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수의 미디어 속 이야기]

▲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아인슈타인, 비트겐슈타인, 번스타인…. 물리학자, 언어철학자, 지휘자인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가 유대인이고 성이 ‘돌’(stone)을 뜻하는 독일어 ‘슈타인’(stein)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돌’이 유대인 성에 많이 들어가게 된 데는 그들만의 한 맺힌 역사가 숨어있다.

2000년간 나라 없이 서럽게 떠돈 유대인은 대부분 성도 가질 수 없는 존재였다. 언젠가 독일의 한 영주가 성을 허용했는데 단서가 붙었다. 유대인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돌’ ‘별’(Stern: 슈테른) 같은 자연물의 이름을 붙이게 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 천한 사람을 ‘돌쇠’ ‘갑돌이’ ‘마당쇠’ 등으로 함부로 부른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핏줄에 대한 유대인의 집착과 결속은 모진 박해 속에서 더욱 강해졌다.

그러나 ‘호된 시집살이 한 며느리가 시어미 노릇 독하게 한다’더니 이스라엘은 지금 나치에 당한 것만큼이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혹독하게 탄압하고 있다. 공습에 따른 사망자는 8~17일에 230명을 넘어섰는데 4분의 3이 주로 노약자인 민간인이고, 부상자도 1700명에 이른다. 이스라엘은 1명 사망에 10명 부상. 이건 국가간 전쟁이 아니라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같은 인종청소의 ‘이스라엘판’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데도 국제사회와 세계 대부분 언론이 양비론을 펴면서 사실상 이스라엘 편을 들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중동문제 전문기자라 할 수 있는 영국 인디펜던트의 로버트 피스크는 13일 쓴 칼럼에서도 지금의 대학살이 끝없이 ‘재연’(replay)되는 사태임을 개탄했다. 미디어가 전쟁의 원인과 참상을 보도하는 데 소홀하고, 게임처럼 무기와 작전을 소개하는가 하면 사망자 숫자 전달에 치중하니 평화를 향한 진전이 없고 비극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 일러스트 경향신문 김상민 기자

이번 대학살의 원인을 ‘청소년 보복 살해’라는 ‘쌍방 잘못’에 두고 휴전만 강요한다면 근본적인 평화 정착은 불가능하다. 이번 사태의 계기는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이스라엘이 자기네 정착촌을 계속 건설해온 데 있다. 정착촌은 유엔도 불법으로 규정하고 오슬로 평화협정과 국제사법재판소 판결도 철수를 명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깡패처럼 깡그리 무시해왔다.

우리나라 통신사인 뉴시스와 일부 방송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 묘사했는데 그것은 적절한 비유가 아니다. 다윗은 결정적 한 방이 있었지만 하마스가 쏘는 로켓은 대부분 요격돼 전술적으로는 무용지물이다. 영국 가디언의 오웬 존스는 칼럼에서 ‘마이크 타이슨이 갓난아기를 패는 격’이라고 썼다.

그러나 미국 언론의 주류는 대개 이스라엘 편을 든다.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소년 넷이 납치·살해되자 지난 8일 양쪽을 나무라는 사설을 내보낸 뒤 이스라엘의 끔찍한 공습에 대해서는 17일 현재까지 사설 한 편 내보내지 않고 있다. 다른 나라 문제에 ‘이런 것까지 사설을 쓰다니’라는 경탄을 자아내는 평소의 뉴욕타임스답지 않은 태도다. 루퍼트 머독이 인수한 월스트리트저널은 하마스가 보유한 로켓의 성능을 과장하는 그래픽과 기사를 1면에 섬뜩하게 실어 친이스라엘 논조를 그대로 드러냈다.

유대인은 세계의 미디어를 장악함으로써 이스라엘에 유리한 국제정치 환경을 조성해왔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LA타임스 등 미국의 유력지들은 유대자본이 설립한 신문이고 주요 필진에도 유대인이 대단히 많다. 방송의 경우 앵커만 하더라도 전설이 된 바바라 월터스(ABC)와 래리 킹(CNN)에 이어 케이티 쿠릭(ABC, YahooNews) 등이 주요 매체에서 뉴스를 요리하는 자리에 앉아있다. 통신사는 미국 AP와 UPI, 영국 로이터 등이 모두 유대자본으로 설립됐으니 중동 문제에 관한 뉴스와 논평이 어느 쪽을 두둔할지 짐작이 간다.

▲아인슈타인, 번스타인…
유대인들 이름에
‘돌’(Stein)이 많이 들어간 사연

▲2천년간 당한 박해
 팔레스타인서 재연

▲미국 언론 장악한 유대인
 한국 언론 미국 의존도 높아
 편파 보도 심각

▲게임처럼 무기와 작전 소개
 전쟁 원인·참상 보도 소홀로
 전쟁 범죄 방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영화사인 워너브러더스, 파라마운트, 컬럼비아, 유니버셜, 20세기폭스, MGM도 모두 유대자본으로 설립됐다. <홀로코스트>, <쉰들러리스트> 등 유대인의 애환을 그린 영화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쉰들러리스트>를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역시 유대인이다. 이스라엘이 저지른 수많은 전쟁범죄마저 묵인하는 지구촌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한 게 바로 할리우드 영화다.

