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박소연 기자

▲ 박소연 기자
3년째 ‘싱글’인 친구에게 “연애 안 하냐” 물으니 “그럴 여유가 어디 있냐”며 반문한다. 아르바이트하며 취직 준비하기도 바쁜데 연애는 사치란다. 7년째 연애 중인 친구에게 “결혼 안 하냐” 물으니 “학자금 대출만도 산더미에 전세 들어갈 돈도 없는데 어떻게 결혼하겠냐”며 한숨을 쉰다. 한창 깨가 쏟아지는 신혼 부부에게 “애는 안 낳냐” 물으니 “애 하나 키우는 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 줄 아냐”며 고개를 젓는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의 현실이다.

연애, 결혼, 출산은 셋 다 사랑이다. 둘이 사랑해 연애하고, 그러다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출산을 통해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알랭 바디우는 사랑을 가리켜 ‘두 사람의 경험’이라 했다. 공간과 세계와 시간이 부과하는 장애물들을 지속적으로, 매몰차게 극복해 가는 ‘진정한 사랑’의 경험은 두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조연으로 만든다. 그렇게 둘만의 무대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장애물 극복에 실패하는 순간 주인공 둘은 조연으로 밀려나고 장애물이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능력이나 학벌 따위를 놓고 고민에 빠지는 게 그 경우다. 상대방의 연봉과 집안 등이 사랑의 기준이 될 때 이는 소유하고 싶어 하는 조건을 향유하는 쾌락이지 진정한 사랑일 수 없다. 두 사람이 아닌 다른 기준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포기한 삼포세대의 현실은 사랑에 엉뚱한 기준이 끼어드는 것이다. 밥 벌어먹고 살기가 점점 팍팍해지니 밥 걱정 덜어줄 사람을 찾게 되고 자꾸 상대방의 조건을 보게 된다. 사랑에 자꾸 밥이 끼어들어 주인공 자리를 꿰찬다. 아니, 이젠 사랑에 밥이 끼어드는 게 아니라 밥에 사랑이 끼어드는 꼴이다. 밥 걱정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는 사회이다.

높은 대학 등록금 부담에 대학생 신용유의자 수만 4만을 넘는다. 대학졸업자 열 중 넷이 ‘취업재수’를 한다. 국가는 청년실업 해결책으로 청년창업을 적극 홍보하지만 경제활동인구 30%에 가까운 800만 자영업자 중 57%가 일 년에 1천만원도 못 번다. 이처럼 하루하루 어떻게 밥 벌어먹고 살지 고민해야 하는 청춘의 머릿속은 밥 문제만으로도 복잡하다. 사랑이 비집고 들어온들 주인공이 못되고 조연에 머문다. 사랑하는 두 사람은 만년 조연이다. 주인공이어야 할 사랑이 조연 자리에 머무니 깨지기도 쉽다.

유통기한 지난 삼각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아르바이트에 매달려도 산더미처럼 쌓인 학자금 대출이 목을 조르고, 창문 하나 없는 고시원에서 코피 흘려가며 자격증 따고 토익 점수 올려도 더 높은 스펙을 자랑하는 누군가에게 밀린다. 그런 현실을 외면한 채 이 땅의 청춘에게 사랑을 하라고 말하는 건 잔인하다. 내내 밥 걱정만 해도 제 밥 그릇 찾기 힘든 와중에 밥 걱정 밀어내고 사랑을 주연으로 삼기는 쉽지 않다.

늦어지는 결혼과 낮아지는 출산율을 두고 이기적인 청춘을 탓하기만 할 게 아니라 청춘이 밥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사랑이 쉽게 인생의 주연이 될 수 있는 사회라면 나도 사랑을 하고 아이를 많이 나을 것 같다. 이 지긋지긋한 밥 걱정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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