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양특강]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주제 ② 기업사회론

날마다 두 그릇씩 밥을 먹고 해마다 홑옷과 겹옷을 바꾸어 입되 쌀 한 톨 실 한 올도 모두 자기가 스스로 마련한 것이 아니고 오직 편안히 앉아서 남들에게 의지하니, 마땅히 어진 사람이 경계해야 할 것이다.’(이익, <성호사설>중 「식소(食小)」)

조선시대 실학자 성호 이익은 땀흘려 생산하는 사람의 가치를 유독 강조했다. 그는 놀고 먹는 계층인 선비들도 생산노동에 종사할 것을 요구하며 농민들의 생산을 소비하기만 하는 이들을 가리켜 좀벌레나 다름없다고 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의 성찰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에 대해 갖게 된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 교수는 외환위기 당시 재직중이던 학교의 학생 등록률이 20% 가량 감소하는 것을 보면서 상당한 위기를 느꼈다고 한다. 일자리를 잃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그는 ‘내가 과연 이 세상에서 나 홀로 먹고 살 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해 성찰하게 됐다.

▲ 김 교수는 97년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면서 '기업'과 '자본주의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 배상철

그는 사회로 나가기 전 “기업에 취직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꿈 꿔본 적도 없고, 이데올로기와 이론적 영향으로 기업주나 사용자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외환위기 이후 “자본주의 사회에선 정말 기업주가 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그들의 생산활동에 대해 새삼스런 자각을 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10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회사사장이라면, 과연 이들에게 매달 꼬박꼬박 밀리지 않고 월급을 줄 수 있을까? 경기가 어려워져도 저들을 해고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월급을 반으로 깎아서 회사를 유지할 수 있을까?”

김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활동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평범한 진리에 다시 도달하면서 “학교에서 강의하고 글을 쓰는 일도 중요하지만, 당장 땅을 파서 내일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것만큼 중요하진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모든 정책과 사상이 '일하는 사람과 노동’에 기초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만큼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 대부분을 정신노동이나 육체 노동에 종사하고, 인생 대부분을 피고용자로 살아간다. 따라서 ‘기업이 어떻게 운영되는가’, ‘기업이 종업원과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가’는 한국 사회에서 너무나 중요한 문제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외환위기를 통과한 이후 그는 ‘기업사회’라는 개념을 생각하게 됐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활동을 하면서 세계적 기업이라 칭송받는 대기업 삼성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자각하게 됐다. 삼성에 소속된 몇 십만의 종업원들과 삼성의 하청기업, 재하청기업, 그들과 각종 거래관계에 있는 기업들, 그곳에 근무하는 노동자들, 그들의 가족들, 그리고 삼성의 광고를 받는 언론사의 기자 등삼성에 직•간접적으로 고용된 노동자들은 수백만에 이를 것이다.

▲ 저자는 한국사회가 87년 민주화 이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급속하게 기업사회의 형태를 띄게 됐다고 진단한다. ⓒ 도서출판 길

재벌에 장악된 한국 사회

그가 삼성의 영향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결정적 사건이 둘 있었다. 첫째는 참여연대 회원이었던 삼성 직원이 IP주소를 추적당해 회사에서 해고당한 사건이고, 둘째는 2002년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가 소액주주운동을 할 당시 벌어진 삼성과의 소송 사건이다. 삼성 주주총회에 단체 회원들이 참석해 약간의 다툼이 있었고, 삼성은 참여연대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후 사무실에 압수수색을 나온 사람은 검찰이 아닌 삼성 직원이었다.

김 교수는 ‘이 정도면 민주주의는 사실상 끝난 게 아닌가’란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사기업이 공권력을 앞세워 시민단체를 압수수색한다는 것에 대한 위기감을 심각하게 느끼며, 삼성이 이 나라에 끼치는 경제적 지배를 넘어선 사회적 지배에 대해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등과 함께 삼성보고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이 어떻게 오늘날의 입법•사법•행정부, 언론계, 학계 등을 장악하고 있는가? 김 교수는 어떤 분야도 자유롭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대표 로펌인 김앤장에 대해 사람들은 흔히 ‘돈 많이 버는 곳’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김 교수는 묻는다. 그 돈은 과연 누구 돈일까? 김앤장에서 나오는 돈은 어디서 나오는 돈일까?

