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또 다른 기억 '세월호 참사 1주기 사진전'

경복궁역 4번 출구 계단을 채 오르기도 전에 형광 조끼를 입은 경찰들과 마주쳤다. 사진전 <빈 방>이 열리는 갤러리 류가헌으로 가는 길, 영추문을 따라 걷는 인도엔 봄나들이를 나온 사람들과 경찰들로 가득했다. 경복궁을 오른편에 두고 걷는데 전봇대에 걸린 노란색 현수막이 펄럭였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사진전.' 표지를 따라 경복궁을 등 뒤에 두고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한옥을 개조한 갤러리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지난달 18일, 세월호 참사 1주기 사진전 <빈 방>이 열린 서울 종로구 통의동 갤러리 류가헌. ⓒ 유수빈

‘ㄷ’자 모양의 갤러리 마당 툇마루에는 관람객들이 앉아 봄볕을 쬐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긴 나무 테이블이 인상적인 사진책 도서관을 지나 전시회가 열리는 갤러리 전시 2관으로 향했다. 사진전 <빈 방>은 세월호 참사로 돌아오지 못한 50명 아이들의 빈방을 사진에 담았다. ‘그 날’ 2014년 4월 16일, 방은 주인을 잃었고 생전 아이들의 꿈과 웃음, 희망만 덩그러니 남아 쓸쓸했다.

우리는 304개의 우주를 잃었다

2학년 8반, 안주현의 방 천장은 뭉게구름이 가득한 푸른빛이다. 문제집이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꽂이 위에는 방 주인이 열심히 모은 십여 개의 로봇 프라 모델(플라스틱으로 된 조립식 모형 장난감)들이 나란히 서 있다. 로봇 프라 모델들은 제각각 날개를 펼치고 당당하게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주현이가 가족들과 함께 웃고, 온 정신을 집중해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열중하는 주현이의 눈은 빛난다. 그 옆에 놓인 초상화 속의 주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주현이는 여전히 기타와 함께 웃고 있다. 주인 잃은 검은 빛 기타는 옷장 앞에 소리 없이 서서 주인을 기다린다.

1년째 시간을 멈춘 공간 속에 주인의 삶도 멈춰있다. 2학년 8반 안주현의 방(좌), 2학년 9반 이보미의 방(우). ⓒ 유수빈

2학년 9반, 이보미의 방. 침대에 보미 대신 보미의 사진이 앉아있다. 화사한 분홍빛방 벽 왼편엔 보미가 다양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여고생 특유의 생기발랄함이 느껴진다. 방안을 장식한 알록달록한 쿠션과 벽에 붙어있는 곰 인형이 그려진 메모판 등 아기자기한 소품들에서 여고생 보미의 몸냄새가 난다. 하얀 옷장 위에 구겨진 큰 곰 인형이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어서 와 내 몸을 펴 안아 달라고 조르듯이. 핑크빛 파스텔 톤으로 꾸며진 방 한가운데엔 봄 새싹같이 화사한 연둣빛 의자가 놓여있다. 의자 등받이에 보미가 매고 다녔던 가방이 평상시처럼 걸려있다.

1년째 시간을 멈춘 공간 속에 주인의 삶도 멈춰 있었다. 책과 문제집이 쌓여있는 책상, 대각선으로 비뚤게 밀린 키보드, 의자에 걸쳐둔 옷가지, 방구석에 박힌 운동기구. 공부하고 멋 부리던 주인공들의 일상이 멈춰진 방안 풍경은 이들의 부재를 뚜렷이 증명하고 있었다. 방은 개인의 세계를 담는 최소 공간이다. 방을 보면 아이들이 보인다. 몸짓, 소리를 넘어 마음마저 읽힌다. 떠났지만, 다시 돌아올 수 없지만, 방의 주인은 여전히 아이들이었다.

사진전이 열리는 갤러리 전시 2관은 작은 한옥 방 두 개를 이어 만들었다. 그 좁은 공간에서 50여 명 아이들이 정지된 시간과 동작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안엔 우리가 잃어버린 50여 명의 세계가 있었다. 돌아오지 못하는 주인을 기리는 안타까움과 주인이 없는 방을 치우지 못하는 그리움이 혼재되어있는 공간, 그 날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 풍경이 아팠다.

빈방의 주인을 떠올리는 일은 아이들의 시간과 공간을 우주의 역사로 기억하는 일이다. 관람객은 사진을 통해 방의 주인들을 구체적 우주로 마주한다. ⓒ 유수빈

삶은 기억과 마주 서는 것

빈방을 기록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공간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방에서 자신의 세상을 꿈꾸었던 아이들의 웃음과 눈물, 숨소리를 담아내는 일이다. 아이들 하나하나는 그 자체만으로 오롯한 우주였다. 빈방의 주인을 떠올리는 일은 아이들의 시간과 공간을 우주의 역사로 기억하는 일이다. 세월호 참사로 304개의 우주를 잃었다.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파괴된 일상을 ‘비극’이라는 말로 지울 수 없다. 우리는 아이들 하나하나를 각각의 구체적 우주로 기억해야 한다. 그러자면 기록해야 한다. 기억하기 위해 기록해야 하는 것이다.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자고 사람들이 힘을 모았다. 바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기록자원을 수집하고 관리하는 <416 기억저장소>다. 이들은 지난 1년간 희생 학생들의 기록과 사진을 스캔해 정리하며 부모들의 이야기를 녹취해 왔다. 사진가들은 아이들의 빈방을 기록했다. 50여 명의 사진가들은 지난해 말부터 희생 학생들의 방을 카메라에 담았고, 현재도 촬영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빈 방>전은 그 결과물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제 그만 잊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에게 이제 그만 잊으라고 종용하는 것은 폭력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제대로 묻기 위해서 오히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제대로 기억해야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망각으로 상처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삶이란 기억과 치열하게 마주하며 이겨내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난 18일,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 임미경(29‧회사원‧서울시 강북구) 씨는 “너무 아픈 사건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는 것이 슬프다. 소중한 아이들 한명 한명의 삶을 보여주는 전시가 마음에 와 닿았다. 가족들의 힘들었던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자신을 한 아이의 엄마라고 소개한 방미옥(64‧주부‧충남 세종시 도담동) 씨는 “딸아이가 어딜 갈 때면 항상 아이 방에 불을 켜두곤 했어요. 그게 무얼 의미하는 걸까요? 자식이 항상 내 곁에 있으면 하는 마음이 아니겠어요?”라며 전시장 한 편에 놓인 세월호 인양 촉구 서명지에 서명했다.

전시장 한 편에는 세월호 인양 촉구 서명을 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됐다. ⓒ 유수빈

잔인한 4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류가헌 전시 2관에서 <빈 방>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번 전시는 안산 416 기억전시관에서 <아이들의 방>이라는 제목으로 이달 말까지 계속된다. 단원고 학생들의 수학여행의 목적지였던 제주에 있는 <기억공간 re:born>에서는 지난달 16일부터 올해 말까지 학생들의 유품 사진이 전시 중이다.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Event/pageflow/remember0416.aspx) 웹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으로도 전시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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