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200여명과의 만남 30권 펴낸 지승호 작가

러시아 출신 한국학자 박노자 교수, 소설가 공지영, 가수 신해철, 영화 ‘설국열차’의 봉준호 감독,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강한 개성을 지닌 이 인물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지승호(48) 작가와 인터뷰집을 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전업 인터뷰작가’인 지씨는 2002년 ‘비판적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부터 최근 철학자 강신주와 함께 낸 ‘맨 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30여권의 인터뷰집을 출간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200여명의 ‘뉴스메이커’에게 집중 질문을 던진 지승호 작가를 이번엔 <단비뉴스>가 인터뷰했다. 

철저한 사전 준비가 상대의 마음을 연다

“인터뷰이(대상)의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것이 사전준비의 원칙이죠. 소설가를 인터뷰할 때는 그의 모든 책을 읽고, 영화감독을 만날 때는 그의 모든 작품을 보고 나갑니다.”

지승호 작가는 준비가 철저한 인터뷰어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김지운, 류승완, 봉준호 등 영화감독 6인을 인터뷰한 ‘영화, 감독을 말하다’(2006년)를 위해 40여개에 달하는 여섯 감독의 디지털비디오(DVD)를 모두 구입해 봤다. 그 동안 여러 매체와 했던 인터뷰기사도 몽땅 찾아 읽었다. 품이 많이 들지만 그렇게 해야 인물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인터뷰집을 내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단계가 사전준비다. ‘신해철의 쾌변독설’(2008년)을 함께 낸 가수 신해철은 한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지 작가에 대해 “인터뷰어로서 굉장히 신뢰감이 있다. 이 양반이 뭔가에 대해 물어보면 ‘이유가 있겠지’하고 편하게 대답한다”고 말했다.

충실한 준비는 인터뷰어에 대한 신뢰를 낳고 신뢰는 솔직한 대화를 낳는다. ‘미리 만든 어떤 틀 안에 구겨 넣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어야 인터뷰이로부터 진솔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지 작가는 말했다.

“텍스트가 조금 덜 ‘섹시’하더라도 인터뷰이가 오해받지 않도록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섹시하게 쓰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쓸 수 있고, 사람을 막 규정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인터뷰어로서는 오래 못가겠죠.” 

▲ 인터뷰 중인 지승호 작가. ⓒ 박소연

그가 인터뷰를 한 뒤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인터뷰이가 ‘내 생각이 글에 잘 표현됐다’고 인정해 줄 때라고 한다. 지난 2003년 강준만 전북대 교수를 인터뷰했는데 나중에 글을 보고 강 교수가 “내가 그렇게 멋진 얘기를 했어요? 고생하셨어요”’라고 칭찬하더란다. 자신의 텍스트를 통해 인터뷰이가 하고 싶은 얘기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지 작가는 표현 하나하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를 다큐멘터리 영화에 비유했다. 화면에 감독은 등장할 필요가 없고, 현장과 인물을 잘 담아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다. 그래서 그의 인터뷰글에서 지 작가 자신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가급적 인물과 정서적 거리를 두고 질문을 던지는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도 인터뷰 현장에서 ‘울컥’하는 순간이 있다.

“지난 2002년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석 공동대표를 인터뷰 할 때였어요. 당시 박 대표는 서울 발산역 리프트 추락참사에 대한 공개사과를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었죠. 인터뷰가 다 끝난 뒤 ‘마지막으로 할 이야기가 없냐’고 물었더니 ‘배고파요’라고 하더군요. ‘울컥’하는 감정을 억누르기가 힘들었죠.”

인터뷰 하러 갈 때, 여전히 떨린다

▲ 자신의 저서 <마주치다 눈뜨다>에 사인을 하는 지승호 작가. ⓒ 박소연

소위 ‘잘 나간다’는 인사들의 인터뷰집도 1만 부 이상 나가기 어려운 출판 현실에서 그가 10년 이상 이 일에 매달리고 있는 이유는 뭘까. 그는 “독자들이 세계를 이해할 단초를 찾을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텍스트를 남기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또 자신과 같은 인터뷰 전업 작가가 우리 사회에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보였다. 대화와 소통을 거부하는 사회엔 나아질 희망도 없기 때문에, 불편하더라도 질문과 답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직업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아직도 인터뷰를 하러 갈 때면 떨린다는 그는 또한 인터뷰를 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행복한 인터뷰작가’가 되기까지, 그의 인생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그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지만 ‘농구만 했지 화염병 한 번 안 던져보고’ 학창생활을 마쳤다고 한다. 졸업 후 인터넷 한겨레의 하니리포터, 여성주간지 <우먼타임스>기자 등을 하면서 인터뷰의 중요성과 영향력을 체감했다. 2001년 회사를 그만 둔 후 프리랜서로 월간 <인물과 사상>, <아웃사이더> 등에 인터뷰를 연재했다. 하지만 인터뷰집을 내려고 한 출판사와 접촉했을 때 “문장이 안 돼 책을 내줄 수 없다”는 냉담한 답변을 들은 적도 있다. 현재의 명성은 ‘몸과 마음이 지칠 정도로’ 사전준비와 글쓰기를 거듭한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인터뷰를 쓰고 싶다는 후배들에게 주는 충고도 한결같다. 

“상대방을 잘 이해하는 게 기본이에요. 책도 많이 읽어야 하지만 책에만 빠지는 게 아니라 현실과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합니다. 사람들과 많이 부딪히고 실패하는 경험도 많이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실패를 두려워하다보면 실패를 통해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어요. 정답은 없죠. 모든 대화는 결국 인터뷰잖아요. 많이 인터뷰 해보고 그걸 기록으로도 남겨보고 그걸 평가 받아보기도 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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