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수의 미디어 속 이야기]

▲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나는 ‘보수’라야 마땅하다. 영남 남인의 후예이고 안동 출신에 교장선생의 아들이니 거의 태생적 보수 아닌가? 가족과 한국사회의 행복과 질서를 추구하고, 나라에 대한 애정도 국민행동본부 같은 맹목적 애국단체 사람들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극우’ 소리를 듣는 문창극씨와 일치하는 경력도 많다. 그는 나보다 여섯 살 위로 같은 대학교에서 학사·석사 과정을 마쳤고 해군 학사장교로도 선배다. 기이하게도 백령도 해군 레이더기지에 근무하다가 서울 대방동에 있던 해군본부로 전출돼 부관을 한 것까지 똑같다. 

그러나 그때부터 인생행로가 조금씩 달라진다. 그는 군대에 있으면서 대학원에 다녔지만, 나는 대학원과 군역을 차례로 마치느라 5년 반이 걸렸다. 그는 제도적으로 대학원에 다닐 수 있게 돼 있었다고 설명했는데, 나만 바보였나? 

만 서른에 보수신문인 조선일보에 입사해 보니 7살 적은 동기가 있었고 ‘어린 선배’도 많았는데 위계가 엄격한 신문사에서 불편한 점도 있었다. 고위관료와 판검사, 재벌2세 등 잘나가는 취재원 중에도 병역 면제를 받은 이들이 많았다. 취재하고 기사 쓰면서 ‘한국은 여러 면에서 공정한 사회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기득권층에 대한 실망이 커져갔고, 결국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했다. 

병역 문제로 좁혀보면 차라리 군복 입고 집회하는 ‘가스통할배’들이 가진 것 없을지라도 의무를 다한 분들 아닌가? 한국의 기득권층은 귀한 신분일수록 사회에 헌신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커녕 의무보다 권리의식에 강하고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작다. 대신 기회주의적이고 출세지향적이며 높은 자리에 서면 무조건 지배하려 드는 권위주의자들이 많다. 

그들이 총리나 장관 등 고위공직 후보로 지명되면 거의 예외 없이 도덕성이 도마에 오르는 것은 한국의 기득권 세력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는 단면일 따름이다. 그들은 현직에 있을 때는 물론이고 은퇴 후에도 온갖 이익을 독차지하려 든다. 문창극씨는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 이사장으로 있을 때 자신을 고려대 언론정보학부 석좌교수로 추천 선발해 한 강좌만 맡으면서 1년간 5000만원을 받았다. 

서울대 총동창회 부회장인 그는 서울대에서도 학생 장학금으로 주로 쓰이는 동창회 예산에서 5000만원을 받기로 하고 초빙교수로 재직하다가 총리 후보로 지명됐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에서 ‘저널리즘의 이해’ 과목을 가르쳤는데, 학생들 강의 평가는 ‘배울 게 하나 없다’ ‘학과에서 왜 이런 사람을 초빙했는지 모르겠다’ 등이었고, 평균 10점 만점에 겨우 3점을 받았다. 

문제는 안 그래도 기득권 체제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는 측면이 있는 서울대나 고려대 같은 유수 대학들이 극우 인사를 아무런 생각 없이 초빙해 학생들에게 편향된 이념을 심어준다는 점이다. 정당도 언론도 보수·진보가 양립된 유럽 국가의 학교교육은 양쪽의 가치를 고루 전달해 학생들이 스스로 가치관을 형성하게 한다. 보수와 진보로 갈라지더라도 상대방을 이해하는 합리적 보수·진보가 두 주류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중앙일보에 실린 ‘공짜 점심은 싫다’는 제목의 자기 칼럼을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는데, 그 칼럼은 무료급식에 대해 ‘사회주의적 발상’이며 ‘세금은 국민이 내고 생색은 정치인들이 내는 기막힌 일’이라고 매도했다. 직접 들어보지는 않았지만, 그의 ‘저널리즘의 이해’ 강의는 학생들에게 저널리즘을 ‘오해’시켰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는 여러 칼럼에서 ‘사회 복지병’을 ‘부패보다 무서운 병’이라고 비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도 압도적 꼴찌 수준인 우리나라 복지지출을 감안하지 않은 궤변이다. 일자리만 있으면 전 가족이 뼈 빠지게 일할 각오가 돼있는 우리나라 저소득층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복지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사람은 ‘보수당의 아버지’라 불리는 벤저민 디즈레일리 총리였다. 

중앙일보는 문창극씨를 ‘올곧고 바른 정통 보수주의자’라 평했는데,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 평가를 받을 사람은 김구·이회영·함석헌·장준하·김준엽·리영희·황석영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앞의 두 사람은 독립운동가였고, 함석헌은 신의주 반공학생의거의 사상적 배후였다. 장준하·김준엽·리영희는 일제나 북한과 싸우려고 장교로 자원 입대했고, 황석영은 해병대로 월남전에 지원했다. 남인의 본향인 안동에서도 실은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같은 독립투사들이 좌우를 막론하고 많이 나왔다. 보수주의자들이 좌파로 몰리는 것 자체가 한국사회가 얼마나 우경화해 있는가를 말해주는 증거다. 

