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생활밀착형 가사로 공감 얻는 가수 김거지

▲ 가수 김거지의 첫번째 미니앨범 <밥줄>의 재킷 사진. ⓒ 공식홈페이지

척추뼈가 도드라질 만큼 깡마른 상체를 드러내고 두 손을 한 데 모은 채 구걸하듯 한강변에 엎드린 남자. <밥줄>이라는 노골적 제목의 첫 앨범에 실린 가수 김거지(28․ 본명 김정균)의 모습이다. 화려한 기계음이 판치는 국내 가요계에 ‘통기타’와 ‘목소리’, ‘진심’을 무기로 도전장을 내민 남자. 뮤직칼럼니스트 김장훈이 ‘구슬프고 애달픔 넘치는 이야기들로 빼곡히 채워진 어쿠스틱의 서정’이라고 음악세계를 평한 싱어송라이터(자작곡가수) 김거지씨를 지난달 5일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27살 데뷔 늦었지만 '독백'으로 인정받은 뮤지션

“오래전부터 음악이 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시작했어요. (출발이) 늦었기 때문에 뒤돌아 볼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그는 27살에 데뷔한 늦깎이 뮤지션이다. 인하대 건축공학과를 나왔지만,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다. 대신 음악은 늘 놓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관심을 쏟기 시작한 노래와 연주는 대학의 록음악 동아리 ‘인드키’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지난 2011년, 실력 있는 싱어송라이터의 등용문으로 유명한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자작곡 ‘독백’으로 대상을 받았다. 그 덕에 지난해 첫 앨범을 낸 데 이어 지난달 두 번째 미니앨범 <구두쇠>를 발표했다.

▲ 늦깍이 뮤지션 김거지. 2011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 류대현

그의 노래에는 생활 속에서 우러난, 고단하고 서글픈 청춘의 이야기가 넘친다. 첫 앨범의 ‘하얀 손’은 “내 하얀 손에 할 일을 줘, 무엇이든 니가 원한다면 할 수가 있어”라고 ‘백수’의 절박함을 노래한다. “나 외롭다고, 누가 좀 안아줄 순 없겠냐고...” 호소하는 ‘외롭다고 노래를 부르네’도 비슷한 처지의 청춘들을 울컥하게 만든다.

두 번째 앨범에 실린 5곡도 생활밀착형 가사 일색이다. “바다에 가고 싶은데 너무 멀어서 못 간다”는 직장인 친구의 푸념에 잔잔한 멜로디를 입혀 “작은 청춘도 쓰지 못하는 너는 구두쇠가 아닐런지”라고 속삭인다. 타이틀곡 ‘구두쇠’다. ‘커플티’라는 곡에서는 지나간 사랑에 대한 미련을 “추억은 버릴 수가 없어 남루한 잠옷이 되어가고 있네”라고 읇조린다. 목욕하며 밀어내는 ‘때’는 떠나간 그녀가 된다. “니가 따끔거려와 참을 수 없어, 이젠 눈물 대신 너를 밀어내.” 음악팬들은 첫 앨범의 ‘독백’과 ‘외롭다고 노래를 부르네’, 두 번째 앨범의 ‘커플티’와 ‘거짓말’에 특히 많은 관심을 보였다.

“철저하게 경험에 의존해 가사를 쓰다 보니 많은 곡을 쓰지 못하는 게 한계예요. 소재가 경험에 한정되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책으로 간접 경험도 하고 상상을 많이 하려고 해요. 그래서 편안하게 쉬지를 못해요. TV를 보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이걸 노래에 쓰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수첩에 메모해요.”

기타를 사려고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그에게 친구는 ‘거지’라는 예명을 지어줬다. 그런데 미니 앨범을 2개 내고 프로 가수가 된 지금도 거지인데는 변함이 없다고 그는 말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음악만으로 먹고 사는 건 힘들다며 씁쓸하게 웃는다. 

“예전에는 필요한 게 있으면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통기타도 가르치고, 게임방에서 일도 하고, 촬영보조 아르바이트도 했죠. 지금은 녹음장비가 필요하면 소속사 녹음실에서 마음껏 쓸 수 있으니 불편한 건 없어요. 하지만 제가 갖고 싶은 것과 쓸 수 있는 것은 다른데, 그걸 살 만큼의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게 문제예요.”

▲ 기타를 사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고 회고하던 그는 인터뷰 중 직접 기타 연주를 선보였다. ⓒ 이슬비

소리에 주목하는 그들처럼, "내 무대는 길거리"

김씨는 지난 2010년 케이블방송 엠넷(Mnet)의 오디션프로 ‘슈퍼스타K’ 시즌2에 참가했다가 예선에서 탈락한 일이 있다. 음악을 하는 게 막막할 때, 주위에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등을 떠밀었다고 한다. 하지만 남의 노래를 부르는 데 불편함을 느꼈고 그 때문에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회고한다. 그 일을 계기로 자신이 정말 부르고 싶은 노래가 뭔지 더 깊이 고민했고, 그 덕에 이듬해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영광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프로 가수가 됐지만 그의 주 무대는 여전히 길거리다. 특히 서울 마포대교 아래 한강변에서 버스킹(busking, 길거리연주)을 많이 한다. 첫 번째 앨범의 재킷 사진에 이어 두 번째 앨범 타이틀곡 ‘구두쇠’의 뮤직비디오도 한강에서 찍을 만큼 이 곳에 남다른 애착이 있다. 앞으로도 한강에서 버스킹을 하며 음악팬들을 가깝게 만날 계획이라고 한다.

▲ 김거지의 두번째 미니앨범 타이틀곡 '구두쇠' 뮤직 비디오.

“소리에 주목하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잭 존슨의 따뜻한 어쿠스틱 음색을 닮고 싶고, 재즈가수 노라 존스처럼 소리 자체를 멋지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김씨에게는 닮고 싶은 선배가 많다. 아일랜드의 싱어송라이터 데미안 라이스도 그 중 한 사람. 지난해 내한 공연 때 달랑 혼자 와서 공연 내내 관중을 압도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고, 그 열정을 닮고 싶다고 한다. ‘핑계’의 가수 김건모와 ‘슈퍼스타’라는 노래로 잘 알려진 이한철은 그가 존경하는 선배들이다. 김씨는 “김건모 선배님의 인간적인 면과 음악적 무게, 여행을 다니고 여행지에서 곡을 쓰는 이한철 선배의 삶의 모습을 닮고 싶다”고 말했다.

가수 브라운아이드소울과 함께 음악기획사 ‘산타뮤직’에 속해 있는 김씨는 “소속사도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존중해주기 때문에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중음악계에 조심스런 바람을 내비쳤다.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이 좋은 가수를 더 많이 발굴할 수 있는 시스템이잖아요. 음악성을 인정받는 유재하음악경연대회 같은 곳도 수상자들이 음악을 더 많이 들려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좋겠어요. 공연할 수 있는 무대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세대의 애환을 절절하게 담은 가사가 시중의 이런저런 ‘청춘 위로서’ 보다 호소력이 있기 때문인지 요즘 그에게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 요청이 심심찮게 들어온다고 한다. 그는 “만일 강연을 한다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기보다 솔직한 얘기와 함께 노래를 많이 부를 생각”이라고 말했다.

많은 가수들이 ‘어떻게 부를까’에 더 신경을 쓰는 요즘 ‘무엇을 부를지’ 깊이 고민한다는 가수 김거지. 이번 여름 발매된다는 3번째 앨범엔 또 얼마나 ‘짠한 이야기’가 담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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