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세 개의 시선 ③

▲ 이지민 기자

2001년, 미국의 심장을 상징하는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다. 맨해튼은 울부짖고 피 흘리는 사람들로 채워진 생지옥이었다. 현장을 지휘하던 수장은 대통령이나 장관이 아니었다. 세계무역센터가 포함된 맨해튼의 9개 블록을 관할하는 ‘소방서장’이었다. 현장을 방문한 대통령, 뉴욕시장 등 고위 관료들은 소방서장의 일사불란한 지휘를 구석에서 지켜보는 신세였다. 우리 사회의 리더란 과연 누구인가를 묻게 한 세월호 사태 수습과 대비되는 장면이다. 당시 사태를 수습할 범부처사고대책본부는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 등 11개 부처로 구성되었고, 본부장은 정홍원 총리가 맡았다. 재난 전문가 대신 행정부 수장이 현장을 통솔하는 모순이 벌어졌다. 대통령에게 ‘보여드릴’ 화면 때문에 시간을 낭비했던 비극은 이러한 뒤틀린 시스템과 무관치 않다.

리더십의 성격을 묻기 전에 자격 있는 사람을 직급에 구애받지 않고 리더로 앉히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 현재 ‘리더’의 의미는 곧 직급으로 곡해되어 쓰이고 있다. 철저한 서열문화와 상명하복의 질서가 견고하게 뒷받침하면서다. 세월호 참사에서 여실히 드러났듯 관료들의 의전문화는 전문성 있는 사람이 그에 맞는 권한을 가지지 못하게 방해한다. 위급상황을 더 잘 알고, 해결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힘이 실리지 않는다. 직급 높은 윗분들 챙기기에 바쁘다. 지난 2일 메르스 관련 관계부처 장관회의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형표 장관이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할 동안 공무원 1명이 30분 넘게 엘리베이터를 붙잡고 있었다. 장관이 브리핑을 마치고 집무실로 바로 ‘올라가실’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다른 공무원들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데 불편을 겪어야 했다. 무능하면서 서열만 높은 사람들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권한이 엉뚱한 데 쏠려 있어 위기를 타개하는 데 집중이 어려워진다. 제 아무리 좋은 자질을 갖춘 사람이더라도, 지금처럼 ‘급’이 자격보다 더 중요하다면 리더는 리더일 수 없다.

▲ 서열, 상명하복 문화는 위기를 더욱 악화시킨다. ⓒ SBS 8 뉴스 화면 갈무리

권력을 자유롭게 분배하는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 리더는 상황마다 그 때 그 때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이 가진 권한을 적절히 나눠주고 때로는 완전히 몰아줘서 위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 필요다. 아무리 유능한 리더라도 모든 사안에 정통하지는 못한다.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전면에 등장해야 책임지고 일이 이루어진다. 세월호 참사에서 사태 수습의 대표적인 문제가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지는 사람은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됐는데, 정치인들이 해결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이들의 책임은 모두 사후적이었다. 정홍원 총리는 사퇴를 발표했고, 박대통령은 사과를 했다. 둘을 포함한 관료들이 비슷한 표정으로 읊조리는 ‘책임 통감’은 이미 우리 사회의 클리셰로 자리 잡았다.

“그녀는 우리들 중 하나입니다” 퇴임 당시 지지율 80%를 상회했던 핀란드의 타르야 할로넨 대통령을 향해서 국민들은 말한다. 그녀의 무기였던 수평적 리더십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직급이 높다는 의미는 어떤 분야 안에서만 유효하다. 해당 영역을 벗어나서까지 서열이 작동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불합리한 문화와 무능한 리더십이 얼마나 해로운지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충분히 목격했다. 권한을 나누는 수평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동시에 위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영웅과 같은 리더가 아니라 리더를 만드는 시스템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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