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이승현 기자

▲ 이승현 기자
낯선 해외여행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맥도날드와 코카콜라. 한편으론 익숙한 것을 발견하는 반가움과 안도감을 주지만, 다른 한편으론 지구촌 곳곳을 장악한 자본주의의 위세를 확인하는 씁쓸함을 준다. 안으로 눈을 돌려보면, 허름한 골목상점들을 밀어내고 위풍당당하게 간판을 내건 대기업 계열의 기업형수퍼마켓(SSM)들이 비슷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약육강식의 원색적 자본주의가 동네 구석구석까지 주름잡고 있는 것 같아서. 

얼마 전 의사파업 사태 등으로 다시 촉발된 의료영리화 논란은 맥도널드와 코카콜라식 대자본의 시장확대가 ‘먹고 마시는 영역’뿐 아니라 ‘죽고 사는 문제’로까지 파급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걱정스럽다. 막강한 자본력과 유명 ‘브랜드’로 무장한 의료계의 맥도날드와 코카콜라들이 국내 의료시장을 ‘싹쓸이’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와 재계는 의료산업의 규제를 풀어 투자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의료법인에 영리자회사를 허용해 다양한 수익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의료기기를 활용한 원격의료도 점진적으로 활성화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동네병원 의사들과 보건의료노조, 소비자단체 등은 그런 변화가 의료기관과 서비스의 양극화를 불러 동네병원을 몰락시키고 서민들은 비싼 치료비로 고통을 받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대형의료법인들이 영리자회사를 통해 의료기구와 건강식품, 화장품 등을 판매하거나 헬스클럽, 온천장 등을 운영하면 이를 진료에 ‘끼워 팔기’해서 정보가 부족한 환자들은 울며겨자먹기로 ‘바가지’를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물론 규제를 풀고 의료산업에 많은 투자가 이뤄지게 하면 국내 의료서비스의 수준이 높아지고 의료관광도 활성화할 것이라는 정부와 재계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의료산업 선진화를 논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직시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현재 우리사회의 의료공공성 수준이 형편없이 낮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병원 중 공공의료기관, 즉 국공립병원 비중은 병상수를 기준으로 10% 남짓에 불과하다. 유럽의 복지선진국들이 70~80%, 의료영리화가 심각한 미국도 30% 가까운 공공병상을 확보하고 있는 것에 비해 매우 부족하다.

환자의 의료비 중 공공보험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보장률도 2012년 기준 6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80%에 비해 상당히 낮다. 이렇게 의료공공성이 미흡한 상황에서 성급하게 의료영리화 정책을 추진하면 중병에 가계가 무너지거나 돈 없어 목숨을 포기하는 서민층의 비극은 갈수록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 7일 의료영리화 반대 집회에서 "의료공공성을 확대하는 것은 국민에게 꼭 필요한 착한 규제"라며 "재벌 영리자본을 위해 착한 규제마저 풀어버리려는 정책을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의료는 돈을 버는 산업이기에 앞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필수 복지영역이다. 먼저 공공의료체계를 대폭 확충해 안전망을 탄탄히 한 뒤 의료산업 육성을 토론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