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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계절이 오는 게 너무 싫습니다”
[현장] 세월호 2심 공판정의 희생자 유족과 피고인들
2015년 03월 25일 (수) 21:46:33 배상철 이정화 김이향 기자 charlesz86@naver.com

하루하루 시간이 가는 게 너무 싫습니다. 왜냐고요? 꽃이 피고 수학여행 가기 위해 쇼핑을 갔던 날짜가 다가오니까요. 엄마 나 트레이닝복 사야 하는데. 엄마 아침저녁 추울까? 이 조끼 가져갈까?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엄마와 아빠라는 단어. 이런 고통을 당신들이 아시나요? 

24일 오후 광주고등법원 201호 법정.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최진혁(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군의 어머니 고영희(44)씨가 호소문을 읽어내려 갔다. 이날은 광주고법 제5형사부(서경환 부장판사)의 세월호 선원 항소심 4차 공판일. 고씨가 세월호에 탄 아들 진혁군과 주고받았던 문자메시지를 읽자 방청석에 있던 30여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 사이에서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고씨도 여러 차례 목이 메었다. 고씨는 “재판이 진행될수록 태연해지는 피고인들을 보니 화가 난다”며 “희생자 부모의 억울함을 안다면 (이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해 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 3월 24일 화요일 광주고등법원 201호 법정에서 세월호 선원 항소심 4차 공판이 열렸다. 2심 선고는 다음 달 28일 내려질 예정이다. ⓒ 배상철

고씨에 앞서 가족 호소문을 낭독한 박종대(단원고 2학년 박수현군 아버지)씨는 “기관실 피고인들은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제때 구명조끼를 입고 뛰어내릴 시기를 따지던 때 해경이 도착했던, 그야말로 하느님의 특권을 받은 사람들”이라며 어린 학생들을 저버린 선원들을 원망했다. 가족 대표 3명의 호소문 낭독이 30여분 이어지는 동안 방청석에는 흐느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흐느끼는 유족, 무표정한 피고인  

이날 재판은 오전 10시에 시작됐다. 201호 법정을 이준석(70) 선장 등 피고인 16명, 변호인 15명과 방청객 등 80여 명이 가득 메웠다. 녹색 수의에 수감번호가 적힌 노란색 이름표를 단 피고인들은 두 줄로 나눠 앉았다. 앞줄에 앉은 3등 항해사 박모(26·여)씨는 긴 앞머리를 핀으로 찔러 넘긴 채 붉게 상기된 얼굴을 내내 숙이고 있었다.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박씨는 법정 앞쪽의 모니터로 자료화면을 볼 때 외에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 옆으로 조타수 조모(55)씨와 조씨의 변호인, 청해진해운 전 대표 김모(72)씨가 앉았다. 김씨는 핏기 없이 누렇게 뜬 얼굴로 내내 입을 벌린 채 재판에 집중했다. 역시 앞줄에 앉은 이준석 선장은 안경을 콧잔등 아래로 한참 내려 쓴 채, 피로한 듯 가끔 눈두덩을 손으로 문질렀다. 피고인들은 대부분 무표정한 모습이었다.  

이날 4차 공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할애된 부분은 기관장 박모(58)씨와 3등 항해사 박씨에 대한 증인 신문이었다. 1심에서 유기치사죄와 함께 살인죄가 인정된 기관장 박씨는 징역 30년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박씨는 승객을 구조할 의무를 저버렸을 뿐 아니라 부상당한 동료 승무원 2명을 방치한 채 배를 탈출했고 해경에게도 알리지 않은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박씨에 대한 증인 신문은 1심에서 박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던 1등 기관사 손모(59)씨를 대상으로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할 만큼 경황이 없었던 것 아니냐’고 추궁하는 데 집중됐다. 그러나 비슷한 질문이 반복되며 지루한 공방이 이어지자 검사가 “질문 내용이 너무 길어서 증인이 제대로 이해하고 답하는지 의문”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그러자 박씨의 변호인은 “저 변호사 안 할랍니다. 저한테 자세히 물을 시간을 주셔야지…”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 오전 10시에 시작된 재판은 오후 8시가 훌쩍 넘어서야 끝났다. 방청객들이 모두 빠져나간 201호 법정의 한쪽 문이 닫혀있다. ⓒ 배상철

