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수의 미디어 속 이야기]

▲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집권당은 언제든 그들 노선을 지지해주도록 압력을 넣었으나 이를 거부해온 게 BBC 역사였다.” 이라크전쟁 보도의 공정성과 국익 논쟁이 치열하던 2003년 4월 내가 공부하던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의 심포지엄에서 그렉 다이크 BBC 사장이 한 말이다.

지금 한국의 공영방송 KBS와 MBC의 최고위 간부들은 뭐라고 답할까? 언론인으로서 양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불공정 보도 압력을 받아들였다고 고백할 테고, 양심이 아예 없다면 ‘근거 없는 폭로’라고 잡아떼지 않을까? KBS에서는 김시곤 보도국장과 5일 이사회에서 해임된 길환영 사장을 각각 대표인물로 꼽고 싶다.

다이크 BBC 사장은 블레어 정권의 압력을 거부하다 2004년 1월 결국 쫓겨나지만 퇴임인사를 하러 보도국에 들렀다가 열렬한 박수를 받는다. 그는 책상 위에 올라가 “우리가 지키려고 노력한 것은 BBC의 정직성과 독립”이라 외쳤고 수많은 기자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그가 사옥 밖으로 나가자 군중이 운집해 그의 차를 가로막았고 한 여성은 앞 유리창에 립스틱으로 ‘그렉, 사랑해요’라고 썼다. 그 감동적인 장면은 생방송으로 중계됐다.

BBC 직원들은 거의 전부가 모금에 참여해 ‘BBC 독립’이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전면 광고를 실었다. BBC는 자기들 조직이익을 위해 전파나 수신료를 사용하지 않는 전통이 서 있다. 블레어 정권이 ‘BBC 개혁’을 명분으로 ‘허튼 보고서’를 발표했을 때 내가 놀란 것은 BBC 보도 태도였다.

한국 언론의 자사 이기주의에 익숙한 나는 BBC가 ‘허튼 보고서’를 엄청나게 비판할 걸 기대하고 밤 10시 메인뉴스를 지켜봤다. 그런데 웬걸, 그 보고서 내용을 충실히 전할 뿐 아니라 BBC 견해는 뉴스 말미에 짤막하게 보도하는 게 아닌가? 그 대신 BBC와 공영성 경쟁을 하는 Ch4 등이 보고서가 속임수임을 파헤쳤다.

이 장면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권력으로부터 공영방송을 지키는 수호자는 내부의 사장과 직원뿐 아니라 외부의 다른 언론과 국민이란 사실이다. 블레어 정권은 이라크전쟁을 비판하는 BBC를 잠깐 겁주는 데 성공했으나, 영국의 시민의식은 85% 안팎 비율로 BBC 손을 들어줬고, 블레어는 끝내 권좌에서 축출됐다.

보수정권이 들어선 이래 KBS와 MBC가 있는 여의도에서 벌어진 장면은 정반대였다. 권력의 압력으로 왜곡 보도하는 수준을 넘어 자발적 ‘대통령 감싸기’와 ‘정권 홍보’를 서슴지 않았다. 선거캠프 출신 등 편향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 공영방송 사장으로 발탁되는 일이 오히려 일반적인 탓이다. 그들은 한직에 머물던 친여성향 무능력자들을 요직에 발탁하고 의식 있고 저항하는 기자·피디들에게 무자비하게 인사권을 휘둘러 좌천시키거나 내쳤다.

KBS에서는 비판이 실종된 세월호 보도와 “대통령 비판은 한 차례도 없었다”는 김시곤 보도국장의 고백을 계기로 불공정 보도 불만이 행동으로 옮겨졌다. 기자 500여명 중 470명 등 직원 80%가 제작거부를 하고 노조원이 아닌 간부들마저 대부분 보직사퇴를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길환영 사장은 ‘방송을 좌파 노조에 맡길 수 없다’는 궤변으로 버티기를 해왔다. 그렇다면 상당수 보수성향 학자들까지 포함하는 언론학자 수백명과 고려대 미디어학부 학생회가 사장 사퇴를 촉구한 것도 노조가 사주한 것이었나? 길 사장은 6개 보수신문에 사실상 자신을 변명하는 광고를 냈는데 ‘수신료의 가치’를 이렇게 추락시켜놓고도 수신료를 올려달라고 손을 벌렸다.

그가 해임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KBS의 앞날이 밝은 것은 아니다. 지금과 같은 사장 선임 제도에서는 비슷한 친정권 인물이 뒤를 이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MBC에서 김재철 사장이 해임된 뒤 방송문화진흥회가 출범시킨 안광한 사장 체제는 ‘김재철 2기’나 다름없는 친정권 진용이었다.

KBS 이사회는 여야가 7 대 4로 구성돼 있고, 이사추천권을 갖는 방송통신위원회도 절대다수 위원을 정권이 선임하기 때문이다. 방송문화진흥회도 비슷하게 운영된다. 유신시대에 국회의원 3분의 1을 ‘유정회’라 하여 대통령이 임명하던 독재 체제와 무엇이 다르랴.

