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민변 국제통상위원장 송기호 변호사

지난 7일 미국 워싱턴에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소송(ISD·Investor State Dispute)의 2차 심리가 끝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심리를 주관하는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자분쟁해결기구(ICSID)에 일찌감치 참관을 신청했으나 거부당했다. ICSID는 소송의 양 당사자 중 한쪽이라도 재판 공개를 거부하면 참관을 허가하지 않는데, 1차 심리는 우리 정부가, 2차 심리는 양측 모두 공개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2차 심리에 앞서 지난달 4일 서울 서초동 수륜아시아법률사무소에서 <단비뉴스>와 만난 송기호(52·민변 국제통상위원장) 변호사는 ‘국민의 알권리를 외면한 깜깜이 소송’에 분개했다.

“론스타한테 5조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청구 당했는데 계산 근거를 알 수가 없어요. 막연하게 5조원이래요. 20%만 줘도 1조원이야. 아무리 5조원, 10조원 하더라도 계산식이 뚜렷하고 근거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 계산식조차 모르고 있어요.”

▲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난 민변 국제통상위원장 송기호 변호사. ⓒ 김영주

론스타가 청구한 5조원의 실체 밝혀야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늦추고 부당한 세금을 매겨 손해를 봤다며 지난 2012년 11월 46억7900만달러(약 5조1328억원)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ICSID에 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와 관련한 론스타의 구체적 주장과 손해배상 청구내역을 밝히지 않고 있다. 5조원이란 금액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정부 제출 자료를 바탕으로 거론한 것이지 공식 확인된 숫자는 아니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공개된 문서는 론스타가 2012년 5월 22일 우리 정부에 보낸 국제중재(ISD)회부 의사통보서다. 이 역시 민변이 국무총리실을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소송까지 했다가  론스타 측이 자발적으로 공개하면서 소를 취하하는 우여곡절을 낳았다. 송 변호사는 이번 분쟁에서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국제중재에 회부할 자격이 있는지를 묻는 관할권 문제, 한국 정부가 조약 위반을 했는지 묻는 실제적 문제, 손해배상액 계산이 제대로 됐는지를 묻는 문제 등 세 가지가 쟁점이라고 설명했다.

관할권의 문제는 론스타가 2003년 당시 극동건설 등을 소유한 산업자본으로서 우리나라의 금산분리규제(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할 수 없도록 한 것)에 따라 외환은행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었는데도 인수했다는 내용이다. 또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국민은행에 매각하려 했던 시점이 2005년경이어서 ‘5년이 지나면 국제중재에 회부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시효가 소멸했다는 주장도 있다. 론스타는 2003년 9월 외환은행을 1억3834억원에 사들인 후 2005년부터 KB금융지주 등과 매각 계약을 체결했으나 정부 승인 지연 등으로 후속절차를 밝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2007년 9월에도 HSBC은행에 5조9376억원을 받고 외환은행 지분 51%를 팔려 했지만 정부 승인 문제로 무산됐고 2012년에야 3조9157억원에 하나금융지주에 넘겨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송 변호사는 또 우리 정부가 실제로 국제조약을 위반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5조원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론스타가 여러 번 외환은행을 팔려 시도했는데, 그중 어떤 거래가 한국 정부 때문에 성사되지 못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은행은 론스타가 제시한 가격이 너무 비싸서 거래를 못한 면도 있으며, HSBC는 세계 금융위기로 외환은행 인수를 포기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어서다. 그러나 관련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시민사회로서는 론스타 주장에 대한 검토와 비판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투자자소송은 주권국가의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

“외부에 있는 하나의 기업이 국가라는 거대한 정치공동체의 산물인 법과 법원을 신뢰하지 못하고 국제중재에 회부하는 게 과연 타당할까요?”

송 변호사는 론스타가 청구한 ISD가 한국의 조세주권과 사법주권을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론스타는 서류상 벨기에 법인인 스타홀딩스에스에이치(SH)를 세워 2004년 12월 자신들이 소유한 역삼동 스타타워빌딩(현 강남파이낸스센터)을 팔고 약 2450억원의 양도차익을 얻었다. 당시 론스타는 SH가 벨기에 법인이라 한국과 벨기에 간 이중과세 방지 협정에 따라 비과세·면세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내 법원은 SH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페이퍼컴퍼니)이므로 한-벨기에 조세협정의 대상이 아니며, 우리나라의 실질과세원칙에 따라 실제 이득을 본 미국 소재의 론스타가 약 648억원의 법인세를 내야 한다고 판결했다. 만약 이런 사법부 판단을 뒤집고 론스타가 조세무효화를 청구한 ISD에서 승소한다면 우리 사법주권이 타격을 받게 된다. 송 변호사는 “앞으로 페이퍼컴퍼니들이 들어와서 돈을 벌어가더라도 과세를 못하는 상황이 된다”며 “세금을 거둘 수 있는 중요한 한 축이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 단비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송기호 변호사. ⓒ 수륜아시아법률사무소

“ISD는 국제중재기관이 우리나라 공공정책의 정당성 또는 적법성을 판단하는 권한을 가지는 거예요. 우리 사법부가 최종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도록 한 사법체계는 우리 사회의 기본 구성 원리인데 상당히 훼손 받게 되죠.”

