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예능과 결합한 다큐멘터리, 오락프로 대세로 부상

방송인 김성주는 아들에게 엄하고, 개그맨 양상국은 부모에게 애틋하다. 가수 서인국은 자취생활 7년차인데도 집안 꼴이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지만, 비슷한 처지의 배우 김광규는 ‘살림의 달인’이다. 특별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이렇게 속속들이 그들의 사생활까지 알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야흐로 다큐멘터리와 예능이 결합된 오락 프로그램, ‘다큐테인먼트’ 전성시대이기 때문이다. 한국방송(KBS)의 <인간극장>, <다큐3일>이나 문화방송(MBC)의 <휴먼다큐-사랑>처럼 인간미 물씬한 ‘휴먼다큐’에 익숙해 있던 시청자들이 요즘 재미와 웃음으로 무장한 예능다큐에 공략 당하고 있다.

▲ 다큐에 오락성을 가미한 '다큐테인먼트'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 각 프로그램 공식 누리집
지난 몇 년간 TV예능의 대세는 MBC <무한도전> 등을 중심으로 한 ‘리얼 버라이어티’였다. 일정하게 설정된 상황의 테두리 안에서 연예인들이 즉흥적인 게임, 연기, 코미디, 노래, 춤 등 다양한 오락요소로 재미를 주는 형식이다. 그런데 다큐테인먼트는 기존의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에서 의도적 설정들을 가급적 줄이고 출연자들의 자연스런 움직임에 카메라를 가까이 가져간다. KBS2TV <인간의 조건>, 에스비에스(SBS) <행진-친구들의 이야기>, <땡큐>, MBC <아빠! 어디가?>, <남자가 혼자 살 때> 등이 대표적인 다큐테인먼트 프로들.  이 중 <아빠! 어디가?>는 지난달 17일 방송에서 자체 최고시청률인 14.2% (AGB닐슨코리아, 전국기준)를 기록하며 침체됐던 <일밤>의 구세주로 떠올랐고, 파일럿(실험방송)으로 나갔던 <땡큐>와 <남자가 혼자 살 때> 역시 시청자들의 호평에 힘입어 정규방송으로 편성되는 등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스타의 모습’에서 친밀감 

시청자들은 왜 다큐테인먼트에 열광할까? 우선은 낯익은 연예인들을 통해 낯선 환경을 대리 체험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아빠! 어디가?>는 2주마다 한 번씩 아빠와 아이들이 강원도 춘천, 충청북도 청원 등 산골짜기 동네로 여행을 떠난다. 장작으로 불을 때고 가마솥에 밥을 지어먹는 시골 풍경은 나이 든 세대에게는 아련한 추억의 장면으로, 젊은 세대와 아이들에겐 신기한 영상으로 다가온다. 배우 이선균이 <행진>에서 10여 명의 친구들과 함께 강원도 철원부터 양양까지 151km의 6박 7일 국토대장정에 나섰을 때 시청자들은 고단한 행군의 고통과 성취감을 함께 맛볼 수 있었다. <인간의 조건>에서 개그맨들이 휴대전화, 인터넷, 자동차 등 문명의 이기를 매주 하나씩 뺏긴 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맞아, 저렇게 불편하겠지’하며 공감한다.

▲ 낯선 환경의 대리체험은 '다큐테인먼트'의 인기비결 중 하나다. 위에서부터 <아빠 어디가>(MBC), <땡큐>(SBS), <행진>(SBS)의 한 장면. ⓒ 화면 갈무리와 공식 누리집

다큐테인먼트의 또 다른 매력은 ‘잔잔하고 자연스런 웃음’을 끌어내는 ‘느린 호흡’이다. 기존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3초에 한 번씩 빵빵 터지는’ 큰 웃음에 집착하면서 억지스럽고 무리한 장치까지 동원했다면 다큐예능에는 그런 식의 설정이 거의 없다. 출연자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다 보면 의도되지 않은 소소한 재미와 웃음이 절로 터지는 식이다. 요란스럽게 웃음을 강요하는 듯한 오락프로가 불편했던 시청자들은 다큐예능의 편안한 매력에 점점 빠져든다.

스타들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모습에서 느끼는 친숙함도 다큐테인먼트의 흡인력이 되고 있다. 화려하게만 보였던 스타도 어느 비오는 날 버스를 타며 감상에 젖고,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우는 아이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아빠가 된다. 야구선수 박찬호 같은 이도 은퇴 이후의 삶을 두려워하는 보통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나와 다른 환경에 살고 있는 유명인도 인간으로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며 시청자들은 다소간의 위로를 받는다. 

긴 생명력의 조건은 진심

결국 이런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키워드 역시 시대적 화두인 '힐링(치유)'과 '공감'이라고 할 수 있다. 큰 웃음 뒤에 허탈함을 안기는 오락보다 소소하고 잔잔한 재미를 주는 프로에 더 끌리게 된 셈이다. 그렇다면 다큐테인먼트의 대세는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 한 가지 참고할 사례는 조작논란에 휘말렸던 SBS <정글의 법칙>이다. 생생한 정글체험기에 열광하던 시청자들은 방송 내용이 상당부분 인위적으로 설정됐다는 것을 알자 거세게 비난하며 등을 돌렸다. <정글의 법칙>은 여전히 오지의 체험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예능이라 할지라도 다큐프로의 생명은 ‘진정성’이라는 사실을 제작진이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조작 방송 논란으로 진정성을 의심받은 SBS 정글의 법칙. ⓒ SBS 화면 갈무리

한창 인기를 모으고 있는 다큐테인먼트 프로그램들 역시 과한 욕심 대신 지금의 속도와 호흡을 유지하면서 새로움을 더할 방법을 계속 찾아야 할 것이다.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처음 사랑받았던 이유를 되새기면 된다. ‘진심’이 가장 확실한 새출발 지점이 되어 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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