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서울 곳곳에 숨겨진 도시농업 현장을 가다

“빌딩 숲 한가운데 이런 공간이 있었네요. 옥상텃밭에서 티타임이라니 정말 즐거워요!” 

▲ 홍대 옥상 텃밭 '다리'에서 답사 참가자들이 다과를 즐기고 있다. ⓒ 김연지

지난 달 31일 오전, 홍대역 인근 가톨릭청년회관 옥상은 들뜬 목소리로 가득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서울도시농업 현장답사 참가자들이었다. 답사 프로그램은 서울도시농업박람회 국제컨퍼런스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20여명 국내·외 전문가와 전날 경쟁을 뚫고 선착순 현장접수에 성공한 시민 15명이 답사를 함께했다.

도시인을 자연과 연결하는 ‘다리’

“저희 텃밭 이름 ‘다리’는 사람과 자연을 연결한다는 뜻으로 지어졌어요. 흔히 옥상은 위험한 공간, 닫힌 공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곳에서 옥상은 열린 공간, 소통하는 공간이죠.”

▲ 홍대 옥상 텃밭 '다리'의 이모저모. ⓒ 김연지

첫 번째 답사 장소는 홍대 옥상 텃밭 ‘다리’였다. ‘다리’의 농사 멘토인 도시농부 박정자씨는 “지금 마흔아홉인 나도 마흔 전에는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다”며 “도시농업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텃밭 ‘다리’ 회원은 요리사, 예술가, 학생 등 총 2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로 30대 청년층이다. 이들은 배워가며 농사를 짓는 ‘도시농업 학생’이기도 하다. 회원들은 매달 두 번 작물 기르는 법과 수확물을 활용한 요리법 등을 가르치는 농부학교에 참여한다.

텃밭 ‘다리’는 넓지 않은 면적인데도 다양한 작물로 가득했다. 박씨는 “우리 텃밭은 70평 정도밖에 안 되지만 보고 있으면 지루하지 않다”며 “개개인의 개성이 듬뿍 녹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홍대 텃밭 ‘다리’는 매년 봄 온라인 카페 등을 통해 회원을 모집한다.

“으하하하, 이렇게 하는 건가요? 막상 해보니 쉽지 않군요!”

▲ 독일 홈볼트 대학교에서 온 크리스티앙 율리치 교수가 모내기 체험을 하며 웃고 있다. ⓒ 김연지

모내기 풍경을 카메라에 담던 외국인 참가자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직접 모를 손에 잡았다. 옆에서 설명하는 대로 따라 하려 애써보지만 쉽지 않다. 멋쩍은 웃음을 짓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모두 따라 웃었다. 서울 도심에 딱 2 개 있는 논 중 하나인 노들섬 텃밭에서다.

공연장이 될 뻔 했던 소중한 공간

노들섬 텃밭은 원래 건물이 들어설 뻔 한 공간이었다. 이명박·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노들섬 부지에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추진하던 것을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 취소했다. 박 시장은 오페라하우스를 텃밭으로 대체했다. 한동안 버려져 있던 공간에 시민들의 ‘도시농장’이 생겨난 것이다. 노들섬 텃밭은 가족 중심의 시민농장과 회사, 동아리, NGO 등 12개 단체로 구성된 공동체농장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 아기자기한 노들섬 텃밭에는 파이프와 철사로 만든 농부 조형물도 있다. ⓒ 김연지

노들텃밭 지원센터 직원 김은주씨는 노들섬 텃밭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자연 순환’이라고 소개했다. 일회용품과 농약, 비닐을 사용하지 않으며, 수확 후 발생하는 폐 작물과 음식물 쓰레기는 모두 퇴비로 만들어 쓴다. ‘생태화장실’이라 이름 붙인 재래식 화장실에 모인 똥오줌도 모두 퇴비로 만든다. 텃밭 한 편에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원두막 지붕도 쌀을 탈곡한 뒤 나온 짚으로 얹은 것이라고 했다.

