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주제① 국가폭력과 사회폭력

때려야만 폭력인가

"전쟁상태도 아닌데 왜 이런(민간인 불법사찰과 같은) 불법이 용인되는 걸까요? 평화 시에 이런 불법이 일어나고 있는데, 국민들은 이걸 용인하고 있는 건가요? 당신들은 왜 가만히 있는 건가요? 왜 이렇게 조용한 건가요?"

▲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만든 '쥐코'. ⓒ Jay Kim
지난 2008년 김종익 KB한마음 대표는 영화 ‘식코’를 패러디한 ‘쥐코 동영상을 올렸다는 이유로 당시 국무총리실로부터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민간인에 대한 명백한 불법사찰이었다. 이 때문에 김씨는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인간관계도 무너졌다. 사찰은 폭력의 다른 이름이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에서 ’국가폭력과 사회폭력’을 주제로 강연하면서 폭력을 물리적 폭력과 문화적 폭력으로 나눴다. 문화적 폭력을 물리적 폭력보다 넓게 해석해서 사회적 낙인을 찍거나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으로 규정했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국가가 행하는 ‘문화적 폭력’의 예로 설명했다. 


“우리 사회가 문화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라고 볼 수 있을까요? 물리적 폭력은 없어졌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용납하진 않습니다. 사회 구성원에게 단일한 목소리를 요구하고, 아니면 왕따를 시키고, 생업을 박탈하고, 이런 식으로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일들이 지금 사회에 공공연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폭력조직과 군대∙경찰조직은 한 끗 차이다

“조폭들의 폭력조직과 군대나 국가와 다른 점은 뭘까요? 사실 조폭과 국가는 유사합니다. 차이점은 국가의 경우 그 권력 집행이 법에 의거한다는 겁니다. 그 집행이 정당하지 않다면, 법에 의거하지 않았다면 국가도 조폭과 다를 바 없죠.”
 

▲ '국가폭력과 사회폭력'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는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 안형준

먼 옛날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군대나 경찰이 없는 국가는 없다. 이름이 다를지언정 그 역할은 비슷했다. 국가는 구성원들의 동의에 기초해서 유지되지만, 그 사회에서 물질적인 이해관계가 심각하게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구성원들은 동의에 수긍하지 않게 된다. 김 교수는 이러한 충돌을 조정, 중재 또는 강제로 어떤 쪽을 화합, 양보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 역할을 군대나 경찰이 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전쟁을 위한 것이었으며, 관료제의 원형도 군대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사회에서 명령과 복종, 합리적인 일 처리는 중요한 원칙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가는 복종하지 않는 자를 법에 의거해 즉 ‘합법적’으로 처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불법에 의해 역사가 바뀐 대한민국 

 
“권력의 집행이 합법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작년 12월 국정원 댓글 사건이 불법인가요? 박정희의 쿠데타는요? 전두환의 5‧18은 어떤가요? 불법이죠. 그럼 대한민국은 조폭인가요?” 

▲ 김동춘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박정희의 5·16 , 전두환의 5·17, 5·18 광주 학살 또한 국가가 행한 폭력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가가 법을 어겨가며 법을 집행하는 예외적인 상황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말하는 예외 상황은 국가가 존립을 위해서 권력이 필요할 때를 말한다. 보통 전쟁 상태를 의미하며 법률용어로 ‘계엄’이라고 한다. 계엄 상태에서는 입법·사법·행정권이 정지된다. 재판은 단심으로 진행되며 민간인도 군사재판을 받는다. 계엄령이 내리면 국민의 자유를 합법적으로 침해할 수 있는 것이다. 

최고권력자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면 전제군주와 같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서 그는 인혁당 사건을 꺼냈다. 당시 계엄이라고 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군사독재에 맞선 대학생 8명에게 단 한번의 재판으로 사형 판결이 내려졌고 바로 다음 날 형이 집행됐다. 김 교수는 “그때가 75년입니다, 당시가 계엄 상황이었나요, 전쟁이 일어났나요”라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2007년 서울중앙지법은 인혁당 사건 관련 8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국가권력은 때때로 법을 위반해서 권력을 지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일으킨 것은 합법입니까? 헌법위반이죠. 전두환 5·17, 5·18 광주 학살한 것은 합법인가요? 불법이죠. 그런데 이 불법에 의해서 대한민국의 역사가 바뀌었잖아요.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 불법에 의해 이뤄진 거예요."
 