유대인이기에 친이스라엘 논조를 보일 거라고 속단하는 것은 또 다른 인종주의적 해석일 수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유착과 타국 침략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는 미국의 대표적 지성 또한 유대인이다. 촘스키와 하워드 진이 그 예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와 경제,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는 유대인의 영향력에서 미국 언론은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미국 미디어의 성향을 감안하면 한국 언론의 지나친 미국 의존은 특히 중동 문제 보도에서 심각한 편파성으로 표출될 수 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을 계기로 우리 언론의 중동 관련 보도의 문제점으로 맨 먼저 꼽을 수 있는 게 인용원문과 취재원의 미국 편중 현상이다.

아랍계 매체이면서도 중동문제를 그런대로 균형있게 보도하는 알자지라(Al-jazeera)와 알아라비아(Al-Arabia)는 영어방송도 내보내는데 한국언론의 인용빈도는 서방언론 인용건수에 견주어 극단적 불균형을 드러낸다. 이스라엘 매체 중에서도 타임스오브이스라엘(Times of Israel)처럼 객관보도를 하는 곳이 있지만, 한국 언론은 거의 외면한다.

한국 언론사 중에는 미국에 몇 명씩 특파원을 두고도 중동에는 단 한 명도 보내지 않는 ‘전통’을 고수하는 데가 많다. 이번 사태에는 조선일보만이 임시지만 기자를 특파해 그나마 현지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평소 확보된 취재원이 없어 전장에 고립된 듯한 모습밖에 보여주지 못해 안타깝다.

경향과 한겨레는 워싱턴·베이징·도쿄에 특파원을 두고 있을 뿐 중동은 물론 유럽에도 특파원이 없으니 미국 언론에 편중될 소지가 있다. 체류비용이 비싸고 남다르게 쓸 기사도 많지 않은 도쿄보다 비용도 적게 들고 뉴스의 보고인 중동에 특파원을 두는 게 진보언론의 특장을 드러낼 수 있는 ‘합리적 선택’이 아닐까? 일본은 사실 전문기자만 있으면 서울에서도 ‘커버’할 수 있는 지역이다. 실제로 많은 서방언론은 주로 도쿄에, 가끔은 서울에 특파원을 두고 두 곳을 함께 취재한다.

더 중요한 건 지역 문제를 파고들려는 전문기자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에 그나마 경향신문은 상대적으로 기사를 많이 내보내고, ‘전면전’ ‘교전’ 등 서방언론의 용어 대신 ‘학살’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경향이 15일자에 국제인권센터 보고서로 가자지구의 삶을 조명하고, 아이언돔이 미국 오바마 정부의 원조와 기술로 만들어졌다는 기사를 크게 실은 것도 돋보였다. 이는 담당기자가 외국 매체 모니터링을 폭넓게 해온 결과 균형된 관점을 갖게 됐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사설을 쓴 신문도 경향, 한겨레, 한국뿐이었다. 다만 경향이 14일자 사설에서 ‘전면전으로 번질 경우’ 운운한 것은 옥에 티였다. 한국 신문이 이런 사설을 쓰는 게 무슨 영향을 미칠까 하는 ‘국제 사설 무용론’을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제일 겁내는 것은 유대인이 장악한 미디어 환경에 균열이 가는 것 아닐까? 팔레스타인의 저항은 우습게 알아도 세계의 여론과 유대자본에 대한 불매운동은 겁나는 일이다. 이스라엘 대사관들과 정보기관도 각국의 여론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이다.

학살의 참상과 원인 규명에는 소홀하던 중앙일보가 ‘명중률 90%…하마스 로켓포 막아낸 아이언돔’(12일자) 기사를 내보낸 것은 잘못된 전쟁보도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무기 성능에 열광하는 흥미 위주 기사는 무기마니아들 웹사이트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자 지구 침공 말고도 국제 기사 홀대는 한국 언론의 뿌리깊은 병폐다. 국제면은 지면도 적지만 우선 제일 안 보는 맨 안쪽에 배치된다. 영국 신문들이 전체 기사를 국내/국제(National/International)로 대별하고 국제 기사에 상당한 비중을 두는 것과 대조된다. 제호에도 ‘세계’가 들어간 르몽드(Le Monde)는 1면부터 국제 기사를 많이 실을 뿐 아니라 종합면 바로 다음에 국제면이 시작된다.

국제 보도에 소홀한 것은 우리 언론이 국내 정치 기사와 월드컵 같은 메가 이벤트에 몰입한 대가이기도 하다. 정치인이 누구하고 밥 먹었다는 것까지 상세보도를 하는가 하면 동작을 선거구 공천을 둘러싼 기사가 종합면에 한 달 가까이 실리는 게 한국 신문이다. 그 대가로 죽음 앞에 방치되는 건 팔레스타인의 민간인들이다. 형법에서는 남의 범죄행위에 도움을 주는 것을 방조죄로 처벌한다.


* 이 기사는 <경향신문>과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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