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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잊지 않겠다' 누구의 시선인가
[인문교양특강] 여성학자 정희진
주제 ② 독창적 글쓰기의 방법
2016년 01월 25일 (월) 02:50:14 김영주 신은정 오소영 기자 yj0254@naver.com

“세월호 참사에 대해 많은 사람이 얘기하는 구호가 ‘잊지 않겠습니다’였어요. 저는 이게 잘못된 구호라고 생각해요. 유가족이 아닌 사람들의 시선이거든요.”

여성학 강사인 정희진 선생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화두를 던지며 ‘독창적 글쓰기’에 대한 두 번째 강의를 이어갔다. 유가족에게는 ‘세월호’가 일상이 됐는데, 이 시간을 버티는 이들에게 “잊지 말자”고 얘기하는 건 이상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유가족들은 살기 위해 잊어야 한다. 기억하고 살 수 없어서 잊으려 발버둥친다. 이때 외부인은 고통에 대한 공감을 표현하고 연대해야 하는데, 잊지 않겠다고 주장해서 유가족에게 부담을 준다. 외부 시각으로 만든 구호는 오래가지 못했고, 지겹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정 선생은 “많은 사람이 ‘잊지 않겠다’고 말할 때 ‘잊힐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독창적인 사고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봐야 독창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 정희진 선생이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독창적 글쓰기'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신은정

‘발품꾼 조갑제’는 본받을 만하다

독창적으로 사고하려면 많은 정보가 바탕이 돼야 한다. 정 선생은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세계 안에서 사유한다”면서 “우리가 아는 지식의 범위는 비슷하고, 대중매체에서 나오는 지식을 크게 넘어서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사람들이 세상 좁다는 말 많이 하잖아요. 한국 사회에서는 두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이고, 전세계로 보면 여섯 사람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래요. 저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끼리끼리 살기 때문에 사람 사이가 가까운 거예요. 학연이 대표적이죠. 몇 학번 건너면 누구인지 서로 다 알아요. 여러분은 매춘 여성을 몇 명이나 아나요? 동성애 인권 운동가나 노숙자는요?”

   
▲ 정희진 선생이 꼽은 우리나라 최고의 발품꾼은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를 쓴 조갑제 씨다. ⓒ 조갑제닷컴

기자는 현실을 보는 남다른 시각이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생각지도 못한 기획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 선생은 “기자의 독창적인 아이템은 세상을 넓게 보는 눈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요즘 기자들은 청와대나 경찰에 출입하지, 발품과 열정으로 우리 사회 곳곳을 다니는 사람이 드물어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라는 걸 보여주는 기사가 없어요.”

정 선생이 보기에 우리나라 최고의 발품꾼은 <월간조선> 편집장을 지낸 조갑제 씨다. 그의 초창기 책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 대한 얘기가 담겨 있다. 한 사형수의 살인 사건을 다룬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1984년 여름부터 이 사건을 취재한 조 씨는 경찰과 검찰보다 더 많은 사건 관련자를 만나고, 공판기록을 뒤졌다고 한다. 2년의 밀도 높은 취재 끝에 그는 사형수의 유죄판결이 ‘오판’일 가능성을 입증했다. 그의 책은 한국형 르포르타주의 대표작으로 회자된다.

 

베스트셀러는 읽지 않는다

그렇다면 세상을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을까? 정 선생은 언론인 홍세화 씨와 영화 <설국열차>를 봤던 일화를 소개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중에 설국열차가 가장 진부해요. 전 처음부터 바퀴벌레로 단백질 블록을 만들 줄 알았어요. 바퀴벌레는 겉으론 더러워 보여도 원래 깨끗하고 고단백이거든요. 물 한 방울만 있어도 평생을 살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고요. 영화의 마지막에 곰과 흑인, 아시아인이 유일하게 살아남는데 이것도 포스트 모더니즘의 전망을 얘기하는 거예요. 저는 프레임이 읽히니까 스토리가 예상돼서 영화를 지루하게 봤는데요. 홍세화 선생님은 제가 다음 장면을 계속 맞추니까 천재인 줄 알더라고요.”

