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주류 언론의 ‘밀양송전탑 보도’ 행태 분석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을 지원하기 위한 희망버스가 오는 30일 밀양을 찾기로 하면서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에 다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10월 2일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밀양 초고압 송전탑 공사를 재개하면서 밀양에서는 공사를 막으려는 주민과 공권력까지 동원해 공사를 강행하는 한전 사이에 갈등과 대립이 끊이질 않고 있다.

부안 방폐장 건설, 용산 재개발 사업, 강정해군기지 건설 사업 등에서 보듯 우리 사회는 대형 국책사업과 개발사업이 있을 때마다 둘로 갈라져 반목을 거듭해 왔고, 치유하기 힘든 후유증을 앓았다. 이번 밀양 송전탑 사태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주요 언론은 갈등 조정과 통합 기능을 발휘하기보다는 어느 한쪽의 입장을 편들면서 오히려 서로의 간극을 넓히는 역할을 해왔다.

<단비뉴스>는 이번 밀양 송전탑 공사를 둘러싸고 주류 매체들이 어떤 보도 태도를 보였는지 살펴보기 위해 지난 9월 30일부터 11월 16일까지 7주 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등 주요 일간지와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에스비에스(SBS) 등 지상파 3사의 메인뉴스를 모니터했다. 

조·중·동-한겨레·경향, 보도량에서 현격한 차이

이 기간 동안 5개 일간지에서 밀양 송전탑과 관련해 모두 135건(사진기사 포함)의 기사가 검색됐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보수성향 신문과 진보성향 신문 사이에 나타난 보도량의 차이였다. <경향>이 51건으로 가장 많았고 <한겨레> 44건, <동아> 19건, <조선> 12건 순이었다. <중앙>은 9건으로 가장 적었다.

 

▲ 지난 9월 30일부터 11월 16일까지 주요일간지 밀양 송전탑 관련 보도빈도 현황. ⓒ 이청초

사태 초기인 지난 10월 9일까지 밀양 송전탑과 관련한 5개 주요 일간지의 보도량은 평균 12건 안팎으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10월 10일부터는 매체 성향별로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조선>과 <중앙>은 10월 9일 ‘법원이 한전의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수용했다‘는 기사를 끝으로 지난 11월 16일까지 한 달 넘게 밀양 송전탑 관련 소식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동아>가 10월 10일 이후 내보낸 기사는 4건이었다.

반면 <한겨레>는 지난 10월 14일부터 4일간 밀양 송전탑 공사와 관련해 ‘환경 불평등’이라는 의제로 기획을 시작해 모두 16건의 시리즈 기사를 보도했다. <한겨레>는 또 ‘인권침해감시단을 통해 본 밀양’(18일자 8면), ‘밀양 송전탑 반대주민 상경투쟁’(19일자 7면) 등 송전탑 관련 심층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경향>은 밀양 송전탑 관련 기사를 하루 평균 한 건 이상 꾸준히 보도했다. 특히 지난 10월 17일 신고리 3·4호기가 제어케이블 불량으로 준공이 미뤄진 문제에 대해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의 입장을 들어봄으로써 원전비리와 밀양 송전탑 사태를 긴밀하게 엮어냈다(2면). 밀양 주민의 릴레이 절(22일자 14면), 송전탑 반대 국토장정(29일자 14면) 등 공사현장 밖의 움직임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주요일간지 날짜별 누적 보도량, <조선일보>과 <중앙일보>은 지난 10월 10일 이후 밀양 송전탑 관련 이슈를 보도하고 있지 않다. ⓒ 이청초

취재원을 보면 언론사 논조가 보인다

<조선><중앙><동아>와 <한겨레><경향>은 보도량뿐 아니라 취재원 활용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단비뉴스>가 밀양 송전탑 기사에 등장하는 취재원의 유형과 빈도를 분석한 결과 조·중·동은 주로 한전 및 정부, 경찰을 취재원으로 활용한 반면 <한겨레>와 <경향>의 주된 정보원은 밀양 주민과 시민단체로 나타났다.

