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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보다 낡은 전동차가 달린다
지하철 내구연한 없애고 관리인원 줄여 시민 안전 외면
2015년 06월 12일 (금) 22:19:36 황종원 이성훈 기자 ssal123@daum.net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는 선박설계 당시의 내구연한(원래 상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기간) 20년을 넘긴 21년짜리 배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선령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려 준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에 비판의 화살이 쏟아졌다. 그러나 수도권만 따져도 매일 약 7백만명을 실어 나르는 지하철의 내구연한 규제가 이명박 정부 말기에 폐지돼, 세월호보다 훨씬 낡은 전동차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철도 내구연한은 당초 25년이었으나 단계적으로 30년(2000년), 40년(2009년)으로 늘어난 뒤 2012년 철도안전법 37조의 관련규정이 아예 삭제되면서 지금은 이론적으로 ‘무기한’ 운행이 가능한 형편이다.

   
▲ 지난해 5월 477명을 다치게 한 서울 상왕십리역 지하철 추돌사고현장. 사고 원인은 구식전동차 운행에 따른 안전신호체계 부실로 밝혀졌다. ⓒ KBS 뉴스 갈무리

25년짜리 차량이 일으킨 상왕십리역 추돌사고

지난해 5월 기관사와 승객 등 모두 477명을 다치게 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전동차 추돌사고의 경우, 구식전동차 운행에 따른 안전신호체계 부실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서울메트로의 발표에 따르면 2005년 이후 도입한 신형 전동차는 앞차와 뒤차의 간격이 90미터(m) 이내로 좁혀지면 자동으로 경보가 울리지만, 사고 전동차는 25년짜리 구형모델이라 그런 장치가 없었다. 대신 200m마다 놓인 선로 신호기를 기관사가 일일이 확인하는 방법에 의존하다 사고를 냈다. 사회공공연구원의 박흥수 철도정책 객원연구위원은 “노후 전동차를 폐차해야 기존모델의 안전결함을 보완한 신차를 개발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며 “내구연한은 ‘선순환주기’로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 지하철의 1~4호선과 5~8호선은 서울시 산하 공기업인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각각 운영하고 있는데, 설립시기와 운영시스템이 다르다. 운행역사가 긴 1~4호선의 경우 1974년에서 1985년까지 차례로 개통됐으며 전반적으로 전동차의 노후화가 심하다. 지난 4월 서울메트로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4호선에는 도입 20년이 지난 전동차가 60% 이상이다. 특히 4호선의 경우 현재 운행 중인 470량 전체가 20년을 넘겼다. 하루 이용객이 200만을 넘어 가장 붐비는 노선인 2호선의 경우 전동차의 60%가 20년 넘은 노후 차량들이다. 5~8호선은 1995년 이후 개통했기 때문에 1~4호선에 비해서는 노후화가 덜하다.

   
▲ 지난 4월 서울메트로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4호선에는 도입 20년이 지난 전동차가 60% 이상이다. 5-8호선은 400대에 근접한다. ⓒ 이성훈(출처 :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 제출자료, 2015년 4월 기준 전동차 운영연수 현황 재구성)

개정된 법과 규정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50년 된 전동차가 달려도 법적으로는 제지할 수 없다. 내구연한을 폐지할 당시 정부는 5년 단위의 차량 정밀진단을 통해 노후차량의 연장사용 여부를 판단하고, 전체 부품을 교체하는 ‘대수선’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사회공공연구원 이승우 연구위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갈수록 줄어드는 안전관리 인력과 부족한 부품예산때문에 노후전동차의 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일본도 내구연한을 설정하지 않았지만 정기점검과 수리를 철저히 한다”며 “안전인력도 충분한데다 전동차의 전체 부품을 교체할 수 있도록 예산도 충분하므로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지적했다.

