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2015 하계유니버시아드 수구 대표팀 안기수 감독

오는 3일부터 광주광역시에서는 전 세계 145개국 대학생 선수 1만3천여 명이 참가하는 2015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가 열린다. 대한민국 수구 국가대표팀의 안기수(55) 감독은 이 대회를 앞두고 충북 진천군 광혜원면의 진천선수촌에서 15명의 선수와 비지땀을 흘려왔다.

석가탄신일이 낀 황금연휴의 마지막 날인 지난 5월 25일,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을 푼 선수들이 수중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훈련장은 국제규격인 길이 30미터(m), 너비 20m의 수영장으로, 양쪽에 그물이 쳐진 골대가 설치돼 있다. 노란색과 파란색이 섞인 수십 개의 공과 선수들이 경기 중 쓰는 수영모자가 한쪽에 수북이 쌓여있다. 드리블(공 몰기)과 물속에서 균형 잡는 훈련이 진행되면서 안 감독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선수들의 입에서 “악”소리가 터져 나왔다.

▲ 5월 25일, 충북 진천군 진천선수촌 수중훈련장에서 대한민국 수구 국가대표팀 안기수 감독이 훈련을 지휘하고 있다. ⓒ 배지열

골대를 때리거나 골키퍼에 막히는 공격에는 여지없이 안 감독의 호통이 날아간다. 그물이 출렁거리는 소리, 수면을 때리면서 솟아오르는 공과 물보라를 일으키는 선수들의 움직임으로 훈련장은 박진감이 넘쳤다.

하루 종일 물과 공만 생각하는 남자

훈련 도중, 안 감독은 수시로 수첩에 무언가를 쓰고 생각에 잠겼다. 훈련장 한 편에 놓인 그의 책상 위에는 두터운 검은 색 수첩과 색깔이 다른 자석들이 붙어있는 전술판, 타이머(시계)가 놓였고, 책상 뒤 칠판에는 상황별 전술들이 정리돼 있었다.

“하루 종일 수구 생각만 하죠.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체력, 전술 훈련까지 마치면 공식적인 훈련은 끝납니다. 저녁에는 유럽에서 열리는 수구경기 하이라이트나 생중계를 찾아보면서 연구하고 공부합니다.”

▲ 안 감독이 대한민국 수구만을 생각한다는 건 그의 책상을 보면 알 수 있다. ⓒ 배지열

그는 경기도 안양중학교 1학년 때 수영 선수가 된 후 안양 신성고등학교와 한국체육대학교, 국군 상무체육부대를 거치며 수구 선수로 활약했고 1984년 서울 아시아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 주장으로 참가해 금메달을 딴 ‘수구의 노장’이다. 상무부대에서 선수 생활을 마친 후 잠시 스포츠센터를 운영하기도 했지만, 2005년 1급 체육지도자 자격증을 딴 뒤 수구 지도자의 길을 걸어왔다. 지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때부터 국가대표팀을 맡았고 지금은 대한수영연맹 수구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다.

일찌감치 국제대회 금메달도 땄지만 여전히 비인기 종목인 국내 수구의 현실은 열악하다. 유소년 선수들을 포함해 수영 선수 10만 명, 수구 선수 1만 명인 이웃 나라 일본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고등학교와 일반부 수영 선수 3천명, 수구 선수 3백 명이 등록돼 있을 뿐이다. 지난 2011년 진천선수촌에 들어오기 전에는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학교 수영장을 빌려 쓰고 서울 시내 모텔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수구가 1900년 제2회 프랑스 파리 하계올림픽 때 정식종목으로 채택됐고, 유럽에서는 나라마다 리그도 활성화돼 있는 것과 많이 비교된다.

과거의 영광은 잊혀지고, 비인기종목 설움 여전

“시간이나 장소 문제는 해결됐지만 아직도 실질적인 지원이 많이 필요합니다. 최고의 훈련은 실전경기를 갖는 건데,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선수들이 모여서 훈련하는 것밖에 못합니다. 지난해 호주 전지훈련을 다녀오고 나서 치른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희망은 가지고 있습니다.”

