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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한테 줄 서면 덜 망가져요”
[전시] 대종경 판화전 연 이철수 판화가와의 대화
2016년 01월 07일 (목) 20:51:15 견민정 배지열 오소영 기자 journalistbae@gmail.com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쉽게 쓰여 있어요. 얼핏 보면 어떻게 이런 순진한 경전이 있을까 생각할 정도입니다. 다른 작품들에서 힘들게 내려 했던 일상적인 느낌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철수 판화가는 몇 년간 원불교 경전 ‘대종경’을 대해본 느낌으로 내용이 쉽고 일상적인 점을 꼽았다. ‘대종경’은 원불교 사상의 근간이 되고 가장 널리 읽히는 경전이다. 일상에서 가르침이 응용되고 활용되는 다양한 사례와 부가적인 설명을 담고 있다.

지난 5일부터 대전시 중구 ‘예술가의 집’에서 <이철수 대종경 판화전: 네가 그 봄꽃 소식해라>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 판화가는 80년대부터 민중미술 계열의 판화작가로 활동했다. 이번 전시회는 지난 3년간 그가 원불교의 가르침을 재해석해 새로 만든 출품작 200여 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6일 전시회장에서 가진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그는 대종경에 담긴 사상, 그리고 물질과 정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 이철수 판화가가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배지열

‘물질개벽’ 속에서 무한도전이 될 ‘정신개벽’

이 판화가는 ‘대종경’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돈이나 구체적인 이익, 특별한 기회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시회장 한쪽 벽면에 걸린 ‘작가의 말’을 통해 그는 “‘물질개벽’이 만드는 변화의 회오리 속에서 정신의 무한도전이 될 ‘마음개벽’을 화두로 삼아 작품들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또, 경전을 통해 마음을 수양하고 그런 깨달음을 많은 어른들이 젊은 세대와 나눠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현재 제천시 백운면 시골에서 부인과 함께 농사를 짓는 이 판화가는 사람들을 피해 온 그곳에서도 물질의 폐해를 느낀다고 했다.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서울과 거리가 짧아졌는데 그 동네가 발전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대부분 대도시로 빠져나간다. 그는 “장도 잘 안 서고 흔하던 목욕탕마저 사라졌다”며 “시골은 자꾸 무언가가 줄어든다”고 아쉬워했다.

기술이 많이 발전해 스마트폰이나 사람의 감정을 가진 로봇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이 판화가는 지금이 물질개벽을 실감할 수 있는 첫 시대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물질이 정신계에도 들어와서 이제 체념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닌가 한다”며 “우리가 마음공부를 통해 얻고 싶은 통찰이나, 깊이까지 물질적으로 제공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우려했다.

그는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공감 부족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남에게 공감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자기 것만 챙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부처님이 너만 잘 먹고 살라고 했나요? 없는 놈은 없이 살아도 좋다고 했나요? 어떤 경전에도 그런 말씀이 없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우리가 잊고 있는 것 같아요.”

   
▲ 전시된 작품들을 설명하고 있는 이철수 판화가. ⓒ 견민정

유쾌하게 풀어낸 경전의 가르침

이철수 판화가의 작품은 원불교 경전의 말씀을 이 판화가 특유의 재치 있는 그림과 쉬운 언어로 옮긴 것이 특징이다. 작품 <천지의 도는...>은 ‘천지의 도를 알면 길흉 오간 데 없을 것’이란 경전의 말씀을 전한다. 대개 사람들은 길흉이 있다고 생각한다. 빙판길을 가다 넘어지기만 해도 ‘운이 나빴다’고 여긴다. 길흉을 믿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은 억울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 판화가는 경전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길흉은 잘못 들어선 마음 길에서 만나는 돌부리라 제 길에 들어서면 돌부리를 만나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을 덧붙였다. 그는 “좋은 말씀이라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때가 있다”며 “그땐 말씀을 안고 고민하며 우여곡절 끝에 내 이야기로 조금씩 만드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천지의 도는…> ⓒ 배지열
   
▲ <쇼핑-거룩한 집>. ⓒ 이철수의 집

이 작가의 작품은 우리 사회와 맞닿아 있다. 작품 <쇼핑-거룩한 집>은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는 현대사회를 풍자한다. 그림 속 사람들은 카트에 물건을 가득 싣고 마트를 나와 만세를 부른다. 마치 ‘성소 순례를 마치고 물질의 축복에 감사하며 기꺼이 헌금을 봉헌한 우리는 기쁨에 차서 거룩한 집을 나왔다’는 식이다.

