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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중요해진 농업이 더 천대받는 한국
[농촌문제세미나] 윤석원 중앙대 교수
주제 ① 농산물 시장개방의 정치경제
2014년 04월 19일 (토) 11:50:34 이정희 함규원 기자 yargomaki@gmail.com

"저는 농민파입니다. 농업, 농촌, 농민의 편에 서 있는 학자 중 한 사람일 뿐입니다."

자신을 ‘농민파’라 부른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윤석원 교수는 상아탑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만 집중하던 학자였다. 그가 농업문제에 관한 칼럼을 기고하고 토론회에 나가 발언을 하기 시작한 건 대학에 적을 둔 지 십여 년 뒤, 연구실에서 논문만 쓰기에는 우리 농업의 현실이 절박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는 “농업농촌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사회 분위기”를 비판하며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농촌문제세미나 특강을 시작했다.  

 

 

▲ 윤석원 교수가 '농산물 시장개방의 정치경제'에 대해서 강의하고 있다. ⓒ 이정희

"개방화 시대가 되면서 농업과 농산물 문제가 더욱 중요해졌는데, 우리 사회는 농업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평생 농업을 연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안타깝죠."

윤 교수는 우리 농업계 최신 이슈로 ‘한·미 유기가공식품 동등성 협상’을 꼽았다. 동등성 협약이란 상대국의 유기가공식품 인증제도를 서로 인정하는 협약이다. 외국산 유기가공식품은 국내법에 따른 인증을 받아야 하지만, 이 협약이 체결되면 미국산 유기가공식품은 별도 인증절차 없이 곧바로 수입된다. 그는 “먹거리 안전을 위해 각 나라의 환경과 조건에 맞는 인증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비판하면서 질문을 던졌다. 

"왜 이렇게 관세, 비관세 장벽을 없애고, 미국이 농산물을 한국에 팔고 싶어 할까요?"

WTO 체제는 인류 식량문제 해결 못 해 

1995년 WTO(세계무역기구) 체제가 출범하면서 국제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었다. 이전의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체제에서 농산물 시장 개방을 유예했던 이유는 농업의 특수성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WTO 체제 이후 국제무역과 물자교류를 증진하자는 자유무역의 논리가 농산물에까지 적용되었다. 인류의 식량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농산물 개방의 명분이었다. 그러나 윤 교수는 “농산물 무역 자유화는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아 문제도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인류를 약 70억 명이라고 했을 때,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인류는 많아야 20억 명입니다. 이들은 모두 미국, 유럽, 일본, 한국 등 잘 사는 나라들입니다. 나머지 50억 명 중 10억4천만 명은 기아선상에 있습니다. WTO가 출범한 뒤 20년 동안 농산물 무역 자유화를 했고, 그것도 모자라 FTA(자유무역협정)까지 체결했지만, 기아 인구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농산물 자유무역과 인류의 기아 문제 해결이 무관하다는 것이 충분히 입증됐지만,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려는 논리는 여전히 강력하다. 윤 교수가 ‘농산물 시장 개방은 누구에게 이익인가’, ‘식량안보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쓴 책이 <농산물 시장개방의 정치경제론>이다. 그는 책을 소개하며 “국제 식량위기는 농업농촌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몰이해에서 온다”고 말했다. 

경쟁력지상주의, 물신주의, 인간소외의 시대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윤석원 교수의 강연을 듣고있다. ⓒ 이정희

농업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윤 교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관통하는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경쟁력지상주의, 물신주의, 인간소외가 그것이다.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경쟁력은 필요하지만, 경쟁력지상주의는 문제가 있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한다는 일등지상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는 수업에서 학생들 시험을 쳐보면, 같은 강의를 듣고 동일한 시험을 봐도 다 백 점 못 맞습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일등도 있고 꼴찌도 있습니다. 농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농민이 경쟁력 있으면 좋죠. 그런데 어떻게 농민들이 다 일등 할 수 있겠습니까?"

윤 교수는 경쟁력을 갖춰야 살아남는다는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 분위기를 강하게 비판했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경쟁력의 척도는 시장가격이다. 노동을 가진 인간의 가치는 임금이라는 가격으로 나타난다. 가격으로 나타나지 않는 가치는 고려대상이 아니고, 여기에서 인간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의 가치가 못 버는 사람보다 더 크게 평가된다. 곧 물질이 신이 되는 시대다. 

"연봉 삼백억인 재벌의 가치와 천만 원 버는 농민이라는 인간의 가치가 다릅니까? 그럼 농민 목숨 백 개, 이백 개와 재벌 목숨 하나가 같은 것입니까? 인간은 물질로 평가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물질은 필요하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인간을 물질로 환원하여 사고하는 것은 인간소외를 낳는다. 철학적 의미에서 소외는 인간이 인간답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윤 교수는 “인간이 다 백 점 맞을 수 없는데도 모두 백 점 맞으라고 강요하는 상황”을 비판하며 “경쟁력지상주의, 물신주의, 인간소외가 다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시대 경쟁력의 잣대인 물질을 강조함에 따라 인간소외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 시대의 잣대를 들이밀면 농업은 하나도 존재할 가치가 없는 산업”이라고 말했다.

도시 자본은 왜 농지로 몰렸나? 