김교수는 “돈은 기업에서 나온다”며 “그럼 기업은 왜 김앤장에 돈을 주는 것일까”라고 물었다. 그들이 기업에 유리한 법을 만들기 때문이다. 김앤장은 입법기관이 아니지만, 김 교수는 “조세관계법, 기업관계법, 노동관계법의 상당수, 특히 기업에 유리한 조항들 대부분은 김앤장에서 초안을 쓰고 당의 내부 논의를 거쳐 발의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앤장이라는 로펌이 나라의 법을 만든다. 그 뒤에는 거대 기업의 물질적 지원이 있다. 이것이 김동춘 교수가 사실상 이 나라는 기업이 지배하는 ‘기업사회’라는 생각을 하게 된 하나의 계기였다. 한국의 모든 행정기관이 사실상 기업의 통제 아래 있는 것이다. 고상한 말로는 ‘금권정치’, 사회학적으로는 ‘기업사회’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로지 돈뿐인 한국식 자본주의 

지난해 안식년을 맞아 독일 베를린에 있었던 김 교수는 독일 교수들의 직업 윤리와 사명감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모든 대학이 국공립인 독일은 교수들이 공무원 같은 직업의식을 갖고 있다. 그들 역시 한국의 교수들처럼 외부 프로젝트나 연구용역 등을 받지만 우리처럼 그것을 사적으로 유용하는 경우는 단 1달러도 없다고 한다. 오로지 대학원생들의 장학금과 외국 학회 출장비 등으로만 쓴다는 것이다.

그들이 돈 대신 중요하게 생각하는 권한은 자신의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될 대학원생들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덕으로 자기 관심분야에 흥미를 보이는 훌륭한 인적자원들과 한 팀을 꾸려 연구 업적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일부 교수들은 ‘돈도 안 생길 연구업적 쌓아서 어디다 쓰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그들에게 경제적 보상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명예다. 대학 교수는 각종 사회활동이나 관공서 업무 등에도 특전이 있다. 이런 사회적 보상을 받음으로써 그들은 학자나 교육자로서충분한 만족감과 자존감을 느끼게 된다. 김 교수는 이를 보며 망가진 한국식 자본주의에 대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고 한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 귀결되고, 돈과 거리가 멀 것으로 예상되는 성직자와 대학 교수들조차 돈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사회, 돈의 인센티브가 없으면 사람을 움직일 수 없는 사회, 돈이외에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 존경이나 대우가 없는 사회란 얼마나 척박하고 비루한 것인가? 돈이 사회를 움직이는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작동할 때, 모든 사회조직이 기업식 논리로 운영 될 때, 그렇다면 사회 구성원 모두는 사실상 기업의 준노예가 아닌가?”

오늘날 제도적 노예는 없어졌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용자로부터 월급을 받고 사는 사람들은 회사에 종속된 자발적 노예나 다름없다는 것이 김 교수의 생각이다. 이것이 칼 마르크스가 말한 ‘임금노예’다. 그보다 먼저 그의 스승인 애덤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상인은 피고용자를 고용하지 않고도 한 달, 일 년을 살 수 있지만, 피고용자는 고용되지 않고서는 한 달은커녕 일주일도 버티지 못한다."

“상인과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조국이 없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노예와 자본의 관계는 대등할 수 없다고 했다. 사용자와 피고용자는 결코 대등하지 않다. 아무리 대등하게 보여도 그들의 힘 관계는 불균등하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나온 것이 노동3권이지만 문제는 오늘날 세계 전체가 하나의 시장이 되면서, 사용자와 노동자간의 권리가 유동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사용자는 계속해서 값싼 노동력을 찾고, 법•제도적으로 기업환경이 자유롭고 좋은 나라로 얼마든지 사업체를 옮길 수 있다. 노동자 역시 기업이 들어선 곳으로 이주할 수 있다.

“국가라는 조직은 이제 웃기는 조직이 됐습니다. 일시적인 이익을 위해서 국가가 필요할 순 있어도 기업사회에서는 궁극적으로 국가가 필요 없게 됐습니다.”

한국이 기업사회가 된 이후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김 교수는 “정치권력이 기업으로 이동한 것”을 문제 삼았다. 기업은 언제나 해외로 탈출할 준비가 돼 있고 탈출할 것이라고 국가를 협박한다는 것이다. 노동자파업은 일을 안 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사용자파업(CAPITAL STRIKE)은 회사 자체가 국내에서 해외로 빠져나가는 개념이다.

“기업이 해외로 나가겠다고 협박하면 행정•입법•사법부 모두 나서서 붙잡습니다. 사법부는 국가경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비리를 저지른 기업인을 사면하고, 입법부는 어려운 경기를 감안해 기업에 대한 법인세 증세를 막아주는 식이죠.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민의 공복인 행정기관이 모두 기업의 편에 서게 되는 겁니다.”

