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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아름다운 동네’는 왜 헐렸나
[상상사전] ‘재개발’
2014년 07월 08일 (화) 23:17:31 함규원 기자 qwonee@gmail.com

   
▲ 함규원 기자
‘사내는 서울특별시 어디에도 붙박여 있지 못했다. 노모와 어린 딸,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전세방을 떠돌았다. 이번 집만 해도 두 달을 채우지 못해 떠나는 것이었다. 애초 팔려고 내놓은 집인 줄 알면서도 이사했던 게 잘못이었다. 주인은 사전 통보도 없이 집을 계약해 놓고 사내에게 방을 비워달라고 요구했다. 서울에서 살 곳을 찾지 못한 사내는 열여덟 평짜리 연립주택을 마련하여 부천으로 떠났다. 쫓겨가는 것은 아니라고 거듭 생각하며 그는 멀고 아름다운 동네, 원미동(遠美洞) 사람이 되었다.’

양귀자의 연작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한 장면이다. 서울에서 집값을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은 등 떠밀려 외곽의 위성도시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내 아버지도 소설 속 사내처럼 서울을 쫓기듯 떠나 원미동에 왔다. 아버지는 결혼 뒤 식구들과 함께 살 제대로 된 집이 필요했다. 만약 아버지가 사내의 이 말을 듣는다면 고개를 끄덕이실 것 같다.

“그렇게 수도 없이 이사를 다니며 얻은 결론 한 가지, 집이 없으면 희망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안정적인 거주지를 찾아 이곳에 왔지만, 원미동도 개발지상주의 횡포를 벗어나지 못한 곳이었다. 초등학교 때 일이다. 매일 오가던 익숙한 거리가 어느 날 낯선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길바닥이나 벽에 붉은 스프레이로 휘갈겨 쓴 글씨들이 있었는데, 지금 정확히 기억나는 글귀는 ‘두산은 각성하라’이다. 당시 원미동에 두산아파트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 인근 주택에 사는 주민들과 상인들이 단체로 항의하는 모양이었다.

만약 원미동에 그보다 더 좋은 중대형 고가 아파트가 들어선다면, 대다수 주민은 이곳을 떠나야 할 것이다. 새로 지은 넓고 비싼 집을 감당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주민은 많지 않다. 그들은 서울에서 헤매다 외곽의 고만고만한 도시에 정착했던 것처럼, 원미동이 ‘멀고 아름다운 동네’라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하며 새로운 동네에 정착해야 할 것이다.

도시 재개발 사업으로 아파트보다 주택이나 빌라가 흔한 동네를 찾기 어려워졌다. 도시의 지속적인 발전과 저소득층 주민의 안정된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추진해야 하는 사업이 주민 수준과 동떨어진 수익성 중심 사업으로 변질했기 때문이다. 수익이 높은 고가 아파트를 건설해 개발이익을 많이 남겨야 한다는 개발지상주의 논리는 서민들 삶의 터전을 빼앗았다. 서울 길음뉴타운 4구역의 원주민 재정착률은 17.1%에 불과하다. 뉴타운 지정 후 3년 동안 90% 가까운 주민이 살던 동네를 떠났다. 주민 대부분이 비싼 입주 대금을 치를 경제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 뉴타운 지역 주민 재정착률은 60%대라고 한다. 절반은 살던 동네가 좋아지면, 결국은 그곳을 떠나야 한다는 역설과 마주한다. 소형 주택이 중대형 주택으로 바뀌어 살 곳을 잃기 때문이다. <원미동 사람들>의 사내는 “서울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이란 집과 같은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그는 넓고 넓은 서울  어느 곳에서도 희망을 찾지 못했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함규원 기자]
단비뉴스 지역농촌팀 함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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