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불패] 대산농촌문화재단, 농축산업의 고정관념을 깨다

‘기억하라. 만약에 악취가 나거나 보기에 좋지 않다면 그것은 좋은 농업이 아니다.’ 소에게 풀만 먹이는 등 자연의 섭리에 따라 가축을 키우는 농부 조엘 샐러틴이 쓴 책 <미친 농부의 순전한 기쁨>의 한 구절이다. 보통 농업은 악취 나는 고된 노동현장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조엘 샐러틴이 말한 ‘좋은 농업’은 어떤 모습일까?

대산농촌문화재단(이사장 오교철)이 재단장학생들에게 ‘좋은 농업’의 현장을 보여주었다. 재단이 ‘농업, 다양한 빛깔과 향기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마련한 이번 연수에는 농업CEO양성장학생 7명, 재단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이 함께 운영하는 농업전문언론인양성과정 장학생 4명이 참여해 2월 19일부터 3일간 경기 안성∙여주 인천 등지의 앞서 가는 농업 현장을 둘러보았다.

가장 오래된 산업인 농업이 새로운 산업으로 거듭나는 현장에는 활기가 넘쳤다.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고정된 틀에서 벗어난 사고방식은 농업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원동력이었다. 틀을 깨되 공급자와 소비자를 자연과 연결함으로써 경제적 이익도 올리는 방식이 돋보였다. 

처치 곤란한 부산물을 사골곰탕으로

경기도 안성의 ‘고삼농협 안성마춤 푸드센터’는 한우가 아니라 한우 부산물을 활용한 가공품을 생산한다. 축산농가의 악성 재고인 한우 사골을 원료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성공 사례다. 2012년 8월 개관 후 지난해 연매출이 24억원에 이르러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올해는 33억원의 연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소는 부위별로 소비자 선호도가 다르다. 안심과 등심은 잘 팔리지만, 우족과 잡뼈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소 한 마리 기준으로 소 다리 4개와 나머지 뼈를 모으면 40kg의 원료가 나온다. 20마리 분량인 800kg의 소뼈를 대형 가마솥에 20시간 이상 푹 고아내면 2인분짜리 한우 사골 곰탕 5,000개가 생산된다.

“고삼농협 조합장과 고삼면 농민들이 중심이 되어 1994년에 전국 최초로 한우 직판장을 열었습니다. 장사는 잘됐지만 망했지요. 안심이나 등심은 잘 팔리는데 다리살이나 잡뼈처럼 안 팔리는 부위가 계속 쌓였기 때문입니다. 농업인에게 생산물 일부가 계속 재고로 쌓이는 것은 굉장한 스트레스입니다. 현장에서 가공사업을 하면 그런 농민들 걱정을 상당 부분 덜 수 있습니다.”

최병찬(45) 고삼농협 안성맞춤 푸드센터 대표는 “가공상품을 개발하는 공장이 완충작용을 한다”고 말했다. 한우 가격에는 대개 소뼈 가격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유통업자는 소뼈가 재고로 남는다는 이유로 농민에게 제값을 치르지 않거나 소비자에게 덤터기를 씌우는 사례가 많다. 진공포장 곰탕 생산을 통해 소뼈를 처리하면 축산업 유통가격 기반을 안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동시에 지역 농가소득 증가에도 이바지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다.

▲ 상품성이 없는 난도 내 새끼같아 버리지 못한다는 향린농산 김남희 대표는 일을 하면서 얼마를 버느냐보다 얼마나 즐거운지를 고려하라고 조언했다. ⓒ 대산농촌문화재단

못 생긴 난초가 건강한 난초였네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에 있는 향린농산은 4,950㎡(1,500평) 규모로 제1농장과 제2농장으로 나뉘어 있다. 부부가 함께 운영하고 있는 향린농산은 14년간 저농약 풍란을 생산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주로 잎이 크고 둥근 대엽풍란과 잎이 뾰족하고 작은 편인 소엽풍란을 연간 20만 개 정도 생산한다.

“아이들에게 먹는 것만큼 가까이 두는 게 뭘까요? 바로 식물입니다. 그래서 농약을 최소화해 건강하게 키웁니다. 제가 키우는 난은 그렇게 예쁘지는 않지만 정말 건강합니다. 얼핏 상품 가치는 떨어져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가정집에 가면 더 잘 큰다는 장점이 있어요.”

대산농촌문화재단 농업CEO양성장학생 출신이기도 한 향린농산 안주인 김남희(39) 대표는 자신이 키우는 난초들의 남다른 생명력을 자랑했다. 이곳에서 크는 난은 저농약으로 키우기 때문에 면역력이 높아 소비자에게 팔려 가정집으로 갔을 때 환경이 변해도 잘 적응하고 오래 살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농약과 비료를 적게 쓰면 상품 가치는 떨어지지만, 난의 자생력을 기르는 데는 도움이 된다. 김 대표는 “처음엔 이런 노력을 누가 알아줄까 했지만 10년 넘게 농사를 지으며 역으로 소비자들이 우리 상품을 찾는 것을 보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 향린농산 김 대표 가족이 사는 집 거실과 부엌 사이에 '난초 유치원'이 있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해 어린아이처럼 항상 돌봐야하기 때문에 집안에 온실을 만들었다. ⓒ 김연지

