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특강] 이문재 경희대 교수
주제 ① 자존감을 높이는 글쓰기

‘자존감을 높이는 글쓰기’를 주제로 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이문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전반적으로 자존감이 낮은 한국 사회에서 나를 돌아보는 글쓰기로 자존감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남과 비교하고 서열을 매기는 세상에서 평생을 살아간다. 대학수학능력평가시험 한 번으로 60만 수험생을 일렬로 줄 세우고, 힘들게 들어간 회사에서는 연봉으로 서열을 매긴다. 개인은 자존감을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고 승자만 살아남는 구조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우리 사회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을 때, 최초로 받는 질문이 뭘까요? 엘리베이터든 지하철이든 길거리든 공원이든 두 살배기 정도 되는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 최초로 받는 질문은 ‘너 몇 살이니’예요. 서열을 묻는 거죠.”

▲ 이문재 교수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에서 '자존감을 높이는 글쓰기'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강한

자존감 있는 기자가 필요한 이유

“30대 초반만해도 저는 부끄럼을 타는 성격이었습니다. 기자 초년에는 전화를 못 걸 정도로 내성적이었으니까요. 취재하려면 섭외를 해야 하는데, 취재원과 통화하고 약속 잡는 게 어려웠습니다. 취재하러 가도 뭘 물어봐야 할지 몰라 얼굴이 빨개지곤 했어요. 그래서 내가 이 직업을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있었습니다.”

1984년부터 20년 넘게 기자로 살았던 그는 “나는 아주 운이 좋은 기자였다”며 “주간지였기에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일했던 <시사저널>은 1989년 창간될 당시 여러 면에서 획기적이었다. 출입처가 없었고, 기사에 기자 이름을 다는 ‘기명기사제’를 도입했다. 기사를 직접 기획하고 작성해야 했기에 그만큼 기자는 자유를 가질 수 있었지만 책임은 커졌다.

"제가 100개 기사를 썼다면 99개는 제가 (쓰고 싶은) 기사를 쓴 거예요. 믿을지 모르겠지만, 위에서 ‘써라’ 하고 내려온 기사를 저는 거의 쓴 적이 없습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이 <시사저널> 초창기 전통이었습니다. 퇴직하기 전 편집국장이 여러분이 잘 아는 김훈 작가였습니다. 그때 편집국장이 제게 내린 건 딱 하나였어요. '네 마음대로 해라'."

이 교수는 자신의 글쓰기 수업은 자기가 지나온 기자생활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맡은 바 일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노력은 자존감을 높이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저는 어떤 직업군보다 언론에 종사하는 분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강화해 유지한다면 그 사람이 쓰는 기사, 그 사람이 속해있는 부서, 편집국, 매체가 달라질 거라 생각합니다.”

최초의 기억에 울다

글쓰기 방식은 우연히 시작됐다. 2002년부터 대학생들에게 시창작을 가르친 이 교수는 당시 체계적인 글쓰기 매뉴얼이 없어 수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아무도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시인이기도 한 그가 1학년 시창작 수업을 맡으면서 첫 시간에 냈던 과제가 지금 글쓰기 수업의 계기가 됐다.

“모든 학생에게 ‘최초의 기억’을 써보라고 과제를 냈죠. 에세이 형식으로 가장 먼 기억, 끝까지 거슬러 올라갔을 때 기억을 글로 쓰라고 했어요. 별 기대를 안 했는데, 다음 주에 자기가 쓴 글을 읽어 보라고 시켰더니 학생들이 읽으면서 울더라고요. 한 여학생은 어린 시절 다른 아빠들은 일터로 나가는데 자기 아빠는 런닝셔츠 차림에 만화 그리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에서 눈물을 흘렸고, 부산에서 올라온 남학생은 유년기 좁은 골목 안 자기 집, 철문을 몇 개 열고 들어가야 나오는 자기 집 철문을 묘사한 장면에서 우는 거예요.”

▲ 이 교수는 '나를 위한 글쓰기'가 과거를 돌아보며 지나온 삶을 성찰하고 현재를 둘러보며 미래를 내다보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 강한

그래서 지나온 삶을 성찰하는 글쓰기를 계속하게 됐다. 결국 나를 위한 글쓰기는 자기 안에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과정이다. 나를 성찰하는 글쓰기로 자신을 재발견하고 이를 삶의 원동력으로 바꾸는 힘을 훈련할 수 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지금보다 나은 삶의 주인이 되기를 바란다”며 자존감을 거듭 언급했다.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은 언제?

이 교수는 “자존감의 정의를 지금보다 더 크게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알던 자존감은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는 감정이나 태도’로 소극적 개념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자존감 개념을 도입한 미국 심리학자 너새니얼 브랜든은 최근 <자존감의 여섯 기둥>에서 자존감을 ‘감정이나 태도가 아니라 나 자신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이자 그 권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으로 확대했다. 이 교수는 “언론인이 자존감을 가지고 글을 쓰게 되면 자존감의 긍정적 역할이 사회로 확산될 것”이라 내다봤다. 자존감을 높이는 법은 간단하다. ‘나를 발견하는 글쓰기’다. 이 교수는 “이 글쓰기는 지나온 삶을 성찰해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둘러보고 미래를 내다보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타자를 지향하는 글쓰기고요. 내가 자존감을 갖게 되면 자율적 주체로 거듭나는 거죠. 자율적 주체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를 다시 보게 되고요. 그래서 저는 이 글쓰기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기를 성찰하면 자존감을 발견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저는 우리가 자율적 주체로 거듭나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봐요.”

