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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 70% 세슘 오염’ 감추는 일본 정부
[원전재앙은 막자] ⑧ 아직 진행 중인 후쿠시마 원전사고
2015년 12월 24일 (목) 18:15:18 배지열 기자 journalistbae@gmail.com

“원자력이 그렇게 위험한 줄 몰랐어요. 한국에 이틀 정도만 피난했다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방사능 때문에 30년 정도는 못 돌아간다는 말을 (뉴스에서) 들었죠.”

이불, 수건, 김만 챙겨 황급히 떠난 피난길

지난 2011년 3월 11일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은 최유희(21‧국내유학 중)씨의 삶을 많이 바꿔놓았다.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최씨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10킬로미터(km)가량 떨어진 후쿠시마현 토미오카 마치(읍)의 2층짜리 주택에 살고 있었다. 지진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최 씨는 학교에 있다가 가족들과 연락이 안 되자 ‘최악의 상황’을 걱정하며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다행히 가족들은 무사했지만 집이 무너진 상태라 그날 밤은 모두 차에서 자야 했어요.” 

   
▲ 방사능 제거 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최유희 씨와 가족들이 살던 집. ⓒ 최유희 제공

다음 날인 12일 새벽 5시경, ‘원전에서 방사능이 누출되고 있으니 대피하라’는 마을방송을 듣고 할머니와 남동생을 포함한 최 씨 가족 5명은 황급히 동네를 떠나야 했다. 새벽에 갑자기 출발해야 하는 상황이라 꼭 필요한 이불, 수건, 오래 먹을 수 있는 김 등 최소한의 것만 챙겼다. 도로가 지진으로 무너져 이동하기 힘들었지만 ‘무조건 멀리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리 저리 차를 몰았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피난길에 나서는 바람에 고속도로가 모두 꽉 막혔고 우회로를 찾느라 우여곡절을 겪었다. 집에서 200km 남짓 떨어진 도쿄에 도착, 원전 10km 이내 거주민들에게 제공된 대피소에 들어간 게 사고 1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하지만 그곳도 안전하지 않아 보였다.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뉴스를 보고 최 씨의 어머니는 한국으로 가자고 했다. 출국하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또다시 우여곡절을 겪으며 겨우 여권을 발급받고 3월말쯤 가족 모두 한국으로 왔다. 서울의 이모 집에 갔다가 일본 정부가 피난민들을 위해 지원해준 부산의 한 호텔에 머물던 가족들은 그해 4월 초 일본으로 돌아갔다. 후쿠시마현과 자매도시인 사이타마현 스기코 지역의 피난민 아파트에 묵게 됐던 첫날을 최 씨는 생생하게 떠올린다.

“아파트를 추첨으로 배정하는 방식이라 못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처음 아파트에 들어갔던 날이 지금도 기억나요. 우리 가족이 너무 가진 게 없다는 걸 그때서야 느꼈죠.”

지진 지대에 세운 원전을 덮친 세기적 쓰나미

동일본 대지진은 진도 9.0의 강진으로, 일본 미야기현 앞바다에서 발생했다. 일본에서 지진 관측이 시작된 메이지시대(1868~1912) 이후 최대이자, 1900년 이후 지구상에서 발생한 지진 가운데 다섯 번째로 큰 규모였다. 1986년 구(舊)소련의 체르노빌에서 대형 원전사고가 난 후 일본에서는 지진지대인 도호쿠(東北) 지역에 원전을 지어선 안 된다는 환경단체 등의 거센 반대가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등 에너지·건설업계는 '일본 원전은 기술적으로 완벽하니 지진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원전 증설을 강행했다. 강력한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사고는 이제 ‘안전(安全)의 일본’이라는 신화를 무너뜨렸고, 후쿠시마 지역과 일본 전역은 물론 전세계에 해양과 대기, 농수산물 오염 등을 통한 피해를 확산시키고 있다.