 

일러스트 경향신문 김상민 기자

▲ 황석영·이문열씨와 나눈 케임브리지 대화
보수라야 마땅한 내가 진보로 늙어가는 이유

▲ 사이비 보수 득세 2기 내각은 국민과 싸우려는 전투대형
국민 눈물 닦아주지 못해 보수 망신시키는 꼴뚜기 될 듯
보수 정체성 지키려면 끊임없이 개혁해야 하는데…

보수신문에도 합리적인 보수논객들이 꽤 있다. 언론계에 조금만 탐문해보면 보수정권의 성공에 기여할 인물들이 있을 텐데 극우 인물 중에서 뽑다 보니 인사 참사가 난 것이다. 문창극씨에 대해서는 다른 보수신문들까지 비판적이었는데 중앙일보는 그를 적극 옹호해 우리 언론의 치부인 지독한 자사 이기주의를 드러냈다. 많은 비판을 받은 그의 칼럼들은 그가 중앙일보 주필이었다는 점에서 중앙일보의 논조이기도 했다.

물론 문창극씨도 억울한 부분이 있어 보인다. 일부 언론이 그에게 ‘친일파’ ‘반민족주의자’ 낙인을 찍은 것은 지나쳤다고 본다. 식민사관에 젖어 있다 해도 ‘친일파’로 단정짓는 것은 비약이다. 그러나 그 수많은 극우적 시각의 칼럼들을 제쳐두고, ‘KBS가 교회 강연 동영상을 짜깁기로 선동해서 청문회에 못 갔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일종의 ‘짜깁기’ 보도다. 문창극씨의 반론권은 보장돼야 하지만 취재진은 그가 접촉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의 낙마에 대해 ‘KBS 책임론’을 강조하는 것은 KBS 사장 선임을 앞둔 시점인지라 특별한 의도가 있는 듯하다. 그 보도를 역시 극우인 박효종씨가 위원장으로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심의한다는 점도 우려된다. 그는 5·16 쿠데타를 찬양한 뉴라이트이니 친일과 독재를 비판하는 방송은 이제 보기 힘들어진 건가? 

경향신문을 비롯한 언론들은 여러 번 검증 시스템 문제를 지적했지만, 인사난맥의 더 큰 요인은 검증 시스템이 아니라 대통령이다. 윤창중 초대 대변인의 과거 칼럼이나 방송 발언도 극우적일 뿐만 아니라 유치찬란했는데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발탁한 것은 박 대통령이 그의 글과 말을 좋아했기 때문일 터이다. 박효종씨와 문창극씨를 지명한 것도 박 대통령이 그들의 글에 열광하고 가치관을 공유했기 때문이리라.

정홍원 총리의 사표를 반려하는 식으로 총리 지명 파동이 봉합됐지만, 문제는 국정원장·부총리·장관 후보자들이다. 그들은 막강한 실제 조직을 끼고 있어 실권한은 의전이 주임무나 다름없는 총리보다 더 세다. 그런데 보수신문들까지 파헤쳐놓은 후보자들의 비리는 그 조직을 맡겨서는 도저히 안될 정도로 악성이다. 업무와 연관된 게 많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의 도덕성보다 훨씬 더 깊이 분석해야 했던 기사는 그들의 사고방식과 그에 따라 앞으로 전개될 정책의 방향이다. 정치공작에 자주 끼어들었던 사람이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차단하고 국정원을 개혁한다고?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를 옹호하고 기여입학제를 주장하고 전교조를 증오하다시피 하는 교육부 장관이 밀고 나갈 교육정책은 뭘까? 성장지상주의자인 경제부총리는 양극화 해소와 경제민주화가 급선무인 우리 경제를 어디로 끌고 갈까? 이승만을 찬양하고 뉴라이트를 적극 옹호하는 안전행정부 장관은 시민들의 집회와 시위에 어떻게 대처할까? 

2기 내각 진용은 ‘적폐’가 아니라 국민과 싸우려고 전투대형을 갖춘 것이다. 실패한 1기 내각보다 훨씬 수구적인 내각으로 뭘 하겠다는 건가? 국민의 눈물은 안중에도 없고 대통령의 눈물만 닦겠다는 결사옹위 내각인가? 제대로 된 보수라면 좀 손해를 보거나 힘들더라도 정도를 걷고 약자를 배려하는 미덕을 보여야 한다. 지금 국가를 개조하겠다며 전면에 나서고 있는 이들은 보수를 참칭하는 사이비 보수다. 

진정한 보수를 욕먹이는 자칭 보수들은 어물전 망신시키는 꼴뚜기와 다를 바 없다. 내가 바라는 것은 한국에서도 진정한 보수·진보세력이 양립해 경쟁하는 것이다. 보수도 진보도 변하지 않으면 수구가 된다. 영국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이론가인 에드먼드 버크는 권력남용에 반대했고 “보수는 보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케임브리지에 6년간 머물 때 좌우 가리지 않고 많은 인사들이 우리 집을 방문해 밤새 얘기를 나누곤 했다. 그 중에는 소설가 황석영씨와 이문열씨도 있었다. 흑맥주를 막걸리 삼아 통음한 이문열씨는 귀국 후 쓴 <신들메를 고쳐매며>라는 책에서 나를 언급했다. ‘나와는 출신 지역과 모교, 그리고 가문과 정신적 배경이 너무 많이 겹쳐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이 나와 그토록 달랐다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실은 이상할 것도 없다. 진정한 보수와 진보라면 진정성 하나로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젊어서 보수면 가슴이 없고 늙어서 진보면 머리가 없다’는 말이 있다. 차라리 ‘머리가 없다’는 욕을 먹을지언정 한국의 보수가 저 모양이라면 나는 진보로 늙어가련다.


* 이 기사는 <경향신문>과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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