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혼잡 시간만이라도 2인 승무제 도입해야”

지난 3월 독일 저먼윙스 여객기가 부기장의 ‘자살조종’으로 프랑스 알프스 산맥에 추락한 후 세계 항공업계는 ‘조종실 2인 상주제’를 강화하고 있다. 기장과 부기장 중 한 명이라도 조종실을 비울 때는 승무원이 대신 들어와 있도록 함으로써 조종사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막자는 취지다. 그러나 매일 수백만 명을 수송하는 국내 지하철의 경우 오래 전부터 노조 등이 기관사의 정신적 압박과 과로, 승객 안전 등을 이유로 2인 승무제를 주장해왔지만 다수 구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현재 서울메트로가 운영하는 1~4호선은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2인 승무제로 운영되고, 서울도시철도공사(도시철도)가 운영하는 5~8호선과 인천, 부산, 대전, 대구, 광주 등 지방 지하철은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1인 승무제로 운행되고 있다. 또한 신분당선과 대구지하철 3호선의 경우엔 안전요원만을 두고 관제탑에서 통제하는 무인승무제로 운행 중이다.

‘자살’ 생각 많이 하는 1인 승무제 기관사들

기관사가 1명만 배치되는 도시철도와 두 사람이 근무하는 메트로를 비교했을 때 한눈에 드러나는 차이는 자살 기관사의 숫자다. 현재 서울메트로의 기관사 수는 895명, 도시철도는 926명인데, 2003년 이후 지금까지 자살자가 서울메트로 4명, 도시철도 8명이었다. 모두 근무시간 외의 자살이었지만 도시철도공사의 경우 이 중 3명이 직무연관성을 인정받아 산업재해로 처리됐다. 2013년 가톨릭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작성한 ‘서울시 도시철도공사 기관사 임시건강진단 및 업무관련성 조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도시철도 기관사 995명 중 33명이 ‘최근 1년 내에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기관사들이 실제로 자신의 목숨을 끊거나 자살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열악한 근무환경과 관련이 높은 것으로 지적된다. 우선 이들은 근무시간 대부분을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달린다. 잠시라도 지상에 올라오는 노선은 숨통을 틔울 시간이 있지만 5호선같이 지하로만 달리는 노선은 1~2분간의 어둠과 정류장의 빛, 딱 두 가지 풍경만 교차한다. 또 출퇴근 시간과 야간 등 모두가 기피하는 시간대를 공평하게 분담하기 위해 불규칙하게 짜인 근무일정에 적응해야 한다. 야간 마지막 근무와 새벽 첫 근무가 동시에 잡히면 잠잘 시간조차 부족하다.

▲ 기관사들이 일하는 내내 보는 풍경. 날씨의 변화, 계절의 변화, 시간의 흐름 등을 눈으로는 느낄 수 없다. 1년 중 기관사들의 휴식일수가 90일이니, 365일 중에서 270일 동안 같은 풍경만 보고 달리는 것이다. ⓒ 전직 지하철 기관사 제공

기관사들은 이런 조건에서 홀로 운행하는 경우 둘이서 일할 때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고 말한다. 1인 승무제에선 기관사 혼자 운행하면서 방송도 하고 출입문 및 스크린도어 개폐까지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에어컨을 줄여달라는 등 간단한 승객 민원도 기관사가 처리해야 한다. 출입문을 닫을 때마다 끼임 사고가 발생하지는 않을지, 정류장에 들어갈 때마다 누가 뛰어들지는 않을지 혼자서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한 기관사는 “수능 시험 다음날엔 (선로에 뛰어드는 수험생이 있을까봐) 의도적으로 정류장에 천천히 들어가기도 한다”며 말했다.

이런 악조건을 반영하듯 1인 승무제인 도시철도 기관사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1년 유병률(1년 동안 이 질병을 앓은 사람의 비율)이 1.6%로 전 국민 64세 이하 남성 유병률 0.2%보다 8배 높다. 또 평생 유병률(평생 이 질병을 한 번 이상 경험한 사람의 비율)은 2.9%로 같은 나이대 전체 남성 유병률 0.9%보다 3배 이상 높다. 공황장애의 경우 전 국민 64세 이하 남성 1년 및 평생 유병률이 사실상 0%인 반면, 도시철도 기관사들은 1년 유병률 1.0%, 평생 유병률 1.6%로 집계됐다. 조사를 진행한 가톨릭대학교 산학협력단은 “기관사는 정신질환의 고위험 집단으로 생각할 수 있다”며 “기관사의 정신건강 증진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 ‘서울시 도시철도공사 기관사 임시건강진단 및 업무관련성 조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도시철도 기관사 995명 중 33명이 ‘최근 1년 내에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 SBS 뉴스 갈무리

‘죽음의 질주’ 감행한다면 막기 어려워

만일 자살을 결심한 기관사가 저먼윙스 부기장처럼 마음먹고 ‘죽음의 질주’를 한다면 막을 수는 있을까. 도시철도 홍보실 양명직 과장은 내부전문가의 의견을 빌어 “모든 열차는 기본적으로 자동운전을 하고 열차들끼리 일정 거리를 유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며 “모든 상황을 중앙관제소에서 통제하고 유사시엔 관제소에서 비상정지 버튼을 눌러 열차를 세울 수 있기 때문에 추돌 사고의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반면 기관사들은 ‘막을 수 없다’고 말한다. 지난 1995년 코레일(한국철도공사)에 입사해 20년 동안 기관사로 일했던 사회공공연구원 박흥수(50) 철도정책 객원연구위원은 “물론 사고를 막을 안전장치는 2중3중으로 되어있지만 자살을 마음먹은 기관사가 그런 보호장치들을 해제하고 선로를 달리면 참사를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1998년 도시철도에 입사해 주로 6,7호선 운행을 맡아온 서울도시철도노조 김태훈(45) 승무본부장도 같은 의견이었다. 기관사의 운전 모드는 자동, 수동, 비상 모드가 있는데, 운전모드를 비상으로 바꾸면 중앙관제소의 모든 통제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승무본부장은 “지금까지 그런 일이 없었을 뿐이지 기관사들의 정신질환을 방치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말했다.

