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허정윤 기자

MBC에 드라마 ‘오로라 공주’가 있다면 2013년 대한민국에는 드라마 같은 ‘댓글 정국’이 있다.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이 상황은 쉬이 끝날 것 같지 않다. ‘오로라 공주’야 연장해도 200회로 끝날 테지만 ‘댓글 정국’은 언제 끝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국정원 의혹으로 한정되어있던 이 사건은 10월 국정감사에서 ‘국군도 대선 관련 댓글을 달았다’는 추가 의혹이 제기돼 문제가 더 커졌다.
‘댓글 정국’과 ‘오로라 공주’ 사이에 평행이론이 존재한다. 먼저, 두 ‘드라마’에는 직접 출연하지는 않지만, 뒤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이 상황을 이끌고 가는 이가 있다. 임성한 작가는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줄곧 ‘막장’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드라마를 제작해 왔고, 막장 드라마에 대한 반발은 매번 가볍게 무시했다. 댓글과 관련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박근혜 대통령도 임 작가를 떠오르게 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 정권의 일’이라고 잡아떼더니 국외순방 뒤에 뒤늦게 ‘의혹을 밝히고 책임을 물을 것이 있다면 물을 것’이라며 두루뭉술하게 답변했다. 박 대통령이 자신에게 손해나는 사안은 모른 체하고 생색내는 장소에 화려한 옷을 입고 나선다 하여 ‘유신 공주’라고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다. 두 사람 모두 사건 중심에 있으면서도 나 몰라라 하는 점에서 닮았다.
‘오로라 공주’가 문제작으로 급부상한 이유는 임 작가의 눈 밖에 난 극중 인물들이 차례로 중도하차했기 때문이다. 임 작가는 사실무근이라고 했지만 정황상 ‘찍어내기’가 확실해 보인다. ‘댓글 사건’ 역시 수사를 지휘하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사퇴하고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정직당하는 모습을 보면 ‘오로라 공주’의 데칼코마니나 다름없다. 임 작가 조카로 알려진 ‘백옥담’역 배우의 방송 분량이 늘어나는 상황은 수사 외압 의혹을 받은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 무혐의 처분되는 것과 닮았다.
현재진행형인 두 상황을 평행이론을 들먹일 만큼 비슷할지라도 이를 대하는 태도마저 똑같으면 안 될 것이다. ‘오로라 공주’는 곧 끝날 드라마일 뿐이다. 마음에 안 들면 안 보면 그만이다. 그러나 ‘댓글 정국’은 민주주의적 기본질서, 나아가 우리의 삶 자체를 규정짓는 ‘리얼’이다. MBC는 ‘오로라 공주’에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더라도, 박 대통령은 ‘댓글 정국’ 수사를 원활히 진행할 수 있도록 분명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 ‘불통 대통령’이니 ‘유신 공주’니 하는 항간의 오명을 듣지 않으려면 반대자들을 설득할 만한 카드를 내놔야 한다. 자신의 정통성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을 산하기관의 수사로 끝낸다면 국민들의 의구심은 끝내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싫지만 내놓아야 할 카드, 그게 바로 특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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