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 우수, 김리나

▲ 김리나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에는 장래 어부가 꿈인 ‘맨움’이 나온다. 맨움은 상상의 도시 이갈리아의 성(性)을 지칭하는 말로, 인류의 남성과 같다. 평소 바다 생활을 그리던 주인공은 부모님을 졸라 스쿠버다이버복을 선물받는다. 고위공무원인 어머니의 도움으로 특별 제작한 고무 옷이다.

그런데 맨움인 그를 특별히 배려해 만든 옷이 그를 조롱거리로 만든다. 옷엔 꽉 끼는 재질을 감안해 ‘연약한’ 맨움의 생식기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도드라져 있었다. 이갈리아 사람들의 눈에는 그 옷이 도발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매춘‘부’(賣春夫)의 옷으로 비쳐졌다. 어부가 되어 바다를 누비는 어린 맨움의 상상을 망상이라 여겼다. 상처받은 주인공은 선물받은 옷을 훔치듯 품에 안고 방으로 들어가 절규한다. “이 옷이 제 꿈을 더 우습게 만든단 말이에요!”

몇 년 전 여성 학사장교제도가 도입되었다. 일부 여대에서 소수 인원으로 시작된 ‘여성학군단’은 이제 캠퍼스에서 익숙해진 분위기다. 이 제도가 시행될 때, 남성들 반발이 거셌다. 온라인 뉴스 게시판에는 여성학군단제 도입을 비판하는 댓글이 수없이 달렸다. 장교로 임관할 거면 일반 사병 의무도 져야 한다며 남성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2년 가까운 세월을 ‘강제로’ 군에서 복무해야 하는 남성과 달리, 어째서 여성만 특별 혜택을 받느냐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끈 댓글들이 있었다. 군복을 한 여성의 모습을 성적으로 희화화한 것이다. 그 글은 왜곡된 성적 판타지를 투영한 제복 여성의 이미지를 이용해 ‘여군’을 깎아 내렸다. 여성의 신체적, 생리적 특성상 남성과는 다르게 군복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에서부터, 특정 부위를 거론하며 전투 군복은 여성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궤변까지 다양했다. 단지 하고 싶은 일을 택했을 뿐인 그들은, 입게 되는 옷이 종전에는 ‘남성 옷’이었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다.

<이갈리아 딸들>에서 여성은 ‘움’이라 불린다. 그리고 ‘움’에서 태어난 남성은 ‘맨움’이다. 영어의 ‘Man’과 ‘Woman’이 떠오른다. 오늘날 성공한 커리어 우먼은 대부분 짧은 머리에 바지를 입고 다소 중저음의 목소리를 낸다. ‘부드러운 리더십’이니 뭐니 해도, 결국 남성다움이 가져온 성공인 것처럼 호도한다.

OECD 국가 중 여성의 사회참여율이 하위권을 맴도는 한국에서, 여성이 기존 남성 중심사회에 ‘그들의 옷’을 입고 편입하려 할 때, 그것은 때로 사회적 비웃음거리가 된다. 비웃음은 대부분 성적 조롱에서 출발한다. 차별과 차이는 구분해야 한다는 세상이지만, 아직도 차이가 부당한 차별의 유리벽을 쌓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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