   
▲ 서울 지하철 호선별 전동차 내구현황. 서울메트로가 운영하는 1-4호선 전동차의 노후화가 두드러진다. ⓒ 이성훈 (출처 :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 제출자료, 2015년 4월 기준 서울지하철 운영연수 현황 재구성)

비용절감 명분으로 ‘안전’을 절약하는 정부

이명박 정부 이후 국내 지하철 안전예산은 ‘공공기관 선진화’, ‘경영효율화’의 명분 아래 꾸준히 삭감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인력감축이 두드러진다. 사회공공연구소가 지난 4월 29일 발표한 ‘궤도 안전의 상품화와 관료화’ 논문에 따르면 서울시가 운영하는 두 곳의 지하철공사 모두 2000년대 중반 이후 직접 고용하는 인력을 큰 폭으로 줄였다. 서울메트로의 경우 2006년 1만128명이던 고용인원을 2013년 9150명으로 줄였다.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경우엔 6920명이던 인원이 6524명으로 줄었다. 반면 2006년에서 2014년말 사이 1~4호선 이용객 수는 14억3천만명에서 15억4천만명으로 늘었고 5~8호선의 경우엔 11억6천만명에서 13억5천만명으로  증가했다.

논문은 인력감축 과정에서 숙련된 안전인력이 해고되고, 그 빈자리에 저렴하고 전문성이 부족한 인력들이 ‘외주화’와 ‘파견직’ 형태로 유입됐다고 설명했다. 박흥수 연구위원은 “정부는 안전예산과 인력을 모두 줄이고는 ‘효율성과 비용절감’이라고 말한다”며 “비유하자면 국가가 전쟁을 수행하는데 예산을 아낀다고 탱크나 미사일을 없애고 그 빈자리를 메울 병력까지 줄이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전동차 내구연한삭제에 인력감축과 부품관리예산축소가 맞물리면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의 안전은 더욱 위협당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년 넘은 차량 폐기하고 안전 투자 늘려야

안전전문가들은 노후차량을 의무적으로 폐차하는 ‘내구연한’ 개념을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흥수 위원은 “일본은 전동차를 15년 정도 쓰고 더 쓸 수 있음에도 관행적으로 폐기한다”며 “발전된 안전기술을 연구하고 새로운 모델을 도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우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에서) 현재 운영되는 노후지하철은 상당부분 해외에서 수입한 부품으로 구성된다. 부품조달이 어렵다보니 중소기업에서 복제 제작하는 방식으로 충당하고 있는데, 한계가 있다”며 “20년 넘은 노후차량을 대량 폐기하고, 신차를 도입하는 것이 당장은 가능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안전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 연구위원은 “안전예산을 비용낭비가 아닌,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투자개념으로 봐야한다”며 “안전지출을 줄이면 가산점을 주는 현재의 공기업 경영평가방식을 수정해야한다”고 말했다. 박흥수 위원은 “안전에 규제라는 누명을 씌우면 그 피해는 납세자나 지하철 이용자들에게 돌아온다”며 “안전관련 기술과 인력에 대한 투자를 늘리자”고 제언했다.

   
▲ 서울지하철노조가 지하철 안전예산과 인력을 삭감하는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입간판을 세웠다. ⓒ 이성훈

미국·일본 등 선진국 중에도 정밀진단을 통해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할 경우 사용연한을 두지 않고 전동차를 운행하는 나라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 나라는 차량정비와 신차도입 시스템을 철저하게 마련해 차량의 노후화를 막고 있다. 미국 뉴욕지하철의 경우 최근 일본의 카와사키, 프랑스의 알스톰 등 해외유명브랜드 전동차를 도입하면서 수리인력과 부품제조회사까지 함께 현지 진출하도록 해 안전점검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밝혔다.

한편 서울시는 지난해 상왕십리역 추돌사고를 계기로 오는 2022년까지 8천억원의 예산을 들여 서울메트로의 노후차량을 교체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노후차량 교체대상이 2호선, 3호선의 20년 이상 된 전동차 650대에 국한돼 근본적인 대안은 될 수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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