송 변호사는 판사의 경우 국내법에 의해 일정한 자격을 갖춰야 하고, 일정한 통제를 받는데 국제중재는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다. 국제중재는 통상담당 변호사들이 맡을 뿐 아니라 단심제로 끝나기 때문에 국내 사법절차보다 훨씬 취약하다. 더욱이 이번 론스타 ISD에서 중재인 3명 중 우리 정부가 선임한 프랑스 파리1대학 브리짓 스턴 명예교수 외 두 사람은 모두 론스타 국제법인이 국적을 두고 있는 미국과 영국의 변호사들이다.

그동안 정부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등에서 ISD가 논란이 될 때마다 이 조항을 통해 외국에 나간 우리 기업을 보호할 수 있다고 선전해왔다. 그러나 송 변호사는 이 제도가 힘 있는 국제 금융기업에 유익한 제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굳이 투자하는 국가의 법을 벗어나려 하는 기업이 누구겠어요? 각 나라의 개별 주권을 뛰어넘고 무시하고서라도 활발하게 국제적으로 움직이는 기업들이죠. 세계를 자신들의 공간으로 만들려고 하고, 그럴 능력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 말이에요. 결국 미국, 영국 중심의 금융자본이 각 나라 국내법의 구속을 벗어던지려고 하는 게 ISD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일관된 전략 없는 개방정책, 국민에 피해 안겨 

송 변호사는 우리 정부가 2002년 말부터 동시다발적 자유무역협정(FTA) 전략을 통해 시장개방을 추진하고 있는 데 대해 ‘일관된 전략 없이 게으르게 국제질서에 편승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제중재회부와 관련해 페이퍼컴퍼니에는 권리를 주지 않는다든지, 국가의 과세에 대해서는 중재회부를 금지한다든지, 우리 입장을 반영한 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준비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FTA가 미국과 하면 미국식대로, 중국과 하면 중국식대로 따라가는 들쭉날쭉한 전략을 가졌다고 비판했다. 예를 들어 한미자유무역협정은 ISD 참관을 신청할 필요도 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보장했다. 기업들이 내는 서면 자료도 인터넷으로 공개하도록 했다. 반면 한-벨기에 투자협정에는 페이퍼컴퍼니가 조세협정의 대상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혜택의 부인’ 조항도 없다, ISD 참관에도 제약이 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개성공단제품의 역내생산 인정 추진 등 우리의 이익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일부라도 있었으나, 이명박 정부 이후에는 특히 안일하고 허세에 가득찬 통상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FTA를 하면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의 경제 영토가 된다고 말해요. 한중FTA를 하면 중국의 거대한 시장이 열린다고요? 폭죽이 터지고 휘황찬란한 옷을 입은 사람이 나와서 쇼를 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렇지만 쇼가 끝나면 실제 풍경은 다릅니다. 중국은 6월 1일부터 세계무역기구(WTO) 160개 회원국에게 관세를 대폭 낮췄어요. 그리고 우리는 이미 중국에 많이 개방된 나라예요. 지금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열어주고, 열어주고 또 열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이미 많이 개방된 나라예요. 지금 필요한 과제는 우리의 필요에 따른 국제경제규범을 만드는 거죠.”

통상 협상에 대한 민주적 통제 강화해야

송 변호사는 “우리의 모델, 우리의 발전 전략, 우리의 투자와 통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전략 속에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의 입장에 맞는 전략을 만들기 위해 민주적 통제가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밀실주의로 가지 말고 사회적으로 토론하고 의논을 해서 한국의 투자협정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ISD를 채택하는 데 있어서도 호주는 미국과의 협정에서 ISD 조항을 뺐고, 독일의 경우는 ISD 조항을 채택하지 않았으며 브라질은 투자협정 자체를 거의 맺지 않는다고 나라마다 다른 선택을 소개했다.

▲ 송기호 변호사는 국제 통상 문제에 있어 한국만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적 통제'가 작동해야 한다. ⓒ 김영주

“지금처럼 무조건 FTA를 많이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국제경제에 노출됐을 때 대한민국에서 국제경쟁력 1위만 살아남겠죠. 기껏 다수에게 세금을 거둬서 이미 더 보호할 필요가 없는 경쟁력 1위에 해당하는 소수를 위해 정책을 펼치고, 다수를 더 위험에 빠뜨리는 국가는 도적 국가예요. 사익에 봉사하는 방식으로 개방 논리가 적용돼서는 안 됩니다.”

송 변호사는 궁극적으로 다국적기업에 국제중재회부권한을 주는 ISD 제도를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며, ISD를 수용하더라도 조세와 관련해서는 국제중재에 회부하지 않는다는 등의 한국식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한국식 투자협정 원칙을 세우는 일은 사회적 토론을 거쳐야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우리 정부가 론스타 사태에 대응하는 바람직한 방법은 ‘밀실주의’가 아니라 ‘성숙한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송 변호사는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후 87년부터 91년까지 전라남도 해남, 나주, 영암 등에서 농민운동을 하고 농사를 짓다가 뒤늦게 변호사가 된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농촌법학회’에서 활동하는 등 농업농촌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91년에 농사를 접고 상경해 1년 정도 은행에서 일하다가 사법시험에 도전했고, 변호사가 된 후 2000년 한중 마늘분쟁 사건을 맡으면서 자신을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농민이라고 생각해 통상 분야에서 활동하게 됐다.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파동 때 정부 협정문의 문제점을 폭로하는 등 맹활약해 명성을 얻었고, 이후 민변의 국제통상위원장으로서 정부 통상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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