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식구’의 의미 되짚어보게 만드는 ‘고령화가족’

“내 걱정 그만하고 엄마 인생 살아, 제발!”
“너도 꼭 너 같은 자식 낳아봐라.”

전화번호를 지우고, 찾아가지 않고, 말 한마디 안 하고 살아도 평생 끊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가족. 작가 천명관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송해성 감독이 만든 영화 <고령화가족>이 지난달 9일 개봉 후 관객 100만을 넘기며 꾸준히 인기몰이 중이다. 예순이 넘은 엄마(윤여정 분)에게 만원만 더 달라며 손 내미는 30,40대의 두 아들(윤제문, 박해일 분)과 세 번째 결혼을 앞둔 딸(공효진 분), 그 딸의 ‘개념상실’ 중학생 딸(진지희 분)까지. 이 ‘콩가루 집안’의 엄마는 대체 무슨 죄를 지었을까. 알고 보니 세 자식 모두 아빠가 다르단다. 보기 드문 ‘총체적 난국’의 이 가족, 그런데 보면 볼수록 우리 각자의 가족과 닮은 부분들이 도드라진다.

▲ 영화 <고령화가족>은 다양한 모습의 가족구성원이 함께 부대끼며 사는 이야기다. ⓒ 공식 홈페이지

목을 매려는 순간 등장한 엄마의 닭죽

사업에 실패했다. 몇 달째 밀린 방세를 재촉하는 집주인의 폭언이 아니더라도 이미 자존감은 바닥에 뭉개져 있다. 화석처럼 웅크렸던 몸을 벌떡 일으킨다. 목에 넥타이를 묶고 발끝에 걸린 의자를 뒤로 밀기만 하면 이제 끝이다. 그 순간 울리는 전화벨.

“담벼락에 꽃이 예쁘게 폈다~. 꼭 엄마처럼 말이야. 인모야, 집에 와서 닭죽 먹고 가~. 너 닭죽 좋아하잖아...”

엄마의 닭죽은 아들의 목숨을 구했다. 청소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하루 평균 4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 대한민국. 성적비관, 사업 실패, 우울증 등 저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한다. ‘아직’ 결행하지 않았을 뿐 죽음의 언저리에서 서성이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까. 불특정 다수를 공격하는 ‘묻지마’ 범행으로 세상에 원망과 분노를 쏟아내는 사람도 늘고 있다. 영화는 이 절망의 고리를 끊어 낼 가느다란 빛줄기가 가족이라고 말한다.

빛도 들지 않는 방안에 하루 종일 웅크려있던 내게 꽃이 예쁘게 폈다고 알려주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놓고 ‘속이 든든해야 없던 힘도 생긴다’고 불러주는 사람. 사실 내 문제를 아무 것도 해결해 주지 못하고, 가끔은 짐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그 가족 말이다.     

‘쪽 팔려’ 집 나간 조카를 찾아서 

“나 쪽팔려서 도저히 못 있겠어. 나가있을게."

미연의 중학생 딸 민경은 모처럼 함께 한 가족나들이에서 옆 테이블과 시비가 붙어 싸우는 가족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다 밖으로 나가버린다. 어느 날은 피자를 시키더니 옆에 있는 삼촌들에게 말 한마디 없이 혼자 먹어 치우고, 급기야는 이 모든 상황이 구질구질하다며 집을 나간다.

삼촌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말도 지지리 안 듣던 조카지만, 두 삼촌은 그 조카를 찾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다. 자존심을 버리고 죽도록 하기 싫던 일까지 다시 시작한다. 버릇없고 말썽만 부리던,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던 조카를 찾기 위해 절대로 안 변할 것 같은 삼촌들이 달라졌다. 그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결국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가족이니까.  

▲ ‘가족이니까’는 때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유가 된다. ⓒ 공식 홈페이지

장성한 자식들 싸움 말리는 주문 “자, 밥 먹자”

'가슴 속에 스며드는 고독이 몸부림 칠 때~'

오늘도 엄마는 패티김의 ‘초우’를 흥얼거리며 된장찌개에 넣을 두부를 썬다. 거실에선 투닥투닥 자식들이 다투는 소리가 들린다. 이 소란을 정리할 수 있는 주문은 “그만들 하고 밥 먹자~”하는 엄마의 한 마디. 그러면 ‘콩가루’ 다섯 가족은 언제 그랬냐는 듯 찌개 그릇에 함께 숟가락을 담그며 '식구(食口)'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준다. 다시는 안볼 것처럼 싸우다가도 아무렇지도 않게 밥상에 둘러앉게 만드는 그 끈끈하고도 ‘징한’ 이름.

▲ 싸우고, 토라져도 가족은 다시 밥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 공식 홈페이지

영화 <고령화가족>은 ‘이 보다 더 골치 아픈 집안이 있을까’ 싶은 문제가정을 등장시켜 지금 우리 옆에 있는 가족의 안부를 묻고 있다. 영화의 완성도에 다소 비판이 없지 않지만 파이란(2001),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 등 사회성 짙은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의 문제의식이 돋보인다. 영화를 보고 나면 문득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싶거나, 토라져 있던 형제의 방문을 두드리고 싶어질 지도 모른다.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