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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위에 길 내듯 만들어가야 하는 것
[상상 사전] '희망'
2014년 04월 16일 (수) 19:03:13 함규원 기자 qwon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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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규원 기자
지난 여름, 밀양에 갔을 때 일이다. 한국전력공사가 엄청난 경찰력의 비호 아래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자, 주민들은 길목에 지은 움막에 상주하며 대치하고 있었다. 여럿이 스타렉스차를 빌려 갔는데, 밀양 할머니들은 ‘허차’가 왔다며 긴장했다. 한전에서 부리는 용역들이 까맣고 커다란 렌터카를 타고 오는데, 렌터카는 ‘허’로 시작하는 번호판만 부착할 수 있어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작고 주름진 얼굴들이 움막에서 나와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인사했다. 타지 사람을 믿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할머니들 모습이 안타까웠다. 안개가 자욱한 날이었는데, 불신과 두려움이 그보다 더 짙게 느껴졌다.  

매주 진행한다는 촛불문화제는 생각보다 생기가 넘쳤다.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 같은 굵직한 노동조합에서 하는 집회의 엄숙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을회관에 모여 회의하듯 열린 집회에서 말하는 사람은 사회자만이 아니었다. 주민들은 앞에 나와 발언하는 사람들 말을 듣고, 자기 언어로 논평을 덧붙였다. “아이고 망할 것들”, “나쁜 놈들”, “옳다구나”, “말 잘한다” 같은 추임새들이 끊이지 않았다. 

교육을 받은 능숙한 말솜씨는 아니었지만, 자기들 이야기니 자신 있게 했다. 열여덟에 시집온 뒤 평생 밀양에서 살았다는 할머니는 먼 곳까지 와줘 고맙다며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우리가 밀양에 찾아 온 게 사태 해결에 뭐 그리 큰 도움이 되랴만, 할머니는 내 손이 ‘희망’의 끈이라도 되는 양 한참 동안 놓지 않았다. 

2011년 이후, ‘희망’은 하나의 상징어였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를 멈추게 하고 김진숙을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오게 했던 이름이 바로 희망버스였다. 그 뒤 희망버스는 전국 곳곳의 불법파견과 정리해고 문제가 발생한 사업장을 찾아 연대했지만, 2011년의 승리는 계속되지 않았다. 

밀양에도 송전탑 공사 중지를 위해 두 차례 희망버스가 다녀갔다. 그러나 정부와 한전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대규모 집회라도 열리지 않으면 사람들은 밀양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밀양에 발길을 끊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루쉰은 소설 <고향>에서 이렇게 썼다. ‘희망이란 원래부터 있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라 할 수도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은 길이 되는 것이다.’ 본래 주어진 희망은 없다. 오늘의 절망에 맞선 저항들이 모이면, 우리는 그것을 희망이라 부를 수 있을 뿐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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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규원 기자]
단비뉴스 지역농촌팀 함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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