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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 칠 때 떠났어야 했다
[TV를 보니] 인기포맷의 잘못된 만남
2015년 04월 02일 (목) 20:11:53 김봉기 기자 superche@naver.com

<1박2일>, <무한도전>, <런닝맨>. 각각 한국방송(KBS)·문화방송(MBC)·에스비에스(SBS) 지상파 3사를 대표하는 예능프로그램이다. 이들은 어떻게 치열한 예능판에서 살아남아 오랫동안 시청자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우선 제작진의 기획과 연출력, 출연진의 역량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나 더 꼽는다면 프로그램 포맷의 차별성이다. 여행, 끝없는 도전, 추격전. 포맷은 단번에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요소다. 이들과 달리 모호한 정체성 탓에 추락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 인간의 조건2는 멤버 전원을 새 얼굴로 바꾸고 지난 1월 3일 1회가 방영됐다. ⓒ KBS <인간의 조건2> 누리집

<리얼 체험 프로젝트 인간의 조건>은 티비엔(tvN)의 나영석 PD가 KBS에서 근무하던 2012년 11월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 4주 파일럿 방영 뒤 2013년 1월부터 토요일 저녁 11시에 정규 편성되었다. 현대인들의 생활 속에서 누리는 편리함을 하나씩 제한당한 출연자를 일주일 동안 관찰하는 포맷의 예능프로그램이었다. 정규편성 초기에는 10%의 시청률(AIG닐슨 기준)을 기록하며 토요일 심야예능으로 정착했다. 시즌1은 1기와 2기로 구분할 수 있다. 개그콘서트 개그맨 6명으로 1기를 시작해 개그우먼 특집이 방영된 뒤 개그우먼들도 고정출연자가 되었다. 남자 편과 여자 편을 번갈아 방영하다 2014년 5월부터 2기가 시작되며 남성 출연자가 소폭(조우종, 개코, 김기리) 물갈이되었다.

인간의 조건은 3년째를 맞으면서 지난 1월 인간의 조건2로 이름을 바꿔 달고 새로운 출연자들(윤상현, 은지원, 허태희, 봉태규, 현우, 김재영)과 변화된 포맷으로 돌아왔다. 이전 시즌과 가장 큰 차이는 숙소가 서울 시내가 아닌 파주에 있는 낡은 황토집으로 바뀐 점이다. 개그맨들이 주축이던 출연자들이 배우들로 바뀌었고 1주일 동안 진행되던 체험이 2박 3일로 줄었다. 매번 새로 제시하던 조건들 외에 기본으로 지켜야 하는 5無라이프(자가용, 인터넷, 휴대전화, 1kg 이하 쓰레기 배출, 1인당 하루에 5,000원 소비 제한) 조건을 추가했다.

대세 프로그램의 흉내로 자기복제

인간의 조건은 1월 3일 첫 방송 시청률이 6.4%(AGB닐슨 기준)를 기록한 뒤 계속 떨어져서 3월 28일 12화가 방영될 때는 3.3%로 반 토막이 났다. 저조한 성적은 새로운 포맷이 자기복제에 그친 결과다. 5無라이프 과제들은 시즌1 초반에 수행했던 미션 5가지를 모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1화부터 5화까지 5無라이프와 황토집 적응기를 내보냈다. 왜 폐허 같은 황토집에서 살아야 하는지, 왜 다섯 가지 문명의 이기를 제한당해야 하는지 설명은 충분하지 않았다. 미션제시·수행도 지난 시즌 것을 답습하고 있었다. 6화부터 2주씩 수행하는 미션도 낯이 익다. 물 아끼기, 헌옷 모아 제3세계에 기부하기, 건강 검진과 힐링 체험, 책과 가까워지기 역시 시즌1 초반에 좋은 반응을 얻었던 아이템을 재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책과 친해지기 역시 시즌 1의 아이템 재활용을 벗어나지 못했다. ⓒ KBS <인간의 조건2> 12회 방송분

제작진도 자기 복제를 의식했는지 변화하려는 노력은 보였다. 그러나 그 변화들조차 어디에서인가 본 듯 했다. 무작정 시작했던 황토집 생활은 <정글의 법칙> 냄새가 났다. 나이가 제일 많은 윤상현부터 막내 재영까지 첫 편부터 억지스러운 형제애를 과시하는 모습은 김병만 부족을 황토집으로 옮긴 것 같다. 출연진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미션을 수행했던 지난 시즌과 달리 <인간의 조건2>에는 일상이 없다. 출연진들은 일단 황토집에 도착하면 미션 수행에만 몰두한다. 정선 골짜기와 서해 만재도에서 제작진이 원하는 요리를 만들던 <삼시세끼> 모습과 같다. 여섯 남자가 팀을 나눠 여행을 떠난 뒤 힐링 음식을 먹고 활력 충전 체험을 하는 모습은 은지원이 다시 <1박2일>을 찍는 것 같다. 종합하면 <인간의 조건2>는 레시피 없이, 시판되는 식품첨가물만 쏟아 넣은 인스턴트 음식을 보는 것 같다.

   
▲ 황토집 생활 속 곳곳에 낯익은 프로그램이 보인다. ⓒ KBS <인간의 조건2> 3회 방송분

KBS는 이미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표절 논란에 시달려왔다. <나는 가수다>와 <불후의 명곡>, <아빠!어디가?>와 <슈퍼맨이 돌아왔다>, <꽃보다 시리즈>와 <마마도>, <화성인 바이러스>와 <안녕하세요> 등 타 방송사 프로그램들과 닮은 프로그램들이 많다. 고의적인 표절이든 시청자의 오해든지 표절 논란은 제작진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조건> 제작진은 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방법을 선택했다. 당장 급한 시청률을 의식했으리라.

예능의 생명은 독창성

<1박2일>은 여행예능의 효시다. 시즌1,2,3을 거치며 부침을 겪었지만 이후 방송된 여행예능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무한도전>은 매주 방영을 거듭하며 한국 예능의 역사를 쓰고 있다. 리얼 예능의 시작을 이끌었고 예능에 장기프로젝트 방식을 도입했다. 처음으로 방송사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으로 예능을 꼽히게 만든 프로그램이다. <런닝맨>은 랜드마크를 찾아 본격 추격예능을 추구하는 포맷을 꾸준히 유지했다. 방송 초기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현재는 예능 한류를 이끌고 있다. SBS는 중국판 런닝맨을 성공시킨 뒤 중국지사 설립까지 추진하고 있다. 3년차를 맞이한 <인간의 조건>은 시청률 반 토막과 함께 생사의 기로에 섰다. KBS는 심야예능 중 가장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투명인간>을 4월 1일 폐지했다. 1%포인트 차이로 <투명인간>을 앞서고 있던 <인간의 조건>이 그 자리로 옮겨 편성될 것이라는 기사도 나오고 있다. 해결책은 방송시간 변경이 아니다. 시청자도 알고 제작진도 알고 있다. 떨어지는 칼을 맨손으로 잡기보단 피해야 한다. 자기 복제와 따라 하기를 멈추기 바란다.


 

[김봉기 기자]
단비뉴스 전략부장, 미디어팀 김봉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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