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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우리가 있다”
제13회 서울 성소수자(LGBT)영화제에 모인 사람들
2013년 06월 12일 (수) 18:26:21 김혜영 김남범 기자 firstjournal@naver.com

한껏 부풀린 머리, 기다랗고 풍성한 속눈썹, 화려한 드레스, 높은 하이힐. 턱시도를 입은 남자 친구의 손을 잡고 다소곳이 걸어오는 저 신부. 자세히 보니 남자다. 이 커플은 지난 5월 국내 최초로 동성결혼 발표 기자회견을 연 영화감독 김조광수(48)씨와 그의 파트너 김승환(29·레인보우팩토리 대표)씨다. 김 대표의 여장, 이른바 '드랙 퀸(Drag Queen)'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지난 6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제13회 ‘LGBT 영화제’의 막이 올랐다.

‘LGBT 영화제’는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들의 존재와 삶을 다루는 국내 유일의 성소수자 영화제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계를 조망하기 위해 개최되고 있다.

   
▲ 서울LGBT영화제는 성적 소수자들을 위한 영화제다. ⓒ 공식 홈페이지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인식 변화는 세계적 추세다. 지난 달 말 열린 제66회 칸 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레즈비언의 사랑을 그린 영화 <블루 이즈 더 워미스트 컬러>가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일본에서는 첫 성소수자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프랑스와 뉴질랜드에서는 얼마 전 동성 결혼을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국내에서도 2차 대전 당시 여장 남자였던 샤로테의 일생을 다룬 연극 <나는 나의 아내다>와 동성애 코드의 뮤지컬 <헤드윅>, <드랙 퀸> 등이 좋은 반응을 얻으며 성소수자들의 문화가 점차 음지를 벗어나 수면 위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동성애 합법화 앞에는 여전히 높은 벽이 가로놓여 있다. 지난 2월 민주통합당 김한길·최원식 의원이 대표 발의한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금지' 조항을 담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은 보수 기독교계의 거센 반발로 좌초됐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입법 저지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한기총 홍재철 회장은 <경향신문> 인터뷰를 통해 “기독교는 정결하고 깨끗한 종교인데,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인 에이즈를 낳는 동성애를 금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기독교계의 입장이 다 이런 것은 아니다. 제13회 ‘LGBT 영화제’의 집행위원이자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 연대'(차세기연)에서 활동하고 있는 섬돌향린교회의 임보라 목사는 "기독교의 율법이 사회적 약자 보호에 기초를 두고 있다"며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는 데 기독교가 앞장서는 건 종교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한국 기독교 90% 이상이 보수적 색채를 띠고 있어서 진보적 기독교인이 묻히고 있다"며 차별금지법 철회 사태도 "한국의 대형 교회들이 빚어낸 폐해"라고 지적했다.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증)인 친구들이 많아서…말하기 겁이나요"

성소수자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편견은 이들을 사회적 소수자로 내몰아 왔다. 혼자서 ‘LGBT 영화제’를 찾은 레즈비언 여대생 송지애(가명·21)씨는 현재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에게조차 자신의 성적지향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유일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은 온라인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송씨는 "앞으로 취직도 하고 직장생활도 해야 할 텐데 혹시나 자신의 성적지향이 일자리를 구하는데 난관이 되거나 취업하더라도 해고 사유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커밍아웃을 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커밍아웃을 한지 10년이 넘었다는 게이 김철호(40대)씨는 성적지향을 공개한 이후 삶에 대해 책임감을 갖게 돼 그 이전보다 마음은 편해졌지만 지금도 모든 가족들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성소수자들은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권리를 가졌습니다. 성소수자들 역시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습니다. 민주주의는 다양성 위에서 번창합니다. 정부는 편견을 부채질하는 것이 아니라 편견과 맞서 싸울 의무가 있습니다." (반기문 UN사무총장, 2012년 12월11일 유엔 뉴욕본부)

전 세계는 현재 성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도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4월 우루과이가 '동성 결혼'을 허용하는 법안을 최종 통과시켜 아르헨티나에 이어 중남미에서 2번째로 동성결혼 합법 국가가 됐다. 현재 동성 결혼 허용 국가는 캐나다, 네덜란드, 프랑스 등 14개국에 이른다.

전 세계에 성적 소수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공식 집계는 없지만 커밍아웃을 한 사람으로만 볼 때 4억 명 정도로 추산된다. 전체 인구의 8%가량인 셈인데 이 경우 우리나라의 성적 소수자는 300만에서 400만 명 선이다. 내 가족, 친구, 동료 중 성소수자가 한 명쯤은 있을지도 모른다.

   
▲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대표는 오는 9월 공개적인 장소에서 뮤지컬 형태의 결혼식을 연다. ⓒ 김승환

영화감독 김조광수와 그의 파트너 김승환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오는 9월 공개적인 장소에서 뮤지컬 형식의 결혼식으로 대규모 퍼포먼스를 벌이며 그 날을 성소수자의 축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또 "10만 하객에게 축의금을 모아 국내에 LGBT 센터를 설립하고 동성 결혼 합법화를 위한 헌법소원도 제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대표가 각각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로 참여한 제 13회 ‘LGBT 영화제’는 이달 16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와 KU시네마테크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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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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