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수의 미디어 속 이야기]

▲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세계언론사에서 선정적 보도의 역사는 화려하기까지 하다. 미첼 스티븐스의 <뉴스의 역사>를 보면 뉴욕 신문 선(Sun)은 1835년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에 신설한 대형 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한 결과 외계인이 살고 있다는 내용을 독점 보도했다. 삽화를 곁들여 외계인의 용모와 대화장면까지 묘사한 이 기사는 1주일 연재됐지만 모두가 거짓으로 들통 났다. 그러나 이 신문은 반성은커녕 축하 분위기였다. 판매 부수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추리소설 작가이면서 언론인이기도 했던 에드거 앨런 포는 이를 지켜보다가 “선이 허위의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포 또한 열기구가 사흘 만에 대서양을 횡단했다는 거짓 기사를 써서 그 신문에 팔아먹었다.

이런 일화는 생존경쟁에 내몰린 언론사에 선정보도가 얼마나 유혹적인지를 말해준다. 그런데 앞으로는 선정보도에 관한 한 ‘뉴스의 역사’를 한국 언론이 새로 써갈 듯하다. 물론 지금 외국에도 선정보도를 부수와 시청률 확대의 수단으로 삼는 언론사가 많다.

루퍼트 머독 신문들을 예로 들면 영국 최대 일간지 선 등은 3면을 벌거벗은 여자 사진으로 채우는 편집으로 유명해 ‘페이지3 여자’(Page3 Girls)란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가 바람 피운 ‘사건’들이 줄줄이 터져 나오던 2009년 말, 이 신문이 특종을 했다며 12월11일 머리로 내보낸 기사는 ‘타이거와 모델의 거친 밤’(Model’s wild night with Tiger)이었다. 더 기막힌 사실은 온라인판 머리기사 옆에 ‘한국 여성 만남 사이트’ 광고가 실렸다는 것이다. 가수 싸이가 ‘젠틀맨’을 발표했을 때 이 신문은 기자의 ‘젠틀맨 춤 따라하기’ 연속사진을 실었을 정도로 독자에 영합한다.

그런데 서구의 황색지와 방송은 섹스를 노골적으로 다룰지언정 피의자의 인격권을 무시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은 드물다. 바로 소송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견주면 우리 언론은 거침이 없다. 세월호 침몰 얼마 뒤 ‘기레기’ 소리를 들으면서 일부 기자들 사이에 반성하는 기미도 보이던 선정보도는 세월호 참사의 최고책임자를 유병언씨 일가로 몰아가면서 더욱 창궐하고 있다.

선정보도의 주역은 방송, 특히 종합편성채널, 그 중에서도 채널A와 TV조선이었다. 이들 방송은 유병언씨가 시신으로 발견되기 전에 이미 인격살인을 했다. 이들 방송만 시청하면 그는 ‘단신 콤플렉스’에 ‘건강집착증’ 환자이고, 도피 중에도 약물을 복용하며 섹스를 즐긴 색골로 보인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모니터링에 따르면, 채널A는 ‘단독’ 기사라는 자막에 ‘은신처에 체액 묻은 의문의 휴지’라는 제목을 달아 선정주의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TV조선은 “체포된 신도 신씨가 여성으로서 견디기 힘든 검사에도 임했다”며 체액 묻은 휴지와 연관지어 “유씨와 성관계가 있었는지, 이 과정에서 약물을 복용했는지 등을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성관계는 사실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수사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생활인데도 ‘성희롱’에 해당하는 내용을 검경이 흘리거나 기자들이 추측해서 마구 보도한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제정한 ‘인권보도준칙’에는 인격권과 관련해 ‘용의자나 피의자, 피고인의 얼굴, 성명 등 신상정보는 원칙적으로 밝히지 않고’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에도 범죄자의 공개에 신중을 기한다’고 돼 있다. 한겨레가 지난달 26일자부터라도 유대균씨와 함께 붙잡힌 박모씨를 익명으로 지칭하고 얼굴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한 것이 희귀해 보일 정도로 우리 언론의 인권 불감증은 심각하다. 그의 도피를 도운 혐의밖에 없는 박씨를 세월호 침몰의 중대 책임자나 되는 것처럼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은 한국 사회의 관음증에 영합한 한국 언론의 추악한 상업주의로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다.

박씨 체포 당시 TV조선 대담 프로에 나온 변호사와 교수라는 사람은 ‘북한 여군’ ‘테러리스트’ 같은 용어까지 써가며 박씨를 매도했고, 채널A는 관상가까지 동원해 ‘박○○의 눈과 입, 귀와 턱에 담겨 있는 비밀을 파헤친다’더니 ‘확신범’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던 종편들은 바로 하루 뒤 ‘단독’ 보도임을 강조하며 “박○○은 사실 겁쟁이”(TV조선), “(유대균씨) 소심한 목소리로 뼈 없는 치킨 주문”(채널A)이라는 자막까지 내보냈다. JTBC는 치킨을 먹은 것은 맞지만 주문한 사람은 유대균씨가 아니라고 반박했고, TV조선은 치킨을 시켜 먹은 적이 없으며 닭을 싫어한다는 유대균씨 쪽 주장을 전했다. 세계언론사에 남을 만큼 오보로 점철된 ‘디테일 특종경쟁’이요, 선정보도가 아닐 수 없다.

