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보도행태 분석

“정치적 중립을 지켜온 저와 국정원을 왜 이렇게까지 선거에 개입시키려 하는지 정말 실망스럽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내 인생은 너무 황폐화해졌다.”

“굳이 발표를 (대선후보) 토론이 끝난 11시에 했어야 하는지와, 제대로 된 수사결과도 아닌 겨우 이틀 수사한 극히 단편적 사실만 가지고 발표를 했어야 하는지 지휘부의 판단이 아쉽다.”

지난 18대 대선 직전 경찰은 국정원의 인터넷 여론조작 의혹이 ‘사실무근’이라는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동일한 발표 내용을 두고 각 신문이 주요하게 활용한 취재원의 반응은 이처럼 크게 달랐다. <조선일보>는 “사실상 40시간 동안 국정원 여직원을 감금한 민주당” 때문에 “인생이 너무 황폐화해졌다”는 국정원 여직원의 발언을 그대로 실었다. 반면 <한겨레>는 수사발표 절차와 내용 자체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한 경찰관의 지적을 인용했다. 언론사의 논조와 취재원 활용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단비뉴스>는 ‘국정원 정치 및 대선개입 의혹 사건’(이하 ‘국정원 사건’)을 발생 초기(12.12.12~19)와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13.06.15~22), 그리고 공소장 변경 신청서 공개(13.10.21~28) 등 세 시기로 나누고, 이 기간에 <조선>과 <한겨레>가 보도한 기사에서 취재원이 어떻게 활용됐는지 분석했다. 이 세 시기 동안 <조선>은 92건, <한겨레>는 108건의 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 <한겨레>가 <조선>보다 ‘국정원 사건’을 더 많이 보도한 것을 알 수 있다. ⓒ 유선희

신문사에 따라 ‘국정원 사건’ 취재원 유형 달라

<단비>는 두 신문이 ‘국정원 사건’ 보도에 어떤 취재원을 활용했는지 살펴보기 위해, <조선>과 <한겨레> 기사에 등장하는 취재원을 모두 6개 유형으로 나눠 취재원 별 등장 빈도를 집계했다. <조선>의 경우 국회의원이 취재원으로 등장한 빈도가 62차례(52%)로 가장 높았고 검찰과 국정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한겨레>의 경우는 국회의원이 62차례(39%)로 가장 높았으나 비중은 조선보다 훨씬 낮았고, 그 뒤를 전문가와 시민단체가 이었다.

<조선>과 <한겨레> 모두 국회의원을 취재원으로 가장 많이 활용한 것은 ‘국정원 사건’이 지난 1년 내내 핵심적인 정치쟁점이었고, 정치권에서 수많은 논평과 의혹 제기가 나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주목할 것은 국회의원 이외의 취재원 활용이다. <조선>은 ‘국정원 사건’ 기사에서 검찰과 국정원을 45차례(38%) 취재원으로 활용한 반면 전문가와 시민단체는 8차례(7%)만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겨레>는 전문가와 시민단체를 55차례(34%) 활용해 국회의원과 비슷한 수치로 활용했고, 검찰과 국정원은 30차례(19%) 활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 언론사에 따라 취재원 활용 빈도가 다르게 나타났다. ⓒ 유선희

이런 분석 결과는 <조선>은 ‘국정원 사건’ 수사 주체나 의혹 당사자를 주요 취재원으로 활용한 데 비해 <한겨레>는 이 사건을 국기문란으로 규정하는 전문가나 시민사회단체 목소리를 기사에 더 많이 반영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비>는 <조선>과 <한겨레>가 취재원의 발언을 어떤 맥락에서 활용했는지도 살펴봤다. 자사의 논조를 합리화 또는 강화하는 장치로 취재원 발언을 활용한 경우는 ‘우호적 발언’으로 분류했고, 취재원 발언을 인용하되 그것의 허점을 공격하거나, 단순 논란거리로 만든 경우, 또는 축소·묵살한 경우 등 세 가지는 ‘비우호적 발언’으로 분류했다. 각 신문의 논조는 사설을 통해 파악했다.  

<조선>은 ‘정치공방’, <한겨레>는 ‘논조강화’에 취재원 활용

‘국정원 사건’ 초기 <조선>은 ‘비우호적’ 취재원의 발언을 12회(54%) 인용하고 그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거나 논란거리로 만들었다. 반면 <한겨레>는 자사 논조와 일치하는 ‘우호적 발언’과 ‘비우호적 발언’을 각각 7차례(44%)씩 인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 ‘국정원 사건’ 초기(12.12.12~19) <조선>과 <한겨레>의 취재원 활용 양상. ⓒ 유선희

지난해 6월 15일 검찰이 ‘국정원 사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 이후 <조선>은 본격적으로 ‘국정원 사건’을 ‘논란거리’로 만들기 시작했다. 검찰 수사로 새롭게 밝혀진 사실보다는 사건 수사를 두고 검찰내부 공안통과 특수통이 서로 이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한 검찰 관계자 말을 빌려 “선거법 위반 적용이 무리 아니냐는 여당의 비판과 김용판 전 서울 경찰청장을 불구속하고 국정원 직원들을 기소 유예 처리한 데 대한 야당의 비판이 이어져 검찰은 지금 사면초가 상태”라고 보도했다. 이어 검찰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17일자 10면). 검찰 수사의 신뢰도를 떨어트리기에 충분했다.