아빠는 농사짓고 아이는 곤충체험

창포, 미나리 등 수생식물이 자라고 있는 밭 사이 늪에 아이들이 잠자리채를 들고 뛰어다녔다. 열한 살인 표재민∙강민우군은 모내기 체험을 마치고 밭에서 뛰놀고 있었다. 표 군은 “텃밭을 가꾸는 아빠를 따라 놀러왔다”며 “친구 민우도 같이 데리고 왔다”고 즐거워했다.

▲ 아이들에게 텃밭은 배움터이자 놀이터이다. ⓒ 김연지

그늘에서 직접 수확한 채소로 친구들과 식사를 하던 이점숙(60)씨는 “작년부터 남편과 함께 가족 텃밭을 가꾸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친구 사이인 여섯 부부가 함께 나란히 텃밭을 분양받았다”며 “함께 놀며 가꾸며 텃밭생활을 즐긴다”고 했다.

굳이 생태를 훼손해가며 그럴 듯 해 보이는 건물을 지어 올리지 않아도 시민들에게 텃밭과 자연은 그 자체로 충분한 놀이거리이고 문화시설이었다. 노들텃밭 지원센터 김은주씨는 “텃밭 가꾸기는 아이와 어른, 가족과 친구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취미생활”이라고 말했다.

“우와, 채소값이 왜 이렇게 싸지? 그것도 친환경인데!”

강동구 친환경 농산물 직매장 ‘싱싱드림’에 들어서자 현장답사 참가자들이 탄성을 질렀다. ‘싱싱드림’은 전북 완주에 있는 현지식품(로컬푸드) 매장을 벤치마킹해서 만들어졌다. ‘도시농부’와 소비자가 직거래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한 것이다. 농산물 가격의 절반을 차지하는 유통비용이 빠지니 값은 쌀 수밖에 없다.

강동구의 현지식품 철학, ‘강산강소’(江産江消)

‘싱싱드림’을 만든 강동구 도시농업지원센터는 ‘도시농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조건에 맞는 전국 최초의 센터다. 강동구 도시농업과 김종건 로컬푸드지원팀장은 “‘강동구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을 강동구에서 소비한다’는 ‘강산강소(江産江消)’가 우리의 철학“이라고 설명했다.

▲ 강동구 '싱싱드림' 매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 김연지

‘싱싱드림’에서는 강동구 도시텃밭에서 생산한 친환경 농산물만을 판매한다. 운송거리 5km가 되지 않는 현지식품이다. 밭에서 밥상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3시간. 당일 수확한 채소를 센터로 가져와 잔류농약검사와 세척을 거친 뒤 매장에 진열하기까지 2시간을 넘지 않는다. 수확한 지 사흘이 지난 농산물은 모두 기부하고, 잔류농약검사에서 1%라도 농약이 검출되면 납품을 금지한다. 신선함과 안전함이 보장되는 비결이다. 농산물이 진열된 매대에는 생산자의 이름과 사진이 붙어있어 소비자에게 더욱 신뢰를 준다.

“어느새 열렬한 소비자층이 형성되었죠. 저렴한 가격으로 친환경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으니까요. 작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는데 이미 연 2억의 매출을 올리고 있어요.”

김 팀장은 “현재 학교급식과 지역음식점에도 공급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 강동구의 모든 시민이 로컬푸드를 먹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텃밭과 함께 살아나는 공동체의 정

마지막 답사지는 서울숲공원 텃밭이었다. 밭이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공원 끝자락에 거짓말처럼 예쁜 텃밭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텃밭 부지는 서울숲이 만들어진 지 10년이 되도록 잔디만 심어둔 채 쓰이지 않는 공간으로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정수장 연결 부지라 지반이 얕고 배수가 되지 않아 나무를 심기에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2012년부터 공동체 텃밭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넓이가 855㎡ 정도 되는데 잔디를 뽑고 땅을 고르는 단계에서부터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했어요. 첫 해에는 작물이 잘 자라지 않았지만 다음 해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했죠.”

