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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대신 카메라
‘전쟁을 싫어한 전쟁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 사진전
2013년 09월 25일 (수) 17:20:24 박병일 기자 park10@danbinews.com

‘줌(zoom)기능’이 없는 카메라. 카파의 사진을 볼 때 이것을 유념하고 본다면 좀 더 실감나게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카파가 피사체에 얼마나 다가갔을지 생각해보라.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을 카파는 무슨 용기를 가지고 누빌 수 있었을까?

로버트 카파(Robert Capa 1913-1954)의 본명은 ‘앙드레 프리드만’. 올해는 그가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헝가리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32년 트로츠키 연설을 촬영하며 사진기자로서 첫발을 내딛는다. 카파는 스페인 내전(1936-1939), 중일전쟁(1938), 제2차 세계대전(1941-1945), 첫 번째 중동전쟁(1948), 인도차이나 전쟁(1954) 등 모두 다섯 번의 전쟁을 취재했다. 오는 10월 2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본관(B1)에서 열리는 로버트 카파 사진전에서는 이 전쟁들을 포함해 카파가 렌즈에 담은 격변의 20세기를 목격할 수 있다.

   
▲ 공습 경보음에 길거리를 뛰어가는 여성과 소녀. 빌바오, 스페인 1937.5 Ⓒ 로버트 카파
스페인 내전 때의 사진이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씩 자행된 히틀러의 빌바오 공습을 피해 대피소로 가는 모녀의 모습이다. 딸이 입고 있는 코트의 단추가 잘못 채워져 있다는 점에서 당시의 급박함을 알 수 있다.

   
▲ 민족주의 군인들로 훈련받는 젊은 여성들. 한커우, 중국 1938.3 Ⓒ 로버트 카파
스페인 내전에 이어 카파는 중일전쟁의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한커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일본의 무자비한 공습을 취재했다. 짧게 머리를 자르고 훈련을 받는 사진 속 여성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연합군이 입장하기에 앞서, 독일군과 싸웠던 스무 명의 십대 게릴라군 장례식장. 나폴리, 이탈리아. 1943.10.2 Ⓒ 로버트 카파
세계 제2차 대전 때 연합군이 입성하기 전 학교 선생님의 지휘아래 독일 점령군에 대항하다 숨진 고등학생들의 장례식 장면이다. 시체의 발이 밖으로 나와 있다. 관조차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음을 웅변한다. 

   
▲ 오마하 비치에 상륙하는 미군부대. 공격 개시일. 노르망디, 프랑스. 1944.6.6 Ⓒ 로버트 카파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 사진이다. 병사 뒤쪽에 수뢰가 부착된 철 주조물이 보인다. 초점이 흔들릴 만큼 급박한 상황을 잘 전달한 사진이다. 오른쪽에는 사진 속의 병사가 참전하기 전 찍었던 일상의 사진이 함께 전시돼 있다. 전쟁이 한 평범한 젊은이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알 수 있다.

   
▲ 왼쪽부터 건물 안에서 호텔 앞 광장을 지켜보던 저격수가 승리 기념 퍼레이드를 향해 발포한 후의 군중들 모습. 파리, 프랑스. 1944.8.26롤라이플렉스 카메라. 1939 로버트카파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촬영할 때 사용했던 기종 Ⓒ 로버트 카파
이 사진을 찍을 때 과연 카파는 어떤 자세였을까? 그도 엎드리고 있었을까? 분명한 것은 사람들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담기 위해 카파는 이들 바로 옆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공포에 질려 있던 그 순간에도 셔터를 눌렀던 카파. 그에겐 두려움이 없었을까.

   
▲ 해변에서 파블로 피카소와 피카소의 아들 클로드. 골프주왕, 프랑스. 1948.8 Ⓒ 로버트 카파
언뜻 보면 손자와 할아버지 같지만 사실은 부자지간이다. 피카소와 40살 차이가 나는 연인 프랑수아 질로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피카소와 질로 둘 다 모두 카파와 친분이 두터웠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종군기자 카파’로서의 이미지에 가려져 있던 그의 또 다른 매력을 볼 수 있다. 영화 <카사블랑카>로 당대 최고의 여배우 반열에 올랐던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의 청혼을 거부한 카파. 그녀 이외에도 파멜라 처칠, 일레인 저스틴, 베티나 그라지아니, 헤디 라마르와 로맨스까지 카파의 러브스토리는 화려하다. 하지만 그는 스페인 내전에서 잃어버린 첫사랑 게르다 타로(Gerda Taro)를 끝까지 잊지 못한 순정남이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카파를 ‘내 양아들’이라고 부를 정도로 아꼈다. 카파는 존 스타인백, 피카소, 어윈 쇼, 마티스 등 당대의 최고의 소설가, 화가들과 가까이 지내며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의 일상적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 관람객들이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있다. Ⓒ 박병일
카파 사진전 관람객들은 주로 젊은층이었다. 블로그를 통해 사진전을 알게 됐다는 김정남(23)씨는 “사진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카파가 찍은 인물들의 표정이 흥미롭다”고 했다. 교사 박미정(31·여)씨는 “카파가 돈을 목적으로 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점을 좋아한다. 사람의 감성이 담겨 있어서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큐레이터 이진경(27·여)씨는 “사진이 좀 더 크게 인쇄 됐으면 더욱 실감났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번 사진전의 도슨트 진행을 맡고 있는 임현서씨는 “사진을 볼 때 표면만 보면 진짜 매력을 느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진을 찍을 당시의 상황이나 배경을 알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깊어가는 가을, 로버트 카파 사진전에서 휴머니즘으로 가득 찬 그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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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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