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안산에서 광화문까지, 세월호 유가족의 1박2일 행진

"가족들이 이게 뭡니까, 이게. 영정사진 들고 거리로 나서야겠습니까!"

4일 아침 경기도 안산시 안산합동분향소 앞 광장. 세월호 실종자 허다윤(단원고2)양의 아버지 허흥환(51)씨의 외침이 찬 공기를 갈랐다. 삭발을 한 단원고 희생자 부모 수십 명이 앞줄에 서서 눈물을 닦거나 아이들의 영정을 어루만졌다. 이날 유가족 250여명은 지난해 장례를 치를 때 입었던 상복을 다시 꺼내 입고 단원고생 150여명의 영정을 품에 안은 채 서울 광화문까지 100리(약 42Km)길 도보행진에 나섰다. 지난 1월말 20일 동안 안산에서 전남 진도 팽목항까지 450km를 걸은 데 이어, 참사 후 다섯 번째 장거리 행진이다.

장거리 행진만 다섯 번째, 변하지 않은 현실

길을 나서기에 앞서 4.16가족협의회와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는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가 입법예고한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은 진상규명을 막기 때문에 폐기해야 하며, 세월호는 온전한 상태로 인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시행령안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업무 범위와 인원을 축소하는 등 입법취지를 해쳤다며 특위가 제출한 시행령안을 공포하라고 요구했다. 4.16가족협의회의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특히 언론이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에 관심을 갖고 유가족의 입장을 제대로 보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저희들이 상복 입은 모습, 영정을 앞에 모신 모습, 소위 보도할 때 섹시한 모습, 그 모습만 내보내지 마시구요. 그 사진만 내보내지 마시고 저희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이 음성, 이 절절한 음성을 온 세상에 널리 알려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4일 오전 "진상규명 가로막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세월호 온전한 인양 결정 촉구를 위한 시민 가족 도보행진" 전 연 기자회견과 삭발식 뒤에 유가족이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 김봉기

유가족들은 지난 1일 해양수산부가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지급 기준을 발표하고 대다수 언론이 이 금액을 자극적으로 보도한 것이 큰 상처가 됐다고 말했다. 고 임세희(단원고2)양의 어머니 배미선씨는 “아이들의 죽음을 교통사고로 여기고, 쓰레기 같은 시행령으로 우리 아이들의 죽음을 물어보지 말라하고, 보상금으로 사건을 무마하려 한다”며 분노했다.

이날 행진 대열은 유가족 외에 시민 250여명 등 약 500명으로 출발했다. 이 대열에 시민들이 점진적으로 가세해 이튿날인 5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 국민촛불문화제에 도착할 무렵에는 2000여명(주최측 추산)으로 늘어났다. 1박2일의 행진이 이어지는 동안 경기도 안산과 광명, 서울 여의도와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많은 시민들이 나와 격려의 손팻말을 들거나 커피 등을 건네며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부천 새시대여성회의 한 30대 회원은 “작년에 아기가 태어났을 즈음에 사고가 나 특히 마음이 아팠고 단체활동도 하게 됐다”며 “오랫동안 걸을 수 없지만 마음만으로라도 함께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안산 부곡동 하늘공원에서 수암동 파출소까지 1시간 정도 행진에 동참했다.

시민들 격려와 위로에 힘 얻고 비난엔 상처

반면 유가족 행진에 못마땅한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있었다. 5일 오전 11시 20분쯤 서울 구로동 구로시장을 지날 때 도보행진단이 한 옷가게 앞 나무에 노란리본을 달자 60대로 보이는 여주인이 목청을 높여 항의했다. “경기가 어려워서 가게세도 못 내고 있는데 하루 장사 공치면 어떻게 하느냐”는 얘기였다. 구로구청 사거리에서 한 70대 남성은 “허구헌날 시위를 한다”며 행진단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행진하던 유가족들은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3일 세월호 선체인양을 반대하며 “아이들은 가슴에 묻어야 한다”고 트위터 글을 올린 데 대해 성토하기도 했다. 한 유가족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제 자식이 죽었어도 그런 얘길 했을까, 개XX 만도 못하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을 거론하며 “그런 욕설로도 부족하다. 이 XXX야 니가 뭔데 가슴에 묻으라 마라야”며 울분을 터뜨렸다.

▲ 유가족과 시민들이 1박 2일 동안 행진하면서 만난 시민들은 행렬에게 응원을 보내 주었다. ⓒ 김봉기

지난해 7월의 참사 100일 도보행진에 많은 야당 국회의원들이 참여했던 것과 달리 이번 행진에는 현직 의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과천의 한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오규상(32)씨는 “정치권이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보여줘야 하는데 유가족을 위하지 않고 세월호를 정쟁의 도구로만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1박2일 도보행진을 끝까지 함께한 김재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어차피 정치인들이 전면에 나설 수는 없다”며 “정치인들은 유가족들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지켜주는 것만 해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도 죽고, 고등학생도 죽었으니 다음은 중학생인가”

“매일 밤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그 아이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기억해냅니다. 그런데 세상은 자꾸 잊으라고, 그만하라고 합니다. 그리움은 도저히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만하라고 하지 마세요. 가치를 매길 수 없이 사랑스러웠고 빛났던 그들을 절대 돈으로 계산하려 하지마세요.”

행진 이틀째인 5일 오전 9시 30분 경기도 광명시 광명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형제자매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희생된 단원고생의 형제자매 168명 중 73명이 나선 회견에서 이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고통을 호소하며 “조사 받아야 할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특별조사위원으로 포함된 시행령은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박성호(단원고2)군의 누나 박보나(21)씨는 “삭발은 최후의 수단인데 부모님이 삭발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회견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박씨는 “태안해병대캠프 사고와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가 일어났을 때 내 동생은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렸다”며 “그 때 조금이라도 행동했으면 내 동생에게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모두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말고 움직였으면 좋겠어요. 한 중학생이 (집회에서) ‘대학생도 죽었고, 고등학생도 죽었는데 다음은 우리 차례냐’고 묻던 말이 기억나요. 더 많은 아이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청년들이 용기를 내야 해요.” 

▲ 5일 오후 6시 40분 쯤 유가족들이 국민 촛불문화제에서 촛불을 서로 옮겨 붙이고 있다. ⓒ 김봉기

유가족들의 긴 행진은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국민촛불문화제로 마무리됐다. 광장에서 기다리던 시민 등 5000여명(주최측 추산)이 함께한 문화제는 함세웅 신부와 시민들의 지지발언, 노래패 공연 등으로 이어졌다. 저녁 7시 30분, 행사가 끝난 뒤 한 줄로 길게 늘어선 유가족들은 영정사진을 안은 채 시민들과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기존 광화문 농성장에서의 시위는 정부시행령안 폐기와 선체인양 등 진상규명 작업이 가시화할 때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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