당시 후쿠시마현 해변에 위치한 후쿠시마 제1원전에 지진 충격과 함께 15미터 높이의 쓰나미(지진해일)가 닥치자 전력이 모두 끊겼다. 비상 발전기까지 물에 잠기면서 원자로의 냉각시스템이 정지됐다. 냉각수로 핵분열 과정의 뜨거운 열을 식혀주지 못하게 되자 원자로 속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멜트다운)’이 일어났다. 이어 핵연료봉의 피복재인 지르코늄이 섞여 녹아내린 물질이 쓰나미로 차오른 물과 반응하면서 많은 양의 수소가 발생, 발전소의 지붕이 폭발했다. 가동되고 있던 1호기, 2호기, 3호기는 물론 가동 중단 상태였던 4호기의 사용후핵폐기물 저장고에서도 수소폭발이 일어나면서 방사성 물질이 대거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갔다.

사고 당시 도쿄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정남구(47) 한겨레 경제부장이 쓴 <잃어버린 후쿠시마의 봄>(2012)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사고 직후 ‘수소 폭발로 건물이 무너지긴 했지만 원자로 내부 손상은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곧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해 12월 도쿄전력이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가장 먼저 폭발이 일어난 1호기의 경우 핵연료봉을 감싼 압력용기가 모두 녹아내렸다. 또 압력용기를 둘러싸고 있는 격납용기의 바닥 콘크리트까지 녹아내려 방사성 물질이 땅을 뚫고 들어가는 ‘차이나 신드롬’ 직전에서 멈춘 상황이었다. 2, 3호기의 경우도 핵연료봉이 녹아내린 뒤 압력용기 바닥에 쌓여 콘크리트 벽을 침식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 쓰나미로 폐허가 된 토미오카 마치 지역(좌)과 기차역(우). ⓒ 최유희 제공

일본원자력안전보안원은 후쿠시마 사고의 국제원자력사고등급을 가장 높은 단계인 ‘레벨 7’로 최종 규정했다. 이 등급은 ‘방사성 물질의 중대한 외부 방출로 인한 대형사고’를 뜻하는 것으로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같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구소련 정부의 철저한 정보 은폐로 정확한 공식기록이 없으나 유엔(UN) 등 국제기구와 환경단체들은 9300명에서 9만명 가량이 숨지고 구소련과 유럽 전역에서 800만명 이상이 방사선 피폭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쉬쉬하고 속이는 정부, 불안한 국민

“개인적으로는 사고가 난 후 제가 있던 도쿄도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들을 먼저 피난시켰고, (본사에서 온) 취재팀을 돌려보낸 후 저도 최악의 경우 지하실로라도 피할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정 부장은 사고 이후 2년가량 일본에 더 머무르며 후쿠시마 원전에서 20~30km 떨어진 지역을 여러 번 취재했다고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접근 가능한 지역은 후쿠시마 원전 바로 아래 이와키시와 인구가 많았던 고리야마시 부근이었는데, 방사능 수치를 계산해서 24시간 동안 머물렀다가 빠져나왔다고 한다. 일본 정부가 지정한 대피구역 바깥에 살던 사람들도 피난을 가서 이들 지역은 당시 유령도시 같은 모습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일본 정부가 정보를 바로 제공하지 않아서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들이 많았습니다. 외신기자들도 (서로) 만날 시간이 별로 없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보를 교환할 수 없었습니다. (피난) 주민들은 긴급 물자를 제때 공급받지 못했고, 지역의 방사능 수치 정보도 없어서 어디로 피난 가야 할 지 몰라 우왕좌왕하기도 했습니다.”

사고의 공포를 애써 잊으려는 사람들

“원전이 폭발한 지 3년. 많은 시민들은 애써 그날의 공포를 잊고 싶어 합니다. 차라리 그게 마음 편하다고 했습니다.”

지난 4월 국내에서 개봉한 이홍기(55) 감독의 다큐멘터리 <후쿠시마의 미래>에서 제작진은 나레이션을 맡은 방송인 김미화 씨의 목소리를 통해 일본인들의 마음을 이렇게 전했다. 이 영화는 사고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후쿠시마 원전 주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주민들은 정부에서 나눠준 먹거리와 각지에서 보내온 모포, 옷가지 등 생필품에 의지해 컨테이너로 된 가설주택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가장 큰 불안은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의 영향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정부에서 발표하는 측정 수치를 믿을 수 없다며 직접 마을과 집안 곳곳에 방사선 측정기를 들이대고 있었다.