"만약 누가 나에게 10억을 준다면 안성 근처에 2헥타르(6천평) 정도 논을 사서 쌀농사를 지어야 할까요? 농지 2헥타르에서 벌 수 있는 순소득이 연 천만 원입니다. 그 돈을 은행에 맡기면 3% 이자율이 적용돼 연 3천만 원의 정기예금 이자를 벌 수 있습니다. 누가 농촌에 땅을 사서 농사를 짓겠습니까? 자본은 쉽게 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윤 교수는 “농업에는 자본이 쉽게 들어가지 못하나 농지에는 돈이 많이 몰려있다”고 지적했다. 과거보다 농촌 땅값이 크게 올랐는데 이는 땅의 실소유주가 아닌 도시사람들이 투기목적으로 농지를 구입했기 때문이다. 2013년 행정자치부에서 발표한 '2012년 토지소유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유지중 55.2%를 상위 1%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다. 도시근교 농지는 80-90%가 농사를 짓지 않는 도시인 소유라고 한다. 

국산 농산품의 가격이 비싼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쌀은 생산비의 35%가 토지용역비로 이용된다. 높은 생산비용은 비싼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된다. 외부인들의 농지투기로 땅값이 오르면서 생긴 일이다. 

그는 “농지가 투기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선 실소유주와 투기자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하며 정부가 철저히 관리하고 엄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농지은행’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농지은행이란 이탈농, 고령농, 도시민으로부터 농지를 수탁∙매입하여 이를 전업농에게 임대∙매도하는 제도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시행하고 있으나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미국, 유럽 등 농업선진국들은 활발히 운영하고 있는 제도이다.

선진국들은 농업을 왜 지켜야 하는지 안다 

"오히려 선진국들은 농업을 과잉투자, 과잉생산합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땅이 넓지만 유럽 국가들은 우리나라보다 땅이 작아요. 근데 그런 나라들이 식량자급률은 높습니다. 스위스의 경우 80%가 넘어요. 정부의 보조금 등 일관된 정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나라들이 이제 농업수출국으로 성장한 겁니다." 

   
▲ 주요국 식량 자급률 비교. ⓒ 농촌경제연구원 식품수급표

한국의 식량 자급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2009년 식량자급률은 51.4%이고, 곡물자급률은 26.7%이다. 쌀을 빼면 식량자급률이 매우 낮다. 선진국의 곡물자급은 프랑스 190%, 캐나다 143%, 미국 130%, 독일 116%, 영국 100%에 이른다. 

선진국들은 곡물자급률을 점점 높여가는데, 우리나라는 떨어지고 있다. 선진국들이 농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이유는 ‘식량안보’가 곧 ‘국가안보’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국제 농산물시장의 불안요인은 식량전쟁의 위험까지 내포하고 있다. 선진국 정부들은 농업에 보조금 지원을 확대했으며, 현재 농업수출국으로 성장했다. 윤 교수는 “무역 자유화, 세계화를 주장하는 것은 자국의 과잉 생산물을 팔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선진농산물 수출국들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농업을 성장시키기 위해선 정부가 농업 분야에 각종 정책지원금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5년 기준 한국의 농업보조금은 18억달러로 전체농업생산액 대비 5%수준이다. 유럽연합이 22.3%, 미국이 14.6%인 데 견주어 1/3 수준이다. 선진국들은 정부가 보조금 지원을 하면서라도 농업을 지키는 것이다. 다른 선진국들도 농가소득 중 농업보조금 비중이 높다. 보조금 지급으로 농민의 경쟁력 상실을 얘기하는 것은 자본 회전력이 낮아 존폐 위기에 처한 농업의 현실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농업은 가격 아닌 다른 가치로 산정해야 하는 산업 

"최근 우리나라는 WTO와 FTA를 통해 여러 나라와 무역협정을 맺고 있습니다. 농업이 어려워지고 자동차나 가전제품 파는 기업이 이득을 볼 것이란 예측은 찬·반측 모두 이견이 없습니다. ‘그럼 농민이 손해를 보니까 이득을 보는 쪽에서 그만큼 보상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하고 물었더니 ‘우리가 돈 버는 데 농민이 도와준 것 있나’ 하더군요."

무역 찬성론자는 경제학자 힉스가 주장한 보상의 원리를 언급한다. 즉, 구조적 경제 변화로 경제적 후생이 증가한 사람들이 감소한 사람들에게 화폐로 보상하고도 돈이 남는다면 전체 경제적 후생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차를 팔아 남는 돈으로 먹을 것을 사오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윤 교수는 “농민을 계층으로 볼 뿐 인간으로 보지 않아야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농산물의 가격만 생각하는 사회에 농업의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시대의 잣대를 들이밀면 농업은 존재 가치가 없는 산업이다. 농업이라는 산업, 지역공간으로서 농촌, 인간으로서 농민, 이 모든 것의 가치 척도에 물질적 가치나 경쟁력만을 들이대서는 안 될 터이다. 

"먹는다는 건 소중한 것이며 누군가는 생산해야 하는 것이죠. 누가 쌀을 생산하는지 잊어선 안 됩니다. 가격만 있고 가치가 없는 사회에서 농업의 미래는 없습니다."


[농촌문제세미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농업농촌문제에 대한 기자·PD 지망생들의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개설한 강좌입니다. 대산농촌문화재단과 연계된 이 강좌는 농업경제학·농촌사회학 분야 권위있는 학자, 전문농사꾼, 농촌지역 사회활동가, 농업농촌전문기자와 ‘데스크 교수’ 등이 참여해서 이론과 농촌현장실습, 취재보도를 하나로 결합하는 신개념의 저널리즘스쿨 강좌입니다. <단비뉴스>는 그 강좌 중 일부를 중계해 농업농촌문제에 대한 인식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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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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