대엽풍란은 수분부터 시장에 내보내기 전까지 최소 16개월이나 걸린다. 소엽풍란은 20개월이 소요된다. 병에 담아 파는 병묘 난초들은 예전 같으면 벌써 출하했을 때지만 다시 묘판에 옮겨져 출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초 시장의 변화로 병묘 가격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김 씨 부부는 병묘 값이 떨어져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고민에 빠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위기는 곧 기회가 됐다. 향린농산은 대지를 더 사들여 값이 떨어진 병묘를 수용할 제2농장을 지었다. 난초들을 위한 일종의 유치원을 만든 것이다. 그대로 출하하지 않고 농장에서 6-12개월간 더 길러 보낼 경우 2배 가격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높은 인건비와 자재비로 농장의 순소득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는 “소득면에서는 미미한 차이지만 연간 2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벤처기업가와 농민을 맺어준 대산농촌문화재단

향린농산에서 기른 풍란은 화장품 첨가물로도 인기가 있다. 향린농산은 재배하는 난초 중 일부를 피부에 좋은 화장품을 개발하는 회사에 핵심원료로 납품한다. 2009년에는 ‘난초 캘러스 추출물을 함유하는 피부 외용제 조성물 및 그 제조방법’으로 바이오 FD&C 회사와 공동 특허까지 따냈다. 식물에 상처가 나면 스스로 회복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생기는 세포분열 조직이 ‘캘러스’다. 특허출원에는 바이오FD&C 모상현(40) 대표의 도움이 있었다.

향린농산 김 대표와 바이오FD&C 모 대표는 대산농촌문화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돼 연이 닿았다. 모 대표는 “농업 장학생으로서 서로 장점을 살려 같이 연구해보면 좋을 것 같아 시작했다”며 “바이오FD&C는 6년 전부터 연구를 진행하며 특허 획득 노하우가 생겨 새로운 시도를 함께할 때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 난에 세계 특허기술을 적용해 만든 '풍란 캘러스 추출물' 가루는 1g이 수 백만원에 팔리는 화장품 원료다. 바이오FD&C 모상현 대표는 '물과 기름이 만나 자연·과학·문화가 융합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대산농촌문화재단

식물 세포배양을 통해 피부 노화를 예방하는 데 도움을 주는 안티에이징 소재를 찾아 로레얄, 랑콤 등 세계적 다국적 기업에 납품하는 바이오FD&C는 ‘풍란 캘러스 추출물’을 이용한 화장품으로 출시했다. 멸종 위기인 풍란은 천연기념물 170호로 지정돼 있다. 희귀한 식물의 추출물이 들어간 화장품의 항노화 효과에 열광하는 소비자 심리를 읽은 모 대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난초 캘러스 추출물을 화장품 원료로 만들 수 있다. 벤처기업가와 농부의 만남은 풍란을 매개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상생을 위하여 

향린농산 김 대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농수산품에 대한 인식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면서도 “먼저 농업인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들이 난초를 고를 때 당장 보기 예쁘고 반짝거리는 것을 고르기 때문에 농업인도 여기에 맞춘 난을 생산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외형만 아름다워 시장에서 바로 팔리는 상품만 만들어 내다보면 결국 좋은 상품이 나올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일부 농원은 난초에 윤기를 더하기 위해 특수용액을 바르기도 한다. 또한 난이 햇볕을 적게 받으면 벌레들의 공격에 면역력이 약해지지만 관상용으로는 색이 좋아서 일부러 난을 병들게 재배해 유통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는 “생산자들이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만 생산하면 예쁘지만 오래 못 사는 난초들만 시장에 유통된다”며 “이는 곧 소비자들이 ‘난초는 집에서 키우기 어려운 식물’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결국 소비자들이 잘못된 인식을 가진 데는 난의 자생력을 무시한 채 당장 보기에 예쁜 식물을 만든 농부의 잘못도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난초가 각 가정집에서 키우기 쉬운 식물로 돌아가기 위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에게 좋은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상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생산자는 소비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생산하고 소비자는 생산자의 지속 가능한 농업을 존중하고 소비하는 ‘상생’이 바람직한 관계라는 설명이다. 이런 신념을 입증하듯 올해 향린농산의 난초는 일본 수입업자에게 건강한 난으로 인정받아 일본에 수출을 할 예정이다.

연수 일정 이틀째 ‘고삼농협의 지역 활성화 사례’를 주제로 강연한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고삼농협 조현선(58) 조합장은 “소비자가 농업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농업인들이 환경과 생태에 대한 존중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민은 전체 인구의 5~6% 정도입니다. 우리 농민이 살기 위해서는 95%의 소비자가 농업의 중요성을 인정해줘야 합니다. 이런 지지가 있을 때 농업도 지속될 수 있습니다. 또한 건강한 밥상과 환경, 생태에 대한 존중이 필요합니다. 도농 교류를 할 때, 제초제 치는 논에 아이들을 마음 놓고 보낼 수 있겠어요? 건강한 환경을 만들고자 농업인들이 노력해야 농업도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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