정 선생은 “내용이 뻔한 책이나 영화를 보는 건 시간 낭비”라며 “통념을 엎는 책을 읽어야 참신한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당대 베스트셀러는 잘 읽지 않는다. 모두 아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흑설공주 이야기>는 우리의 통념을 뒤엎는 대표적 책이다. <흑설공주 이야기>는 우리가 모두 아는 동화 <백설공주>를 다른 시각으로 풀어냈다. <흑설공주>는 ‘왕비=계모=악’의 통념을 뒤집는다. 악한 존재는 왕비가 아니라 왕의 신하 헌터경이다. 헌터경은 신분상승의 흑심을 품고 흑설공주에게 청혼했다 거절당한다. 복수심에 불탄 헌터경이 공주를 위협하자 왕비는 일곱 난쟁이에게 도움을 요청해 공주를 구한다. 동화는 여왕을 선하게 그리며 반전을 꾀한다.

이어서 정 선생은 디페시 차크라바르티의 <유럽을 지방화하기>를 소개했다. 그는 “우리가 유럽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 책은 유럽 중심의 사고를 정반대로 뒤집는다”고 했다. 저자는 유럽 중심의 사고에서 탈피해야 비서구권의 사회와 역사를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 건물을 여러 각도에서 백 장쯤 찍어보라

독서가 독창성을 기르는 근본적 방법이라면,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의 사물을 다각도로 생각하기’다. 정 선생은 먼저 건물을 여러 각도에서 100장 정도 찍어보라고 제안했다. 실제로 그는 제자들에게 같은 과제를 낸 결과 두 가지 각도에서 본 사진이 없었다. 먼저 건물 안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람들은 대개 밖으로 나가서 건물을 찍어요. 건물 밖에서 안을 보지 안에서 밖을 내다본다는 생각을 못 해요. 같은 건물이라도 남들과 다르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해요.”

위에서 건물을 내려다보는 사진도 없었다. 하지만 누구도 조감도를 찍을 수 없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그는 “불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생각을 넓히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각도로 생각하는 훈련은 일상에서 충분히 실천할 수 있다. 정 선생은 “우선 주변 사물부터 다르게 관찰하려고 노력해보라”고 말한다. 가령 건물에 들어서면 장애인 입장에서 장애인 편의 시설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휠체어가 다니는 경사로는 설치되어 있는지, 문턱이 낮은지 등을 관찰할 수 있다.

또 교실 문의 개수를 확인해 교실이 민주적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교실에 문이 두 개라면 그 교실은 민주적인 교실이다. 학생이 교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수업시간에 교실을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변을 다른 시각에서 관찰하는 습관을 들여야 독창성을 키울 수 있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학생들이 정희진 선생의 강의를 듣고 있다. ⓒ 김영주

통념을 소거하고 감수성을 연마하라

정 선생은 독창적인 글을 쓰려면 ‘소거법’을 사용하라고 했다. 학창시절 객관식 문제풀이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방법이다. 답이 아닌 보기부터 지우다 보면 마지막에 정답만 남는 것처럼, 통념을 나열하고 나열된 통념을 하나씩 지운다.

“제가 다이어트를 한다고 가정하고 목록을 적어볼게요. 할 수 없는 것은 아이스크림과 치즈케이크 끊기. 할 수 있는 것은 족욕. 언론사 시험을 볼 때도 똑같아요. 국정 교과서에 대한 입장을 논하라고 했을 때 먼저 통념을 최대한 많이 써보세요.”

국정 교과서에 대한 통념으로는 ‘국사를 배워야 한다’, ‘국사가 없는 게 민족이냐’, ‘국사는 통일되어야 한다’, ‘국사 때문에 나라가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다’ 등이 있다. 통념을 빼고 글을 쓰는 연습을 하면 독창적인 글이 탄생한다.

정 선생은 소거법을 쓰려면 “평소 메모를 많이 하고, 6대 일간지를 정독하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슈에 대한 개요(overview)를 충분히 알아야 소거법을 사용할 수 있다. 여성학을 공부하며 쌓은 배경지식은 그의 생각의 지평을 넓혔다. 그는 여성학자가 되려고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자유주의를 비판하며 마르크스주의가 등장했고, 마르크스주의에 반(反)해 나온 게 여성주의다. 통념과 통념을 벗어나는 시각을 모두 공부하다 보니 창의적인 칼럼니스트로 손꼽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