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뉴스] ‘차벽’ 사라진 서울광장 민중총궐기 현장

경찰의 ‘차벽’이 사라진 대신 풍자를 담은 가면과 ‘평화의 꽃’이 활짝 피었다. 5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광장에서 500여 시민단체 주최로 열린 2차 민중총궐기대회는 주최 측 추산 5만여명의 참가자들이 자유로우면서도 질서 있게 의견을 표출하는 한마당이 됐다. 지난달 14일 1차 민중총궐기가 광장을 둘러싼 경찰 버스와 최루액 섞인 물대포, 시위대의 거친 저항으로 얼룩졌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이날 오후 2시가 조금 넘자 서울광장에 인파가 모이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각종 탈과 가면, 복면을 쓴 시민들이 유난히 많았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복면 쓴 시위참가자들을 테러집단인 이슬람국가(IS)에 비유한 것을 꼬집는 몸짓이었다.

오후 3시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 ‘평화의 꽃길 기도회’라 쓰인 현수막 뒤로 “평화 피어라” 등 구호를 외치는 종교인들이 등장했다. 2차 민중총궐기가 평화롭게 진행되기를 기원하며 불교, 개신교, 성공회, 원불교, 천도교 등 5대 종단의 지도자와 신도 500명가량이 앞장선 것이다. 이들의 손에는 밝은색의 꽃송이가 들려있었다. 이들은 돌아가며 호소문과 기도문 등을 낭독하고 종교의식을 거행했다. 도법 스님은 “자비는 베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한가운데서 함께하는 것”이라며 “자비심으로 평화의 씨앗을 심자”고 말했다.

야당 정치인들도 나왔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당명이 적힌 노란 깃발 무리와 함께 서울광장에서 시민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또 행진이 시작될 지점인 광장 뒷골목에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등 국회의원 서른 명가량이 파란 목도리를 두르고 장미꽃 한 송이씩을 든 채 ‘평화 지킴이’가 될 것을 자처했다.

서울광장에서 열린 범국민대회에는 민주노총의 각 시도 지부와 대학 대표, 청년유니온, 알바연대, 시민단체들의 깃발이 나부꼈다. 이들은 각각 보호받지 못하는 농민과 노동자의 힘든 삶,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이 보여주는 민주주의 퇴행 등에 대한 우려와 분노를 구호로 외쳤다. 또 1차 민중총궐기 때 물대포를 맞고 중태에 빠진 백남기(69) 농민의 쾌유를 빌며 “백남기 농민 살려내라”고 목청을 높였다.

오후 4시 반. 대회 참가자들은 서울광장에서 백남기 농민이 입원 중인 서울대병원 후문까지 3.5킬로미터(km)의 행진을 시작했다. 거대한 인파의 발길이 2개 차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경찰이 질서유지 역할을 맡은 가운데 가면, 꽃, 바람개비, 촛불, 탈춤이 어우러진 행진이 평화롭게 이어졌다. 혜화역 2번 출구부터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까지 행진 참가자들이 촘촘히 모여 앉은 가운데 저녁 7시 30분쯤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문화제를 마치고 돌아가는 시민들의 손에는 꽃 혹은 촛불이 들려있었다.

▲ '평화의 꽃길 기도회'에 참석한 스님들이 꽃을 들고 기도하고 있다.(위) 기도회가 끝난 후 시청을 향해 일렬로 행진하며 ‘걷기 명상’하는 종교인들.(아래) ⓒ 이명주
▲ 오후 2시경 서울광장에 모인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의 각 지부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다. ⓒ 김영주
▲ 민중총궐기에 참석한 시민들이 노동개악, 밥쌀용 쌀수입, 역사교과서 국정화 중단 등 11개 요구안을 함께 외쳤다. ⓒ 김영주
▲ 이날 민중총궐기 참석자들은 가면, 복면 등을 쓰고 구호를 외치는 등 정부의 복면시위금지 움직임을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민중 총궐기에 참석한 사람들이 쓴 다양한 복면들. ⓒ 문중현
▲ 손팻말을 들고 있던 조진형(45)씨는 "중학교 2학년 딸이 국정화 반대 시위하는 모습을 응원하러 친구들과 나왔다"며 자신을 "진정한 아빠"라 소개했다. ⓒ 김영주
▲ 행진이 시작된 후 세종로 동아일보 건물 앞에서는 고엽제전우회원들이 폭력시위는 강력하게 진압해야 하고, 역사교과서는 국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 이명주
▲ 총궐기행사 한 편에 투명비닐 깃발들이 등장해 시선을 모았다. 차가운 바람에 비닐이 팽팽히 펴지면서 ‘누구나 표현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가 있다’등의 메시지가 드러났다. ⓒ 문중현
▲ 시민 행진의 첫머리는 경쾌한 사물놀이와 함께 시작했다. 뒤따르는 두 번째 대열의 복면 쓴 참여자들은 꽹과리, 징, 북, 장구의 신명나는 장단에 맞춰 탈춤 추듯 하얀 천을 흔들었다. ⓒ 문중현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도 행진에 참여했다. ⓒ 문중현
▲ 경찰이 지정해준 2개 차로는 수만의 인파가 걷기에 너무 좁았다. 행진 선두가 최종 목적지인 서울대 병원에 도착할 때야 시청에서 출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종로1가부터 5가까지 가득 메운 시민들. ⓒ 문중현
▲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외치는 시민 행렬. ⓒ 문중현
▲ 두 아이의 손을 꼭 잡고 행진에 참여 중인 부부. ⓒ 문중현
▲ 대학생들은 노랫말을 바꿔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쉬운 해고 반대! 쉬운 해고 반대!, 하겠네! 반대하겠네!”등을 부르며 명랑한 분위기 속에서 노동악법 반대를 외쳤다. ⓒ 문중현
▲ 예술가들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검열 등에 저항하는 메시지를 들고 나왔다. ⓒ 문중현
▲ 경찰은 이날 225개 중대 2만 여명을 투입했지만 강제 해산이나 진압 대신 질서 있는 행진을 지원했다. 오후 6시가 되자 출동한 경찰관들은 도시락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 문중현,이명주
▲ 서울대병원 앞에 모인 한 시민이 촛불을 들고 "백남기 농민 살려내라"를 외쳤다. ⓒ 이명주
▲ 시청 뒷길로 오만 명의 인파가 빠져나간 후 세월호희생자 추모분향소가 설치 돼 있는 광화문광장은 황량한 섬처럼 고요했다. ⓒ 이명주
▲ 스페인 출신으로 한국에서 40년 넘게 살고 있다는 한 천주교 신부는 분향소를 찾아 “이 아이들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단원고 2학년 8반 김제훈 아빠는 “지난 1차 민중총궐기 때 ‘폭력집회’ 등 지엽적인 부분만 부각됐는데 세월호의 경우도 진실규명을 원하는 유가족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며 “언론이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 이명주

 


                                            편집 : 김영주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