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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유지의 역설, 울트론과 총
[씨네토크]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보고
2015년 05월 28일 (목) 16:46:07 김근홍 기자 rmshddl1@hanmail.net

외계인들이 하늘에 뚫린 구멍에서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을 막을 방법은 핵폭탄을 들고 그들의 세계로 통하는 구멍으로 들어가 포털을 파괴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은 알았다. 그 일을 수행할 사람은 어벤져스 팀원 중 유일하게 자유자재로 날 수 있는 자신뿐이라는 것도. 아이언맨은 사랑하는 뉴욕과 지구를 위해 핵폭탄을 지고 하늘로 향했다. 임무는 성공했고 하늘이 도와 아이언맨은 정신만 잃은 채 멀쩡히 살아 돌아왔다. 지구는 다시 평화로워졌다.

외계인 침공의 트라우마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는 여전히 악몽에 시달렸다. 언제고 외계인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사람 비명과 건물 폭발음이 귓가에 맴돌았다. 아이언맨 슈트가 없을 때 자신은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슈트를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았다. 더 확실한 자기 보호책이 필요했다. <아이언맨3>는 또 다른 외계인 침공을 불안해하며 아이언맨 슈트를 수없이 만들어내는 인간 토니 스타크의 모습을 그려낸다.

   
▲ 영화 <어벤져스2 : 에이지 오브 울트론> 포스터. ⓒ 마블 공식 홈페이지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 감독 조스 웨던)에서 토니 스타크는 슈트 제작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정신을 조종할 능력이 있는 마인드 스톤을 이용해 지구를 지키기 위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만들려 한다. 실험은 성공했다. 지구의 평화 유지를 위해 탄생한 울트론은 토니의 통제를 벗어나 자신의 해결책을 찾는다. 인간은 각자 자신만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학살을 일삼았다. 인간이야말로 지구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암적인 존재였다. 울트론은 인간집단을 말살하기 위해 로봇 군단을 만들어낸다.

집착과 불안이 만들어낸 폭력

토니 스타크는 마인드 스톤의 본질을 완벽히 파악하지 못했다. 마인드 스톤이 가진 강력한 힘 중 하나는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혼자 생각하는 능력이었다. 스스로 판단하는 우주 물체가 지구의 인간을 위해 자신의 강력한 힘을 쓴다는 보장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러나 집착과 불안감에 휩싸인 토니 스타크는 마인드 스톤이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 믿는다. 토니 스타크의 계획을 들은 배너 박사(마크 러팔로)는 미친 과학자의 바람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듣지 않는다. 외계인의 침공은 기정사실이며 지구가 외계인보다 나약하다고 믿는 그에게 자신의 안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폭력에라도 기댈 수밖에.

   
▲ 인공지능 프로그램 울트론이 사용하다 버린 로봇을 보는 토니 스타크. ⓒ 마블 공식 홈페이지

안전을 지키기 위해 폭력에 의지하는 토니 스타크의 모습에서 총기에 기대는 미국인의 모습을 본 것은 우연일까. 영화 <어벤져스2>는 ‘평화 유지’ 프로그램인 ‘울트론’과 어벤져스의 전투를 그린다. 영화는 지구를 위해 희생하는 고귀한 영웅으로서 어벤져스의 모습을 부각한다. 그러나 <어벤져스2>는 토니 스타크가 극도의 불안증세로 벌여놓은 잘못을 수습하는 어벤져스의 수난기일 뿐이다. 토니 스타크의 잘못된 판단으로 만들어진 울트론으로부터 고통받는 인간을 구하는 것이 어벤져스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토니 스타크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평화 유지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못한다. 미국인도 마찬가지다. 미국인들에게 총기는 안전을 위해 허용된 폭력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소지한 총기가 숱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켜도 안전이라는 집착과 불안 때문에 손에서 놓지 못한다.

총기 소유 허용 배경은 미국 독립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격렬한 투쟁 끝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국은 새로운 연방 정부도 독재를 일삼을까 두려웠다. 연방정부가 혹시 저지를지 모르는 전횡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인이 얻어낸 것이 총기 소유의 권리였다. 총은 연방정부뿐만 아니라 야생동물과 인디언으로부터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도구였다. 그러나 총기는 폭력 그 자체였고,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았다. 폭증하는 범죄와 위험에 대한 불안이 커질수록 미국인의 총기 소지율도 덩달아 높아졌다. 코네티컷 샌디훅 초등학교 사건, 미주리 퍼거슨시 사건 등 총기 사건 이후에 총기 판매량이 급증한 것이 그 증거다. 총기가 많아지면서 사고가 늘어났고 사고가 늘어나니 사람들은 총을 더 샀다. 악순환이다.

   
▲ 도시를 공격하는 울트론과 로봇군단. ⓒ 마블 공식 홈페이지

통제할 수 없는 괴물, 폭력

인간은 미래의 자신을 지키기 위해 현재의 폭력을 허용했다. 하지만 총이란 폭력으로 잠시 유지된 평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미래의 적도 등장하지 않았다. 인간의 상상 속에서 적은 외계인이 되었다가 독재자도 되었다가 하면서 끊임없이 바뀐다. 총으로도 제압하지 못할 존재가 나타날 것이란 불안이 인간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결과 총은 탱크가 되고 핵폭탄이 되고 울트론이 된다. 독일 사회학자 볼프강 조프스키에 따르면 폭력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역설적으로 폭력을 더 체계적인 위협으로 만들어왔다. 폭력은 폭력을 재생산해낸다는 점에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냥 폭력 그 자체일 뿐이다. 그런데도 안전에 대한 집착으로 눈이 먼 인간은 폭력을 다스릴 수 있다고 자신을 위로하고 속인다. 영화에서 “인간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고 한다.”는 대사가 나온다. 지금 인간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 하고 있다.


 

[김근홍 기자]
단비뉴스 영상부, 전략부, 미디어팀 김근홍입니다.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색이다. 어떤 먼지도 나의 색깔을 바꾸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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