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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기사’ 쓰다가 언론에 환멸 느꼈죠
청년인턴의 현실 ② ‘알바’ 취급에 포기한 꿈
2014년 01월 22일 (수) 09:55:42 김혜영 박채린 기자 cpfmsl@naver.com

“부푼 꿈을 안고 시작했죠. 지금은...그 쪽을 쳐다보기도 싫어요.”

지난해 3월부터 9월까지 한 경제매체에서 인턴기자로 일한 박지연(28·여·가명)씨는 현재 일반기업의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다. 박씨는 언론사에서 인턴을 했던 경험을 “시간낭비였다”며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대기업에 취직하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대학을 다니다 해외대학으로 편입해 정치학을 전공한 박씨는 기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졸업을 앞두고 부푼 마음으로 귀국했다. ‘생생한 현장 체험을 할 수 있고, 기사쓰기 훈련도 받을 수 있다’는 공고에 끌려 지원한 인턴기자 생활은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제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어요. 교육도 없었고요. 그러다 하루 종일 ‘기사 쓰기’가 아닌 ‘기사 베끼기’를 하게 됐죠.”

인턴을 ‘기사 찍는 기계’로 만드는 신문사

박씨는 자신을 포함한 인턴들이 ‘기사 찍는 기계’였다고 말했다. 검색순위가 높은 뉴스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노출시켜 독자 유입을 늘리려는 목적으로 하루 종일 통신사 기사들을 베껴 쓰는 게 일이었다. 때때로 출입기자가 있는 분야의 기사를 인턴이 먼저 베껴내면 정규직 기자들은 “너희들이 뭔데 기사를 먼저 쓰냐”며 화를 내기도 했다. 간혹 인턴들이 직접 기획한 기사를 취재해서 쓰는 경우도 있었지만 현직기자들의 피드백은 “짧게 써라, (길이가 기니) 나눠서 내자” 정도에 불과했다. 다섯 명의 인턴들은 취재와 기사쓰기 훈련은커녕 사실상 방치된 처지였다고 박씨는 토로했다.

"아르바이트생이랑 다를 게 없는 인턴생활을 하면서 언론이 하는 일 자체에 회의가 들었습니다. 배우지는 못하고 소비만 되는 느낌도 들었고요. 그래서 아예 언론 쪽의 꿈을 접게 됐어요.”

박씨는 인턴기간 중 주 5일제로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6시 무렵에 퇴근했고, 급여도 월 100만원 수준으로 근무 강도에 비해서는 양호한 편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 일을 배울 수 있다는 기대와 달리 교육의 기회는 거의 없고 이른바 ‘낚시기사’를 남발하는 언론의 실상에 실망하면서 진로 자체를 바꾸게 됐다는 것이다. 

   
▲ 인턴 선발에는 많은 지원자가 몰리지만, 내실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갖춘 기업은 드물다. ⓒ KBS

박씨가 근무했던 매체는 2013년의 경우 ‘내 바이라인(작성자이름)이 나가는 기사를 쓰는 설렘과 막중한 책임감’ 등의 홍보문구를 내세워 연간 9번이나 3개월과 6개월 단위로 인턴을 모집했다. 박씨 등 인턴 경험자들은 ‘실시간 검색어’ 위주의 기사쓰기를 기자들이 안 하려고 하니 인턴을 뽑아 맡기는 것이며, 인턴도 수시로 그만두니까 채용공고를 자주 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특별히 자주 뽑는 것은 아니고, 인턴을 회사내부 팀별로 모집하다보니 다른 회사보다 자주 뽑는 것처럼 보이는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언론사들은 대개 대학생들의 방학에 맞춰 여름과 겨울에 인턴을 뽑고, 8~10주 정도 현장 취재와 기사쓰기 훈련의 기회를 준 뒤 수료증을 발급한다. 회사에 따라 체계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갖추고 현직기자들이 기사쓰기 등을 지도하는 곳도 있지만 박씨가 근무한 경제매체처럼 ‘클릭수를 높이기 위한 기사 베끼기’ 등에 인턴을 동원하는 곳도 있다. 특히 영세한 온라인 매체에서 이런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청년구직자들은 취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인턴 경험을 희망하지만 실제로는 '이력서 한 줄' 외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말한다. ⓒ 김혜영