항해사 박씨 측이 증인으로 신청한 해양안전 전문가들은 세월호가 전복된 것은 배 자체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지 조타기 급변침 등 박씨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역설했다. 먼저 여객선 기관장 출신인 정모씨가 준비해 온 영상자료를 화면에 띄우고 배의 방향을 조정하는 조타기의 전기계통에 문제가 있으면 조타기가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15년 이상 된 낡은 배의 경우 찌꺼기로 인해 전류가 흐르지 않아 조타기 고장의 가능성은 높아진다고 진술했다. 반대 신문에 나선 검사가 근거제시를 요구하자 정씨는 “찌꺼기에 의한 조타기 고장 여부는 신만이 알 수 있다”고 말해 방청석에서 “코미디 하는 거냐”는 조소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어 증인으로 나선 목포해양대 정대득(49·항해학부) 교수는 세월호의 복원력에 문제를 제기하며 조타기 사용만으로는 배가 절대 뒤집어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인천항, 제주항에서 일하는 하역인부들은 ‘세월호는 화물을 실을 때마다 촐랑거린다’고 했다”며 무리한 증축으로 무게 중심이 높아진 세월호는 출항 전부터 이미 전복 위험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유가족에게 절실한 건 사고와 구조과정의 ‘진실’  

조타수 박모(60) 피고인에 대한 신문에서는 이준석 선장이 사고당시 세월호 선내에서 퇴선방송을 했는지 여부에 대해 집중적인 질문이 이뤄졌다. 박씨는 지난 3차 공판까지 '이 선장이 조타실에서 승객 탈출이나 퇴선 관련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지만 이번 공판에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번복해 방청객들의 야유를 받았다. 희생자 유족들은 “잘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 등의 진술이 나올 때 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 “참~나” 등 분을 터뜨렸다. 일부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재판 도중 “진실을 말하라”고 소리치는 방청객도 있었다.  

점심 휴정을 빼고 저녁 시간까지 지루하게 이어지던 재판은 오후 8시 20분쯤 끝났다. 이준석 선장 등 피고인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법정을 떠났다. 일반 방청객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떴어도 끝까지 남아있던 유가족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위로했다. 검사도 방청석으로 다가가 유가족 중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가족들은 법원 앞 주차장에 세워 두었던 전세버스를 타고 떠났다. 세월호 선원 항소심 결심 공판은 다음달 7일 오전 10시에 같은 장소에서 열리며, 피고인들에 대한 2심 선고는 28일 이뤄질 예정이다.  

   
▲ 당일 아침 안산에서 출발한 희생자 가족들은 재판이 끝나고 서로를 격려하며 다시 안산행 버스에 올랐다. ⓒ 배상철

지난해 11월의 1심 판결에서는 이준석 선장 징역 36년, 기관장 박모씨 징역 30년, 1등 항해사 강모씨 징역 20년, 2등 항해사 김모씨 징역 15년, 3등 항해사 박모씨와 조타수 조모씨 각 징역 10년, 수습 1등 항해사 신모씨 징역 7년, 조타수 박모씨와 오모씨, 1등 기관사 손모씨, 3등 기관사 이모씨, 조기장 전모씨, 조기수 이모씨, 박모씨, 김모씨 각 5년 등이 선고됐다. 이준석 선장은 가장 무거운 형을 받았으나 살인죄는 인정되지 않았다. 

“다들 잊어 가는데 절대 잊히지 않았으면”  

재판에 앞서 이날 오전 9시 광주고등법원으로 향하는 길 양쪽에는 세월호 사건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결성된 ‘3년 상을 치르는 광주시민상주모임’ 회원들과 대안학교인 래미학교(광주시 화정동) 학생들, 장애인 인권운동단체 ‘실로암사람들’ 회원 등 30여명이 나와 노란색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광주시민상주모임 회원 이민철(44)씨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선장과 선원들에게 양심을 회복하라고 (촉구)하는 의미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광주시민상주모임은 세월호 1심 공판 때부터 매 재판 시작 전 1시간씩 같은 방식으로 시위를 벌여왔다고 한다. 직접 간식을 만들어서 희생자 가족들이 방청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챙겨주기도 했다.  

래미학교 최유빈(17)양은 세월호가 잊히는 것이 안타까워 학교 친구들과 세월호 동아리를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바른 시민의식을 기르기 위한 지구시민프로젝트 수업의 일환으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최양은 “다들 잊어 가는데 절대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무엇보다도 (사고경위와 구조실패의) 진실을 꼭 밝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배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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