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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무대 뒤 불편한 진실
비정규직 사각지대, 방송사
2013년 07월 13일 (토) 16:42:29 김혜영 기자 firstjournal@naver.com

눈부신 조명 아래 화려하게 빛나는 스타들, 누구나 한 번 쯤은 TV 속 세상을 동경해본다. 꼭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프로듀서(PD), 기자, 아나운서 등은 수년 째 청소년들의 장래 희망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꿈의 직장이라고도 불리는 방송사. 하지만 무대 뒤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어차피 직원도 아니고 근로계약서 같은 것도 없으니, 저를 챙겨줘야 할 의무는 없으니까요.”

햇수로 5년 째 지상파 방송사에서 프리랜서 구성작가로 일하고 있는 김지혜(27‧여‧가명)씨는 정규직에 비해 터무니없이 부당한 임금 체계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4대 보험은커녕 야근, 주말 근무를 해도 시간 외 수당은 전혀 없다”며 “일을 하더라도 프로그램이 방송되지 않거나 기획 단계일 때는 급여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 등도 부당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10년 넘게 동결 상태인 막내 작가의 급여 수준이라고 밝혔다. “자료조사부터 섭외, 출연자 스케줄 관리까지 사실상 프로그램의 궂은일은 막내 작가가 도맡아 한다”고 말한 김씨는 “하지만 이들이 받는 돈은 월평균 80만 원에서 90만 원 선”이라며, 이는 자신이나 10년 경력 이상의 메인작가가 막내일 때 받았던 액수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출퇴근 시간도 일정치 않고 평일은 물론 주말이나 휴일에도 수시로 일해야 하는 처지지만 녹화를 하다 다쳐도 치료비조차 청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한 지역 방송사에서 2년 째 구성작가 일을 하고 있는 홍수진(26‧여‧가명)씨는 최근 촬영 중에 다리를 다쳐 인대가 늘어나는 사고를 당했지만 담당 부서나 회사에서 아무런 대책도 세워주지 않았다고 한다.

“좀 부당해도 참는 거죠. 어차피 또 봐야 할 사람들이니까…. 한 번 눈 밖에 나면 이 일하기 힘들어요.”

   
▲ 방송사에는 다양한 고용형태의 비정규직이 존재한다. (위 사진은 본 기사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김혜영

방송 프로그램은 출연자와 PD, 작가, 카메라 감독만으로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니다. 스튜디오 녹화 프로그램 같은 경우에는 음향, 조명, 세트, 특수효과 등을 포함한 현장 스태프가 최소 50명 이상이다. 이 중 방송사 정규직은 공채출신 조연출 포함 연출자 3~4명 남짓, 카메라 감독 7~8명 남짓이다. 나머지는 모두 외주제작사 소속이거나 프리랜서다. 외주사들은 사실상 방송사의 하청을 받는 처지기 때문에 대체로 그들을 고용하는 방송사의 책임 프로듀서(CP)나 담당 프로듀서(PD)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현장에서 세트를 설치하는 일부터 시작해 현재는 방송 무대 디자인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윤진규(55‧가명)씨는 “방송사 국장의 말 한마디면 언제든지 일거리를 잃을 수 있는 것이 외주사의 현실”이라며 그래서 자신을 비롯한 외주업체들은 “몇 년 째 같은 제작진과 일을 해도 혹시나 밉보이지나 않을까 늘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이 들면 TV에 못 나오니 정규직으로 채용할 수 없데요. 더 늦기 전에 제 살길을 찾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상대적으로 화려해 보이는 아나운서의 세계에도 비정규직은 만연해있다. 여자 아나운서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곳은 서울 지상파 방송사 등 몇 군데에 불과하다. 한 지역 방송사에서 비정규직 아나운서로 2년가량 일하다 올해 초 그만둔 이아름(27‧여‧가명)씨는 방송사 사장과의 식사 자리에서, 여자 아나운서는 나이가 들면 방송에 내보내기 곤란하니 정규직으로는 채용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씨는 “당시 사장의 그 말이 아나운서를 그만두기로 결심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됐다”고 말했다. 결혼을 하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을 수 없게 되는 분위기도 부담이 됐다고 한다. 회사가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무기 계약직 혹은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겠다”고 했지만 이씨는 그 회사에 그런 전례는 없었기에 기대를 접고 사표를 냈다고 했다. 이씨는 현재 지상파 방송사의 정규직 공채를 준비 중이다.

사각지대에서 점차 수면 위로

지난해 7월 문화방송(MBC) <PD수첩>의 작가 6명 전원이 사측에 의해 무단으로 해고되는 일이 벌어졌다. 분위기 쇄신 차원이라는 모호한 이유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지만 이들은 정직원이 아닌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법적 장치는 없었다. 이 때문에 이들은 기자회견이나 시위, 서명운동 등을 통해 MBC 측의 부당 해고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PD수첩> PD들이 사측에 의해 정직 처분 등의 징계를 받았을 때 무효소송을 제기해 원고 승소 판결을 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는 부당해고를 당해도 구제받을 법적 장치가 없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사 비정규직의 저임금 구조와 노동착취가 심화하면서 이에 대항하는 투쟁도 최근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 4월 전국언론노동조합 대전MBC 계약직 분회(분회장 길홍동)는 "2007년 시행된 비정규직 보호법에 의해 사실상 정규직으로 전환됐음에도 회사 측으로부터 임금과 복지 등에서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며 대전지방법원에 차별시정요구 소송을 제기했다. 방송사 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당 처우에 반발해 직접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방송(KBS) 차량 노동자들은 총액 대비 5.4% 임금인상과 부당징계 철회를 내걸고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전면파업 39일째 사측이 제시한 임금 4.5% 인상안을 수용하며 극적 합의를 이뤄냈다. 

   
▲ 임금인상과 부당징계 철회를 내걸고 총파업에 돌입한 비정규직 KBS 차량 노동자들은 파업 39일째 사측과 합의를 이뤄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노조를 결성할 수 있는 방송사의 운전 노동자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파견, 도급, 용역, 프리랜서, 임시직 등 방송사 내부의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노조가 없다. 따라서 사용자를 상대로 한 임금 및 단체 협상도 할 수 없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가 매우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곧 방송사 비정규직에 대한 실태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언론노조 최정기 조직쟁의실 차장은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방송사에는 환경미화, 시설관리, 작가, 카메라 보조 등 다양한 비정규직이 있지만 정확한 현황 파악조차 안 되고 있다"며 "불합리한 처우에 놓여있는 비정규직들을 지원하기 위한 비정규직 지원센터를 올해 안에 설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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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영 기자]
단비뉴스 미디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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