   
▲ <테이크아웃 선>. ⓒ 견민정

“마음 공부는 테이크아웃 커피처럼 어디서나 할 수 있다“

이 판화가는 “이번 전시에서 사람들이 제일 인상 깊다고 말한 작품이 <테이크아웃 선>”이라고 전했다. ‘앉아서는 하고 서서는 못하는 선이면 병든 선이라…’는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의 말씀에 ‘참선 수행도 테이크아웃 할 수 있다는 말씀’이란 해석을 덧붙인다. 테이크아웃 커피처럼 마음 공부도 어디에서나 할 수 있다는 뜻이다.

   
▲ <가난한 머루송이에게>. ⓒ 이철수의 집

이 판화가와 머루의 대화로 이뤄진 <가난한 머루송이에게>도 대중에게 사랑받은 작품이다. 집에서 머루나무를 키우던 그는 열매를 맺으면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했는데 머루가 부실할 때면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민망해 늘 속상했다고 한다. 이전처럼 머루를 따며 한탄하던 어느 날 그는 문득 ‘아차’ 싶었다.

“제가 ‘겨우 요것 달았어?’라고 하자 머루가 ‘최선이었어요’라고 답하는 거 같았어요. 미안했죠. 제가 머루의 입장에 서보지 않았다면 이 그림은 없었을 거예요.”

판화는 데모 하기 좋아 시작했지만…

   
▲ <반골초상>(1983년 작). ⓒ 이철수의 집

“80년대에 데모하기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해 판화를 시작했어요. 데모 하는데 그림을 가져다 대면서 살았습니다. 판화가 우악스럽고 거친 이미지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장르인 것처럼 오해하고 살았어요.”

판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묻는 청중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1980년대는 군부독재가 한창이던 시대로 그에게 투쟁은 당연한 과제였다. 그는 “판화가 단순한 것만은 아닌데 판화에 대한 오해를 하고 시대의 심부름을 열심히 하느라 시작하게 되었다"고 다시 한 번 정리했다.

“그림에 글을 넣기 시작한 것은 순진한 이유 때문이었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그림을 모른다고 그림은 어렵다고 해서 글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계몽적인 생각이 있었던 거죠.”

그의 작품에는 글이 있다. 글 덕분에 누구라도 쉽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글은 그 나름의 배려다. 그림에 글을 넣기 시작할 때 긍정적인 평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화를 하느냐’며 반칙하는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서양미술이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며 그림은 글씨를 누락시키고 순수하게 이미지만으로 하자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하지만 본래 전통 회화에는 그림 속에 글을 곁들이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이 판화가는 “이것이 우리 전통이며 이런 장르를 발전시키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번 작품들에는 평소보다 많은 글이 담겨있다. 그림보다 글의 무게가 더 무거운 작품도 있다. 이 판화가는 “경전의 지혜가 소중하다고 생각해 그림에 모셔 오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경전을 쉬운 언어로 작품에 담았다. 이 판화가는 “정말로 전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파격적이지 않아도 할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평범한 언어, 단순한 언어, 언어 없음을 포함해서 단순한 것으로 다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전시회장을 찾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는 이철수 판화가. ⓒ 배지열

마음 공부는 책과 사람을 벗하면서

그는 마음공부의 방법으로 책과 사람을 꼽았다. 그도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스스로 판단을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답은 마흔이 넘어서야 찾았다. 그는 “답을 찾기까지 책이 가장 많은 힘을 줬다"며 “필요에 따라 책을 읽고, 평소에 두고두고 보는 책도 읽고 그러다 보면 세상이 경전처럼 보이는 때가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가 강조한 것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을 만난 것이 더 컸다고 생각해요. 아무 계산이 없었어요. 절로 만나게 됐어요.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서 거기에 줄을 서면 막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좋은 선생님들 속에서 겨우 사람 됐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이 판화가는 젊은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전했다.

“좋은 사람들 곁에 줄 서라고 하고 싶어요. 좋은 사람들하고 함께 가면 덜 망가질 거 같아요.”


편집 : 박성희 기자

[배지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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