채널A 뉴스에는 ‘좁은 방에서 단둘… 석 달 동안 뭐했나?’를 내보냈고, 대담 프로에서는 사회자가 같은 질문을 하자 ‘시사평론가’가 “여러 형식의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았겠나 추정해본다”며 “원룸에서 장성한 남녀가 석 달을 있었으니 상상과 추측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답한다.

“상상이죠? 어디까지나? 명예훼손 될 말씀은 하시면 안됩니다.” 사회자의 이 말은 명예훼손 발언을 막으려는 의도보다 부추기려는 추임새에 가깝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대담자가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저는요, 개인적으로 간통죄가 아닐까 그런 궁금증도 드는데….”

 

▲ 일러스트 경향신문 김상민 기자

▲ ‘달에 외계인이 산다’는 신문…거짓 기사 쓴 에드거 앨런 포
 벌거벗은 여자가 매일 유혹하는 루퍼트 머독 신문들
 선정보도, 그 치명적 유혹에 왜 세계언론은 빠지나

▲ 세월호 원인·책임 손 떼고 유씨 일가 간통사건처럼 보도
‘종편 공해’ 어떻게 처리할지 민주주의 위해 고민할 때

‘뉴스의 역사’에 남은 황색지 뉴욕헤럴드의 수법은 차라리 애교스럽다. 이 신문은 1874년 ‘끔찍한 재앙’이라는 기사에 ‘토막살인’ ‘동물원 짐승 탈출’ 등을 나열한 뒤 길고 긴 기사 끝에 한 문장을 덧붙였다. ‘이 기사는 한마디도 사실이 아니다.’ 독자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는데 끝까지 읽어본 독자는 많지 않았다.

TV조선 <황금펀치>에서는 오히려 사회자가 유대균씨와 박씨의 관계에 대한 명예훼손 발언을 계속 유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자 사회자가 결론을 내려 버린다. “남녀관계는 모릅니다. 그렇게 간단한 거 아닙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종교보다 더 셀 수 있어요.” <돌아온 저격수다>에서는 “침대는 하나밖에 없고, 밑에 이불은 보이지 않았다고 하면 일반인들도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있겠지만…”이라며 간통사건으로 몰아갔다. 나중에 오피스텔이 복층 구조이고 두 사람이 엄격하게 내외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오보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유대균씨가 체포된 지난달 28일 조선일보는 ‘TV조선 메인뉴스가 지상파에 육박했다’고 보도했고, 동아일보는 ‘채널A 종합뉴스 시청률이 개국 2년7개월 만에 5%를 돌파했다’고 자랑했다. 179년 전, 역사에 남을 선정보도를 한 뒤 희희낙락한 신문 선의 분위기와 뭐가 다른가?

우리 형법은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를 적시해 명예를 훼손하면 처벌한다. 언론은 공익을 위해 그랬으면 벌하지 않지만 그런 보도에서 공익성을 찾기는 어렵다. 정부가 유병언씨 일가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사고처리 비용을 보전한다는데, 유씨 일가는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일부를 보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유병언씨 일가의 죄는 밉지만 부당 내부거래를 통해 돈을 빼돌리는 것은 재계에 만연된 수법이었다.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재벌에 견주면 금액도 몇 십분의 일이다. 우리 언론이 그들의 불법행위를 제대로 비판한 기사를 본 게 가물가물하다.

경향신문은 어느 정도 금도를 지켰으나 온라인은 좀 지나친 때가 있었다. 지난달 27일에는 ‘호위무사 박○○, 결혼 전 유대균 옆에서…’라는 선정적 제목의 머리기사를 온 종일 걸어두었다. 내가 기록해둔 ‘국내외 언론 왜곡보도 일지’를 검색해보니, 2007년 9월16일 경향 온라인판 머리기사 제목은 “변양균·신정아 ‘입’ 맞췄나”였다. 갈무리해둔 메인 화면을 보니 두 사람 얼굴사진까지 붙여 편집했는데, 같은 날 변씨는 검찰에 출두하고 신씨는 귀국한 사실을 선정적으로 짜깁기한 것이다.

온라인판은 ‘신문의 미래’라고들 하는데 종이신문을 위해서도 잠재독자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겨야 한다. ‘디지털 우선’(Digital First)을 치고 나온 가디언과 뉴욕타임스가 상당한 성공을 거뒀지만 그들 신문 온라인판에서 선정성을 찾아내기는 힘들다.

야당이 참패한 선거를 정부·여당과 방송, 그리고 보수신문들은 ‘세월호 심판론에 대한 심판’이라며 국면전환을 꾀하고 있다. MBC는 ‘심판론에 대한 여론의 피로감’을 요인으로 꼽았는데 피로감을 준 당사자는 수사권과 증인 채택을 거부한 정부·여당과 보수언론 아니던가?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53% 대 24%로 ‘수사권을 줘야 한다’는 쪽이 압도적이고, ‘사고의 원인과 책임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의견이 64%였다.

한국 언론이 선정보도와 왜곡보도로 명맥을 유지하려 한다면 그건 살아도 산 게 아니다. 사회 공공의 도구로서 생명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니까. 오늘도 저질방송이 전국의 식당과 터미널, 가정에서 온 종일 왕왕대고 있으니 책임정치와 민주주의가 제대로 될 리 없다. ‘공해’처럼 대기에 쏘다니는 방송을 어찌해야 하나? 공해 대처법은 우리가 모르는 게 아니다. 의지가 없을 뿐.


 

* 이 기사는 <경향신문>과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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