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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길 수 있어도 없앨 수 없는 것
[상상사전] ‘이름’
2015년 09월 01일 (화) 18:23:01 유정화 danbi@danbinews.com
   
▲ 유정화

이름을 빼앗겼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주인공 치히로의 이야기다. 마녀 유바바는 치히로가 계약서에 이름을 적자 한 글자만 남겨 놓고 나머지 글자는 그녀의 마법으로 빼앗으며 말한다. “지금부터 네 이름은 센이다.” 치히로는 이름을 빼앗긴 다음 날, 하쿠가 돌려준 옷 속에서 발견한 카드에서 원래 자기 이름을 발견한다. “치히로. 내 이름이야.” 깨닫듯이 말하자 하쿠는 “유바바가 이름을 빼앗아 지배한다”며 “이름을 빼앗기면 돌아갈 길을 잊어버린다”고 말해준다.

이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이름’을 빼앗기고 본의 아니게 모험을 시작하지만, 인터넷 공간에서 우리는 스스로 ‘이름’을 숨긴다. ‘이름’을 숨김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누린다. 익명성에는 표현의 자유라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따른다. 반사회적 행동, 예를 들면 언어 폭력 같은 것이 나타난다.

   
▲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주인공 치히로는 ‘이름’을 빼앗기고 본의 아니게 모험을 시작한다. ⓒ flickr

미국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타인에게 전기 쇼크를 주는 실험에서 피험자 집단은 그들이 명찰을 착용하는 등 신분이 드러나는 경우보다, 흰 두건을 쓰는 등 신분이 감추어진 경우에 보다 공격적으로 전기 쇼크를 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익명성이 충족되는 인터넷 공간에서도 현실 공간처럼 법률적, 윤리적으로 비판∙처벌∙불이익이 없다고 확신한다면 폭력을 보다 쉽게 가하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의 익명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가 열리면서 못 보던 사회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사 악플과 달리 연예인과 유명인 등의 개인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에 직접 개인이 폭언을 가하는 일도 자주 생기고 있다. 좀 더 직접적으로 폭력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양상은 잘못된 정보가 SNS를 통해 굉장히 빠르게 전파된다는 점이다. 잘못된 정보가 대중에게 입력되면 큰 혼란을 초래한다.

우리는 SNS 상에서 이름을 숨기고 표현의 자유를 누리지만, 자유의 부작용은 익명성과 결합돼 더 증폭된다. 표현의 자유를 누리면서도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관련 법을 개정하는 일이 시급하다. 중요한 것은 인터넷에서 원래 ‘이름’에 걸맞지 않게 표현의 자유를 남용하면, 법률적, 윤리적으로 비판∙처벌∙불이익이 따른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일이다.

영화에서 하쿠는 치히로의 도움으로 원래 이름을 찾아 유바바를 떠날 수 있게 된다. 치히로는 센으로서 유바바 밑에서 일할 때도 원래 이름을 잊지 않았기에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스스로 ‘이름’을 숨길 때도 우리는 ‘이름’의 명예와 가치를 잊어버려서는 안 될 터이다. 익명이 허용되는 공간에서 오랜 기간 표현의 자유를 누리다 보면 ‘이름’을 빼앗기고 돌아갈 길을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쿠가 원래 이름을 잊어 떠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해 늘 마주 보고 있는 우리는 엄연히 화면 밖에 존재하는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을 숨길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는 것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제6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에서 우수작으로 뽑힌 이 글을 쓴 이는 인하대 경제학과 졸업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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