조·중·동의 경우 기사에 등장하는 전체 취재원 34명 가운데 한전 및 정부, 경찰 소속의 취재원은 22명으로 평균 65%였다. 신문사별로는 <중앙>과 <동아>가 67%였고, <조선>은 62%로 나타났다. 반면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는 주민 취재원은 10명으로 전체 취재원의 29%에 그쳤다. 갈등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짚어줄 전문가 그룹이나 시민단체는 <동아>에서 한 번씩 등장한 것이 전부고 <조선>과 <중앙>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겨레>와 <경향>의 경우 전체 184명의 취재원 가운데 밀양 송전탑 주민이 76명(41%)으로 가장 많았다. 신문사별로는 한겨레가 43명(43%), 경향은 33명(40%)이었다. 이 두 신문은 밀양과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다른 지역(청도, 횡성, 여수 등)의 주민 34명(18%)도 취재원으로 삼았다. 시민단체 취재원은 한겨레가 17명(17%), 경향이 21명(25%)이었고, 전문가 그룹 취재원은 각각 9명(9%)과 4명(5%)이었다.

 

 

▲ 각 언론사마다 활용하는 취재원이 다르게 나타났다. <조선>, <중앙>, <동아>는 정부 측 취재원이 다수를 차지한 반면 <한겨레>와 <경향>은 밀양 주민을 포함해 다양한 취재원을 활용하고 있다. ⓒ 이청초

 

기사에 인용되는 취재원의 유형이나 빈도는 그 보도의 관점과 논조를 살필 수 있는 지표가 된다. <조선>, <중앙>, <동아>의 밀양 송전탑 관련 기사에서는 전체 취재원 가운데 3분의 2가 한전 및 정부 관계자와 경찰이었다. 이는 조·중·동의 기사가 공사 강행 주체와 공권력, 즉 힘 있는 취재원의 입장에 경도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랜스 베넷(Lance Benett)은 ‘인덱싱 이론(Indexing Theory)’을 통해 주류 언론이 힘 있는 취재원의 입장을 그대로 따라가는 경향이 있음을 밝혀냈다. 밀양 송전탑을 다룬 조·중·동의 취재원 편중 현상도 인덱싱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언론이 권력의 담론이나 의제 안에서 머물 때 권력 밖의 목소리나 대안은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조선> 10월 3일자 기사 “밀양시위 70명 중 주민은 15명가량···나머진 통진당 등 외부세력”은 이 같은 현상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이 기사에서 주민들의 목소리는 찾을 수 없다. “밀양 지역의 전반적인 여론도 이제는 갈등을 끝내야 한다”며 공사 강행 방침을 전하는 조환익 한전사장의 인터뷰와 여름철 전력 수급을 위해 내년 5~6월까지는 공사를 끝내야 한다는 정부 입장만 부각돼 있을 뿐이다. 

‘밀양 송전탑’ 관련 방송3사 뉴스, 조·중·동 보도와 유사

밀양 송전탑 사태를 다룬 지상파 뉴스도 조·중·동의 보도 행태와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월 1일부터 지난 16일까지 지상파 3사 메인뉴스에서는 모두 21건의 송전탑 관련 기사가 나갔다. KBS는 10건(단신 3건 포함)으로 가장 많았고, MBC와 SBS는 6건과 5건씩의 리포트를 내보낸 것으로 집계됐다.

▲ 밀양 송전탑 관련 이슈에 대한 지상파 3사 메인뉴스의 보도 현황. ⓒ 이청초

방송3사 뉴스는 송전탑 공사 현장의 몸싸움 장면과 자극적인 현장음을 내보내며 ‘충돌’을 부각시켰다. 한전의 공사 강행 방침이 알려진 지난 10월 1일 “죽이려면 죽이고 마음대로 해라”(KBS) “내 시체를 밀양시청 광장에 놔주십시오”(MBC) “죽기 전엔 안 물러선다”(SBS) 등 공사반대 주민들의 과격한 모습이 일제히 전파를 탔지만 정작 이들이 송전탑을 결사반대하는 이유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반면, 조환익 한전사장의 호소문을 그대로 내보내는 등 한전 측의 입장은 적극적으로 전달했다. 또 “불법행위를 엄정하게 처벌하겠다”는 김종양 경남지방경찰청장의 입장도 상세히 보도했다. 지난 10월 2일 KBS <뉴스9>에서 기자는 “주민들의 반발 속에서 안전하게 공사하는 것이 최대 관건”이라는 정부 입장을 마무리 멘트에 반영하기도 했다.