그것은 국가폭력이었다. 계엄이 선포되지 않더라도 적의 침입에 의해 극히 심각한 상태에 놓이면 국가가 안보를 명분으로 권력이 남용될 수 있다. 김 교수는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지 옳다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명박 정부 아래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이 민간인을 불법으로 사찰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공무원 기강을 바로잡는 일을 하는 곳인데 민간인을 사찰하고, 박근혜 대통령도 사찰 대상이 됐다. 이 사건과 관련한 청문회가 여야 합의로 열리기로 돼 있었으나 갈등만 지속될 뿐 시작조차 안 되고 있다. 
 
불통 미디어가 자행하는 문화적 폭력
 
미디어는 중요한 시기마다 앵무새를 자처했다. 국가가 말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 받아 적고 방송했다. 인혁당 사건으로 희생된, 결국 무죄로 밝혀진 8명을 언론은 정권의 말만 듣고 간첩으로 몰아세웠다. 5‧18 민주화 운동은 호남 사람들 분풀이로, 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을 폭도로 묘사했다. 
 

▲ 언론은 5·18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시민을 폭도로 묘사했다. 군인이 학생을 곤봉을 내려치고 있다. ⓒ 나경택(당시 전남매일신문 사진부)

지금도 미디어의 문화적 폭력은 계속되고 있다. 용산참사 당시 망루에 오른 사람들을 도심테러범으로 취급했다. 불법적으로 해고된 쌍용차 노동자들을 ‘떼쟁이’로 취급했다. 용산참사에서는 경찰 1명을 포함해 6명이 사망했고, 쌍용차와 관련해서는 노동자 23명이 자살하거나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언론이 덧씌운 이미지 때문에 그들은 사회에서 외면받았다. 
 
"폭력은 소통의 반대말일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주장을 해도 입을 막아버리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지를 덧씌워 나를 죽음으로 몰아버린다면, 내 항변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면,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다면, 권력이 응답하지 않는다면, 소통의 부재, 그것이 곧 폭력입니다." 
 
김 교수는 문화적 폭력이 정당화하면 물리적 폭력도 정당화한다고 설명한다. 미디어가 행한 ‘악마화’ 작업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방어기제를 제공한다. 만약 집단이 문화적 폭력을 행사해 한 사람을 ‘빨갱이’라며 따돌리고 차별하면 집단구성원과 그 사람간에 거리감이 생긴다. 이 때문에 그 사람에게 물리적 폭력이 가해져도 악마를 처벌하는 것이기에 집단의 구성원은 아무런 부담이 없게 된다. 사람들은 ‘떼쟁이’나 ‘빨갱이’가 죽어나가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물리적 폭력이 행사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아직도 국가폭력이 계속되는 이유다. 
 

▲ '악마화'에 의한 마녀사냥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 인터넷 화면 캡쳐
이런 현상은 사회전반에 퍼져 동성애자,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악마화도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고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미디어 등에 의해 이뤄지는 이와 같은 폭력을 ‘상징폭력’이라고 불렀다. 수원 토막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건 그 자체뿐 아니라, 범인이 조선계 중국인이라는 점이 크게 부각되었고 이후로 이민자 범죄에 대한 기사가 연속적으로 보도됐다. 내국인보다 이주민 범죄율이 훨씬 낮다는 통계치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그들을 악마로 만들어 버렸다. 

”소수자에 대한 악마화가 이루어지면 일종의 문화적인 폭력이 됩니다. 그것이 물리적인 폭력처럼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몰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문화적 폭력은 물리적 폭력과 같이 갑니다. 문화적 폭력이 넓게 퍼지면 물리적 폭력을 정당화합니다.” 
 