<조선>은 또 ‘국정원 사건’을 ‘정치 공방’으로 몰아갔다. “원 전 원장에게 선거법 위반을 적용해 불구속 기소하는 것이 합당한지도 의문”이라는 여당의 발언과 “앞으로 국가기관의 선거·정치 개입을 용인하는 근거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는 야당의 발언을 나란히 배치해 여야의 논쟁거리로 만들었다(15일자 4면). 검찰 수사발표에도 불구하고 “야당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안다”는 국정원 발언을 실어 여전히 이 사건이 야당의 ‘정치 공세’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17일자 6면). 

▲ 검찰이 중간수사 발표한 이후 일주일 동안(13.06.15~22), <조선>은 우호적인 발언을 4건(22%) 인용한 데 반해, <한겨레>는 18건(56%) 인용했다. 반면 비우호적인 발언은 <조선> 9건(50%), <한겨레> 8건(25%)으로 나타났다. ⓒ 유선희

<한겨레>는 6월 15일 5면과 6면에 검찰이 발표한 국정원의 선거개입 게시글 1977건을 분석해 실었다. <한겨레>는 “명백하게 선거에 개입한 국기문란 행위가 드러났다”는 자사 논조와 일치하는 취재원을 적극 활용했다. “이번 사건을 통해 경찰 고위층의 추악한 민낯과 그들의 전횡에 속수무책인 경찰 조직의 구조적 문제가 제대로 드러났다”는 황정인 서울 강남경찰서 수사과장의 발언을 인용한 것(15일자 7면)이 대표적이다. 

<한겨레>는 또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을 규탄하는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다뤘다. “내일모레가 시험”이지만 “너무 화가 나서” 대검찰청으로 향했다는 서울대 학생의 발언을 인용해 “국정원 선거개입은 민주주의 위기”라는 자사 논조에 힘을 실었다(21일자 1면). 또 다양한 전문가들의 발언을 인용해 박근혜 대통령의 해명과 사과를 촉구하고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같은 취재원, 신문에 따라 달리 활용돼

검찰이 국정원의 트위터 여론조작 혐의를 추가해 공소장 변경 신청을 한 지난해 10월 21일 이후에도 <조선>은 여전히 ‘비우호적 발언’을 주로 활용해 ‘국정원 사건’을 ‘논란거리’로 몰고 갔다. 반면 한겨레는 ‘우호적 발언’을 주로 활용해 자사 논조를 유지해 갔다.  

▲ 국정원이 트위터에서도 여론조작을 하는 글이 발견됐다는 검찰 수사발표가 있었던 지난해 10월 21일부터 28일까지 보도된 기사들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조선>은 우호적인 발언 14건(27%), 비우호적 발언은 30건(58%) 활용했다. 반대로 <한겨레>는 우호적 발언 31건(52%), 비우호적 발언은 12건(20%) 인용했다. ⓒ 유선희

<조선>은 ‘국정원 사건’에 대해 “단순히 대통령 사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게 작금의 흐름”이라는 민주당 설훈 의원의 발언 등을 ‘선거 불복’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23일자 1면). 또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의 불공정과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문재인 의원 발언을 1면에 싣고 '국정원 사건'을 대선 불복 프레임으로 계속 몰았다(24일자 1면).

반면 ‘선거 불복’ 논란과 관련해 <한겨레>는 “헌정 사상 초유의 국가기관 대선개입과 국정원의 트위터·댓글 수사에 대한 외압 사건을 대선 결과와 연관 지을 생각이 전혀 없다”는 민주당 측 입장을 명확히 전했다(23일자 6면). 같은 의원 입에서 나온 발언임에도 <조선>과 <한겨레>는 자사 논조와 일치하는 발언만을 인용하면서 전혀 다른 보도행태를 보인 것이다.

사건진상 드러나자 <조선>은 보도 줄고, <한겨레>는 늘어

세 시기별로 ‘국정원 사건’ 보도 건수를 살펴보면, 발생 초기(12.12.12~19)에 <조선>은 22건, <한겨레>는 16건의 기사를 내보냈다. <조선>의 관련 기사 수가 <한겨레>보다 6건 더 많았다. 당시에는 경찰의 중간수사 발표에 많은 의문점이 제기되는 상황이었지만, <조선>은 연일 ‘국정원 여직원 불법 감금’과 ‘인권 침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 지난해 6월 검찰 수사결과 발표 이후 <조선>의 보도건수가 줄었다. ⓒ 유선희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가 있었던 시기(13.06.15~22)에는 기사 수가 역전됐다. <조선>이 18건, <한겨레> 32건이었다. 국정원의 트위터 여론조작이 검찰 수사로 드러난 시기(13.10.21~28)도 <조선>은 52건, <한겨레>는 60건으로 <한겨레>가 더 많은 기사를 내보냈다.

결국 검찰 수사로 국정원이 특정 후보를 지지·비방하는 글을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와 트위터에 무더기로 올린 사실이 드러난 이후, <조선>의 ‘국정원 사건’ 보도 건수는 <한겨레>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보도기사에서 어떤 사안에 정통한 취재원의 적절한 인터뷰나 발언 인용은 그 기사의 신뢰도를 높이고, 해당 이슈의 맥락을 이해하게 하는 중요요소이다. 그래서 취재원은 다양한 관점을 깊이 있게 전달하는 방향으로 활용돼야 한다. 하지만 <단비>의 분석 결과 <조선>과 <한겨레>의 ‘국정원 사건’ 보도에 등장하는 취재원은 주로 각 신문의 논조를 유지, 강화하는 용도로 사용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런 보도행태는 자사의 정파성을 더욱 공고히 하는 기제로 작동해 신문의 신뢰를 떨어트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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