이번 기회에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정권의 방송 지배는 계속될 것이다. 세월호 사건과 김시곤 국장의 폭로가 기폭제가 돼 사장이 해임되기는 했으나 이번 사장 해임에 안도해 현행 제도에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될 터이다. 김 국장도 길 사장 체제에 충성하다가 세월호 사건이 터져 희생양으로 몰리자 폭로를 감행했을 뿐이다.

 

일러스트 경향신문 김상민 기자


▲ 사장 해임에 안도하면 정권의 방송 지배체제
고칠 기회 잃게 된다

▲ 똑같은 친정권 인물 사장 선임 막으려면
유신 시대 ‘유정회’ 같은 여당 절대다수 위원회 바꿔야

▲ 막말 오락물, 불륜 드라마 홍수
공적책무 소홀 KBS·MBC는 ‘정권이 연주하는 피아노’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공영방송인 독일 ARD와 ZDF, 프랑스 FT, 노르웨이 NRK처럼 경영권 창출이 여당이 아니라 여야 균형 위원회 또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방송평의회에 맡겨져 있는 점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방송은 태생적으로 공영방송일 수가 없다. 그들 기구에서도 사장 선임은 4분의 3 또는 5분의 3 이상 특별다수제로 의결하게 돼 있어 여당의 전횡은 제도적으로 차단돼 있다.

BBC는 정부가 기구 구성에 영향을 미치는 ‘BBC 트러스트(Trust)’에서 사장을 선임하지만 위원 간 합의를 원칙으로 한다. 블레어 정권은 다이크 사장을 몰아냈지만 후임으로는 야당도 인정하는, BBC 출신 마크 톰슨을 지명할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영방송 이사회가 사회의 다양성을 균형 있게 반영하고 사장 선출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지키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나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대다수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는 극우 뉴라이트나 선거캠프 인사를 임명하는 등 오히려 역주행하고 있다.

KBS와 MBC 구성원에게 던져진 더 큰 과제는 스스로 방송문화와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번에 보직간부들이 사퇴한 것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왜 좀 더 일찍 이런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체제에 순응해왔는지 뒤돌아볼 일이다.

방송의 공적 책무를 소홀히 해온 책임은 길 사장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잡담과 막말, 사생활 들추기와 불륜이 판치는 오락물과 드라마를 제작한 이는 바로 그들이었다. 유럽 국가들이 대개 다(多)공영 소(少)민영 방송체제를 구축한 것은 ‘상업경쟁’이 아니라 ‘공영경쟁’을 하라는 취지인데, 우리는 KBS·MBC가 SBS·종편방송과 상업경쟁에 몰입한다.

나는 수신료를 대폭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지만, 지금 수준의 방송이라면 2500원도 아깝다. 드라마만 하더라도 너무 많기도 하지만, 회당 수천만원씩 준다는 인기작가와 톱탤런트에 의존해 고비용이 발생하는 현실에서 수신료를 흔쾌히 내려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BBC의 <이스트엔더스(EastEnders)>는 런던 시티 ‘동쪽 끝(East End)’ 서민주거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달동네 사람들’ 같은 드라마인데, 30년째 방영되고 있지만 평범하게 생긴 배우들이 배역을 맡아 시청자와 함께 늙어간다.

막장 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할 수는 있지만, 문제는 그것이 참담한 사회현실을 개선하려는 정치의식을 잠재우고 공영성을 추구하는 프로그램들을 밀어낸다는 사실이다. BBC에는 심층보도와 시사교양, 특히 정치현안을 흥미롭게 전달하고 분석해줌으로써 국민의 민주주의 의식을 고양하는 프로그램들이 매우 많다.

<오늘의 정치(Daily Politics)>는 영국의 정치가 매일 어떻게 돌아가는지 내막을 파헤치고 수요일에는 총리와 야당 대표 간 의회 설전을 중계하고 논평한다. 그 밖에도 시청자의 질문에 답하는 <질문 시간> 등 수많은 정치쇼와 대담을 방영해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높인다.

이런 방송문화를 조성하려면 방송에 대한 가치관 정립이 선행돼야 한다. BBC 편성지침의 부제는 ‘가치와 표준(Values & Standards)’이다. BBC가 추구하는 가치들을 천명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취재·보도·제작 표준들을 세세히 적어놓았다. 그런 걸 정교하게 정해놓고 숙지했더라면 ‘세월호 보도참사’도 일어나지 않았을 터이다. 이 지침은 2만에 가까운 BBC 직원의 일탈을 막는 울타리다. 다이크 사장도 개인적으로는 이라크전에 찬성한 사람이지만 이 지침에 묶여 이라크전을 비판하는 보도의 수호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언론의 자유는 모든 자유를 자유롭게 하는 자유’라고 한다. ‘미디어 민주주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디어, 특히 방송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관건이다. 그런데 우리 공영방송은 ‘정부가 연주하는 피아노가 돼야 한다’는 괴벨스의 말을 계속 추종할 건가? KBS와 MBC는 민주주의의 적으로 남을 것인가, 동지가 될 것인가?

 


 * 이 기사는 <경향신문>과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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