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홍연 기자

▲ 홍연 기자

아테네 출신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그리스를 주축으로 한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를 위시한 펠로폰네소스 동맹 사이의 전쟁을 기록하고 있다. 스파르타는 신흥강국인 아테네를 위협적으로 생각했고, 이런 상황이 전쟁으로 비화하는 과정이 기술돼 있다.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이란 말도 여기서 비롯됐는데, 패권국과 빠르게 부상한 신흥국의 무력 충돌을 일컫는다. 240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투키디데스 함정의 전초전을 목도하고 있다. 중국이 인구와 자본력으로 빠르게 성장하면서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소용돌이 한가운데 한국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는 동맹관계이고, 중국과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여서, 어느 한쪽도 서운하게 해서는 곤란한 처지다. 한∙미동맹은 안보의 기반이고, 한∙중관계는 사람과 재화의 교류가 이뤄지는 경제의 기반이다. 도입을 검토중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DD)나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문제가 한국 외교의 큰 시험대인 이유이다. 미국과 중국의 고위관리들은 뻔질나게 한국들 드나들며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려 든다.

한국이 취해야 할 외교전략은 투키디데스 함정의 반경에서 최대한 벗어나는 것이다. 곧 패권질서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주체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과 경제협력을 재개하는 등 남북관계 개선이 급선무다. 북한과 대화를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는 당사국이 되면, 북핵 문제에서 발언권과 주도권이 강화되면서 미국과 중국에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북한과 관계를 개선한 뒤 이를 지렛대로 미∙중과 협력을 강화한다면 북한의 무력도발 억지 효과도 낼 수 있다. 이것은 곧 한국이 동북아 정세 안정에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 지난 16일 한국을 방문한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차관보는 미국의 사드의 한국 배치 문제에 대해 "중국의 관심과 우려를 중요시해달라"고 말했다. ⓒ SBS 8 뉴스 화면 갈무리

하지만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나 역사문제와 관련해서는 중국과 공조를 공식화해서는 안 된다. 한∙일 갈등과 중∙일 갈등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일 갈등의 핵심은 역사문제 그 자체인 반면 중∙일 갈등은 패권경쟁의 성격을 띤다. 우리나라는 북핵 대응을 위한 한∙미∙일 공조 측면에서는 일본과 이해관계가 일치한다.하지만 중국과 일본의 갈등은 미-중 대리전, 제해권, 군사•안보 분야의 충돌 등 복합적 성격을 띤다. 중국과는 독자적으로 ‘일본 맞춤식’대응을 해야 하며, 외교적 레드 라인까지 넘을 필요는 없다

미∙중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는 다자안보협력은 현실적으로 다른 국가와 군사적 대결을 전제하지 않으므로 명분과 실리를 챙길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관리하고, 중국의 일방주의적 행동을 막는 역할을 한국이 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각각 우리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한다고 판단하지 말고,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생존공간을 늘려야 한다. 북한과는 남북관계를 얼마나 능동적으로 끌어가느냐에 따라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도, 넓어질 수도 있다.

 

▲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고대 그리스가 몰락하는 요인이 됐다. 우리나라는 미-중 패권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장기적 안목으로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 ⓒ flickr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전쟁의 여파는 결국 고대 그리스가 몰락하는 요인이 됐다. 우리나라는 미-중 패권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장기적 안목으로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 외교는 단판 ‘전투’가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되는 ‘전쟁’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자칫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치우친 선택을 한다면 개별 전투에서 소소한 승리는 거둘지 모르지만 긴 안목의 국익이 걸린 전쟁에서 패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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