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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목’ 맞은 신문, 당황스러운 ‘추석특집’
추석 앞두고 광고성 기사 쏟아내는 신문사들… 제재 수단 거의 없어
2013년 09월 18일 (수) 16:41:02 박채린 기자 cpfmsl@naver.com

“고객님 많이 당황하셨어요?”

한국방송(KBS) <개그콘서트>에서 시청률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황해’의 유행어다. 이 코너는 우리말이 서툰 조선족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사기단의 실수담을 소재로 한다. '황해‘에서의 보이스피싱은 어설퍼 쉽게 들통이 나지만 주요 신문의 ’추석선물특집‘ 기사에 스며든 광고기법은 소비자를 교묘하게 현혹하고 있다. 

<단비뉴스>가 추석을 앞두고 지난 2일부터 16일까지 9개 중앙일간지와 3개 경제지를 살펴본 결과 모든 신문이 한 차례씩 ‘추석선물특집’ 기사를 게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사들은 대부분 노골적인 상품 홍보 내용을 담고 있지만 광고성 기사임을 표시한 것은 한 건도 없었다. 기사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객관적인 상품 평가도 찾아보기 어려웠고 다른 신문인데도 거의 비슷한 기사가 실린 경우도 많았다. 홍보물을 그대로 받아 적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 9월이 되면 각 신문사들은 추석 선물을 소개하는 기사를 싣는다. ⓒ <동아일보>

신문별 ‘추석선물특집’ 기사 분량을 보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무려 12개 면을 할애했고, <한국경제>, <매일경제>, <서울경제>는 8개면, <국민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세계일보>, <한국일보>, <한겨레>는 각각 2개의 면에 걸쳐서 추석상품 홍보 기사를 냈다.

<조선>은 '오랜만에 만난 가족의 건강을 올 추석에는 꼼꼼히 챙겨보자','정력이 떨어진 남편·아버지에게 발기부전 수술은 삶의 활력을 찾아준다'(9월 3일 D1면)며 특정 병원을 추천했다. <중앙>은 다양한 색깔의 넥타이 사진과 함께 '추석 선물로 제안하는 페라가모의 아이템은 이탈리아의 감성과 고급스러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스카프와 타이다','다양한 디자인과 세련된 패턴을 지닌 페라가모 실크 제품으로 받는 이에게 특별함을 선사해보는 건 어떨까'(9월 5일 C5면)라고 적었다. <동아>는 '노인 의료비가 미래 국민건강보험 재정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며 ‘명품부모님보험’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소개한다. 신문을 한 장 넘기니 ‘명품부모님보험’광고가 전면을 차지하고 있다(9월 4일 C6면). 이처럼 상품 소개 기사 옆이나 뒷면에는 대부분 진짜 광고가 자리 잡고 있다.

   
▲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는 같은 화장품 브랜드에 관한 기사를 싣고 해당 브랜드의 전면광고도 실었다. ⓒ <조선>,<중앙>,<동아>
이같이 광고 기사인데도 일반 기사처럼 가장하는 행위는 언론관련 단체들이 만든 자율기구 ‘한국신문윤리위원회’가 채택한 ‘광고윤리실천요강’에 어긋나는 것이다. 실천요강 강령 4에는 광고임이 명확하지 않고 기사와 혼동되기 쉬운 편집체제 및 표현 사용은 제재 대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신문은 다른데도 기사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일치하는 경우도 있었다. 기업에서 받은 홍보물을 그대로 쓴 탓이다. <국민>,<경향>,<서울>,<한국>에 실린 ‘롯데칠성’ 관련 기사는 모두 '롯데칠성음료는 전하는 사람의 마음을 풍성하게 담아 낼 수 있는 음료 및 원두커피 선물세트를 다양하게 마련했다. 고급스러운 포장재를 사용해 주고받는 사람 모두에게 만족을 준다'로 시작했다. <한국>의 경우 '만족을 준다'를 '만족감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사측의 설명이다'로 바꿨을 뿐이다. 일부 단어나 문장의 순서만 바꾼 경우도 많았다. <조선>,<중앙>,<동아>에 실린 이탈리아 브랜드 ‘에트로’ 관련 기사의 경우 '부드러운 양가죽 소재 덕분에 어깨에 맸을 때 편안한 착용감을 느낄 수 있다'(동아), '부드러운 램 스킨 소재는 어깨에 맸을 때 몸에 착 감기는 편안한 착용감을 제공하면서'(중앙), '소재의 특성상 어깨에 메면 몸에 착 감기는 느낌이 들어'(조선)로 몇몇 단어와 문장 순서만 바꿨다. 같은 상품을 다룬 여러 신문의 기사를 분석해봤을 때 이와 유사한 행태가 자주 보였다.

바이라인(기사에 필자의 이름을 넣는 일)이 없는 기사도 있었다. <조선>, <중앙>, <서울경제>, <한국경제>을 제외한 모든 신문에는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는 기사들이 많았다. ‘추석선물특집’ 면 제작에 참여한 조선일보 관계자는 조선미디어그룹 매거진에 소속된 ‘행복플러스’가 기사 작성을 대행하고 상품은 본지에서 정해준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이번 추석 특집 제작에 참여한 동아일보 기자는 “구체적인 프로세스는 잘 모른다”고 답했다. 기자들에게 광고 기사를 작성하게 하는 행위 또한 '언론사는 언론인 종사자(편집자•기자) 등에게 보급행위 및 광고, 판매를 요구해서는 안되며 언론직 종사자도 그런 요구를 받아선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는 ‘신문윤리강령’에 어긋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한국일보>와 <경향신문>에 실린 박스 형식의 광고성 기사들. 바이라인이 없다. ⓒ <한국>, <경향>

이와 같은 신문의 행태에 대해 신문윤리위는 경고 등 제재를 취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신문윤리위 김종원 사무국장은 16일 <단비뉴스>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자율기구이기 때문에 합의가 필요하지만 어려운 신문 시장 등을 감안할 때 더 강력한 제재는 합의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하고 "신문의 광고성 기사에 대해 제재를 가할 다른 대안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밝혔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신문사가 자율적으로 언론 윤리를 비교적 잘 지키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우리나라 신문윤리위에 해당하는 미국신문협회(NAA)를 두고 있고, 영국은 언론고충처리위원회(PCC)를 두고 있다. 영국광고심의위(ASA)는 광고임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은 광고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제재를 가하고 있다.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최진봉 교수는 “미국 신문에 광고면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과 같은 광고성 기사는 상상하기 어렵다"며 "공익성 캠페인에 한해 간접홍보 수준에서 그치는 정도라 일류신문사의 경우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잘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또 최 교수는 신문시장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는 것은 사실이나 정부나 신문사의 관점이 변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정부나 신문사는 운영의 관점에서만 제도를 바라보고 있어 독자의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광고성 기사일 경우에 모든 독자들이 알 수 있도록 표시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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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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