▲ 안기수 감독은 수구를 ‘인생을 건 존재’라고 말했다. ⓒ 배지열

84년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에 이어 86년 서울아시안게임 은메달, 90년 중국 베이징아시안게임 동메달을 차지한 한국 수구는 90년대에 강호로 떠오른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등에 밀렸다. 일본, 중국 등은 많은 투자를 바탕으로 월드리그 출전횟수와 A매치(국가대표급 경기) 경험을 늘려가며 우리나라와의 실력 차이를 벌려 놓았다. 안 감독은 대한민국 수구를 다시 메달권에 올려놓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수구 위원장으로서 마지막으로 혼신을 다해 그때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 선수들의 눈에 비친 훈련시간의 안 감독은 ‘카리스마’ 그 자체다. ⓒ 배지열

그는 우리나라 수구의 미래를 위해 조기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릴 때부터 공과 가까워지고 물의 저항을 받으면서 운동을 하면 상체와 하체가 고루 발달하는 등 많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대학 진학을 목표로 승부에 집착하면서 운동하는 대신, 오랫동안 기술을 연마하고 실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안 감독은 스스로 친절한 지도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 경기에서 변수가 많은 움직임들에 쉽게 적응하려면 훈련에서는 선수들을 야단치고 잘못된 점들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운동할 때만큼은 선수들을 압도해 훈련에 집중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하지만 훈련시간이 끝나면 다른 모습이다. 국가대표팀 진만근(40) 코치는 안 감독에 대해 “선수시절부터 알고 지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저에겐 늘 아버지 같은 존재”라며 “수구계의 대부”라고 엄지를 추켜세웠다. 안 감독이 이번 대회 ‘주목할 선수’라고 꼽은 윤영관(23‧한국체대3) 선수는 “일방적으로 시키는 게 아니고 함께 하면서 이끌어간다는 느낌”이라며 “감독님은 보스가 아니라 리더”라고 말했다.

 

“수구의 매력에 한 번 빠져 보시죠”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수구 경기에서 우리나라는 헝가리, 이탈리아, 브라질 등과 함께 예선 A조에 속했다. 총 13개국이 출전해 7개국과 6개국 2개조로 나눠 예선전을 치른다. 안 감독은 “대학생 선수들이 출전하는 대회지만 만만한 상대가 없다”고 말한다. 성인 대표팀이 2012 런던올림픽에서 2위를 기록한 이탈리아와 2016년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전력이 강화된 브라질, 세계랭킹 1위 헝가리 등 모두 쉬운 상대가 아니다. 이번 대회에는 전통적으로 수구 종목에 강한 헝가리와 세계랭킹 2위 세르비아의 우승이 점쳐지지만, 아시아에서 펼쳐지는 만큼 중국과 호주의 선전도 예상된다. 안 감독은 “최선을 다해 10위권에 진입하는 것이 이번 대회 목표”라고 밝혔다.

▲ 진천선수촌 수구 수중훈련장 벽면에 걸려있는 플래카드. ⓒ 배지열

유니버시아드 수구 국가대표팀은 오는 2일 오후 8시 호주와 예선 첫 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예선전은 전 경기 무료로 볼 수 있으며, 1500석 규모의 광주 염주실내체육관에 선착순으로 입장할 수 있다. 안 감독은 간절한 표정으로 당부했다.

“서로 공을 차지하려고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이는 수구의 박진감과 와일드한 매력을 알게 될 좋은 기회입니다. 중계방송도 있다고 하지만 직접 경기장이 있는 광주에서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 수구(水球)란?
각각 7명으로 이뤄진 두 팀이 물에 뜨는 공을 이용해 상대방 골에 공을 넣어 득점을 겨루는 수영 경기의 하나. 한 차례의 공격은 30초로 제한되며, 8분씩 4쿼터로 진행된다. 동점일 경우 3분간 두 차례의 연장전을 실시하고, 승패가 가려지지 않을 경우 각각 5명의 선수들이 번갈아 페널티 슛을 실시한다.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는 만큼 메이저파울(중반칙)과 오디너리파울(경반칙)에 따라 1분간 퇴장이 있으며, 축구의 페널티 킥과 같은 페널티 스로(던지기)도 있다. 국제수영연맹(FINA)이 주관하는 수구 성인대표팀의 국제경기에는 하계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월드컵, 월드리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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