"사르트르는 '반유대주의는 만약에 유대인이 한 사람도 없다면 유대인을 만들어낼 것이다'라는 말을 했어요. 자기들 권력의 논리를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낸 다음 사회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분하에 이걸 기득권 유지에 이용합니다. 반유대주의처럼 반공주의는 종북파가 없어도 종북파를 만들어 낼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넓은 의미의 종북파는 정권에 반대해도 종북입니다. 파시즘이 여전히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국가와 반공단체에 의해 저질러진 제주 4‧3사건, 보도연맹 사건을 예로 들며, 국가의 폭력은 구조적으로는 외부의 전쟁 때문에 생긴 것이지만 외부의 적이 없더라도 내부의 적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다만 과거와 같은 물리적 폭력보다는 문화적, 구조적 폭력을 가하는 형태로 바뀌었을 뿐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용납하지 않고, 사회구성원에게 단일한 목소리를 요구한다. 사회적 약자는 더욱 소외받고 이들의 곤궁함이 더해지면 이런 폭력은 점점 더 심해진다. 
 
우리 사회의 자살은 타살이다 

민주화 이후 폭력의 양상은 바뀌었다. 사회폭력이 부각됐다. 사회폭력은 국가폭력의 문화 속에서 만들어지지만 다른 조건에서 만들어진다. 사회적으로 심각한 빈부간 불평등이 있거나, 특정한 사람들에게 분노와 원한을 축적시키거나, 심각하게 차별하는 경우에 나타난다.
 
김 교수는 대표적인 예로 “거의 터지기 직전”이라고 표현하며 학교 폭력문제를 들었다. 특정 아이를 ‘왕따’시켜 자살로 몰아가게 하는 현상은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한국의 아동·청소년(10∼24세)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지난2000년 6.4명에서 2010년 9.4명으로 47%나 증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국의 아동·청소년 자살률이 같은 기간 7.7명에서 6.5명으로 10년 새 16%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한국은 세계적인 아동·청소년 자살 국가다. 

▲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 특강을 하고 있는 김동춘 교수. ⓒ 안형준
 
그런데 학교폭력과 왕따는 과거부터 존재했기에 그것만으로 아동·청소년의 자살률 증가를 설명할 수는 없다. 왜 지금 시점에서 자살로 이어질까? 김 교수는 그 이유 중 하나로 국가폭력의 유산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면서 학교에 그대로 유입된 것을 든다. 이 유산은 전체주의다. 전체주의는 강자가 한 번 이야기하면 이견이 제시되지 않는 사회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힘을 발휘하려고 해도 견제 세력이 있지만 전체주의에서는 국회, 법, 시민사회 등 견제세력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 강자의 뜻이 그대로 관철된다. 
 
“옛날 아이들 사회에서는 힘 센 학생의 견제 세력이 있었습니다. 힘센 학생이 약한 학생의 물건을 한두 번 뺏으면 중간 정도 힘을 가진 학생들, 이른바 의로운 소수가 그만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 힘센 학생이 몇 번 괴롭히다가 그만뒀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말하는 학생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는 1990년대 신자유주의가 한국에 유입된 것도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가 실리적으로 판단하고, 자기의 이해관계 중심으로 파악하는 문화를 아이들에게 퍼뜨린 것이다. 신자유주의 문화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일을 하지 않는다. 부당한 일에 입을 다물고 만다. 이들은 방관자들이 된다. 방관자들이 모른 체하니까 여과 없이 폭력이 관철되고, 당한 아이는 호소할 데가 없어진다. 결국 피해를 입은 아이는 자살한다. 
 
폭력문화에 무덤덤하면 폭력은 나를 향한다
 
폭력이 만연한 사회는 병든 사회다. 우리사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김 교수는 지난해 있었던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을 어떻게 처벌하는지를 보면 답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세훈 국정원장이 (감옥에서) 제대로 안 살고 나오면 비슷한 행위가 반복될 것”이라며 국가 정의를 세우는 것이 해결책임을 강조했다. 비합법적인 권력이 견제되면 사회폭력도 줄어들 것이라 내다봤다.
 
민주국가에서 국가권력을 통제하는 것은 국민이다. 따라서 부당한 국가폭력과 사회폭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시민의 힘이 절대적이다. 국민권력은 국가정의를 바로 세우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김 교수는 폭력 문제에 적극적 시민의식을 가지고 참여할 것을 당부했다.
 
“폭력 문화의 청산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여러분들 몫입니다. 이 문제에 무덤덤해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폭력은 여러분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문명국가가 아닐 수 있습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사회교양특강>은 김현대, 박상훈, 전중환, 유시민, 김동춘, 이종현, 홍기빈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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