 

▲ 지난 10월 10일 MBC <뉴스데스크>는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주민이 경찰에 가축분뇨를 뿌렸다는 내용을 전면에 배치했다. ⓒ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지난 10월 10일 MBC <뉴스데스크>는 송전탑 공사 반대주민이 경찰에 가축 분뇨를 뿌렸다는 내용을 먼저 배치했다. 이어 국가인권위가 공사 반대 측이 낸 긴급구제 신청을 기각했다는 사실을 전하며 “반대하는 주민들의 입지는 더 좁아지게 됐다”라고 리포트를 마무리했다.  반대 주민의 과격한 행동과 인권위의 처분 결과가 마치 관련이 있는 것처럼 편집한 것이다.

방송3사 메인뉴스의 심층 분석 코너도 정부 측 입장을 주로 유포하는 통로로 기능했다. KBS ‘데스크 분석’은 “밀양 빼고 다른 지역은 송전탑 짐을 졌다”며 “진정성 있는 주장도 국민의 공감을 얻을 때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10월 2일). MBC ‘집중취재’가 다룬 밀양 송전탑 아이템에서도 취재원은 백재현 한전 밀양대책본부 본부장이 유일했다. ‘집중취재’는 백 본부장 인터뷰에 이어 “환경영향평가 마친데다 보상안도 내놨고 공사기간마저 촉박하다”는 한전 측의 입장을 그대로 전했다(10월 3일). SBS도 한전 입장을 바탕으로 송전탑 공사재개의 당위성을 찾았다. “밀양송전탑을 못 세우면 3조원 들여 건설한 원전을 전력난이 뻔한 내년 여름에도 가동할 수 없다”며 밀양 송전탑 사태에 대해 "공익을 중시하는 시민의식 부족이 낳은 결과"라고 지적했다(10월 3일).   

 

▲ 방송 3사 메인뉴스의 심층분석은 정부 측 입장을 주로 유포하는 통로역할을 하고 있다. (위부터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순). ⓒ 방송 3사 메인뉴스 갈무리

이처럼 방송3사 메인뉴스의 밀양 송전탑 보도는 조·중·동의 보도 프레임과 유사한 행태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표면적 갈등과 권력의 메시지만을 다루고 사안의 배경이나 대안은 외면한 것이다. 지난 10월 10일을 마지막으로 지난 16일까지 방송3사 메인뉴스가 밀양송전탑과 관련해 단신조차 보도하지 않았다는 점도 ‘인덱싱 이론’을 재확인 시켜준다. 
 
“‘무보도’는 언론 존재이유 배반하는 행위”

언론이 정부 등 공식기관이나 권력의 눈으로 쟁점 사안을 바라보게 되면 당연히 힘 있는 쪽에서 생산하는 정보 위주로 기사가 배치되고 이들의 목소리가 여론시장을 지배하게 된다. 자연 약자의 목소리는 묻힐 수밖에 없다. 주류 언론이 중요한 이슈의 본질과 배경에 대해 침묵하게 만드는 것도 권력의 핵심적 프로파간다 행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행위는 중요한 사안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차단하고, 토론을 막아 결국 대중을 무지 속에 가둔다.
 
정연구 한림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숙의민주주의가 가능하려면 공론장을 형성하는 시민들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관계없이 사건의 사실적 관계는 일단 알아야 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며 “무보도는 언론이 존재하는 이유 자체를 배반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또 “밀양 송전탑 문제는 발전과 송전에 관한 정부 정책이 현재와 같이 되는 한 어느 지역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국민보편이익과 관련한 이야기”라며 “다양한 의견을 듣고 무엇이 쟁점인지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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