일본 미야기현 시로이시에 사는 하세가와 치하루 씨는 영화에서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항상 든다”며 “우리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진실을 말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1월부터 두 달간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일본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원전사고에 따른 방사성 물질이 자신이나 가족의 건강에 끼칠 영향과 관련해 응답자의 35%가 ‘매우 걱정한다’, 42%가 ‘다소 걱정한다’고 답했다. 지난 2012년 2월 한국에 온 오카 에리코(28‧동국대 식품산업관리3)씨도 방사능 영향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다.

“사고 당시 일본 나고야시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원전 폭발로 누출된 방사능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큰 문제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원전 사고로 여러 문제를 겪으면서도 아직 원전을 줄이지 않는 정부의 대처에 불만이 있습니다.”

후쿠시마를 떠났던 최유희 씨 가족들도 2013년에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갔고, 최 씨의 아버지는 정부 지원을 받아 후쿠시마현에서 방사능 제염(오염제거) 사업을 하고 있다. 최 씨는 “가족들이 정기적으로 방사능 검사를 받고 있는데 지금까지 아무 이상이 없었다”며 “어느 정도 위험한 수준인지 아직까지 잘 느끼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국립과학원회보 '일본 땅 방사능 오염 심각' 지적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해 12월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는 일본의 방사능 오염지도를 실었다. 일본 국토의 70%가 세슘에 오염됐음을 보여주는 지도였다. 세슘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고 핵분열과정에서 발생하는데, 세슘에 오염된 땅에서 자란 농산물을 먹으면 인체 내에서 방사선 피폭이 일어날 수 있다.

   
▲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일본의 방사능 오염지도. ⓒ PNAS 2011년 12월 vol.108, no.49

동국대 의대 김익중(55) 교수는 저서 <한국탈핵>에서 “세슘은 오염도가 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가 약 30년이고, 반감기가 10번 지나야 독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오염에서 벗어나려면 30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이는 일본인들이 300년 동안 방사능에 오염된 농산물을 섭취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썼다. 후쿠시마산 쌀의 경우 2012년과 2013년 생산된 물량은 폐기처분됐고, 지난 1월 처음으로 정부 기준치인 1킬로그램(kg)당 100베크렐(Bq) 미만의 오염도 기준을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교토대학교 원자로실험소 고이데 히로아키(66) 교수는 저서 <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2012) <원자력의 거짓말>(2012) 등을 통해 일본 내외에서 후쿠시마 사고의 심각성을 폭로하고 탈핵의 결단이 필요함을 설파해왔다. 지난해에는 우리나라를 방문해 국회에서 강연하고, 뉴스에도 출연해 한국이 일본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비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원전 사고로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고도 사고의 실상을 은폐하고 책임도 지지 않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그리고 언론을 비판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오염수가 아직 누출되고 있는데) 최근 정부나 언론에서 방사능 누출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한심한 일입니다. 또 이번 사고에 막중한 책임이 있는 도쿄전력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어떤 처벌도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이 가진 권력을 바탕으로 이제는 오히려 원전을 재가동하고 새로운 원전을 짓거나 기술을 수출하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대참사 후 독일, 벨기에, 스위스, 프랑스 등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들은 원전을 폐기하거나 줄여가는 ‘탈원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설계수명을 넘긴 월성 1호기를 연장 가동하고, 새로운 원전을 증설하기로 하는 등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노후 원전의 사고 가능성과 지역주민의 건강 피해, 대책 없는 핵폐기물 등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를 외면한 채 이처럼 ‘원전대국’으로 직진해도 되는 것일까. <단비뉴스>는 우리나라 원전 정책의 문제점과 원자력발전의 근본적 위험성을 짚어보고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에너지 체제’를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편집자) 

편집 : 서혜미 기자

[배지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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