▲ 자존감 개념을 도입한 너새니얼 브랜든은 자존감을 ‘감정이나 태도가 아니라 나 자신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이자 그 권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으로 확대했다. ⓒ Pixabay

이 교수는 “자기 성찰을 하지 않으면 생물학적으로 살다가 죽는 것”이라며 첫 번째 생일은 여러분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게 우리가 알고 있는 생일이다. 그는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내 삶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지금 내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성찰하지 않으면 첫 번째 생일로 살다 갈 수밖에 없다”며 ‘재탄생을 위한 자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지를 정하는 자아성찰이다. 나를 성찰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교수는 “나를 발견하는 글쓰기가 가장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나를 위한 글쓰기의 첫 번째 주제는 ‘내 생의 최고의 순간’이다. 아무런 규칙도 제약도 없다. 구체적이고 자유롭게 쓰면 된다. 이 교수는 수강생들이 큰 무리 없이 이 주제로 글을 쓸 것이라 생각했지만 수강생 모두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지금껏 그런 주제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건 아주 무서운 얘기”라며 말을 이었다.

“10대 청소년부터 은퇴한 분까지 모두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앞만 보고 계속 달리는 초보운전자와 같습니다. 직진밖에 모릅니다. 뒤돌아보지도 않고 멈춰서지도 않습니다. 미래에서야 한국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이 됐다고 생각할 겁니다.”

‘잊을 수 없는 장소’는 어디?

두 번째 주제는 ‘잊을 수 없는 장소’다. 과거를 돌아보는 글쓰기는 가능하면 어린 시절, 성장기의 일을 써야 내면과 만날 수 있다. 글을 완성하면 자기 삶에 대한 큰 그림이 그려진다. 자서전의 전반부가 쓰여지는 것이다. 흔히들 자기만 등장할 거라 생각하지만 ‘최고의 순간’이나 ‘잊을 수 없는 장소’에는 친구, 선생님, 가족 등 가까운 사람이 나타난다. 또 구체적으로 글을 쓰면 그때 어머니가, 친구가, 선생님이 왜 그랬는지 혹은 ‘그럴 수 있었겠구나’하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관계를 재발견하면서 치유가 일어난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를 쓰다 보면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된다. 칼 융이 말하는 우리 안의 그림자, 울고 있는 어린 아이다. 우리는 대부분 의식의 세계, 낮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드러나는 것에 치중해 살고 있는 것이다. 이 교수는 “드러나지 않는 것, 무의식의 세계를 만나지 않으면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없다”며 “이게 죽기 전에 스스로 죽는 것”이라 말했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그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정하고 같이 가야 한다. 그는 “슬플 때 울고 기쁠 때 웃고 화날 때 힘들어하고 외로울 땐 외로워”하며 “내 안에 있는 그림자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낮과 밤이 균형을 이루는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을 지나게 되면 자존감이 높아진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이문재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다. ⓒ 강한

모든 글쓰기는 고치기다

니콜라스 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종이책은 텍스트를 따라 읽지만 모니터상에 나타난 글자는 제목만 읽고 스크롤을 내려버린다”고 말한다. 디지털 시대가 오기 전, 우리가 생각하고 읽는 방식에는 기승전결의 스토리라인이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이 연결되면서 이 방식이 깨지고 우리는 비선형 시대에 살게 됐다.

이 교수는 “글쓰기에 아마추어와 프로가 있다면 자기가 쓴 글을 스스로 고칠 능력이 있고 없음이 그 기준”이라고 했다. 인터넷으로 기사를 등록하는 요즘은 마감시간 개념이 흐트러졌다. 당장 인터넷 기사만 봐도 오탈자가 수두룩하다. 그는 쓴 글을 데스크에 넘기기 전에 반드시 고치라고 강조했다. 그는 글을 고칠 때 모니터 상에서 고치지 말고 반드시 프린트해 소리 내어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리 내지 않고 읽는 ‘묵독’은 효율적인 읽기 방식이 아니다. 그는 “중요한 텍스트는 소리 내어 천천히 읽는 게 가장 좋다”며 “안 그러면 오탈자가 나올 뿐 아니라 팩트가 어긋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라우마, 잊을 수 없는 음식 등의 주제를 거치고 나면 ‘나를 위한 글쓰기’는 과거에서 현재로 전환한다. 현재를 돌아보는 주제는 ‘지금 나의 가장 절실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수강생들은 ‘5단락 글쓰기’를 시작한다. 5단락 글쓰기는 미국 대입시험에서 에세이를 작성할 때 쓰는 방법으로, 다섯 개의 단락으로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5’라는 숫자가 아닌 ‘단락’이다. 컴퓨터로 글 쓰는 게 익숙한 요즘은 단락을 지키지 않고 행을 멋대로 바꾼다. 시처럼 쓰거나 단락이 하나일 때도 허다하다. 그러나 글쓰기는 단락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한 문단에는 하나의 이야기만 들어가야 된다”며 “그게 단락 구성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최소한 세 가지는 돼야 의미 있는 이슈

