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119 반포수난구조대 정창식 팀장

“사람이 물속에 있으면 더 커 보이거든요.”

올해 초 어느 캄캄한 밤,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칠흑 같은 강물을 수색하던 중이었다. 날씨도 흐려 눈앞 50센티미터(cm)도 구분하기 힘든 상황에서 한참을 헤매다 막 포기하려던 찰나, 강물 속에서 시신이 불쑥 떠올랐다.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불어 터진 망자의 모습은 평소 강심장을 자랑하는 수난구조대원들에게도 충격 그 자체였다.

물속 시신은 강심장 대원들에게도 충격

서울시 소방방재본부 119특수구조단 반포수난구조대의 정창식(46) 팀장은 구조대원으로 18년간 일하면서 많은 목숨을 구했지만, 여러 현장에서 다양한 모습의 시신도 건져 올려야 했다. 생명의 끈을 잡아주지 못하고 차가운 망자를 수습해야 할 때의 안타까움은 어지간해서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정 팀장은 지난 5월 1일 서울 반포동 수난구조대 사무실에서 이뤄진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런 날이면 동료들과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슬픈 회식을 한다”고 말했다.

▲ 서울특별시 119특수구조단 반포수난구조대의 정창식 팀장. ⓒ박고은

우리나라는 지난 2004년부터 11년 연속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하루 평균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매일 5.3명이 다리 위에서 투신을 시도해 숨지거나 구조됐다. 정 팀장이 속해 있는 반포수난구조대는 뚝섬수난구조대와 여의도수난구조대의 중간 지점에서 지난해 4월 16일 출범했다. 5분 이상 걸리던 출동시간을 4분으로 단축시키기 위해서였다. 주요 출동지는 한강철교부터 한남대교, 그리고 투신 시도가 잦은 마포대교다.

강으로 뛰어들었거나 뛰어들려는 사람을 구조하는 과정에는 한강다리 곳곳에 설치된 ‘생명의 전화’가 큰 몫을 하고 있다. 지난 1976년 ‘도움은 전화처럼 가까운 곳에’라는 표어를 걸고 한국생명의전화가 운영하기 시작한 이 ‘생명선’은 현재 전국 18개 도시 19개 상담센터에서 2000여명의 상담자들이 월 1~2회 자원봉사 하는 방식으로 24시간 가동된다. 자살 시도자가 생명의 전화를 걸면 상담원들이 전화를 받는 순간 신고가 접수된다. 그러면 소방관과 경찰이 다리 위로, 수난구조대는 배를 타고 다리 밑으로 출동한다.

▲ 동작대교에 설치되어 있는 생명의 전화. ⓒ박고은

수능 직후엔 수험생, 취업시즌엔 20~30대 사고 많아

정 팀장은 지난해 수능시험 다음 날인 11월 14일 마포대교에서 몸을 던진 남학생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그 남학생은 신고가 지연돼 주검으로 정 팀장에게 발견됐다. 수능이 끝난 후에는 고등학생들, 취업 시즌에는 20~30대의 투신이 많다. 특전사에 입대한 아들과 초등학생인 딸을 두고 있는 정 팀장은 특히 학생들의 죽음을 보는 게 고통스럽다고 한다.

“매일 같이 투신자살 사건현장을 목격하지만, 자식 가진 부모로서 어린 학생들이 공부 때문에 목숨을 버리려 하는 것이 가장 안타까워요.”

지난해 겨울 어느 날, 시끄러운 경보음이 울렸다. 이어 한강대교에서 한 남자가 뛰어내렸다는 무전이 들어왔다. 급히 출동해 보니, 오리털 점퍼 덕에 자살시도자가 가라앉지 않고 강물에 떠있었다. 정 팀장이 그를 건져 올린 후 신원확인을 위해 등에 멘 배낭을 열자 가방 한 가득 돌멩이가 들어 있었다. 물위에 뜨는 오리털 점퍼 때문에 돌 가방을 메고도 목숨을 건진 것이다. 하지만 30대로 보이는 그 남자는 “왜 구했어요, 그냥 (죽게) 놔두지…”하며 구조대를 원망했다. 정 팀장은 이처럼 다시 자살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전문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한다고 말했다.

구조대원들에게 가장 힘든 상황은 자살시도자가 투신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실종돼 버렸을 때다. 이런 경우 대원들은 자살시도자를 발견할 때까지 보트를 타고 강 위를 샅샅이 훑어볼 수밖에 없다. 조류가 심한 날에는 물의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에 수색하기가 더욱 힘들다. 반포수난구조대는 한 팀에 6명씩 3교대로 운영 중인데, 사고가 연속으로 터지면 구조대원들이 제대로 쉬지 못해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낀다고 한다.

▲ 투신사고가 발생했다는 무전을 받고 긴급히 출동하는 수난구조대원들. ⓒ박고은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들어야 하는 구조대원들은 사실 자신의 안전을 위협받는 경우도 많다. 정 팀장은 “대원들도 목숨에 위협을 느끼지만 어떻게든 생명을 구하기 위해 현장에 뛰어드는 것”이라며 “현장에서 대원들이 다치는 게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특히 공무 중 부상을 입었을 때 국가에서 치료비 등을 보상해주는 공상처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공상처리를 하면 소방서 실적이 깎여 진급 등에 불이익이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부에서 쉬쉬하면서 개인보험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정 팀장은 “지금은 개선이 많이 되긴 했지만 구조대원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더 적극적인 치료 및 보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속한 구조 위해 시민의 협조 절실

정 팀장은 투신자살시도자를 구하는 데는 현장을 목격한 신고자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고한 시민이 투신한 위치를 정확히 알려줘야 신속하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리를 뜨지 않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투신한 자리에서 손만 흔들어 줘도 구조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대부분 신고자들은 신고만 하면 의무를 다 했다고 생각해 자리를 뜨는 경향이 있다. 그런 경우 투신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구조대, 관할대, 현장 지휘대 등이 신고자에게 전화를 계속 걸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신고자가 짜증을 내거나 전화를 안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정 팀장은 털어 놓았다.

미국의 경우 사고현장을 신고한 시민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야한다. 또 대부분의 학교들이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필수적으로 소방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긴급구조전화(911)에 신고하는 절차도 안전 교육에서 중요하게 다룬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에야 초ㆍ중ㆍ고 교육과정에 안전 교과 또는 안전 단원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정 팀장은 “교통사고는 즉사하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 시간이 있지만 물속에서는 몇 초만 숨을 못 쉬어도 몸에 이상이 생긴다”며 “시민들이 조금만 불편을 감수하면 식물인간이 될 사람을 정상인으로 살게 할 수도 있고,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강남, 송파, 관악소방서를 거친 뒤 잠수경력, 특전사경험, 수영강사 자격증 등을 인정받아 반포수난구조대로 오게 됐다. 가족들은 구조대 활동 초반에 그가 다칠까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들이 별 걱정을 안 하는 대신 매일 위험한 현장들을 보는 정 팀장이 가족들의 작은 행동에도 예민해진다고 한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인 딸이 다칠까봐 항상 노심초사하게 된다고.

정 팀장은 목숨을 끊으려 강물에 몸을 던졌던 사람들이 구조된 후 “구해줘서 감사하다”고 진심 어린 인사를 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혹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 번 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고 삶에 대한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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