업무 훈련 대신 복사와 페인트칠에 동원되기도

금융권 인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8월부터 12주 동안 서울 시내 한 은행지점에서 인턴사원으로 근무한 이재경(27·가명)씨는 “인턴은 한 마디로 이력서 한 줄”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제2금융권 회사에서 일하다 시중은행으로 옮기기 위해 회사를 사직하고 인턴사원에 지원했지만 취업지원 서류에 쓸 경력이 한 줄 늘었다는 것 외엔 얻은 게 없었다고 한다.

“은행의 서민금융부서에 근무하면서 금융에 취약한 계층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토익(TOEIC)이나 학벌보다 인턴을 통해 현장에서 실제로 경험을 쌓는 게 더 중요할 거라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이씨가 평일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6시 전후 퇴근하기까지 인턴으로서 한 일은 업무 참관과 복사 등 잔심부름이 전부였다. 업무가 밀려 고객이 기다리다 돌아가는 상황이 생겨도 인턴들에게는 실무를 도울 기회를 주지 않았다.

“궁금한 게 생겨서 물어봐도 제대로 답변도 안 해 주시고, 대충 때우고 가라는 식으로도 가끔 말씀하시고...인턴 교육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서민금융활성화를 위한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아이디어’ 등 과제를 내 주고도 제출한 보고서에 대해 아무런 피드백도 안 하더라고요.” 

   
▲ 정부의 청년인턴 지원제도를 활용해 연간 두 차례씩 인턴사원을 뽑은 은행들이 많지만, 현장에서는 복사 등 허드렛일만 시키고 실무교육은 외면하는 일이 흔하다. ⓒ KBS

대학에서 자연과학 분야를 전공하고 재작년 1년 동안 국가기관에서 인턴연구원으로 근무한 신동윤(30·가명)씨도 “연구가 아닌 시설관리만 했다”고 털어 놓았다. ‘연구현장에서 전문지식을 습득하고 실무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연수기회를 제공한다’는 채용공고와 달리 각종 기계의 상태와 수치를 점검하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때로는 기계의 페인트칠에도 동원됐다고 한다.

“정직원들이 인턴을 보면 하나같이 빨리 나가라고 했습니다. 이런데서 뭐하느냐는 거죠. 그만큼 비전도 미래도 없는 일이었어요.”

신씨는 주 5일, 하루 8시간을 일하며 월 120만원을 받았지만 어떤 전문성도 쌓을 수 없어 “그냥 허드렛일 하는 아르바이트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부 언론사, 은행권, 연구기관 등이 월 100만원 내외의 보수를 지급하며 인턴에게 ‘허드렛일’을 시킬 수 있는 것은 지난 2008년 이후 정부가 젊은 층의 일자리 확대를 명분으로 ‘청년인턴제’를 도입, 일정한 조건을 충족한 기업·기관들의 인턴 임금 중 일부 혹은 전액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씨가 근무한 연구소는 요즘도 ‘청년실업 극복과 이공계 분야 일자리 창출’을 내세우며 1년짜리 인턴연구원을 모집하고 있다. 청년들의 직업능력 향상이나 취업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알바 노동’을 시키는 데 국민의 세금이 쓰이고 있는 셈이다. (계속)


극심한 취업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장차 일하고 싶은 분야에서 인턴경험을 쌓는 일은 필수적인 진로준비과정의 하나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절박한 처지를 이용, 제대로 된 직무교육이나 보수도 없이 노동력을 착취하는 기업과 기관도 적지 않다. 취업지망생들을 울리는 인턴 운용의 현실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의 청년기자들이 파헤치고 대안을 모색했다.(편집자)

* 이 기사는 KBS와 단비뉴스의 공동기획 '청년기자가 간다' 시리즈로 <KBS뉴스> 홈페이지와 <단비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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