대통령은 CEO, 국민은 직원인 한국

지난 2월부터 불거진 중앙대학교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 논란은 김 교수에 따르면 “기업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대표 사례”다. 박용성 전 중앙대 이사장은 대학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교수들에게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목을 쳐주겠다”는 막말로 파문을 불러왔다. ‘학문의 상아탑’인 대학마저 효율성과 경제논리로 운영되면서 대다수 학생들도 기업형 기숙사, 프랜차이즈 업체 등이 교내를 장악해도 생활이 편리해지고, 취직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한다.

실제로 중앙대 4학년생인 김교수 아들에 따르면, 학내 커뮤니티에서는 박용성 이사장이 사퇴하는 것을 반대하는 글이 훨씬 많이 올라온다고 한다. 이사장이 사퇴하고 나면 중앙대가 학교 서열도 낮아지고, 취직에도 불리해질까 봐 불안해하는 기류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 특강을 듣는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에게 김 교수는 "언론지망생이라면 현대 한국사회가 어떤 흐름 속에서 지금의 모습을 띄게 됐는지 잘 파악해야한다"고 조언했다. ⓒ 이정희

김교수는 “대학은 사회유지를 위한 기초적인 지식을 서로 교환하고 배우는 곳”이며 “사회 각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 존재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곳”이라고 말했다. “국립대학은 특히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교육복지기능과 사립대학이 하지 않는 기초 학문에 대한 연구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 대한 기초 소양이 없는 사람이 사회에 나와서 기업가가 되고, 기자가 되고, 학자가 됐을 때, 그사회에서 사람이 살아가야 될 이유와 그 조직이 유지돼야할 이유, 그 조직이 장기적으로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요?”

문제는 이런 현상이학교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쩌면, IMF구제금융 위기 이후 한국사회 국민 모두의 생각일지도 모른다는 게 김 교수의 진단이다. 2007년 대선 당시 ‘CEO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내세운 이명박 후보가 약 500만이라는 압도적 표 차이로 당선됐고, 전 해인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수많은 시ㆍ군ㆍ구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이 ‘뉴타운 공약’과 ‘재개발 사업 공약’으로 당선됐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는 “한국 사회가 기업사회로 들어섰다는 징후”다. 사회 전체에 기업의 사장과 직원의 관계처럼, ‘월급 주면 고맙고’ ‘돈 잘 벌어오는 리더가 최고’라는 인식이 팽배해진 증거다. 그보다 앞선 2000년대 초반에는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 서점가를 휩쓸었다.

“기업에서만 사용되던 최고경영자(CEO)란 말이 이제는 CEO총장, CEO목사 심지어 CEO맘까지 확산됐습니다. 엄마에게도 효율성이 필요한 거죠. CEO개념이 보편화하고, 모든 조직리더들이 CEO역할을 요구받고, 기업이 아닌 조직에서도 CEO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가장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2000년대 한국사회였습니다.” 

기업사회의 딜레마

사회가 운영되는 데는 분명히 기업적 효율성도 필요하지만, 기업사회는 사회를 지탱할만한 체제가 아니라는 문제가 있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단기적 이익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고민은 공적 영역에서 이뤄져야 하고, 그게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사회적 인프라 확대, 기초 기술과 학문에 대한 투자 등 장기적 목표는 그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고민과 맞닿아 있다. 효율과 이익만을 쫓는 기업은 사회에 대한 장기적 고민과 철학이 없고, 따라서 기업사회로 나아갈수록 사회의 미래는 암울해지는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 전체 구성원에게 골고루 돌아갈 혜택에 대해서도 기업사회에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사회의 기업화는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학 교육이 무료였던 독일이나 프랑스가 등록금을 받기 시작하고, 영국의 유능한 교수들이 더 좋은 대우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가는 일 등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유럽 사회가 중심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기업이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과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자발적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김 교수는 “기업사회 속에서 자본에 복종하는 자발적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공공부문의 힘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공적 역할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재 우리나라 여론지형에서 삼사십대가 가장 진보적인 까닭은 노동시장에 직접 부딪혀 봤기 때문이다. 결혼, 출산, 육아 등의 문제를 피부로 느낀 이들이 공적 창구를 통해 사회적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면 이것이 복지제도 개선의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생각이다.

‘20대 청년 취업난이 심각하고, 노동시장에 유입될 가능성조차 희박해져가는 상황에서 다소 낙관적인 시각이 아니냐’는 지적에, 김 교수는 “열심히 해도 잘 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젊은이들이 ‘달관’하게 되는 것을 이해하지만, 정치가 변하고 조금의 사회적 가능성이라도 열리면 잘 해결될 여지도 분명히 있다”고 진단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학기 <사회교양특강>은 조준상 박인수 홍기빈 김동춘 구갑우 전중환 박상훈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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