2인 승무제라면 상황이 달라질까. 박 연구위원은 “2인 승무제를 한다고 해도 앞에 두명이 타는 게 아니라 앞뒤로 한명씩 타는 것이어서 그런 사고를 완벽히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며 “하지만 2인 승무제를 하면 업무 부담을 덜 수 있어 기관사가 그런 극단적인 결정을 내릴 상태까지 가는 것을 막을 순 있다”고 말했다.

1인 승무제는 각종 안전사고에도 취약하다. 출입문 끼임 사고에서부터 열차 추돌사고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사고가 나면 모든 초동 사고수습을 기관사 혼자 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3년 대구지하철화재가 발생했을 당시 대구지하철이 2인 승무제였다면 적어도 수십 명의 승객을 더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불이 난 열차에서 반대편 선로 열차로 불이 옮겨 붙기 시작한 지점이 기관사로부터 멀리 떨어진 열차 뒤편이어서 사고인지가 늦었고, 걷잡을 수 없이 퍼진 불길에 기관사가 겁을 먹고 달아나버려 사고를 키웠다는 분석이다. 당시 참사로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다쳤다. 기관사가 뒤편에 한 명 더 있었다면 사고인지 및 초동 대처가 빨라 인명피해를 줄였을 가능성이 높다. 박 연구위원은 “사고가 났을 때 1인 승무제에서 기관사가 느끼는 부담과 2인 승무제에서 느끼는 부담은 다르다”며 “기관사 혼자 관제소에 사고를 보고하고 전달사항을 받으며 승객들을 대피시키는 것과 이 일을 2명이 나눠서 하는 것은 승객 생존율에 큰 차이를 불러온다”고 말했다.

미세먼지와 전자파 등도 기관사 건강 위협

지하철 근무환경은 기관사의 육체적 건강도 위협한다. 환기가 어려운 지하 공간에서 일하다 보니 항상 미세먼지와 분진 등을 들이마시게 된다. 고압선 밑에서 달리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전자파에 시달린다. 아직 의학계 내에서 논란이 있지만 전자파가 두통, 뇌종양, 백혈병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계속 발표되고 있고, 2011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자파를 암 유발 물질로 분류했다. 김 승무본부장은 “일반 회사에서는 내가 컨디션이 안 좋으면 누군가 내 일을 도와주겠지만, 1인 기관사는 몸 상태가 어떠하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며 “병가를 쓰면 개인 실적평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병가 한번 쓰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 1인 승무제에선 기관사 혼자 운행하면서 방송도 하고 출입문 및 스크린도어 개폐, 에어컨을 줄여달라는 등 간단한 승객 민원도 기관사가 처리해야 한다. ⓒ YTN 뉴스 갈무리

서울시도 이런 기관사 근무환경을 감안,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2013년 9월 내방역에 정신과 전문의가 상주하는 힐링센터를 열어 기관사들이 언제든지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기관사 근무환경 개선을 목표로 구성된 최적근무위원회가 지난해 3월 정신건강, 안전보건, 근무제도 등 5개 분야에서 7개의 근무환경개선 권고안을 내놨다. 이 권고안에는 도시철도에 대한 2인 승무 시범도입과 취침실 개선, 심리상담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도시철도노조의 숙원이었던 2인 승무는 도입되지 않았다. 도시철도측은 1인 승무에 적합한 장비들을 2인 승무에 맞도록 바꾸는 게 예산과 인력, 시간 등의 문제로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서울시가 지난해 4월 마련한 기관사 처우 종합대책안에 따르면 ‘2인 승무 시범실시 및 1인 승무수당 지급’에 드는 비용은 1341억 원이다.

메트로-도시철도 합병 후 1인 승무제 변화 여부 주목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말 서울시는 오는 2016년까지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를 통합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중복투자를 없애고 규모의 경제 등 경영효율화를 이룸으로써 서울 지하철의 만성적자를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 상태로 양사를 통합하면 한 회사 아래 어떤 노선은 1인 승무제를, 어떤 노선은 2인 승무제를 운영하는 어정쩡한 상황이 된다.

이에 대해 서울시 지하철혁신추진반 최미숙 주무관은 “합병을 결정한 지 얼마 안 돼 (기관사 승무제와 관련해) 결정된 것은 없다”며 “현재 외부 용역을 추진 중이고 용역 결과가 나와 봐야 구체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도시철도노동조합 김원영 사무처장은 “2인 승무제는 우리가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것으로 꼭 도입되길 원한다”며 “전면 도입이 어렵다면 출퇴근 시간대나 혼잡구간에 우선적으로 도입하고 점차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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