▲ 서울숲공원 텃밭에는 시민들이 심은 온갖 작물이 자란다. ⓒ 김연지

서울그린트러스트 박양미 서울숲 코디네이터는 “‘아름다운텃밭가꿈이’ 라는 10개 팀을 모집해 지역주민들과 결합해서 텃밭을 운영하기 시작했다”며 “이후 ‘성동희망나눔’이라는 어르신 봉사팀이 합류하면서 짜임새 있는 농사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박 코디네이터는 “밭에서 나온 수확물을 개인이 전부 가져가는 게 아니라 소외계층에 기부를 한다”며 공동체 텃밭에서 감동을 받은 일화를 소개했다. 텃밭을 가꾸는 일부 구성원들은 정기적으로 독거노인이나 결식아동 등을 위해 자신이 수확한 농산물로 직접 밥상을 차린다. 박 코디네이터는 “구성원들이 자신이 키울 작물을 선정하는 가장 큰 기준은 ‘누구와 함께 먹을 것인가’인 것 같다”고 말했다.

“농사가 재밌어 죽겠어요”

서울숲공원 텃밭에는 계좌마다 이름을 붙인 푯말이 있다. 그 중 ‘수지텃밭’을 가꾸는 봉수지(72)씨는 서울숲공원 텃밭의 최고령자이다. 박 코디네이터는 봉씨를 “가장 연장자이자 가장 열정 넘치는 분”이라고 소개했다. 봉씨는 “가을에도 수확을 하려고 콩과 수수를 심으러 나왔다”며 “텃밭 가꾸기가 너무너무 재밌다”고 말했다.

박 코디네이터는 “이 곳엔 농사가 서툰 분도 많고 일흔이 되도록 흙 한 번 만져보지 않은 분도 있지만 모두들 농사에 열정적”이라고 말했다.

▲ 이명순씨가 텃밭에서 채소를 수확하고 있다. ⓒ 김연지

‘토실이텃밭’을 가꾸는 이명순(54)씨도 “농사가 재밌어 죽겠다”며 “이렇게 보람 있고 뿌듯할 수가 없다”고 연신 웃음을 지었다. 작년부터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는 이 씨는 텃밭 이름 ‘토실이’의 뜻을 묻자 처녀시절 별명이라며 웃었다. 이 씨는 ‘성동희망나눔’의 봉사자로 자신이 수확한 농산물로 독거노인과 소외아동에게 밥상을 차려주는 기부활동도 하고 있다.

도시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고민들

답사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함께 모여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가장 큰 화두는 ‘도시농업의 지속가능성’이었다. 오충현 동국대학교 교수는 “도시와 농업 양쪽 모두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며 도시농업을 교육과정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대학생 김은지(23)씨는 “젊은 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적인 홍보와 다양한 참여기회가 있었으면 한다”는 의견을 냈다.

▲ 답사 후 참가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 김연지

세계 각국의 도시농부들을 연결하는 국제적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의견도 나왔다. 소셜미디어서비스(SNS)와 온라인 포럼 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매년 정기적인 컨퍼런스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시됐다. 푸드저널리스트 제니퍼 코크럴킹은 “각국의 경험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씽크탱크가 필요하다”며 ‘International U.A. Think Tank’라는 이름을 제안하기도 했다. 세계 8개국 도시농업 전문가들은 앞으로 끈끈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가자는 데 동의했다.

이 날 답사에 참가한 조정인(41·여행사대표)씨는 “나도 집에서 옥상텃밭을 가꾸는 도시농부인데 다양한 도시농업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며 “앞으로 사무실 옥상에도 텃밭을 만들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참가자 김찬미(42·서구도시농업 네트워크)씨도 “아이들에게 텃밭 가꾸기를 가르치는 강사로서 더 배우려고 참가했는데 텃밭마다 각기 다른 개성을 느낄 수 있었다”며 “앞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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