▲ 러셀은 자서전 서문에서 ‘내 인생의 세 가지 열정’을 사랑, 지식, 연민이라 말하며 각각의 열정에 세 가지 이유를 붙였다. ⓒ 사회평론

5단락 글쓰기의 대표적 예인 버트런드 러셀 자서전 서문이다. 5단락 글쓰기의 첫 번째 원칙은 본론에 무엇을 소개할 것인지를 밝혀주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매우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했다.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 추구, 인간의 고통에 대한 견딜 수 없는 연민이 그것이다. 이 열정은 마치 거센 바람처럼 나를 이리저리로, 고뇌의 깊은 바다로, 절망의 벼랑으로 휘몰았다. 내가 사랑을 추구한 첫 번째 이유는 사랑이 주는 황홀함 때문이다. … 내가 사랑을 추구한 그 다음 이유는 사랑이 외로움을 덜어주었기 때문이다. … 내가 사랑을 추구한 마지막 이유는 사랑의 합일 속에서 성자들과 시인들이 상상했던 천국의 신비스러운 축소판을 보았기 때문이다.”

러셀은 ‘내 인생의 세 가지 열정’을 사랑, 지식, 연민이라 말하며 각각의 열정에 대해 세 가지 이유를 덧붙였다. 러셀의 글이 탄탄한 이유다. 일본의 한 편집자는 “우리가 무언가를 주장하거나 설득하려면 최소한 세 가지 정도의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근거 세 가지 정도를 제시할 수 없으면 중요한 게 아니라며 “최소한 세 가지 이상이 돼야 의미 있는 이슈가 된다”고 덧붙였다. 이런 5단락 글쓰기는 취재 설계나 기사 작성 후 교정에 유리하다.

글쓰기 운동으로 한국 사회 문제 해결 

이 교수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은 오프라인 수업 전 온라인 카페에 과제를 올리고, 다른 사람의 글을 미리 읽은 뒤 댓글을 단다. 주로 달리는 댓글은 “배움에 대한 열정에 끝이 없으신 분이네요”라거나 “한 수 배우고 갑니다” 등으로 당사자에게 힘을 주는 내용이다. 이 교수는 이를 “공감과 지지”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대부분은 칭찬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누군가 칭찬하면 속으로 ‘나를 지금 놀리는 건가’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가볍게 지적당하면 상대의 말을 그대로 수용합니다. 우리 사회가 자존감이 떨어지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글쓰기 동료들의 공감과 지지의 댓글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지만 프로그램이 거의 끝나갈 때쯤이면 어느새 끈끈한 공동체가 형성되는 겁니다.”  

이 교수는 “저는 세상을 바꾸는 것에 관심이 많다”며 대학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우울한 몽상가’였던 그는 친구들이 학생운동을 하다 붙잡힐 때 무서워서 대열에 끼지 못했다. 연극을 하고 기자 생활을 했지만 여전히 친구들에게 부채감이 남아 있었다. 그 빚을 갚기 위해 그는 “이 글쓰기를 시민운동으로 확대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번 수강하면 자기 주변이나 지역사회에서도 얼마든지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어 글쓰기 시민운동이 가능하다고 봤다.

조부모와 손자 간 격대교육의 효과

그가 글쓰기 강좌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베이비붐 세대의 남성 은퇴자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되찾게 하기 위해서다. 이 교수는 “삼사십년 일만 하던 사람들이 은퇴하게 되면 정신적으로 공황이 온다”며 “이들을 그대로 방치하면 다들 원귀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을 ‘마음의 병자들’이라고 봤다. 이들에게 존엄을 되찾게 하고 자존감을 확대하는 방법은 글쓰기다. 나를 위한 글쓰기로 자기 생애를 이야기로 만들면 ‘내 삶이 허튼 게 아니었구나’라고 느끼며 스스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박물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이 속담에 따르면,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개, 수천 개의 박물관을 방치하는 셈”이다. 조부모와 손주 간의 격대는커녕 부모와 자식 간에도 말이 안 통할 정도로 우리 사회 세대간 단절은 심각하다. 이 교수는 강의 말미에 “격대교육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 <양아록>은 양육에 대한 조부모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육아일기다. ⓒ <SBS 스페셜> 갈무리

“격대교육은 조부모와 손자가 만나도록 하는 거예요. 손자들이 조부모를 찾아가 그분들이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언제 가장 행복했는지 등을 듣고 생애를 구술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야기하는 노인도 달라지고 이야기를 듣는 젊은이도 달라집니다. 저는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이것으로 해결되리라 봅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2학기 <인문교양특강>은 정연주 조효제 정희진 김혜원 이문재 이택광 신형철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 :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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