는 일반회사와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 감각적인 연출로 일상을 그려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72초 드라마 <두 여자>. 옷을 환불하러 온 두 여자가 직원과 마주보는 장면. © 72초 드라마 화면 갈무리

일상의 재미를 추구하다

“일상이 가장 재미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성지환(38) 대표는 72초TV 작품들이 공통으로 가진 키워드로 일상을 꼽았다. <72초 시즌 1,2>는 30대의 도루묵이라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시즌1>은 남자가 엘리베이터를 탈 때, 미용실에 갈 때, 식당에 갈 때 겪을 수 있는 상황을 엉뚱하게 그렸고, <시즌2>는 여자 친구 몰래 클럽 가다 걸린 상황, 전 여친의 문자를 들킨 상황 등 연인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다뤘다. <오구실>은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오구실이라는 30대 여성의 ‘인연 찾기’ 이야기를, <두 여자>는 옷 환불할 때, 소개팅할 때 등 우리 일상 속 난처한 상황을 소재로 삼는다. 72초TV는 이런 소재들을 통해 소소한 감정을 드러내고 시청자와 교감을 추구하며 작은 재미를 드러낸다. 성 대표는 “재미가 꼭 즐거운 펀(Fun)은 아니다.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어떤 감정을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 재미”라고 설명했다.

▲ 72초TV 사무실에 <단비뉴스>와 만난 성지환 대표는 일상의 미학을 강조했다. © 정성수

‘72초 드라마’는 우리가 다 아는 일상의 이야기를 다룬다. 시청자가 드라마를 보다 보면 웃음이 터져 나오고(시즌1,2), 가슴이 따뜻해지고(오구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게 된다(두 여자). 즉 시청자들은 72초 드라마의 사소한 일상적 에피소드에 공감하고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성 대표는 일상이 주는 재미는 “일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라며 일상을 보여주는 방식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두 여자>의 옷 환불하는 장면(에피소드1)에서 재미를 느끼는 이유는 옷을 환불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여러 상황과 당사자인 두 여자의 속마음을 설명한 내레이션에 시청자들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일상의 재미는 작품에만 있지 않았다.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묻자 성 대표는 “기업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재미”라고 말했다. 그는 화목하고 친근한 분위기도 회사가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라고 덧붙였다. 회사에서는 서로 직함을 부르기보다 형, 동생으로 호칭하는 수평적 관계라고 설명했다. 72초TV는 매주 금요일 맥주를 마시며 회의를 진행하는 ‘맥주 페스티벌’을, 매달 한 번씩 직원 한 명이 제안한 일을 전 직원이 함께 하는 ‘72초 문화의 날’을 진행한다. 지난달에는 다 함께 만화방에 다녀왔다고 한다.

▲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유쾌한 72초TV 직원들의 모습. 직원들의 일하는 모습은 자유롭고 편해보였다. © 정성수

빅데이터보다 ‘색깔’

72초 드라마는 제작방식에서 기존의 TV드라마와 차이를 보인다. 국내 TV드라마는 촬영을 진행하며 동시에 방영하는 시스템으로 만든다. 흔히 ‘쪽 대본’ 제작으로 불리는 이 방식은 시청자 반응에 따라 극 내용을 바꿀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배우, 제작진에게 피로감을 주고 극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단점이 있다. 미국, 일본의 드라마는 사전제작방식으로 완성도는 높지만 시청자의 즉각적인 의견을 드라마에 반영할 수 없다. 72초 드라마는 전부 사전제작 한다. 72초 드라마 1편당 평균 제작비가 천만 원이 드는데, 사전제작으로 8편을 동시에 찍어야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사전제작을 하더라도 시청자의 피드백을 활용하는 사례들이 많다. 미국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는 독자 분석 기법으로 세계적인 매체로 성장했고, 미국 동영상 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를 제작해 큰 성공을 거뒀다. 모두 시청자 반응을 충실히 반영해 얻은 결과였다. 사전제작을 하더라도 시청자의 피드백을 받는 것은 필요하지 않을까? 성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통계는 거짓말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정말 데이터를 어마어마하게 모으고 어마어마하게 정밀하게 분석하는 수준이 되면 모르겠지만 저는 어설픈 데이터 분석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을 해요.”

72초TV는 드라마를 제작한 후 내부시사회를 연다. 30여 명의 직원 모두가 모여 콘텐츠를 함께 평가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72초 만의 색깔이다. 성 대표는 “어설프게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하는 것을 만들어 내기보다 우리(72초TV)만의 색깔을 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면, <두 여자> 1편 ‘나에게 이게 어울린다고 생각해?’와 동영상 콘텐츠업체 메이크어스의 ‘치타(여성 래퍼)가 옷 가게 직원이라면’의 소재는 옷 환불할 때 벌어지는 이야기로 소재가 같다. 하지만 묘한 느낌의 배경음악, 빠른 속도의 내레이션(혹은 대사), 빠른 화면 편집은 다른 콘텐츠와 차별화하는 72초TV만의 색깔이다.

▲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서 전 직원들이 모이고 있다. © 정성수

재미와 색깔을 넘어 미학으로

성 대표와 인터뷰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31명의 전 직원이 사무실에 모두 모였다. 기자가 찾아간 금요일은 맥주 페스티벌이 있는 날이다. 페스티발 직전에는 회사의 조직문화를 새롭게 만들어나가기 위한 워크숍이 진행됐다. 이번 워크숍은 회사생활에 있어 직원들의 불편한 점을 개선하고 구성원끼리 소통을 원활하게 나누기 위해서 기획됐다. 성 대표는 워크숍에 대해 “우리가 친하지만 서로 날 선 토론을 하고, 의견을 자연스레 개진할 수 있는 회사문화를 만들어나가는 활동이라 볼 수 있다”고 답했다.

72초TV는 다음 주나 2주 뒤에 <72초 데스크>를 오픈할 예정이다. <72초 데스크>는 시즌제로 제작한 ‘72초 드라마’와 달리 일주일에 2편씩 나오는 뉴스 형태를 띤 콘텐츠다. 성 대표는 내년부터는 콘텐츠제작과 더불어 배급도 함께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콘텐츠 기획단계부터 제작사, 배급사가 함께 해나가야 한다”고 배급을 시작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현재 72초 TV의 주 수입원은 브랜드 광고다. 성 대표는 내년부터 중국시장에 진출하게 되면 유통수익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미학(Aesthetics)은 이성적 인식에 비해 한 단계 낮게 평가되고 있던 감성적 인식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서 발생했다. 우리는 그동안 일상의 미학을 낮게 평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기, 일상을 자신만의 색깔로 풀어내 재미를 주는 사람들이 있다. 72초 TV는 일상의 미학을 72초 안에 담아낸다.


바야흐로 미디어혁신의 시대다. 모든 미디어가 디지털조직을 정비하고 콘텐츠제작과 유통방식을 혁신하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올드미디어, 뉴미디어의 구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변화는 신기술의 적응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각의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미디어변신의 현장을 미디어팀의 시선으로 발굴, 미디어의 미래를 점검한다. <편집자 주>

편집 :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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